산 채로 목 따는 '할랄' 도축... 대통령은 알까
'할랄도축장에서 동물보호법 지키겠다'는 정부의 모순
국내 기업들도 시장규모가 2조 3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할랄식품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보고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할랄식품 인증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일반 소비자들도 할랄인증식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할랄(Halal)'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으로, 이슬람 율법 하에 이슬람교도가 먹고 쓸 수 있도록 생산, 가공된 식품과 제품을 일컫는 말이다. 식물, 비늘이 있는 어류, 할랄에서 규정한 방법대로 도축한 육류 등이 이에 속한다. 반대로, '하람(Haram)'이라는 말은 무슬림에게 금지된 것을 뜻한다. 돼지고기, 동물의 피로 만든 음식, 알코올이 하람이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도축
동맥, 정맥, 식도와 기도는 자르되 척수는 자르지 않는다. 몸의 피가 전부 빠져나갈 때까지 목이 몸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규율 때문이다. 공포심에 질린 소는 목에 칼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마지막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고정틀에 묶여 살기 위한 발버둥을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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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사회에서는 목을 자르는 순간 동물이 의식을 잃기 때문에 일반적인 도축방법보다 고통을 심하게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일부 무슬림 사회에서는 도축자가 기도문을 읊자 동물들이 평온하게 죽음을 맞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다소 어이없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2003년 영국의 정부자문기관인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rm Animal Welfare Council)는 보고서를 통해 "의식이 있는 동물의 목을 자르는 것은 의식을 잃기 전에 확연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야기한다"고 밝혔다.
목을 베는 과정에서 피부, 근육, 기도, 식도, 동맥, 정맥, 신경원, 작은 신경들이 전부 절단되면서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연구에서 위원회는 평균적으로 양은 5초에서 7초, 성체 소의 경우 22초에서 40초 가량, 길게는 2분까지 고통을 느낀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위원회는 기절과정 없는 도축은 '용납될 수 없다(unacceptable)'며 금지해야 한다는 자문을 내놓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9년 뉴질랜드에서 행해진 실험에서는 송아지의 경우 목이 잘린 2분 후까지 고통을 느끼는 것이 뇌파를 통해 감지되었다.
일부 할랄도축장에서는 목을 칼로 따기 전 기절을 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2013년 시행된 영국식품표준청(Food Standard Agency)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 내의 할랄도축장에서 도축된 동물의 88퍼센트가 기절 상태에서 도축되었다.
무슬림 사회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동물이 기절한 상태라도 아직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슬람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반드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도살할 것을 인증 기준으로 정한 기관도 많다. 전기총을 맞고 동물이 즉사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기절방식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영국의 할랄식품인증기관 중 하나인 할랄식품관리위원회(Halal Food Authority)는 지난 5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도살 전 기절 여부에 대해 표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물복지가 종교보다 우선' vs '종교의 자유 침해'
무슬림뿐 아니라 유대교에서도 살아있는 채로 도살된 동물만 먹을 수 있다는 율법이 있다. '코셔(Kosher)'는 '알맞은'이라는 의미로, 할랄처럼 유대교인들이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을 가르치는 말이다. 율법에 따른 도살법을 '셰치타(Shechita)'라고 부르는데, 칼로 식도, 기도, 동맥, 정맥을 한 번의 움직임으로 베는 방법이다.
무슬림과 유대인 인구가 많은 서구권 국가들의 대부분은 종교적 의례에 따른 도축의 허용 여부에 대해 따로 방침을 정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 코셔와 할랄 도축은 동물보호(복지)법에서 예외로 두고 있다.
호주에서는 '의례에 따른 도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소는 목을 칼로 자르기 시작하자마자 기절시키도록 규정했다. 또한, 반드시 두 명의 도축자가 작업해 한 명은 목을 자르고 한 명은 기절시키는 일을 할 것을 의무화했다. 양은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당장 의식을 잃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절 없이 도축할 수 있다. 닭은 모두 도축 전에 기절시켜야 한다.
▲ 할랄식으로 도축되는 양의 모습 | |
ⓒ occupyforanimals.net |
반면에, 아무리 종교적인 이유라 해도 의식이 있는 동물의 목을 베는 도축방법을 법으로 금지하는 국가도 있다. 노르웨이, 폴란드, 스위스, 스웨덴, 리히텐슈타인, 아이슬란드, 덴마크 등의 국가는 반드시 도살 전 기절시킬 것을 의무화했다.
일부에서는 종교적 도살을 금지하는 것이 반유대주의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2014년 2월 덴마크 농수산식품부 장관은 기절 과정이 없는 종교적 도축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동물의 권리가 종교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혀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갑작스러운 할랄식품에 대한 열정은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보다는 수출시장 확대에 그 목적이 있다. 농림부는 박 대통령의 중동 방문 이후 할랄 도축장 건립에 55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초에는 동물보호단체 케어가 이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정부는 할랄도축장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결과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테러범과 무슬림을 동일시하는 반이슬람정서가 퍼지면서 지역주민들과 일부 보수기독교단체의 반발로 정부가 추진하던 할랄사업이 철회되거나 지연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할랄도축장에서 동물보호법 지키겠다'는 정부, 과연...
농림축산식품부 여인홍 차관은 지난 4월 16일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국내에 할랄도축장이 생긴다면 국내 동물보호법에 따라 도축 전에 기절을 시키는 규정을 지키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동물보호법에서는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철저히 경제성만을 목표로 한 생산에서, 과연 이런 농림부의 계획이 잘 지켜질는지는 미지수다. 그렇지 않아도 동물보호법 등 동물의 처우를 보장하는 사회적 장치가 미약한 상황에서, 경제적 이득만 염두에 두고 사업을 진행하다가 우리나라 동물복지 수준을 한 단계 끌어내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할랄식품에 쏟아 부을 세금의 일부로라도 소규모 복지축산에 대한 지원을 늘려, 국민들이 안전하고 보다 인도적인 방법으로 생산된 축산물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종교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인간의 기본권이며, 세상의 어떤 종교도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인류 보편적 가치를 위배하는 종교적 관습에 대해서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현대사회의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할랄도축에서는 도축되는 동물을 때리거나, 신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이 있지만, 도축되는 동물의 대부분은 부리 자르기나 꼬리 자르기 등 신체 훼손이 일어나고 전기충격기를 쓰는 공장식 축산농장에서 온다. 도축장으로 갈 때도 동물이 편안하게 이송되어야 하고, 도축 바로 전까지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이런 율법은 깡그리 무시된다.
코란에서는 동물을 학대해서는 안 되며 연민을 갖고 대하라고 가르친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하마드는 목말라하는 개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우물에 내려간 사람을 칭찬했으며, "참새보다 작은 동물이라도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 그랬을 경우 신이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채식을 선택하는 이슬람교도의 숫자가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도살방법보다 모든 존재를 사랑으로 대하라는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진정한 종교인의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