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25세의 나이에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1년이 채 안 되어
26세의 나이에 주님께로 돌아간
여선교사 루비 켄드릭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내게 만약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그 모두를 조선에 주겠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만인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들에게 가서
열 명씩, 스무 명씩, 오십 명씩 조선으로 오라고 일러 주십시오."
그녀의 말은 텍사스 엡윗청년회 컨퍼런스에 전달되었고 그 자리에 참석한 수많은 젊은이의 가슴에 선교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그들 중 20여 명이 은둔의 나라 조선으로 달려왔습니다.
루비 켄드릭 선교사가 죽기 전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 곳 조선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년이 지나면 이 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복음을 듣기 위해 20킬로미터를 맨발로 걸어 오는 어린아이들을보았을 때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 지 일주일도 안된 서너명이 끌려가 순교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했습니다. 선교본부에서는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오는 밤은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두에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 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이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 하겠죠?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제가 조선을 향해 가지는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해 가지신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