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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의 만세전 예정에 따른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서인가? 장로교에 속한 분들은 우리의 구원은 만세전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정 아르미니우스파인 웨슬리안을 따르는 교단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1,618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도르트회의에서 칼빈의 예정설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해버렸다는 데에 있다. 이때 칼빈주의자였던 총독이 자신의 정적이었던 올덴바르네벨트(아르미니안주의)와 유력한 아르미니우스 지지자들을 투옥한 채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했던 5가지 신조를 이단으로 정죄해버렸고, 200명의 아르미니안 목사들을 성직에서 추방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칼빈주의 5대강령을 주장하는 자들은 칼빈주의가 정통이고 아르미나우스를 따르는 자들을 이단처럼 이야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정 아르미니안주의를 따르는 교단들이 과연 이단인지 물었을 때, 그들도 정통 기독교교단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른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과연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한 예정론이 성경적인지 아니면, 아르미니우스주의가 성경적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칼빈주의 예정론이 성경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하겠지만, 만약 그 교리가 성경에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진리와 구원으로 바르게 안내해줄 유일한 도구는 교리나 신학이 아니라 오직 성경말씀이기 때문이다.

2. 예정론에 관해서는 권위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나 있는 예정론
  그렇다면, 먼저 칼빈주의의 예정론에 따라 제정된 전문33장의 칼빈주의 장로교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8년)"에 나온 "예정론"에 관한 조항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오늘날 대부분의 장로교들이 자신의 장로교 교리로 채택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제3장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에 관하여"의 제3항과 4항과 제6항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제3항 "하나님의 경륜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인간과 천사들 중에서, 어떤 이는 영생으로, 어떤 이는 영원한 죽음에 미리 경륜되었다."

제4항 "이와같이 예정되고 미리 작정된 천사들이나 인간은 특별하고 변함이 없게 결정되어 있어서, 그들의 수는 매우 확실하고 확정적이므로 더 증가하거나 감소될 수 없다"

제6항 "... 택함을 받은 사람은 아담 안에서 타락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받으며 따를 따라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믿음에 이르도록 실제로 부르심을 받는다. 그들은 또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화되고,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때까지 그리스도의 힘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택함을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구속을 받거나, 실제로 부르심을 받거나, 의롭게 되거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거나, 성화가 되어서 구원을 받지는 못한다."

  한편, 칼빈은 자신이 쓴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년)의 제21장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영원한 선택: 하나님께서는 이 선택에 의해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또 어떤 사람은 멸망에 처하도록 예정하셨다... 경건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자는 아무도 예정 즉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생명의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사망을 선고하시는 그 예정을 감히 부정하지 못한다"

3. 칼빈주의는 과연 성경적인가? 또한 칼빈의 예정론의 근거가 되고 있는 말씀들은 과연 합당한가?
  그렇다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나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오는 예정론에 관한 교리는 과연 성경적일까?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할 때에는 반드시 어떤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예정론에 관한 근거가 되는 성경말씀들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은 과연 성경에서 온 것인지를 살펴보자. 우선 칼빈주의자들이 예정론의 근거로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구절은 무엇일까? 그것에는 렘1:4~5, 왕상13:2, 사44:28~45:1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롬9:10~13의 말씀과 행9:15의 말씀이다. 이러한 말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로 거론되고 있는 롬9:10~13의 말씀이 과연 개인구원이나 개인멸망에 관한 예정의 말씀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롬9:10-13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1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2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이 말씀에 관한여 칼빈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리브가의 쌍둥이 두 아들에 관하여,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했는데, 그대로 돼지 않았던가? 정말 하나님께서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던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 말만 듣고 있으면 정말 그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몇 가지 잘못된 가설이 들어가 있다. 첫째, 이 말씀은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의 쓰임에 관한 사역적 예정에 관한 말씀이지 결코 그들의 구원에 관한 예정의 말씀이 아니다는 것이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긴다고 해서 큰 자가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장차 어떻게 쓰임받게 될 것인지에 관한 말씀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들려주신 것이다. 둘째, 이 말씀은 두 민족에 관한 하나님의 사역적인 예정이라는 것이다. 왜나하면 훗날 형 에서의 후손이가 동생 야곱의 후손을 섬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B.C.1,000년경 다윗왕 때 말이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야곱은 사랑하기로 예정하고, 에서는 미워하기로 예정하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롬9:13). 에서와 야곱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25:23에 처음 나온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야곱만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이 없다. 이 말씀은 에서와 야곱의 출생한 이후 약 1,600년이 지난 뒤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을 책망하시면서, 야곱은 사랑받을만한 삶을 살았지만 에서는 미움받을만한 삶을 살았기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서, 구약성경의 맨 마지막의 말라기서에 나오는 말씀이다. 정말 에서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는 비록 장자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장자의 명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고 경홀히 여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결국 장자의 특권은 에서에게서 야곱에게로 옮겨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설령 에서가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다고 해서, 에서가 그것 때문에 개인적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고 야곱은 개인적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구원은 자신이 어떻게 쓰임받는 것과는 상관없이 오직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되면 그는 구원받을 수가 있다(막1:15). 그러므로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이 개인구원예정의 사례와 말씀의 근거라고 말하는 롬9:10~13의 말씀은 개인구원예정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가지고서, 개인멸망이나 개인구원에 관한 예정의 사례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민족의 쓰임에 관한 예정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4. 로마서 9~11장의 위치
  여러분은 롬9~11장을 읽어보았는가? 이 부분은 로마서 중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쓰임과 구원에 관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이다.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인류의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셔서 먼저 그렇게 되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니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었다(롬9:30~33). 그런데 이방인들은 이들과 달랐다. 그들은 메시야를 꽉 붙들었다. 그분을 믿었고 아니 그분만을 의지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오히려 구원의 은총을 더 풍성히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빨리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붙들라고 권면하는 말씀이 바로 롬9~10장의 말씀인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11장은 이와는 반대로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해서 우쭐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으니 접붙힘을 받은 이방인들은 더 쉽게 버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 롬9~11장은 개인구원예정이나 개인멸망예정을 말씀하는 본문이 아니다. 정확히 한 민족이나 한 사람이 어떻게 쓰임받는 것인지에 관한 말씀이다. 다시 말해, 어떤 그릇으로 쓰임받을 것인지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롬9:19~24). 그런데 칼빈은 그것을 잘못 풀어버렸다. 그것을 개인구원예정과 개인멸망예정으로 풀어버렸던 것이다.

5. 칼빈의 예정론에 반기를 들었던 코른헤르트와 아르미니우스
  칼빈주의자들은 더불어 행9:15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예를 들어, 그것이 개인구원의 예정사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행9:15을 읽어보아도, 그 말씀은 개인구원예정에 관한 말씀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어떤 그릇으로 쓸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칼빈이나 칼빈주의자들은 개인사역예정을 개인구원예정으로 잘못 풀었던 것이다. 그리고 민족적인 쓰임에 관한 말씀을 개인에 관한 말씀으로 잘못 풀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칼빈의 수제자였던 베자(A.D.1519~1605)를 돕기 위해 성경을 조사하던 아르미니우스(A.D.1560~1609)가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칼빈의 예정론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평신도였던 코른헤르트(A.D.1522~1590)가 더 옳았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러자 아르미니우스는 칼빈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때 아르미니우스는 무슨 말을 했을까? 첫째, 예정론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했다. 둘째, 과거 1,500년동안 예정론은 책임있는 기독교 학자들에 의해 주장된 적이 없었고, 전체 교회에 수용된 적도 없었다고 했다. 셋째, 예정론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가 만들 뿐이라고 했다. 넷째, 예정론은 아직 창조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선택의 작정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르미니우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첫째, 구원에 있어서 개인예정은 없다. 둘째, 하나님은 회개하고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하셨다. 셋째, 그리스도의 은혜와 공로는 참고 견디는 자에게 주어진다. 넷째, 하나님의 은총은 선택받은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다섯째,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는 하지만 믿음의 행위는 인간이 한다. 등등.

6. 칼빈과 아르미니우스 중에서 누가 더 성경적인 주장을 했을까?
  그렇다. 오늘날에 와서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칼빈보다 오히려 아르미나우스가 훨씬 더 성경적이다. 하지만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칼빈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그러자 아르미니우스를 따르는 자들은 파면당했고 죽임당했으며 이단으로 낙인찍혔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와서까지도 칼빈주의가 틀렸다고 과감히 선포하는 목회자는 그리 많지 않다. 장로교 쪽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히기 쉽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회공동체의 한 번의 결정이 그후로 얼마나 크게 성도들에게 작용하는지를 반증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칼빈주의의 예정론은 대부분이 틀린 주장이다. 오히려 아르미니우스가 더 성경적인 것인 것을 알 수 있다.

7 . 비성경적인 칼빈주의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폐단들
  만약 칼빈주의 예정론이 맞는 주장이라면 다음과 같은 폐단이 계속해서 쏟아지게 될 것이다.

  첫째, 하나님은 매우 편협적인 하나님이 되고 말 것이다. 아니 폭군과 같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구원을 자기가 마음대로 정해놓고 또 그것을 그대로 따르라고 강요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은 매우 불공평한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는 기회 한 번 주지 않고 당신이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셨기 때문이다. 셋째, 병도 주고 약도 주시는 못된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려고 일부러 아담 앞에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신 분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 하나님은 심판자가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과 멸망을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셨는데, 어찌 사람을 불러다놓고 그를 심판하실 수 있겠는가? 다섯째, 자기가 구원을 얻기까지 믿음의 경주를 해서도 아니 되며, 또한 남들이 구원받도록 전도를 해서도 아니 된다는 결론이 나오고 만다. 왜나하면 우리가 무슨 수고를 하든지 말든지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 구원받기도 하고 멸망받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무수한 폐단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말씀에서 빗나간 칼빈주의 폐단은 수두룩하니 많다.

8. 나오며
  그러므로 이제는 어떤 위대한 종교개혁자가 이야기했다고 해서 그를 무턱대고 따라가서는 아니 된다.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에베소교회의 경우처럼 그 사람이 진짜 주의 종인지 아닌지 분별해 보아야 한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믿는 교리가 과연 성경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철학적 사고로 만들어낸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일치하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이 아닌 진리만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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