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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장로교의 예정론은 성경에서 많이 빗나가 있다. 하지만 이미 익숙히 들어왔던 터라,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한 신본주의적인 구원론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하지만 장로교에서 말하는 예정론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것인지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믿는 이들의 대다수가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누구는 구원하기로, 누구는 멸하기로 예정해놓으셨다는 것을 전부 다 성경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세계 장로교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에서의 상황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한 번 잘못된 예정론에 빠지게 되면 거기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장로교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정론이 얼마나 성경에서 빗나가 있으며, 성경자체를 왜곡해서 번역한 것으로 그 근거로 삼고 있는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그러므로 장로교의 예정론을 성경이라고 믿고 있는 자들에게는 오늘 깜짝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다.

 

1. 들어가며

  성도들은 예정론에 관한 말씀을 듣게 되면 그것을 잘못 해석하여, 그것을 숙명론이나 운명론처럼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다. 일례로 들어보자. 혹시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 칭의를 얻은 자가 되었다면, 예정론의 말씀을 듣는 즉시 그는 이미 만세전에 성부께서 자신을 구원하기로 예정한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았으니, 하나님께서는 이랬다 저랬다 하실 분이 아니므로, 반드시 하나님은 그대로 이루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자신이 얻은 구원은 영원한 것이며,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예정론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예정론이 결코 아니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예정론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위와같은 예정론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자신이 들었던 예정론이 성경적인 것이라고 확신하고는, 자신의 구원은 흔들림이 없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린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정론이란 대체 어떤 것이며, 잘못된 예정론이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는 어떻게 사람의 구원을 이뤄가고 있는지를 통해서 우리도 어떻게 하면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정론은 어떤 것이며, 잘못된 예정론은 어떤 것인가?

  성경을 보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정하심이 나온다. 이름하여 "예정론"이 그것이다. 이러한 예정론에 관한 말씀은 엡1:3~6의 말씀의 대표적이다. 우선 그 말씀을 살펴보자.

엡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다. 성부께서 창세전에 구원하실 자를 선택하시고 예정해 놓으셨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정론의 핵심골자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는 구원하기로 예정하시고 누구는 멸하시기로 예정해놓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어떤 개개인을 구원과 멸망으로 예정해놓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어떤 개인 누구누구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지 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예정하심은 이렇다. 그것은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기로 결단하고 주님께 나아오는 자들 중에서 택함을 입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마22:14). 그것도 아주 소수가 말이다. 하지만 잘못된 예정론을 말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세전에 어떤 개인을 구원과 멸망으로 예정하셨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구원과 멸망으로 예정하셨다는 말씀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개인구원에 관한 예정처럼 보이는 말씀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에 관한 구원예정이 아니라 개인의 사역에 관한 예정일 뿐이다. 어떤 개인을 하나님께서 어떤 용도로 쓰시겠다는 말씀만이 있다. 어떤 이는 에서와 야곱에 대해 하나님께서 미리 구원과 멸망을 예정해놓으신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잘못된 주장이다. 에서와 야곱을 멸망과 구원으로 예정해놓으신 것이 아니라,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도록 예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에서와 야곱의 경우는 개인구원의 대한 예정이 아니라 두 민족에 관한 사역적인 예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떻게 인간에 관한 구원예정을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원받을 자를 정해놓으신 것만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무리의 공동체로서 천국에 들어가서 살 자들을 예정해놓으신 것이다. 그런데 그가 누가 될른지는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를 얻기 위해 죄인들을 초청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구원자인 메시야가 반드시 필요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타락 직후부터 말씀하셨다(창3:15). 그러므로 이 말씀에 따라 메시야를 낳을 여인이 필요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메시야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중에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이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사람들로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민족을 들어 사용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선택이 곧 구원은 아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낳아줄 민족으로 선택받은 것이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할 것으로 선택하신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하나님께서 진짜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구원계획대로 하나씩 성취하시길 시작하셨다. 그때 하나님께서 맨 처음 초청한 사람은 메시야를 낳기 위해 사용되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천국으로 초청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러자 차선책으로서 소외된 자, 병든 자, 지체장애자, 죄인이라고 불리던 자들이 초대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천국잔치에 들어갈 자리가 비어있게 되자, 이제 하나님께서는 천국잔치와 아무 상관없었던 자들, 곧 성밖에 지나가는 이방인들을 초청하였다. 그래서 그 잔치자리에 가득차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잔치자리에 들어온 사람치고 주인이 마련해준 의복을 입지 않고 들어간 자는 없었다. 그 예복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의의 옷이다. 실제는 자격없는 자들인데도 누구든지 그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제공해주는 옷이 바로 그옷이다. 이 비유가 바로 마22장에 나오는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다. 이것을 주님께서는 천국잔치의 비유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이 말씀대로 구원은 성취되고 있다.

 

3. 누가 천국잔치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가?

  그렇다면, 잘못된 예정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잔치에 들어갈 자들에 대한 잘못된 주장이다. 잘못된 예정론자들은 천국잔치에 들어갈 자는 모두가 다 창세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무아무개라고 예정해놓은 자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말씀은 성경에는 정작 없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누가 그 잔치에 참여하게 될지가 분명하게 나오는데, 그것은 누구든지 구원으로 초청받은 자들 중에서 소수가 선택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만세전에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와서 살 자들을 계획하셨다. 하지만 그 대상을 일일이 어떤 개인이라고 정하신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그 잔치자리에 들어올 기회를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다만 그 천국잔치에 누구든지 초청을 받지만, 기꺼이 그 잔치자리에 참여하는 자가 선택함을 입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에도 이 천국잔치에 택함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만세전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며 지금도 진행중에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숫자가 차면 주님은 천국문을 닫으시고 재림하심으로 온 세상을 심판으로 끝내실 것이다.

 

4. 잘못된 예정론자들이 주장하는 5대 교리(항목)는 무엇인가?

  문제는 잘못된 예정론을 말하는 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래서 성부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자들에게만 아들에게 보내어 구원받게 하셨다는 것이다. 아들도 성부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들만을 받아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이다(제한 속죄). 그러므로 예수게서는 성부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해두신 자들을 한 사람도 빼놓치 않고 천국에 데려가신다는 것이다(성도의 견인).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기로 한 번 예정해 놓으셨으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를 뿌리칠 수 없다고 주장한다(불가항력적인 은총). 더욱이 이러한 예정은 구원받을 사람의 행위에 상관없이 그리고 만세전에 아무런 조건없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다는 것이다(무조건적인 선택). 하나님께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였기에, 구원을 위해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전적 타락). 인간은 구원에 있어서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예정론을 말하는 자들의 5가지 주장들이다.

 

5. 잘못된 예정론자들이 주장하는 성경말씀은 과연 합당한가?

  하지만 이러한 5가지 주장들은 하나도 성경말씀에 들어맞지 않는 것들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누구든지 초청함으로 그들 중에서 구원하시고 있는 것이지, 만세전에 구원하려고 예정한 자만 초청하여 그들을 구원얻게 하시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예정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아버지께서 오직 구원으로 예정한 자들만 구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만 예수님을 믿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그러한 말씀이 나온다면서, 대표적인 성경구절로서 요6:37과 39의 말씀을 언급한다. 하지만 그들은 잘 모른다. 요6:37과 39의 말씀은 잘못 번역된 것이요, 성경을 완전히 곡해한 해석이라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요6:37과39절에 대한 한글성경과 헬라어성경원문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성경말씀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잘못 번역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헬라어성경원문을 본다면, 이들이 얼마나 성경을 왜곡하여 번역했는지 적나나하게 살펴볼 수 있다(아마도 한글성경을 번역한 자들이 이미 잘못된 예정론에 물들어 있어서 그렇게 번역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 그럼 우리 한글성경의 말씀과 헬라어성경원문을 비교해보도록 하자.

요6:35-4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를 향하여 [스스로] 오고 있는 자는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안으로 믿고 있는 자는 아무 때든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오히려 내가 너희에게 말했다. 너희가 나를 [이미] 본 채 있으면서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고 있는 모든 것이 나를 향하여 [장차] 도착할(다다를)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계속해서] [스스로] 오고 있는 자는 내가 결코 밖으로 내쫓지 않을 것이다. 38 내가 하늘에게서부터 이미 내려온 채 있는 것은 내가 내 뜻을 [계속] 행하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나를 이미 보내셨던 이의 뜻을 [행하여 함이니라]. 39 그런데 나를 보내셨던 이의 뜻은 내게 이미 주신 채 있는 모든 것을 내가 그것으로부터 잃지 아니하고, 오히려 마지막 날에 [단번에] 일으키는(세우는) 이것이니라. 40 왜냐하면 내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기 때문이다. 즉 아들을 바라보고 있고 그분 안으로 믿고 있는 모든 이가 시대의 생명을 [계속해서] 가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안에 내가 그를 [장차] 일어서게 할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헬라어원문에는 "중성 단수"로 나오는 "모든 것"을 "남성 단수(~자, 사람)" 혹은 "남성 복수(~자들, 사람들)"라고 번역해놓았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한글개역성경과 헬라어원전을 비교해서 보자.

요한복음 6장 37절.jpg

 

요한복음 6장 39절.jpg

 

요6:37[개역개정]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남성,단수)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6:37[헬라어직역]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고 있는 모든 것(중성,단수)이 나를 향하여 [장차] 도착할(다다를)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계속해서] [스스로] 오고 있는 자는 내가 결코 밖으로 내쫓지 않을 것이다.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남성,단수)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39 그런데 나를 보내셨던 이의 뜻은 내게 이미 주신 채 있는 모든 것(중성,단수)을 내가 그것으로부터 잃지 아니하고, 오히려 마지막 날에 [단번에] 일으키는(세우는) 이것이니라.

  이제 헬라어원문을 따라 이 말씀을 살펴보자.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주시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가?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주시고 있는 것은 중성명사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아버지로부터 받기 위해 아마도 새벽마다 수시로 기도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께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으셨던 것이다. 아마도 주님께서 받으신 것들에는 성령, 지혜, 능력, 권세, 이름 등이었을 것이다(요3:34, 17:11~12). 예수께서는 왜 그런 것들을 받으셔야 했는가? 그것은 주님을 향하여 구원얻기 위해 나아오고 있는 자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시려면 그런 것들이 정말 필요하셨던 것이다.

  그런데도 잘못된 예정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자들만을 예수님께 보내주신다고 주장한다.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보내주시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어떤 것들이다. 그것은 예수님에게 스스로 나아오고 있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받아서 당신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붙드시고 보존하시며, 그들을 마지막 날에 일으켜 세워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만세전에 예정된 자만을 위해 사역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얻도록 초대하고 계시고, 그들 중에 주님을 믿고 따르며 그분만을 의지하고 붙드는 자들을 구원하고 계신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창세전에 예정해놓으신 사람들의 숫자에 그들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6. 나오며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사람들이 주님을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이며,. 구원얻기 위해 주님께로 나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6: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요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은 지금도 누구든지 구원받으라고 초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구원하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효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다만 구원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주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싫어하고 가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러는가? 왜 알아보지도 아니하고 거부하는가? 정말 예수께서 메시야인지를 한 번쯤은 성경을 찾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일들은 결코 은밀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성경 외에도 역사적인 기록으로 다 남아있다. 전능자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가 가셨는데 그냥 오셨다가 가셨겠는가? 틀림없이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믿을만한 증거를 남겨두시고 가시지 않으셨겠는가? 그렇다. 구약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 350가지 이상의 예언을 해 두셨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이 실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와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의 구원은 만세전에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구원받을 기회를 누구에게든지 주시고 있다. 성령을 통해서, 지금도 수많은 전도자를 통해서 구원으로 이끄신다.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뿌리치지 말라. 그분의 손길을 붙잡으라. 그리고 그분이 인류구원을 위해 하셨던 일을 확인해보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 그러면 우리도 믿고 거듭나는 순간 선택되어지는 것이다. 그때 만세전에 예정하셨던 구원받은 무리의 숫자에 내가 포함되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8년 5월 20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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