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천국은 새 예루살렘 성만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야 할 자가 입을 옷들이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 옷을 입지 못한 채 입장하면 밖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옷을 잘 장만해야 한다. 사실 신부가 입을 예복은 3가지이며, 그것을 입기 위해서는 옷마다 그 조건들이 다르다. 그렇다면 내가 입어야 할 신부의 예복은 무엇이며, 그것을 입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에 보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신부들이 들어간다(계21:2,9 19:7~9). 주님이 재림하시면 어린 양의 신부들이 그 성에 들어가 혼인 잔치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도들이 그토록 바라고 소망하는 '천국'이란 사실은 새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고 있다. 고로 오늘도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그 성도들은 반드시 어린 양
의 신부들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이 다 신부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만 신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과연 누가 신부들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가장 바라고 소망하던 우리의 최종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 며칠 동안 신부에 관한 말씀을 전하였다. 우선, 신부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았고, 신부가 되는 3가지 조건들과 그리고 신부가 입을 3가지 옷들까지 살펴보았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제 신부들이 입을 3가지 예복에 대하여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장만할 수 있을까를 살펴보고자 한다. 기왕이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가장 영광스러운 신부가 되는 옷을 잘 장만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2. 신부가 입을 옷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사야 61장 10절에 따르면, 신부가 입을 옷은 한 가지가 아니다. 신부가 입을 옷은 최소한 3가지다. 그것은 곧 '구원의 옷'이자, '의의 겉옷'이며, 마지막으로 '사모(紗帽)(머리에 쓰는 면류관)와 12가지 보석으로 지어진 옷'이다. 이중에서 한 가지만 입어서는 결코 신부가 될 수 없다. 적어도 우리는 이 모든 옷을 다 착용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움은 세 번째 보석으로 지어진 옷의 차이일 뿐이다.
사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첫째, 신부가 입을 첫 번째 옷은 '구원의 옷'이다. 만약 이 옷을 대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비교한다면, 일종의 '반포 속옷'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이 옷은 흰 옷이다. 그런데 이 옷은 우리가 장만해서 입는 그러한 옷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믿고 회개할 때에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직접 입혀 주시는 옷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옷은 '은혜의 옷'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구속의 옷'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시려고 주님은 마귀에게 빼앗겨 버린 우리를 도로 사시기 위하여 커다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것은 자기의 목숨을 내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 값으로 우리를 사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를 받고 이 옷을 주실 수가 없다. 거져 입혀 주시는 옷이 되었다. 그렇다고 주님께서는 이 옷을 입기를 원하지 않는 자에게 강제로 그 옷을 입히시지는 않으신다. 오직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자들에게만 입혀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 옷은 믿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옷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옷은 회개하고 믿는 자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첫 번째 옷을 입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회개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믿음과 회개 없이는 이 첫 번째 옷을 결코 입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옷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데 처음에 한 번 입게 되는 옷이다.
둘째, 신부가 입을 두 번째 옷은 '의의 겉옷'이다. 만약 이 옷을 대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비교한다면, 이 옷은 대제사장이 입는 겉옷들인데,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이 여기에 속한다. 물론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이 옷은 흰색의 세마포 옷과 같은 것이며, 오늘날 신부가 입는 드레스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만약 신부가 될 사람이 이 옷을 입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은 벌거벗은 상태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계16:15). 왜냐하면 이 옷은 주님이 믿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옷이 아니라, 우리가 장만해서 입어야 할 진짜 신부의 예복이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입어야 할 옷이 바로 두 번째 의의 옷인 것이다.
셋째, 신부가 입을 세 번째 옷은 '사모와 보석들로 치장된 옷'이다. 이 옷도 두 번째 옷처럼 어린 양의 신부될 자들이 장만하는 옷이기는 하지만 두 번째 옷과 비교해 볼 때 차이가 나는 것은 이 옷은 그리스도와 내가 같이 장만하는 옷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첫 번째 옷은 오직 그리스도가 장만해서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옷이고, 두 번째 옷은 오직 우리가 장만해서 입는 옷이라고 한다면, 세 번째 옷은 우리와 주님이 함께 만드는 옷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옷을 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비교한다면, 이 옷은 대제상의 머리에 쓰는 '관'과 가슴에 부착하는 '보석 흉패'가 바로 이 옷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 옷은 옷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장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장식이야말로 바로 천국에서 신부가 받을 영광의 상태를 그대로 표현해 주기 때문에 세 번째 옷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머리에 쓰는 면류관과 옷들에 장식하는 보석들은 크기도 다양하며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 또한 그 숫자가 각각 다르다. 특히 천국에 들어가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 때에 쓰게 될 면류관은 그 모양과 생김새도 각각 다르고 또한 크기도 다른데, 그 면류관 곳곳에 박힐 보석도 마찬가지로 각양각색을 갖췄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면류관으로서 20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는 신부들도 있다고 하는데, 성도들이 그날 쓰게 될 면류관이 아주 다양하며 아주 그 종류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보석의 크기와 양은 그 사람이 천국에서 갖게 될 신분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한다. 사실 그렇다.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신부들도 네 종류의 신분이 각각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에는 제일 높은 왕권신부가 있고, 그 다음으로 왕후신부가 있고, 그리고 비빈신부가 있으며, 맨 마지막으로 시녀신부도 있는 것이다.
3. 신부가 입을 첫 번째 옷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신부가 반드시 입어야 할 첫 번째 옷은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가? 그것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 자신의 구원자요, 내가 섬겨야 할 유일한 하나님인 것을 믿으면 되는 것이요, 내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하여 그분이 흘리신 피로 나 자신의 죄를 씻는 회개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믿음'과 '회개'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람이 이 옷을 입게 되는 것은 오직 은혜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고 회개할 때에 거저 주어지는 옷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가 장만해서 입어야 할 옷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이 땅에 우리를 위하여 아들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값으로부터 사셨던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옷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만 해야 할 일은 그분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분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지은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된다. 그래서 그분의 피로 내가 지은 죄들을 사해 주실 것을 요청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는 거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고 구원의 옷이자 구속의 옷인 첫 번째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실 것이다.
4. 신부가 입을 두 번째 옷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신부가 입을 두 번째 옷은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새 예루살렘의 진주문 안으로 들어갈 자가 입어야 할 두 번째 옷은 '의의 겉옷'이다. 이 옷은 전적으로 우리가 장만해서 입을 옷이다. 천국에서 실제 이 옷을 입을 때에는 여러 벌의 옷을 입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겉옷 역시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한마디로 깨끗하고 흰 드레스가 바로 이 의의 겉옷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옷은 어떻게 장만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주의 말씀(계명)에 순종하고 헌신할 때에 가능하다. 이것은 댓가를 지불해야만이 얻을 수 있는 옷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보면, 우리가 입을 의의 겉옷은 흰 세마포 옷 내지는 흰 두루마기 또는 흰 옷이라고도 나오는데, 이 겉옷은 그냥 주어지는 옷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겉옷은 우리가 사서 입어야 할 옷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옷이 대체 어떤 옷인지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살펴보자.
계3:17-18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원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렇다. 만약 이 새 하얀 드레스 겉옷을 신부가 입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 신부는 벌거벗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첫 번째 구원의 옷이 우리 모두에게 거저 주어진 옷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번째 겉옷은 진짜 자신이 장만해서 입어야 할 옷이며, 이 겉옷을 걸치고 있지 않는 자는 벌거벗고 있는 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는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부탁하기를,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 입어야 할 둘째 옷은 우리가 사서 입어야 할 옷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마치 미련한 다섯 처녀가 신랑이 신부를 맞으러 밖으로 나오는 시각에 기름을 사러 갔다고 하는데, 바로 그 댓가를 지불하고 사야 할 기름과도 유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옷을 사서 장만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로 가능한 것이다(계19:7~8). 그것은 성도들이 날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할 때에, 우리가 살 수 있는 옷들이다. 그렇다. 우리가 오직 계명에 순종하며 성결한 삶을 살 때에 이 옷이 우리에게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이 옷을 입을 수가 없을 것이다. 행동하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자라야만이 이 겉옷을 입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려면 그는 아마도 끝까지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숱한 어려움과 고난과 역경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기꺼이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겉옷을 장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옷은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감사하면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인내하는 자가 입을 수 있는 옷이기 때문이다.
5. 신부가 입을 세 번째 옷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이제 신부가 입어야 할 세 번째 마지막 옷은 대체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사실 신부를 신부답게 만들어 주고, 신부를 정말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주는 옷이 있다면 그 옷은 바로 이 세 번째 옷이다. 이 옷은 옷이라기보다는 옷 위에 장식하는 일종의 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우리가 입을 의의 겉옷에 치창하는 것들은 전부가 다 보석들이기 때문이다. 12가지 보석들로 치장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부가 세 번째로 입어야 할 이 마지막 보석 옷은 천국의 신부들 중에서도 오직 왕권신부들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우리도 이 옷을 입을 수 있는가? 그것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분과 내가 하나가 될 때라야 가능한 것이다. 곧 그분과 내가 하나가 되어서 완전히 한 몸을 이루는 상태가 될 때에 우리에게 그 옷이 준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주님과 내 마음이 항상 하나가 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 세 번째 옷을 입을 수가 없다. 내 욕심이 주님의 마음과 서로 다를 때에는 결코 이 옷을 입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사람의 모든 소망이 주님인 까닭에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목숨이 천 개라 할지라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자가 입을 옷이 이 옷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는 아마도 성읍에 한 명이나 나오고, 족속에 두 명 정도밖에 없을 극소수의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자들은 이 땅에 살고 있으나 사실 이 땅의 어떤 것을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땅의 그 어떤 것도 이 사람의 기쁨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의 기도는 곧 예수님의 기도와 그냥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의 기도는 금방 응답될 수밖에 없다. 이 사람의 기도가 곧 주님의 소원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분이며, 내가 그분 안에 있어 우리가 그분과 서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세 번째 보석 옷을 입을 수가 있는 것이다.
6. 신부가 이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그렇다면 신부가 이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주님께 바쳐진 일종의 십일조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구약시대에 수많은 민족들이 있었으나 주님께서 고르고 고른 십일조는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고르고 고른 십일조는 바로 '레위 자손'이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봉사하기 위해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민3:41, 18:6). 실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바쳐진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성막의 성소에 들어가서 봉사할 수 있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레위인들 중에서도 그들의 십일조에 해당하는 '제사장들'이었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은 주님이 계시는 곳에 보다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다. 레위인들이 비록 성막에서 봉사하도록 거룩히 구별된 존재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결코 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 오직 성막 뜰에서만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서 봉사하는 것은 레위인들 중에 고르고 고른 자가 되어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사장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자가 바로 대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의 십일조가 바로 대제사장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이러한 사람들을 골라서 쓰신다. 아무나 신부들 중의 신부라고 일컬어지는 왕권신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고르고 고른 자가 최종적으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왕권신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께 더 존귀한 자로 쓰임을 받기를 원한다면 주님께서 고르고 고른 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자는 주님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오직 주님을 자신의 기업으로 두며 살아가는 자다. 그러므로 그가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사실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최종적으로 보석으로 치장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신부만큼 고귀한 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신부들 중에서도 왕권신부처럼 존귀한 자는 더이상 없는 것이다. 고로 주님은 지금도 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행복해 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하여 주님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부의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옷을 입게 된 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7. 나오며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자신을 향하여 묻는 자들이다. 내가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나는 과연 어떤 신부로서 불려질 것인가를 자신에게 묻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그분의 신부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새 예루살렘 성 안의 혼인 잔치의 장소인 '영광의 광장'에 들어갈 수 있는가? 만약 그곳에 들어간다면 입장 순으로 나는 몇 번째이며, 그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입장할 것인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 그때 어떠한 종류의 드레스를 입고(남자는 영국의 백작이나 공작 같은 옷을 입을 것이다) 영광의 광장 안으로 입장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그때에 내 머리에는 어떤 면류관을 쓴 채 입장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결국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하나님께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는 성도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무엇보다도 천국은 침노하는 자에게 더 주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우리가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날을 기다릴 것이 아니다. 부지런해야 한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처럼 게을러서는 아니 된다. 주인은 우리가 이 땅에서 더욱더 많은 것을 장만해 오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장만한 것을 고스란히 천국에서도 누리게 하신다. 그러므로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 한다.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일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천국에서 누릴 영광이 우리의 존재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자가 소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도 나는 과연 그럴 수 있는가? 그것에 도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라도 오후 5시에 1시간만 일해도 하루의 품삯을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인 것을 믿어야 한다. 두 달란트를 받아서 충성했지만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충성했던 종과 동일하게 상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우리 주님인 것을 믿어야 한다.
2021년 09월 19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