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에게는 예수이름의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늘의 장자권이라 부릅니다. 먼저 이 하늘의 장자은 천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반역함으로 그 장자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제 그 하늘의 장자권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 장자권을 행사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기에는 꼭 필요한 요소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마17:14-2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변화산 밑에서 소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들을 아들을 고쳐달라는 어떤 아버지가 자기의 독자를 데려왔는데, 그만 산밑에 있던 9명의 제자들이 그 아이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시고 산 아래 내려온 예수님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의 버팀목이 되어주겠느냐?" 그리고는 그 아이를 부르시더니 그 아이 속에 있는 귀신을 꾸짖어 내어쫓으시고는 그 아이를 온전케해 주셨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자, 제자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그러자 주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아이에게 들어있는 귀신이 센 놈이었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그 놈이 그 속에 들어가서 산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너희가 작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니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의 장자권은 약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합니다. 모든 세력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의 믿음이 작을 때에는 그 어마어마한 장자권도 맥을 못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믿음을 점검할 때입니다. 가지고 있는 믿음이 정말 산 믿음인지, 절대적인 믿음을 살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었길래 그 센 귀신이 예수님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쫓겨난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그 귀신을 쫓아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있었던 절대적인 믿음은 상황에 따라서 되기도하고 안 되기도 하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하셨다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게서 사용하시던 그 믿음 곧 하나님과 같은 종류의 믿음으로 명령하고 선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믿음 곧 절대적인 믿음의 내부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롬4장에서 그 요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2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바랄 수 없는 중이라도 바라는 믿음(롬4:18)이요, 또 하나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도록 불러내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이 그것입니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이 125세가 넘어섰을 때에 비로소 주어진 믿음입니다. 그것은 자손이 한 명 없는데도,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올 때, 아브라함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고향도 절반만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큰 형 하란과 둘째 형 나홀의 성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자 아브라함은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조카 롯은 놓치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떠나보내게 했고, 심지어 양자를 들이겠다는 제언도 일언지하에 거절하셨습니다. 그때 하늘의 별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믿음이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하나님을 믿되 그분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이라면 있게 만드시는 분이리는 믿음이 바로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 자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곧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으로 접근한 모든 것은 다 허사요, 손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만 변하지 않으며 영원하며 전능자이심을 믿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아들을 바쳤습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으로 장자권을 발동하고 명령하고 선포합시다.
이제 그 하늘의 장자권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 장자권을 행사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기에는 꼭 필요한 요소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마17:14-2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변화산 밑에서 소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들을 아들을 고쳐달라는 어떤 아버지가 자기의 독자를 데려왔는데, 그만 산밑에 있던 9명의 제자들이 그 아이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시고 산 아래 내려온 예수님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의 버팀목이 되어주겠느냐?" 그리고는 그 아이를 부르시더니 그 아이 속에 있는 귀신을 꾸짖어 내어쫓으시고는 그 아이를 온전케해 주셨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자, 제자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그러자 주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아이에게 들어있는 귀신이 센 놈이었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그 놈이 그 속에 들어가서 산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너희가 작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니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의 장자권은 약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합니다. 모든 세력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의 믿음이 작을 때에는 그 어마어마한 장자권도 맥을 못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믿음을 점검할 때입니다. 가지고 있는 믿음이 정말 산 믿음인지, 절대적인 믿음을 살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었길래 그 센 귀신이 예수님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쫓겨난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그 귀신을 쫓아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있었던 절대적인 믿음은 상황에 따라서 되기도하고 안 되기도 하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하셨다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게서 사용하시던 그 믿음 곧 하나님과 같은 종류의 믿음으로 명령하고 선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믿음 곧 절대적인 믿음의 내부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롬4장에서 그 요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2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바랄 수 없는 중이라도 바라는 믿음(롬4:18)이요, 또 하나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도록 불러내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이 그것입니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이 125세가 넘어섰을 때에 비로소 주어진 믿음입니다. 그것은 자손이 한 명 없는데도,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올 때, 아브라함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고향도 절반만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큰 형 하란과 둘째 형 나홀의 성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자 아브라함은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조카 롯은 놓치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떠나보내게 했고, 심지어 양자를 들이겠다는 제언도 일언지하에 거절하셨습니다. 그때 하늘의 별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믿음이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하나님을 믿되 그분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이라면 있게 만드시는 분이리는 믿음이 바로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 자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곧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으로 접근한 모든 것은 다 허사요, 손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만 변하지 않으며 영원하며 전능자이심을 믿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아들을 바쳤습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으로 장자권을 발동하고 명령하고 선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