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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아있다고 하는 이름만 가진 [사데]교회(3:1~6)

[일시] 201878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8장 거룩 거룩 거룩, 254장 내 주의 보혈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

PW: 믿음, MIW: 열매맺는

T.S: 믿음이란 날마다 회개하여 열매맺는 삶을 사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다음 주일이면 우리교회가 벌써 창립11주년을 맞이하는 기념주일이 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우리교회는 그동안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그리고 얼마나 영향력있는 교회가 되었을까요? 사람은 교회의 규모를 건물의 크기나 교인수로 판단합니다. 자신은 가련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따라가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동탄명성교회 성도들은 오직 진리의 말씀 하나만을 바라보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온 줄로 믿습니다.

지난주에는 우리 교회에 한 교회를 54년을 섬기신 한 장로님 내외가 오셨습니다. 54년동안 다른 교회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려본 적이 없는 장로님께서 처음으로 자신이 섬기던 교회를 떠나 우리교회에 나오셔서, 주일낮예배와 주일오후찬양예배를 다 참석하셨습니다. 그분이 섬기는 교회는 장년출석이 6~700명정도 되는 중대형 교회입니다. 교회의 역사도 무려 62년이나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교회에서 시무장로님으로서 사역한지 5년이 넘었으며, 교회에서 재정국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데, 정든 교회를 떠나서 동탄에 있는 우리교회를 찾아오셨습니다. 무엇이 그분을 우리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하나의 교회를 여러분에게 소개할까 합니다. 그 교회는 사데교회라는 교회입니다. 사데교회는 사도요한이 A.D.95년 당시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에 실재하고 있던 소아시아의 교회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사데교회는 살아있는 교회라고 불리고 있지만 사실은 죽어있는 교회라고 우리 주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꾸중과 책망을 들어야 했던 것일까요? 그래서 오늘은 사데교회를 통하여 우리교회는 과연 주님 앞에서 책망받을 교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칭찬받을 교회가 될 것인지를 돌아보고, 언젠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고 칭찬들을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사데교회를 향하여 남들로부터 살아있다고 하는 명성은 듣고 있으나 사실 영적으로는 죽어있는 교회이기에,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도둑처럼 재림하신 뒤에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시겠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왜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시겠다고 엄히 꾸중하신 것인가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있다는 것은 그들이 거듭나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되어서 그들의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이미 살아있는 교회라고 그 명성이 알려진 교회라고 할지라도 정말 버림받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믿음으로 구원받아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 같은데, 왜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계시는 것인가요? 그럼,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예수께서는 과연 어떻게 되어서 이미 생명책에 기록된 사데교회 성도들의 이름을 지워버리시겠다고 경고하고 계신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도 자기자신은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남들로부터 그렇게 인정받고 있는데, 정말 죽은 날에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진다고 한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95년경 소아시아의 사데라는 도시 안에 있는 교회를 향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써보내라고 하신 편지의 내용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교회를 향하여, 자신은 이 땅에 보내어 사람을 살피고 있는 완전한 성령을 갖고 계신 이이시며, 이 땅에서 섬기는 교회의 사자들을 붙잡고 계시는 존재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사데교회를 위하여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쏟아놓으셨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주님께서는 대체 무엇이라고 이 교회에 엄중한 경고를 쏟아놓으셨습니까?

3:1-3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명성)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모르면 주님의 책망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명성만을 붙들고 있으면, 정작 자신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이 보이나, 사실은 영적으로 완전히 죽은 채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그리고 그 믿음에 따르는 행위가 자신에게 보이지 않아도 자신의 구원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죽을 때에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사람이 있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사데교회의 교훈을 통하여서,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주께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사데교회는 어떤 교회였으며 왜 책망을 받았는가?

그렇다면, 사데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한 마디로 살아있다고 하는 명성을 자자하나 사실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온전한 행위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그렇게 말씀을 받지 않았는데, 어느새 믿음에 따른 열매가 없어도, 자신의 구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데교회는 외적으로 볼 때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어있는 교회로서, 지금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만 죽을 때에는 그 이름이 지워질 교회를 가리킵니다.

 

. 역사적으로 볼 때 죽은 교회의 예표가 있었는가?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교회의 유형이 세상에 존재했을까요? ,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미 존재했던 대상은 예수님 당시 유대교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으로 믿고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있는 개신교회가 그렇습니다.

먼저, 유대교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인들은 누군가가 천국에 들어간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유대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룹이요, 또 하나는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 그룹입니다. 첫째로,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은 율법규정대로 지키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자기가 획득한 것 모두에서 십일조를 꼬박꼬박 드리고 있었으며,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꼭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둘째로, 사두개인들과 제사자들은 어떻습니까? 백성들이 성전에 와서 제사드릴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봐주고 있으니 자신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 위선자들이라고 엄하게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아니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에서만 거룩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흠숭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형식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지은 죄들에 대해서서는 전혀 마음 아파하거나 죄를 애통해하지 않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잔과 대접은 깨끗이 하고 있었으나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어떠했습니까? 환전의 일과 제물을 매매하는 일을 통하여, 돈을 남기기에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과부의 가산을 삼키기에 바빴던 것입니다.

한편, 겉으로는 살아있는 상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죽어있는 사람들이 또 한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 것을 따르는 종교개혁자들의 후손들입니다. 이들도 처음에는 중세교회의 잘못된 구원론에 맞서 올바른 구원론을 외쳤습니다. 특히 루터는 믿음과 회개를 통해 구원얻는다고 분명하게 외쳤습니다. 그가 비텐베르크성당에 붙힌 95개조 반박문에는 적어도 11개 조항이 회개가 구원의 필수조건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몇가지만 봅시다.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4:17)고 하셨을 때, 이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삶이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2. 이 말씀은 고해성사, 즉 사제에 의해 집도되는 고백과 속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3. 하지만 이것이 단지 내적 회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내적 회개(inner repeutance)는 육신의 다양한 외적 수행을 수반하지 않는 한, 무가치한 것이다.

4. 죄에 대한 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여도, 참된 내적 회개를 하여도 우리가 하나님 왕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이내 칼빈으로 이어지면서 어거스틴의 예정론이 치고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의 구원은 개인의 신앙양심에 따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것은 잘 한 일이지만, 인간의 책임이 수반되는 모든 것조차 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면, 그가 믿고 싶어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한 번 정하신 하나님의 예정은 변하면 큰 일 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한 번 구원얻은 것은 영원히 얻은 것이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점차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자신에게 믿음에 따른 구체적인 열매가 보이지 않는데도,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구원받은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구원으로 알아버렸습니다. 그러니 예수믿은 지 수년이 지났어도 자기에게서 믿음에 따른 열매가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걱정하나 하지 않게 되었고, 죄를 지었어도 그것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무사안일주의에 빠져버렸습니다. 내가 예수믿게 된 것은 만세전의 예정에 따른 것이니만큼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 채,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 그렇다면 이제는 이러한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을 들어봅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를 살펴봅시다.

3:1-3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이제 이 주님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다시 보겠습니다.

(1) 그리고 너는 사데들 안에 있는 교회의 사자(메시지 전달자)에게 [단번에] 편지하라(쓰라). 하나님의 일곱 영들을 가지고 있는 이 그리고 일곱 별들을 가지고 있는 이가 이것들을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알아왔다. 네가 살아있다고 하는 이름(명성)을 가지고 있으나 [사실은] 죽어 있다는 것을.

(2) 너는 [계속] 깨어있는 자가 되어라. 그리고 너는 막 죽으려고 하고 있었던 남은 것들을 [단번에] 강하게(굳세게) 하라. 왜냐하면 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채 있는 너의 행위들을 내가 발견한 채 있지 않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너는 어떻게 받은 채로 있으며 그리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계속] 생각해보라(기억해보라). 그리고 너는 [계속] 지키어라. 그리고 너는 [단번에] 회개하라. 그러므로 만일 네가 깨어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다다를(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느 시간에 네 위에 다다를른지(도착할른지) 네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종교개혁의 후손들은 자기들은 바른 구원론 곧 정통신앙에 서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온전한 행위들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데도, 그들은 자신의 신앙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도둑같이 갑자기 임하여 그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2가지 처방책을 내놓으셨습니다.

첫째, 처음에 어떻게 받았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기억해보고, 처음에 들었던 말씀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과 회개로 구원얻는다는 말씀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지금의 행위의 열매들이 뒤따르지 않는 신앙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범죄행위들을 즉각적으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짓고 있는 죄를 회개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당장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 사데들 안에 있는 성도들중에 흰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런데 당시의 상황이 완전히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데들 도시 안에는 있지만 사데교회에 속해있지 않는 몇몇의 흰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런데 우리말 한글성경만으로 보면, 알기 어려운 중요한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한글성경만으로 본다면, 사데교회 안에 자기들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많지는 않지만 소수의 교인들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헬라어직역원문을 보시겠습니다.

3:4[헬라어직역] 그러나 너는 사데들 안에 자기들의 겉옷들을 더럽히지 아니하였던 작은 이름들(몇 명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 함께 흰(빛나는) [옷들] 안에서(옷들을 입고) 다닐(걷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합당하기(칭찬받을만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사데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데들과 같은 지역에는 자신의 죄를 예수님의 피에 씻어서 자신의 겉옷을 더럽히지 않고 있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장차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빛나는 옷을 입고 천국에서 걸어다닐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칭찬을 받을만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데라는 도시 안에 살고 있지만, 사데교회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가게 되면 결국 자신들의 신앙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데라는 도시 안에 있기는 하지만 사데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과 비슷한 교회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사데교회 앞에 소개된 두아디라교회입니다.이 교회는 주의 종이나 성도들 할 것 없이 다 거짓선지자 여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을 저질러도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버가모교회에서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버가모교회와 다른 점은 버가모교회는 교회성도들의 일부가 그런 것이지 교회의 지도자 즉 주의 종이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거나 가르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타락했어도 지도자는 올바른 가르침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교회 안에 안디바와 같은 순교자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아디라교회의 상황은 다릅니다. 주의 종이 앞장서서 우상숭배를 권장하는 교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데교회 또한 두아디라교회의 상황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두아디라교회와 사데교회는 약간 그 양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두아디라교회가 주의 종들이 잘못된 가르침으로 성도들까지 가르치고 있는 것은 같지만, 두아디라교회는 그것이 이단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는 상태라면, 그러나 사데교회는 그것이 이단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정통이라는 가르침 하에서 이뤄지고 있기에 성도들은 까마득하게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두아디라교회나 사데교회가 있는 지역에는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성경적인 가르침에 따르고 있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2:24 두아디라[] []에 남아 있어 이 교훈(가르침)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자 보십시오. 여기에도 두아디라 지역 안에 있기는 하지만, 이세벨의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고 사탄의 깊은 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ㄷ언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두아디라들 안에 남아 있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교회들 중에는 오직 두아디라교회와 사데교회만 장소가 복수형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두아디라와 사데만 두아디라들과 사데들 안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아디라교회와 사데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같은 도시 안에 있으면서 오직 주님의 가르침만을 순종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정리해봅니다. 버가모교회주의 종은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나 성도들 중의 일부가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가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두아디라교회주의 종들마저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로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같이 동시에 타락한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실 이단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데교회는 다릅니다. 사데교회는 정통이라는 이름 하에 주의 종들까지 잘못된 가르침 안에 빠져 있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이것을 교회사적으로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에베소교회 : 기독교초기 사도시대의 교회(A.D.31~54/81) *54년은 네로황제의 통치 시작년도, *81년은 도미시안황제의 통치 시작년도
2)서머나교회 : 로마박해시대의 교회(A.D.54/81~313)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연도
3)버가모교회 : 로마국교시대의 교회(A.D.313~590) *590년은 제1대 로마교황 그레고리1세가 즉위한 연도
4)두아디라교회 : 로마카톨릭시대의 교회(A.D.590~1517) *1517년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연도
5)사데교회 : 종교개혁이후시대의 교회(A.D.1517~현재)

6)빌라델비아교회: 회복 및 선교시대의 교회(A.D.1700~1900) *1700년은 영국에서 자유의지와 회개를 강조한 연도(존 웨슬리는 1703~1791년 사람임)
7)라오디게아교회: 말세시대의 교회(A.D.1900~재림전) *1900년은 기독교교단이 사라지고, 성령운동과 같은 은사운동이 시작된 연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종교개혁 이후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종교개혁의 신앙적인 전통을 정통신앙이라고 믿고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신앙은 우리이 옷을 더럽힌 채 놔두게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아도 믿기만 하면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만 믿으면 우상숭배해도 상관없고, 거짓말해도 상관없다고 가르치는 시대가 이 시대입니다.

그러니 깨어있는 몇몇의 성도들은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두아디라교회나 사데교회 안에 남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지역 안에 있기는 하지만 교회의 지도자의 가르침을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바르게 신앙생활하기에 힘든 때입니다. 바른 진리를 따르자니 소수로 전락하는 것 같아 힘들고,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자니 넓은 길로 가다가 지옥에 떨어질까봐 힘든 것입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들은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받고 인정받고, 상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아무리 지도자가 타락하고, 정통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고 핍박을 받아도, 성경적인 바른 가르침에 안에 머물러 있어 흰 옷을 입고 다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주님께서는 사데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지만 사데지역 안에 있으면서 바른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들에게 축복해주셨습니다.

첫째, 흰 옷을 입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데교회 안에서 있어서, 정통이라는 이름의 거짓된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는 결국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것입니다. 셋째, 그들의 이름을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살아있다고 하나 죽어 있는 이름이 되어 심판날에 부정되는 이름이 아니라 진정 천국에서 인정받는 이름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2)결단

그렇습니다. 지금도 천주교의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자는 이세벨의 가르침을 절대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천주교 안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개신교에서 신앙생활하는 자라도 정통이라는 이름 하에 잘못 가르치는 교리들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사실 진리를 따라 생명의 길을 가는 것은 좁고 험한 길입니다. 다수가 가지 않는 길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이 생명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결단의 축복

사도바울은 어떻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복음을 전하면서 환난과 궁핍을 당했습니다. 고난을 받고 매를 맞고 갇히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하고 텐트만드는 일도 해야 했고, 때로는 먹지도 못하고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후6:8-10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렇습니다. 진리를 붙잡고 가는 것이 비록 힘든 길이긴 하나 이 가르침을 따라가야 죄사함받고 구원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장로님도 그 교회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끝까지 진리의 가르침을 따라갑시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사데교회가 어떤 교회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정통이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은 죽은 교회가 사데교회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도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이 거짓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믿음만으로 구원얻는다는 것이 거짓된 구원론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이 거짓인 가르침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참된 구원론은 믿음과 회개를 통한 구원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속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분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좁은 길이라도 생명길을 가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진리만을 따르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정통이라는 이름하에 거짓된 가르침으로 속여온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회개가 빠진 거짓된 구원론으로 이끄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진리의 가르침을 따를지어다. 생명길로만 행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살아있다고 하는 명성이 사람을 구원해주지는 못하는구나.

2. 정통이라는 이름하에 거짓된 교리를 진짜처럼 주장한 교회가 바로 사데교회였구나.

3. 회개가 빠진 구원론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구나.

4. 행함이 없는 믿음은 결국이미 죽은 믿음이로구나.

5. 종교개혁의 이름으로 가르쳐진 전통신앙이라도 따져봐야 하는구나.

6. 지도자가 타락하고, 정통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고 핍박하는 상황 속에서도 성경적인 가르침 안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어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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