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왜 편지를 써야했을까?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믿음의 식구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위해 이 편지를 썼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시 선을 행하고도 엄청난 핍박의 풍파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를 희생하며 선을 행하고 있었다. 더불어 황제숭배와 음행에 맞서야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고난 뿐이었다. 특히 자신의 불신남편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노사도는 믿는 아내들이 불신남편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건지 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쓴 것이 베드로전서 3장이다.
베드로전서 3장은 아내들이 남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노사도의 고민의 스며있다. 그리고 그가 알고 경험한 것을 그대로 전한다. 그것은 아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원리에 따라 자신의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신남편이라도 믿는 아내의 말이 아니라 아내의 행위를 보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불신남편들에 대한 믿는 아내의 태도를 보자. 정말 남편들이 존경할만하고 사랑받을만하고 신뢰할만하고 순종할만한 사람이어서 순종하고 있을까? 아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요 그것이야말로 불신남편의 전도방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내는 남편에게 어느정도까지 순종해야 할까? 베드로 사도가 권면하는 것은 남편을 주님처럼 알고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마치 구약시대에 사라가 자신의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며 순종한 것처럼 그렇게 하라고 권면한다. 당시 주인은 종의 목숨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남편에게 순종하되 종이 주인을 섬기듯이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쉽지는 않은 명령이지만 정말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불신남편도 돌아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어서 베드로는 믿는 여자 성도들은 자신의 외모를 단장하는데 치중하지 말고 내면의 속사람을 단장하라고 권면한다.
계속해서 베드로사도는 남편들에게도 말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아내를 절대 버리지 말고, 아내는 깨지기 쉬운 연약한 그릇으로 알아 감싸안아주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아내가 비록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연약하지만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측면에서는 남자와 동등한 신분을 가졌음을 주지시키며, 남자들이 드리는 기도가 응답이 되려면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권면한다.
정말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행실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나를 핍박하고 못살게 하는 까다로운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믿는 이들은 선을 악을 익겨야 한다. 그들까지 축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좋은 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들을 위해 비는 기도가 그를 변화시키든지 아니면 그 기도가 나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베드로사도는 선을 행했지만 고난을 당할 때에라도 좌절하거나 지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왜냐하면 믿는 도리의 사도이신 예수께서 의인이셨지만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본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핍박하고 조롱하는 자들에게 결코 맞서 대항하지 않으셨다. 침뱉음을 당해도, 모욕적인 언사를 받아도 예수께서는 묵묵히 참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위탁하셨다. 그리고 오히려 그러한 원수들을 용서해주셨고 그들을 축복해 주셨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예수님을 하늘에 오르게 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히셨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천사들이 복종케 하셨다.
왜 베드로 사도는 이처럼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믿는 이들이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했어도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라도 예수님처럼 행한다면 그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게 되고 천사들까지 다스리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내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자들이 되라는 것이다.
당신도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고난에 직면했을 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그러면 천국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도 권세있는 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