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날 보편적인 교회에서 은사들이 사라지고 없어진 것일까? '은사'라고 하면, 왜곡된 성령운동을 하는 곳에서만 말해지고 있는 것인가?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초대교회가 경험했던 성령의 은사들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가? 왜 기존 교회에서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은사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으로 그냥 "땡"하고 종을 치는 것이 아니다. 믿을 때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성령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믿는 성도들에게 여러 선물을 나눠주시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성령께서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을 가리켜 "은사(카리스마)"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구약부터 있었던 은사들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있는 은사들 간에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는 왜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일까? 더욱이 성령의 은사를 받는 입장에 있는 성도들은 성령께서 은사를 주실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성령의 은사들에 관하여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고린도 교회는 대체 어떤 은사를 받았던 것일까? 그리고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가운데 그들은 어떤 은사를 최고로 여겼을까? 그리고 오늘날 작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믿는 이들이 구해야 할 진정한 은사는 어떤 것이며, 은사를 구하기 전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요건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2. 고린도전서에서 12~14장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가?
고린도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1장부터 6장까지이며, 후반부는 7장부터 16장까지다. 이중에 후반부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교회의 설립자인 바울에게 제기한 여러 질문에 대한 목회적인 답변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7장에서 결혼 문제를 살펴보았고, 8~10장에서 우상의 제물 취식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고전 11장을 통하여 예배시간에 여자들이 머리에 예배포(수건)를 쓰는 문제와 성찬식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제 오늘부터는 예배 가운데 성령의 은사의 사용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부분은 12장에서 시작하여 14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부분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12장에서는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로운 연합을 언급한다. 그리고 13장에는 사랑의 은사를 언급하고, 14장에서는 방언과 방언통역 그리고 예언의 은사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이것들 중에서 오늘은 성령의 은사에 관한 개론적인 부분이자 다양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도 바울은 "신령한 것들" 곧 "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전12:1). 이 말은 성도라면 영적인 은사들에 대하여 꼭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성령의 은사를 모르면 은사를 통해서 성도들이 얻을 수 있는 유익들을 놓칠 수가 있기 때문이요, 악령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잘못 알았다가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성령의 은사들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과는 반대된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들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령께서 개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는 은사를 잘 받아서 그것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성령의 은사를 가장한 귀신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개인과 교회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성령의 은사문제를 통하여 초래될 수 있는 개인과 교회의 영적인 혼란에 대해서 미리 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 성령을 받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말"에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우상을 섬기는 자를 보자. 그들은 일종의 미신을 섬기는 자들이다. 미신이라는 것은 믿음의 대상인 신적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두려움 가운데 서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미신을 섬기는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대상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왜 이러한 방식으로 그 신을 섬겨야 하는가 하고 질문할 수도 없다. 왜 그 신에게는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도 물어볼 수 없다. 제사 드리는 자가 알아서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씩 모여서 오늘날과 같은 형식의 제사가 되었고 그것이 전통이 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우상의 실체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는 '우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신다(렘10:14~15).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수공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시115:4, 사2:8). 그것은 땔감나무에 불과하며, 금붙이 혹은 은붙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져다 놓고는 그것에다가 절을 하고 향을 피운다. 그 앞에 음식을 차려놓는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은 나무나 금은붙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어떤 우상도 인간에게 반응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신적 존재가 아니며, 다만 누군가 만들어서 거기에 가져다 놓은 한낱 조형물에 불과하다(시115:4~7).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꾸 그러한 조형물에다가 예를 갖추어 절을 하게 되면, 귀신이 그 조형물에 달라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이 찾아오는 사람에게 관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간에 의해 미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상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며, 누가 만들어서 거기에다 가져다 놓은 조형물에 불과한 것을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꾸 거기에다가 절을 하고 향불을 피워놓고 음식을 바치니까, 귀신이 그 조형물에 달라붙게 되어서 귀신이 신의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는 것은 곧 귀신을 섬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섬기는 하나님은 우상과 어떻게 다른가? 그분은 살아있는 인격체이시다. 또한 그분은 믿는 이들 속으로 들어오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인류의 구원자되신 예수님에 대해 깨우쳐주시고 알려주신다. 그 깨우치심의 핵심은 예수께서 주님이시라는 것이다(고전12:3). 예수께서 우리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인류의 죄를 속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내 속에 들어온 귀신이 하나씩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을 따라가는 자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고전12:3). 우리는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비로소 완전한 신적인 실체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4. 예수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란 대체 무엇이며, 이것들은 과연 누가 주시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게 하고 고백케 하시는 성령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그리고 우리 인류의 구원자되시는 예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를 언급한다(고전12:4~6). 그리고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역들은 누가 하게 하는지를 정확히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고전12:4~6에 나와 있는 말씀이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은사'와 '직분'과 '사역'의 주체가 누구이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먼저, "은사"의 분배는 같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라고 하였다(고전12:4). 이는 성령을 통하여 믿는 이들에게 은사가 분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은사가 무엇이며 과연 은사는 어떤 목적으로 주어지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는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둘째로, "직분(섬김)"의 분배는 같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고 언급한다(고전12:5). 이는 교회에서 일하라고 주시는 직분들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주신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통하여, 예수께서 교회에게 주시는 직분을 5가지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라고 하였다(엡4:11). 그런데 오늘날에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 등이 있다. 셋째로, "사역"의 분배는 같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였다(고전12:6). 즉 교회에서 여러 가지 행해지는 사역들은 다 성부 하나님께서 분배하여 그렇게 일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찬양하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는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을 분배받을 수 있고, 직임을 받아서 교회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역의 안배를 따라 교회를 섬길 수가 있는 것이다.
5. 하나님께서는 왜 성도들에게 은사들을 주시는가?
이어서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왜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은사(성령께서 주시는 선물)를 주시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께서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고전12:7). 사도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들은 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나눠 주신다고 언급한다(고전12:11). 그러므로 혹시 자신에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있다면, 그는 자기와 교회에게 매우 유익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성도들 중에 어떤 이는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에 대해 주저하거나 꺼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를 뿐더러,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를 책임 맡고 있는 주의 종들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잘 모르면,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를 교회 밖으로 내모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래서 어떤 교회를 가면, 아예 방언기도를 하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 그러한 사람을 따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들은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것이 교회를 망가뜨리거나 나쁘게 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다만 성령의 은사를 가장하여 들어오는 귀신의 역사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귀신의 역사 또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이 하시는 역사와 귀신이 하시는 역사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더욱 환영하고 귀신의 역사는 더 물리친다면, 교회는 성령의 은사로 인하여 더욱 더 견고해지며 바르게 성장할 수가 있을 것이다.
6.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신령한 은사(특별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다음 주에 더욱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에게는 크게 3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일반 은사"이고, 또 하나는 "특별 은사"이며, 마지막으로 또 하나는 "직분 은사"다. 먼저 "일반 은사"를 살펴보자. 이 은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신령한 은사가 아니다. 이는 불신자도 갖고 있는 은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특별 은사와 구별하여 "일반 은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들에는 고전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은사가 있고, 14장에 "절제"의 은사가 있다. 이외에도 일반 은사에는 노래(찬양), 화평, 온유, 지혜, 지식, 계획, 지도력, 섬김, 재물의 은사 등이 있다. 그리고 "특별 은사"라는 것이 있다. 이 은사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초자연적인 은사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은사로서 총 9가지를 언급한다(고전12:8~10). 그것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통역"인 것이다. 참고로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은사들이 나타나는 경로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영의 눈이 열릴 때에 비로소 확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환상을 보고, 귀신을 보고, 천사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투영체로 오셔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고 또한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 고로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신령한 은사는 은사자가 먼저 보고 먼저 들어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은사들 중에는 "직분"의 은사라는 것도 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교회의 직분의 은사에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의 은사가 있다.
7. 나오며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께서 믿는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주시는 은사들에 대해 총 9가지를 언급하였다(고전12:8~10). 아마도 이러한 은사들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나타났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들을 가리켜 "신령한(영적인) 은사"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다 초자연적인 은사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사들이 오늘날에 과연 얼마만큼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니 이러한 은사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교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성령의 신령한 은사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사도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잊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첫째, 믿는 자들이 되었어도 신령한 은사들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고전12:1, 14:1). 그것은 은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둘째,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하였지만 그것을 사모하지 않기 때문이다(고전12:31). 이 모든 것은 사실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더불어 이것을 분별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별히 은사의 위험성만을 주지시키고 있을 뿐 그것의 유익성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러한 은사들은 교회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하늘 창고에서 은사들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신령한 은사를 말하는 단체가 잘못된 성령운동을 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라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은사들에 대한 시각을 바꿔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은사는 성령께서 개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을 잘 받아 활용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특히 마지막 때에는 말씀만이 아니라 능력도 같이 나타나는 지도자가 활동하는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시기야말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받는 적기 중의 적기가 아닌가 싶다. 물론 성령의 은사를 받기 전에 더욱더 철저히 회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회개 없이 성령의 은사를 사모했다가 귀신이 주는 은사를 받아서 성령의 은사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7월 21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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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강해(16)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1)(고전12,1_11).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