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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역자론(15)] 전임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되었던 엘리사가 남긴 교훈은?(왕하2:6~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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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엘리야와 엘리사는 북이스라엘 왕조 중에서 오므리왕조 때에 활동했던 두 선지자들이다. 그런데 이 둘은 전임자와 후계자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이 둘은 다 똑같이 선지자로 쓰임받았던 자들이었는데, 후임자인 엘리사가 전임자인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한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엘리야와 엘리사는 어떻게 선지자직을 계승할 수 있었는가?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선지자직이 계승된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는 능력의 은사가 계승된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 가운데 능력의 은사를 행했던 단 두 명의 선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둘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선지자도 능력을 행한 적이 없었다. 오직 말로만 예언하고 책망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둘은 다른 선지자와는 달랐다. 이들은 병고치는 은사와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행하였으며, 죽은 자를 살리는 소생의 은사도 행하였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은사가 스승으로부터 제자로 전이된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엘리사가 전임사역자인 엘리야의 뒤를 이어서, 어떻게 후임사역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도 어떻게 하면 사역을 계승하여 사역자가 될 수 있는 것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2. 성경에서 전임사역이 후임사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누구였는가?
보통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직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역자들 중에는 전임사역을 계승하여 후임사역자가 된 경우가 가끔씩 있다. 성경에서 이러한 사례는 총 3번 정도 있었다. 모세의 사역을 계승했던 여호수아,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했던 엘리사의 경우가 있다. 이는 구약의 실례들이다. 그리고 신약에 들어와서 바울의 사역을 계승했던 디모데의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를 제외하고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다 당대에 부르심을 받아서 활동하다가 그리고 당대로 끝나고 말았다. 다시 말해, 전임사역이 후임에게까지 계승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전임사역이 후임 사역자에게 계승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임사여가는 이어받은 전임사역에다가 자신만의 독특한 사역을 추가하여 해 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첫째로, 모세와 여호수아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둘 다 '인도자'로서의 사명을 가진 자들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백성 특히 출애굽 1세대들 애굽에서 광야로 인도할 사명에 따라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출애굽 1세대들이 아니라 출애굽 2대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사명을 따라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었다.
둘째로,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둘 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기 위해 기적을 행하는 자'의 사명을 가지고 사역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행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한 기적의 내용은 각각 다르다. 공통점은 우상숭배에 찌들어있는 북이스라엘과 왕들에게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보내어진 자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기적을 행했던 숫자를 보면, 후임자인 엘리사의 경우가 엘리야의 것보다 두 배 더 많았다는 것이다.
셋째로, 바울과 디모데의 경우가 있다. 이들은 둘 다 '복음을 전파할 자'로서 이 땅에 보내어진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바울은 교회가 없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맡은 자였다. 그런데 그의 후계자로 지명된 디모데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디모데는 이미 교회가 세워진 지역교회에 가서 그 교회를 건강하고 튼튼한 교회로 세우는 일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3. 엘리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엘리사는 원래는 농부였다. 밭농사를 하고 있던 농부였던 것이다(왕상19:19~20). 그런데 그가 농사를 하고 있던 어느날, 위대한 하나님의 종인 엘리야가 엘리사를 그를 찾아온다. 이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지시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엘리야가 선지자의 직무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한 명령이었다. 이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아벨므홀라 지역에 있는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라는 것이었다(왕상19:16).
그러자 엘리야는 엘리사를 찾아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그를 입혀준다(왕하 19:19). 이때 엘리사는 그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즉시 알아차린다. 이제는 자신이 엘리야의 대를 이어 선지자의 직무를 감당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전임자였던 엘리야 선지자는 단순히 예언만 하는 선지자가 아니었다. 엘리야 선지자는 예언을 할 수 있는 사역자였을 뿐만 아니라, 능력도 행하는 선지자였던 것이다. 그러니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할 엘리사도 역시 능력을 전수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즉시 엘리야를 따라나섰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행하던 능력까지 전수받아 사역을 감당할 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능력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전임 사역자로부터 받아야 했다.
4. 후임사역자였던 엘리사는 어떻게 전임사역자였던 엘리야로부터 초자연적인 능력을 전수받을 수 있었는가?
엘리야의 대를 이어 후임사역자가 되었던 엘리사는 과연 어떻게 되어서 전임사역자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전수받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엘리사는 전임사역자가 자신의 겉옷을 던진 사건을 통하여, 자신도 역시 전임자처럼 능력을 행하는 선지자가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능력을 얻기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부터 엘리사는 엘리야가 가는 모든 곳마다 따라갔다. 왜냐하면 언제 그 능력을 자신에게 줄지 자신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신의 죽음의 때를 직감하고 아무도 자기를 따라옴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를 따라갔다. 엘리사는 길갈에세 벧엘로, 다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강으로 계속해서 엘리야를 따라갔다. 그때였다. 요단강 앞에 선 엘리야가 자신에게 던진 바 되었던 바로 그 겉옷을 둘둘 말더니, 요단강 물을 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요단강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 둘은 마른 땅 위로 걸어서 건너편으로 갈 수 있었다. 건너자마자 드디어 엘리야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자신에게 구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주어진 성령의 능력이 자신에게 두 배가 있기를 사모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엘리야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회오리 바람으로 끌어가는 것을 본다면,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수레를 끄는 불말들이 나타나더니, 엘리야를 태우고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엘리야의 몸에서 겉옷이 뚝 떨어졌다. 이에 엘리사는 그 옷을 주워 요단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전임자와 똑같이 그 겉옷으로 강물을 치면서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에 계시니이까"(왕하2:124)라고 말했더니, 요단강물이 갈라졌다.
이때 비로소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어떤 직무를 맡기실 때에는 그 직무에 합당한 은사와 능력도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전임사역자로부터 전수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은사와 능력은 보통 전임자로부터 전이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둘째, 자신을 낮추고 전임자를 겸손히 섬길 때에 하나님께도 역시 그를 눈여겨보시고 그에게 더 많은 능력과 은사를 부어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이 장차 어떤 사람으로 쓰임받을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처음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엘리야의 겉옷이 자신의 몸에 던져지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곧 엘리야의 능력과 은사가 자신에게도 전이되어 사역하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의 근거리에 머무르면서 그를 수종하는 자가 되었다. 특히 엘리야가 밖에 외출하고 돌아오면, 주전자에 물을 담아 그의 손과 발을 씻어주었다. 마치 종처럼 엘리야를 섬겼던 것이다(왕하3: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그 일을 두고 결코 비굴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전임사역자를 붙여준 것은 특별한 뜻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전임사역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아서 말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능력은 전임자로부터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자신이 엘리야를 따라나선 이후, 단 한 번도 자기 스승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이 없었다. 엘리야나 자신이 똑같은 유형의 사람이었음도 불구하고, 엘리야를 하나님의 종으로 알고 기쁘게 섬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그를 눈여보다가 그를 후계자로 지명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신도 전임사역자의 손과 발을 닦아주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것을 두고 비굴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 하나님께서 장차 나를 하나님의 사역자로 준비시키는 훈련의 과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5. 전임사역을 이어받은 엘리사는 과연 어떤 복을 누리게 되었는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겸손을 유지했던 엘리사는 사역을 계승받은 후 어떤 복을 누리게 되었는가?
첫째, 전임사역자가 가진 능력보다 두 배나 큰 능력과 은사를 받게 되었다(왕하2:19). 그래서 엘리사는 전임사역자보다 숫자적으로도 볼 때에도 훨씬 더 많은 기적을 행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임사역자보다 두 배로 기적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전임사역자보다 훨씬 더 크게 존경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전임사역자는 자신의 사역에 훼방을 받을 때가 많았지만, 후임사역자는 자신의 사역이 항상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왕하13:14). 그렇다. 엘리사는 더이상 도망다니는 엘리야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살리는 영성을 가졌기에, 전임사역자가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들었어도 자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는 칭호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왕하4:9).
셋째, 천국에 들어가서도 엘리사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엘리야가 이미 받은 복과 거의 똑같은 복을 그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천국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서, 그도 24장로의 반열에 속한다. 이는 그가 정말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고 그것을 성실하 완수한 자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그가 받은 면류관이나 천국집도 엘리야의 것과 거의 비슷하다.
6. 나오며
전임사역을 계승하는 후임사역자가 탄생하는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보기 드문 사례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례에 엘리사라는 인물이 들어있다. 이는 엘리사가 얼마나 전임사역을 계승하기 위해 힘쓰고 애썼는지를 알려준다. 특별히 엘리사는 전임사역자가 행하던 기적을 두 배로 받기로 사모하였으니, 그의 사역도 엘리야의 사역보다 두 배로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놀라게도 전임사역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었어도 그만만 맨날 쫓겨다닌 신세였던 것과는 달리, 엘리사는 모든 백성과 왕들로부터도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능력도 엘리야에 비해 두 배를 받았지만, 은사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영안을 열어주고 닫는 은사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종 게하시의 영의 눈을 열 수 있었고, 또한 닫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 뿐만 아니라 아람나라의 군대들의 육안마저도 닫아놓기도 하고 열기도 할 수 있었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이처럼 전임사역자보다 후임사역자가 더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받는 사례가 가끔씩 있기는 하다.
2025년 02월 12일(수)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엘리야와 엘리사는 북이스라엘 왕조 중에서 오므리왕조 때에 활동했던 두 선지자들이다. 그런데 이 둘은 전임자와 후계자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이 둘은 다 똑같이 선지자로 쓰임받았던 자들이었는데, 후임자인 엘리사가 전임자인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한 아주 특별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엘리야와 엘리사는 어떻게 선지자직을 계승할 수 있었는가?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선지자직이 계승된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는 능력의 은사가 계승된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 가운데 능력의 은사를 행했던 단 두 명의 선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둘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선지자도 능력을 행한 적이 없었다. 오직 말로만 예언하고 책망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둘은 다른 선지자와는 달랐다. 이들은 병고치는 은사와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행하였으며, 죽은 자를 살리는 소생의 은사도 행하였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은사가 스승으로부터 제자로 전이된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엘리사가 전임사역자인 엘리야의 뒤를 이어서, 어떻게 후임사역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도 어떻게 하면 사역을 계승하여 사역자가 될 수 있는 것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2. 성경에서 전임사역이 후임사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누구였는가?
보통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직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역자들 중에는 전임사역을 계승하여 후임사역자가 된 경우가 가끔씩 있다. 성경에서 이러한 사례는 총 3번 정도 있었다. 모세의 사역을 계승했던 여호수아,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했던 엘리사의 경우가 있다. 이는 구약의 실례들이다. 그리고 신약에 들어와서 바울의 사역을 계승했던 디모데의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를 제외하고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다 당대에 부르심을 받아서 활동하다가 그리고 당대로 끝나고 말았다. 다시 말해, 전임사역이 후임에게까지 계승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전임사역이 후임 사역자에게 계승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임사역자는 이어받은 전임사역에다가 자신만의 독특한 사역을 추가하여 해 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첫째로, 모세와 여호수아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둘 다 '인도자'로서의 사명을 가진 자들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백성 특히 출애굽 1세대들 애굽에서 광야로 인도할 사명에 따라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출애굽 1세대들이 아니라 출애굽 2대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었다.
둘째로,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둘 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기 위해 기적을 행하는 자'의 사명을 가지고 사역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행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기적의 내용은 각각 다르다. 공통점은 우상숭배에 찌들어있는 북이스라엘과 왕들에게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보내어진 자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기적을 행했던 숫자를 보면, 후임자인 엘리사의 경우가 엘리야의 것보다 두 배 더 많았다는 것이다.
셋째로, 바울과 디모데의 경우가 있다. 이들은 둘 다 '복음을 전파할 자'로서 이 땅에 보내어진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바울은 교회가 없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맡은 자였다. 그런데 그의 후계자로 지명된 디모데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디모데는 이미 교회가 세워진 지역교회에 가서 그 교회를 건강하고 튼튼한 교회로 세우는 일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3. 엘리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엘리사는 원래는 농부였다. 밭농사를 하고 있던 농부였던 것이다(왕상19:19~20). 그런데 그가 농사를 하고 있던 어느날, 위대한 하나님의 종인 엘리야가 엘리사를 찾아온다. 이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지시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엘리야가 선지자의 직무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한 명령이었다. 이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아벨므홀라 지역에 있는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라는 것이었다(왕상19:16).
그러자 엘리야는 엘리사를 찾아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그에게 입혀준다(왕하 19:19). 이때 엘리사는 그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즉시 알아차린다. 이제는 자신이 엘리야의 대를 이어 선지자의 직무를 감당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전임자였던 엘리야 선지자는 단순히 예언만 하는 선지자가 아니었다. 엘리야 선지자는 예언을 할 수 있는 사역자였을 뿐만 아니라, 능력도 행하는 선지자였던 것이다. 그러니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할 엘리사도 역시 능력을 전수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즉시 엘리야를 따라나섰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행하던 능력까지 전수받아 사역을 감당할 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능력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전임 사역자로부터 받아야 했다.
4. 후임사역자였던 엘리사는 어떻게 전임사역자였던 엘리야로부터 초자연적인 능력을 전수받을 수 있었는가?
엘리야의 대를 이어 후임사역자가 되었던 엘리사는 과연 어떻게 되어서 전임사역자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전수받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엘리사는 전임사역자가 자신의 겉옷을 던진 사건을 통하여, 자신도 역시 전임자처럼 능력을 행하는 선지자가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고, 그 능력을 얻기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부터 엘리사는 엘리야가 가는 모든 곳마다 따라갔다. 왜냐하면 언제 그 능력을 자신에게 줄지 자신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신의 죽음의 때를 직감하고 자기를 따라옴을 아무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를 따라갔다. 엘리사는 길갈에세 벧엘로, 다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강으로 계속해서 엘리야를 따라갔다. 그때였다. 요단강 앞에 선 엘리야가 자신에게 던진 바 되었던 바로 그 겉옷을 둘둘 말더니, 요단강 물을 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요단강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 둘은 마른 땅 위로 걸어서 건너편으로 갈 수 있었다. 건너자마자 드디어 엘리야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자신에게 구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주어진 성령의 능력이 자신에게 두 배가 있기를 사모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엘리야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회오리 바람으로 끌어가는 것을 본다면,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수레를 끄는 불말들이 나타나더니, 엘리야를 태우고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엘리야의 몸에서 겉옷이 뚝 떨어졌다. 이에 엘리사는 그 옷을 주워 요단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전임자와 똑같이 그 겉옷으로 강물을 치면서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에 계시니이까"(왕하2:14)라고 말했더니, 요단강물이 갈라졌다.
이때 비로소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어떤 직무를 맡기실 때에는 그 직무에 합당한 은사와 능력도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전임사역자로부터 전수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은사와 능력은 보통 전임자로부터 전이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둘째, 자신을 낮추고 전임자를 겸손히 섬길 때에 하나님께도 역시 그를 눈여겨보시고 그에게 더 많은 능력과 은사를 부어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이 장차 어떤 사람으로 쓰임받을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처음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엘리야의 겉옷이 자신의 몸에 던져지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곧 엘리야의 능력과 은사가 자신에게도 전이되어 사역하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야의 근거리에 머무르면서 그를 수종하는 자가 되었다. 특히 엘리야가 밖에 외출하고 돌아오면, 주전자에 물을 담아 그의 손과 발을 씻어주었다. 마치 종처럼 엘리야를 섬겼던 것이다(왕하3: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그 일을 두고 결코 비굴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전임사역자를 붙여준 것은 특별한 뜻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전임사역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아서 말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능력은 전임자로부터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자신이 엘리야를 따라나선 이후, 단 한 번도 자기 스승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이 없었다. 엘리야나 자신이 똑같은 유형의 사람이었음도 불구하고, 엘리야를 하나님의 종으로 알고 기쁘게 섬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그를 눈여겨보다가 그를 후계자로 지명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신도 전임사역자의 손과 발을 닦아주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것을 두고 비굴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 하나님께서 장차 나를 하나님의 사역자로 준비시키는 훈련의 과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5. 전임사역을 이어받은 엘리사는 과연 어떤 복을 누리게 되었는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겸손을 유지했던 엘리사는 사역을 계승받은 후 어떤 복을 누리게 되었는가?
첫째, 전임사역자가 가진 능력보다 두 배나 큰 능력과 은사를 받게 되었다(왕하2:9). 그래서 엘리사는 전임사역자보다 숫자적으로도 볼 때에도 훨씬 더 많은 기적을 행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임사역자보다 두 배로 기적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전임사역자보다 훨씬 더 크게 존경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전임사역자는 자신의 사역에 훼방을 받을 때가 많았지만, 후임사역자는 자신의 사역이 항상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왕하13:14). 그렇다. 엘리사는 더이상 도망다니는 엘리야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살리는 영성을 가졌기에, 전임사역자가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들었어도 자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는 칭호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왕하4:9).
셋째, 천국에 들어가서도 엘리사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엘리야가 이미 받은 복과 거의 똑같은 복을 그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천국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서, 그도 24장로의 반열에 속한다. 이는 그가 정말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고 그것을 성실하 완수한 자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그가 받은 면류관이나 천국집도 엘리야의 것과 거의 비슷하다.
6. 나오며
전임사역을 계승하는 후임사역자가 탄생하는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보기 드문 사례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례에 엘리사라는 인물이 들어있다. 이는 엘리사가 얼마나 전임사역을 계승하기 위해 힘쓰고 애썼는지를 알려준다. 특별히 엘리사는 전임사역자가 행하던 기적을 두 배로 받기로 사모하였으니, 그의 사역도 엘리야의 사역보다 두 배로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임사역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맨날 쫓겨다닌 신세였던 것과는 달리, 엘리사는 모든 백성과 왕들로부터도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능력도 엘리야에 비해 두 배를 받았지만, 은사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영안을 열어주고 닫는 은사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종 게하시의 영의 눈을 열 수 있었고, 또한 닫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 뿐만 아니라 아람나라의 군대들의 육안마저도 닫아놓기도 하고 열기도 할 수 있었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이처럼 전임사역자보다 후임사역자가 더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받는 사례가 가끔씩 있기는 하다.
2025년 02월 12일(수)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