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1(금) 금요기도회
제목: 믿음으로만 칭의를 얻으며 칭의를 얻었으면 다 구원받는가?(롬5:1~11)
https://youtu.be/Jpm0se8s6HQ

 

칭의와 관련하여 믿는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구원론에 있어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첫째, 사람이 칭의를 얻는 데에는 믿음만으로 되어진다는 것과 더불어 둘째, 칭의가 곧 구원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아니다. 칭의를 얻는 데에는 믿음만이라고 증거하는 성경구절이 없다. 그리고 칭의가 구원을 향해 가는 첫 출발은 되겠지만 그것이 곧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구원은 믿는 순간에도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는 그 순간에 죽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구원은 일평생의 과정을 통해서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칭의는 과연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칭의를 얻는 방법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나 자신이 칭의를 완성하려 할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시작으로서의 칭의와 과정으로서의 칭의 그리고 완성으로서의 칭의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얻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말세에 가장 주의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는 땅에서 올라오는 두뿔 가진 어린 양으로 활동하는 거짓선지자다(계13:11).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마7장과 24장에서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셨다(마7:15,마24:11). 거짓선지자는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지만 사실은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 있다면 거짓된 가르침을 전하는 거짓선지자다. 그런데 순한 양들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따라간다. 그러나 그러한 가르침을 믿고 따라가면 어떻게 되는가? 계2~3장에 보면, 발람과 이세벨같은 자가 바로 그런 자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선지자들이 멀리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들어왔던 가르침 중에는 성경적인 듯하지만 성경에서 벗어난 가르침이 아주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러한 가르침을 믿고 따라가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오늘날 교회 가운데 선포되고 있는 거짓된 구원론의 가르침 가운데, 4번째 시간으로서, 과연 믿음으로만 칭의를 얻으며 칭의를 얻었으면 다 구원받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의(義)와 칭의란 무엇인가?

 "의(義)"(헬, '디카이오쉬네')란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올바름, 옳음이라는 뜻이요, 또 하나는 정의로움, 공정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의"라는 것은 옳은 일을 행한 자에게는 공정하게 상급과 보상이 주어지지만, 그릇된 일을 행한 자에게는 징계와 벌이 주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과연 이 세상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보시게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들이 아담 안에서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는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칭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의 행동을 달아보았을 때 도무지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는 상태에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의를 그에게 전가시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칭의는 의인에게 붙여지는 명칭이 아니라 죄인에게 붙여지는 명칭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죄인된 신분의 변화를 나타낸다. 사실 모든 사람은 죄인이지만 대신하여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사람의 죄값을 지불하셨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의를 그에게 전가시켜 그를 의롭다하고 칭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더럽지만 예수님께서 입혀주시는 칭의의 옷을 입음으로 인하여, 우리를 깨끗하다고 칭해주는 것을 "칭의"라고 하는 것이다.

 

3. 칭의는 순간인가 아니면 과정인가?

  그렇다면, 칭의는 순간에 얻는 것인가 아니면 긴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칭의는 순간에 주어며 그 효력은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칭의는 인류의 죄를 속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음을 때에 순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이러한 칭의가 영원하거나 안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는 회개를 통해서 인침을 받아야 하며(롬4:11),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약2:21~22). 성경에서는 믿음으로 칭의를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을 완성으로서의 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칭의는 우리가 믿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러 과정을 거쳐 나중에 가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4. 시작으로서의 의는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롬3~4장과 갈2장에서 "사람이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부터가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누누이 언급하였다. 이것은 맞는 진술이다. 하지만 이것을 듣는 사람은 성경에 나와있는 대로 듣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렇게 듣는 것이다. "사람의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구나. 그러므로 내가 비록 지금 죄를 짓고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의롭다고 칭해지는 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속죄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내가 짓고 있는 죄 때문에 칭의가 상실된다거나 구원에서 탈락하는 일은 없겠구나!"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이해다. 왜냐하면, 사람이 칭의를 받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는 진술은 맞는 것이지만, 그것이 오직 믿음으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것은 조금 있다가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칭의는 어떻게 시작되느냐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사람이 칭의를 얻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것은 예수님의 의로움을 자신이 전가받는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롬3:23~24의 말씀을 통해서, 칭의의 근거는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에 있는 속량(구속)이라고 하였고, 그것을 믿을 때에 그분의 의가 나에게 전가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칭의를 얻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5. 과정으로서의 의는 어떤 것이며, 아브라함은 어떻게 칭의를 얻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믿음을 통해 얻게되는 칭의는 영원하며 안전한가?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직 온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사람이 칭의를 얻는 것은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인침받으려면 영적인 할례 곧 회개를 해야 한다고 증거하였다. 사도바울은 "그[아브라함]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된 의를 인친 것(롬4:11)"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칭의를 얻는 것도 믿는 순간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다. 하지만 그가 받은 칭의는 후에 할례를 행함으로 인침받을 필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브라함은 사실 3단계의 칭의의 과정을 거쳐 온전한 칭의를 얻은 자가 되었다. 그의 첫번째 칭의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음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아무 자식도 없고 아내도 불임상태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면서,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일러주었다. 그런데 논랍게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면서 이것을 그의 의를 여기셨다(창15:6). 그리하여 그는 믿음으로 의를 얻은 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번째 의가 필요했다. 그것은 그가 받은 첫번째 칭의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수많은 자손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신뢰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자식을 얻으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자신의 아내 사래의 몸종인 하갈을 통하여 자식을 낳으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자 자식을 얻긴 얻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무려 13년 동안이나 떠나가셨다. 그러나 그의 나이 99세에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너는 내 얼굴 앞에서 완전하라(창17:1)"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먼저는 그의 이름을 바꾸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는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을 동원하지 않겠노라고 자신의 고추의 끝을 자르라(할례를 행해라)고 명령하셨다(창17:10~11). 그러므로 그가 할례를 행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인간적인 생각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가겠다고 의미였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2장에서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와 같다고 했다(골2:11~12). 그렇다면 세례는 무엇인가? 세례자 요한은 그것을 죄사함을 받게하는 "회개의 세례"라고 했다(막1:4). 그러므로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요 그 뜻은 회개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으로부터 전가된 의를 받아 칭의인이 되지만 그래도 그 뒤로 사람은 무수히 죄를 짓게 된다. 그렇다면 믿을 때에 받았던 깨끗한 의의 옷은 그만 더럽혀지고마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 예수님의 피로 더럽혀진 옷을 철저히 빨아 희게 해야 한다(계7:14, 22:14). 이것이 바로 "회개"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받은 처음의 의는 온전한 것도 아니며 완전한 것도 아니다. 일평생 회개의 과정을 통해서 온전해지는 것이다.

 

6.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칭의는 어떤 것인가?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이 칭의를 얻는 데에 2가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이 칭의를 얻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첫번째로, 세례요한으로부터 인류의 모든 죄를 전가받으시고 그것을 십자가에서 처리하셨다. 인류의 죄를 전가받는 행위가 바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것이었다. 사실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자 세례요한은 그것을 말렸다. 자신이 오히려 예수님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했는가? "이제는 허락하라. 왜냐하면 이와같이 행하여 모든 의를 의를 이루는(완성하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마3:15)" 이는 인류의 모든 죄가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요한(그는 최종적인 선지자이자 제사장이었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였다)의 안수를 통해 예수님에게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의 죄를 전가받은 예수님은 그 다음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 되셨고, 3년반 뒤에는 인류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제 말한다. 예수께서 죄를 전가받아 댓가를 치르신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그분의 죄없이 함의 은총을 전가받는다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믿음으로 받게 되는 "전가받은 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사람이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구속사역을 믿을 뿐만 아니라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눅18:13~14). 그것은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눅18:9~14)"에 나온다. 거기에 보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철저히 깨닫고 성전에 가까이도 나아가지도 못한 채, 눈을 들어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다만 자기의 가슴을 치며 기도하는 세리가 나온다. 그때 세리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면서 자신에게 속죄의 은총을 베풀어달라고 간곡히 요청한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그 세리가 의롭다하심을 받고 집에 돌아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눅18:14). 그렇다. 사람이 의롭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두번째 조치는 회개인 것이다. 회개없이는 아무도 예수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을 용서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요일1:7,9).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사람이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당신의 구속사역이 필요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피력하셨음을 알 수 있다.

 

7. 확증 즉 완성으로서의 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믿는 순간부터 칭의를 얻는 것이지만 그것이 즉시 그때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최소한 믿음으로 얻은 칭의는 반드시 회개의 과정을 거쳐야 인침을 받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면, 예수님의 속죄의 피공로를 온전히 신뢰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이 지었던 죄들을 회개하여 용서받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 야고보 장로는 행함으로 온전되는 칭의로 가게 된다고 언급하였다.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서 2장에서,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으로 칭의를 얻기는 얻었으나, 아브라함도 자기의 독자 이삭을 제단에 바침으로서 비로소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약2:21). 다시 말해, 그가 믿음이 있고 회개한 자였다는 증거가 바로 그가 자신의 독자 이삭을 제단에 바쳤던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독자이삭을 바치게 했을 때, 아브라함이 그대로 순종하자, 그에게 "이제는 됐다"라고 말씀하셨다. 즉 "내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고 하시면서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라고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복을 주겠노라(창22:16)"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믿음이 비로소 온전케 되었음을 인정해주신 것이다.

 

8. 칭의가 곧 구원인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작으로서의 의 곧 전가된 의이자 믿음으로 받은 의는 구원의 노정에서 이제 막 출발하는 칭의에 불과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유월절양의 희생으로 인하여 은혜를 받은 것이 바로 시작으로서의 칭의인 것이다. 이때는 거의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다 일해주셨다. 그리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서 생활해야 했다. 이것은 바로 믿음으로 칭의를 받은 이후에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일러준다. 즉 홍해를 건너는 일 곧 회개의 세례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갔다. 이것은 바로 사람이 죽을 때에 다시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롬3~4장과 갈2장에서 말하는 시작의 칭의를 구원으로 보면 안 된다. 시작으로서의 칭의는 구원의 노정에서 첫출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했다(롬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 안에서 의롭다하심을 받은 후에, 더욱 그분으로 인하여 그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롬5:9 직역)." 그렇다. 칭의가 구원의 노정의 시작인 것이다. 칭의를 받은 자들 중에 결국 훗날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9. 나오며

  그렇다. 칭의는 시작으로서의 칭의가 있고, 과정으로서의 칭의도 있으며, 완성으로서의 칭의가 있는 것이다. 시작으로서의 칭의는 롬3~4장과 갈2장에 나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속죄를 위해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전가받는 의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을 얻는 것은 순간이며 이로서 우리는 법정적으로도 옳다는 칭의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칭의가 온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때 입은 깨끗한 의의 옷이 우리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 다시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가 죽는 그날까지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더럽혀진 옷을 빨아야 한다. 즉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그는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라고 그대로 순종하게 되는 사람으로 탈바꿈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완성으로서의 칭의라는 것이다. 그래도 죄짓는 부분이 있다면 다시 회개함으로 옷을 빨고 재도전해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19년 1월 11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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