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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pccxr52E7p0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대강절(12)] 성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에게 생명을 분배해주는 데에 있었다(요10: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pccxr52E7p0

  

1. 들어가며: 하나님이 아들을 보낸 날인가, 하나님이 사람이 된 날인가?

12월이 되면 온 세상이 성탄의 분위기에 젖어 든다. 교회마다 트리를 장식하고 캐럴이 울려 퍼진다. 그렇다면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성도들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떠올리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날"이라고 대답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것은 성탄의 가장 보편적이고 기초적인 정의다. 그러나 성경은 그보다 더 깊고 충격적인 진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성탄절의 더 깊은 정의는 요한복음 1장 14절에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즉, 성탄절은 단순히 하나님이 누군가(아들)를 파견하신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오신 날'**이다. 전자가 제3자를 통한 사랑의 표현이라면, 후자는 당사자가 직접 개입한 목숨을 건 사랑의 침투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 후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감격해하는 성도는 그리 많지 않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된다는 것,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육체 속에 갇히신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하(卑下)요, 겸손이며, 파격이다. 하나님은 왜 천사를 보내지 않으시고, 직접 사람이 되셔야만 했는가? 그리고 그 육체를 입으심으로 우리에게 주고자 하셨던 궁극적인 선물은 과연 무엇인가? 대강절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성탄의 껍데기가 아닌 그 속에 담긴 '생명의 비밀'을 파헤쳐 보아야 한다. 구원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생명을 내 안에 이식받는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2. 왜 하나님은 천사가 아닌 '사람'이 되어야만 했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천군 천사를 동원하시거나, 혹은 능력 있는 선지자를 세워 대리하게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굳이 당신이 직접, 그것도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실 필요가 있었을까? 여기에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진한 사랑'의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대신 보내는 사랑과, 내가 직접 가서 죽어주는 사랑은 그 농도가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천사나 대리인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 없으셨다. "내가 직접 가겠다. 가서 그들의 아픔을 내가 직접 겪고, 그들의 죗값을 내 몸으로 직접 치르겠다." 이것이 성육신(Incarnation)의 동기다.

또한 예수님의 오심은 철저하게 예언의 성취로 이루어져야 했다. 그래야 훗날 나타날 수많은 가짜 구세주들과 구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메시아가 오실 길을 치밀하게 예언해 놓았다.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어야 하고, 지파로는 유다 지파여야 하며, 장소로는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이어야 했다(미 5:2).

예수님이 태어나실 당시,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천하에 호적령을 내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갈릴리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를 베들레헴으로 이끌어 예언을 성취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이 역사를 주관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고통, 예를 들어 북한 땅이 80년 가까이 어둠 속에 있는 이유도 영적인 원인에서 찾아야 한다. 평양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했던 그 죄악이 영적인 어둠을 가져온 것이다. 지도자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지도자를 바꾸시지만, 백성이 죄를 지으면 그 고통은 온몸으로 겪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 탓을 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 예수님은 이 죄악 된 세상, 고통받는 인류의 역사 한복판으로 직접 들어오셨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이다.

 

3. '여자의 씨'로 오셨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은 예수님이 '여자의 씨(창 3:15)'로 오실 것을 예언했다. 또한 '처녀의 몸'에서 나실 것이라고 했다(사 7:14). 우리는 흔히 이것을 "남자의 씨(정자)를 받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정도로만 이해한다. 물론 100% 맞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예수님은 마리아의 자궁만 빌리신 것인가, 아니면 마리아의 난자(DNA)를 취하신 것인가?

과거에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셔야 하기에, 죄인인 마리아의 피나 유전자를 받지 않고 오직 몸만 빌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히 2:14)이라고 말하며,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히 2:16)고 기록한다. 예수님이 법적으로뿐만 아니라 혈통적으로도 다윗의 자손이 되려면, 마리아의 난자를 통해 인성을 취하시는 것이 더 성경적이다.

그렇다면 '원죄(Original Sin)'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마리아도 죄인인데, 그녀의 난자에서 태어나면 예수님도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원죄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원죄는 유전자 속에 박혀 있는 어떤 생물학적 결함이 아니다. 원죄란,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의 영과 육체 속에 악한 영(귀신)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회개와 천국복음'을 연구하며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해 악한 영들의 영향을 받고 태어난다. 이것이 원죄의 실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다.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지만, 잉태되는 순간 성령께서 덮으시고(눅 1:35)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감싸주셨다. 즉, 악한 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차단된 상태에서 육신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마리아로부터 인간의 육체(DNA)는 물려받으셨으나, 죄(악한 영)는 전이되지 않으셨다. 이것이 예수님이 참 사람이시면서 동시에 참 하나님이실 수 있는 신비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육체를 가지셨지만, 그 속에 귀신이 들어있지 않은 '무죄한 인간'으로 오신 것이다.

 

4. 아담은 왜 알면서도 선악과를 먹었는가? (첫 사람 아담의 비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첫 사람 아담'은 어떤 존재였는가? 우리는 흔히 아담이 멍청해서, 혹은 하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먹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딤전 2:14)고 정확히 기록한다. 아담은 속지 않았다. 그는 영적인 지혜가 충만한 자였고, 그것을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담은 왜 선악과를 먹었는가? 단지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신부인 하와가 뱀에게 속아 범죄한 것을 보았다. 하와는 영적으로 이미 죽은 상태가 되었다. 이때 아담은 선택해야 했다. 하나님께 "이 여자는 망가졌으니 폐기하고 새 여자를 주십시오"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저 여자의 운명을 짊어지겠다"고 할 것인가.

아담은 후자를 택했다. 그는 사랑하는 신부가 혼자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심정으로, 기꺼이 죽음의 열매를 받아먹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불순종이며 명백한 죄다. 그러나 그 행위 이면에 담긴 동기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예표(Typology)한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 죽을 이유가 전혀 없는 분이다. 그러나 그분의 신부인 우리(교회)가 죄를 지어 죽게 되었다. 이때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서 죽기를 선택하셨다. 아담의 선택은 비극이었지만, 그 속에는 신부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신랑의 사랑이 숨겨져 있었다.

에베소서 5장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라고 말한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롬 5:14)이다. 첫 사람 아담은 신부와 함께 죽는 길을 택했지만,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신부를 위해 죽으심으로 신부를 다시 살려내는 길을 완성하셨다. 이것이 성탄을 통해 시작된 위대한 사랑의 드라마이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1부에서 성육신의 신비와 아담의 사랑을 다루었다면, 2부에서는 예수님과 우리의 본질적 차이, 그리고 구원의 핵심인 **'생명(Zoe)'**의 개념을 명쾌하게 구분하여 서술하겠습니다.

약속된 편집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여 집필을 이어갑니다.

 

5.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의 육체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예수님이 참 사람(True Man)으로 오셨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신성을 가지셨기에 우리와 달리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히 4:15)라고 선언한다.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와 똑같았다. 밥을 먹지 않으면 배고프셨고, 먼 길을 걸으면 피곤하여 우물가에 주저앉으셨으며, 잠을 주무셔야 했다. 채찍에 맞으면 살점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느끼셨고, 십자가 위에서는 극심한 목마름을 호소하셨다. 만약 예수님이 슈퍼맨 같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 "나는 하나도 안 아프다"라고 하셨다면, 그분은 결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Sympathy)하실 수 없다.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머리로 아시는 분이 아니라, 몸으로 겪어 아시는 분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죄(Sin)의 유무'**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단순히 도덕적인 범죄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영적으로 깊이 연구하며 깨달은 바에 의하면, 원죄란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육체와 영 속에 '악한 영(귀신)'들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상태를 말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조상들이 지은 죄의 결과로, 그 죗값을 타고 들어온 악한 영들을 몸에 지니고 태어난다. 이것이 죄된 본성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 이 악한 영의 침투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즉,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육체(Flesh)'는 입으셨지만, 그 속에 죄성(악한 영)은 전혀 없는 **'무죄한 육체'**를 입으신 것이다. 만약 예수님에게도 죄가 있었다면 남을 위해 죽을 수 없고 자기 죄 때문에 죽어야 했을 것이다. 반대로 예수님에게 육체가 없었다면 피 흘려 죽으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죽을 수 있는 육체를 입으셨으나, 죽지 않아도 되는 무죄한 생명을 가지신 유일한 분이다. 이 독특한 이중 구조가 그분을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게 했다.

 

6. '산 혼(Living Soul)'과 '살려 주는 영(Life-giving Spirit)'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경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 예수님의 차이를 아주 정밀한 언어로 구분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을 보자.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Living Soul)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Life-giving Spirit)이 되었나니."

우리말 성경에는 아담을 '생령'이라고 번역했지만, 히브리어 원문(네페쉬 하야)이나 헬라어 원문(푸시케)을 보면 **'산 혼(Living Soul)'**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하나님이 흙으로 빚은 육체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아담은 영과 육이 결합하여 생각하고 느끼고 의지를 가진 독립적인 인격체, 즉 '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 아담의 영 속에는 아직 **'하나님의 생명(Zoe)'**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시고 그것을 따 먹으라고 하셨던 것이다. 즉, 아담은 생명을 담을 수 있는 그릇(영)은 가졌으나, 아직 그 내용물(생명)은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에 예수님은 다르다. 요한복음 5장 26절에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라고 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부터 그 영 속에 아버지의 생명(Zoe)을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그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살려 주는 영(Life-giving Spirit)'**이 되셨다.

이것을 쉽게 비유하자면 이렇다. 한 알의 밀알(예수님) 속에는 생명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 밀알이 그대로 있으면 생명은 그 안에만 갇혀 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껍질이 깨지고 죽어야만(십자가), 그 안에 있던 생명이 해방되어 나와서 수많은 다른 밀알들을 맺게 된다.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는 단순히 죗값을 치르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당신 안에 있는 그 고귀한 하나님의 생명을 해방시켜,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의 영 속에 분배해 주기 위함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살려 주는 영', 즉 성령(보혜사)의 형태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는 단순히 교리를 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의 생명을 이식받은 자다.

 

7. 죄 사함만으로는 왜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가?

한국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가 있다.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으면 구원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죄 사함(Forgiveness)은 너무나 중요하고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하나님의 경륜(God's Economy)의 관점에서 볼 때, 죄 사함은 **'마이너스를 제로(0)로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죄 사함은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 즉 깨끗하지만 아직 생명은 없는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릇을 깨끗이 씻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씻은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가 진짜 목적이다. 깨끗해진 영이라는 그릇에 **'하나님의 생명'**을 채워 넣어야 비로소 구원이 완성된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명확히 밝힌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Zoe)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죄 사함 주러 오셨다는 말 대신 '생명'을 주러 왔다고 하셨다. 죄 사함은 생명을 주기 위한 전제 조건(청소)이다. 만약 우리가 죄 사함만 받고 생명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깨끗한 빈 집과 같다. 빈 집에는 나갔던 귀신이 일곱을 데리고 다시 들어올 수 있다(마 12:45).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씻어내는 회개에 머물지 말고, 적극적으로 말씀을 먹고 성령을 마심으로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득 채워야 한다.

이 생명이 들어와야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자녀를 넘어 '상속자'가 되며, 장차 천국에서 왕 노릇 할 수 있는 권세를 얻게 된다. 이것이 성탄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 안 짓는 도덕군자로 만들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가진 '신의 아들들'로 만들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8. 일곱 번째 질문: 어떻게 해야 그 생명을 더 풍성히 누릴 수 있는가?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생명을 얻는 것이 '구원(Salvation)'의 시작이라면, 더 풍성히 얻는 것은 '성화(Sanctification)'와 '영화(Glorification)'의 과정이며, 장차 천국에서 누릴 지위와 영광을 결정짓는 핵심 열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생명을 내 안에 가득 채울 수 있는가?

첫째, '회개(Repentance)'를 통해 그릇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 믿으면 자동으로 깨끗해진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예수 믿어 영이 구원받은 것과, 내 육체 속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죄성(악한 영)을 몰아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 안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죄의 유전과 내가 지은 죄로 인해 수많은 악한 영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들어오는 통로를 막고 있다. 우리가 자백하고 회개할 때, 예수의 피가 역사하여 이 더러운 영들을 몰아낸다. 비워진 만큼 생명이 채워진다. 회개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생명을 채우기 위한 매일의 호흡이어야 한다.

둘째, '말씀(The Word)'을 먹어야 한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하셨다. 말씀은 단순한 활자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캡슐이다. 밥을 먹어야 육체가 힘을 얻듯, 영의 양식인 말씀을 읽고, 듣고, 암송할 때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강화된다. 특히 예수님이 직접 하신 붉은 글씨의 말씀들은 생명의 정수(Essence)다. 교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내 영혼에 집어넣어야 한다. 말씀이 충만한 사람이 곧 생명이 충만한 사람이다.

셋째, '영의 기도(방언)'를 쉬지 말아야 한다. 내 영이 살아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말하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울음 터뜨리듯, 거듭난 영은 하나님을 향해 말하고 싶어 한다. 방언은 내 혼(이성)이 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고전 14:2). 방언을 할 때 내 영은 활성화되고, 하나님의 생명과 깊이 연결된다. 교회에서 방언을 금지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것은 영의 호흡을 막는 어리석은 일이다. 생명을 풍성하게 하려면 영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이렇게 생명이 풍성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천국에서의 신분이 달라진다. 단순히 '구원받은 죄인'으로 천국 문턱을 밟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를 넘어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자(Heir)', 더 나아가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왕(King)'**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 땅에서 얼마나 회개하여 악을 몰아내고, 얼마나 말씀과 기도로 생명을 채웠느냐가 영원한 세계에서의 내 위치를 결정한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치열하게 영적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다.

 

9. 나오며: 생명의 분배, 그 위대한 경륜의 완성

지금까지 우리는 성탄의 겉모습이 아닌 그 깊은 속살을 들여다보았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보내신 날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선물이 되어, 포장지인 육체를 입고 우리에게 배달된 날이다. 그분이 오신 길은 멀고도 험했다.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 된 인간의 역사 속으로, 여자의 태를 빌려,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셨다.

왜 그러셨는가? 단 하나, 당신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Zoe)'**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함이었다. 첫 사람 아담은 신부를 위해 같이 죽는 길을 택했지만,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신부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신부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다. 이제 우리는 죄 사함 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어린아이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죄 사함은 생명을 담기 위한 그릇 닦기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경륜(Economy)은 명확하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거쳐 '살려 주는 영'이 되시고, 그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하나님 같은 존재(God-men)'로 만드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탄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대강절과 성탄절이 여러분에게 그저 연례행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는가? 나는 그 생명을 더 풍성히 누리고 있는가? 내 안의 어둠을 몰아내고 말씀으로 채우고 있는가? 점검해야 한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 문밖에서 두드리신다. 문을 열고 그분을 영접하여,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생명이 충만한 자가 되라. 그리하여 장차 주님 오시는 날, 부끄러운 구원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상속자야"라고 불리며 넉넉히 천국에 입성하는 영광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2025년 12월 26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성탄의 참된 의미를 단순한 예수의 탄생을 넘어 하나님의 생명을 인간에게 분배하는 사건으로 정의하며, 구원의 본질적인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룹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께서 인간과 동일한 연약한 육신을 입고 오셨으나 그 영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을 직접 품고 오셨음을 강조하며, 단순한 죄 사함은 타락 이전으로의 회복일 뿐 생명을 얻는 것이 구원의 완성임을 역설합니다. 이를 위해 신자들은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철저히 회개함으로써 육체 속 악한 영들을 몰아내고,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여 내면의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이 텍스트는 성도들이 영적 싸움과 순종을 통해 천국에서의 지위를 준비하고,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하는 삶을 살 것을 독려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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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 [대강절(03)] 요셉의 약혼녀였던 마리아의 사명은 대체 무엇이었을까?(01)(눅1:26~38)_2025-12-16(화) file 갈렙 2025.12.16 115 https://youtu.be/OHWHPc3L5e4
2206 [대강절(02)] 마리아의 약혼남이었던 요셉의 사명은 대체 무엇이었을까?(02)(마2:13~23)_2025-12-15(월) file 갈렙 2025.12.16 122 https://youtu.be/0_jUgtWsZYw
2205 [질병치유시리즈(24)] 질병치료를 위한 내 몸의 건강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마9:12)_2025-12-11(목) file 갈렙 2025.12.11 162 https://youtu.be/kJq6cxCZ9G8
2204 [질병치유시리즈(23)] 사역자는 축사와 치유사역을 할 때에 어떻게 명령해야 하는가?(02)(막7:31~37)_2025-12-10(수) file 갈렙 2025.12.10 126 https://youtu.be/o5bR568DZVg
2203 [질병치유시리즈(22)] 사역자는 축사와 치유사역을 할 때에 어떻게 명령해야 하는가?(민14:28)2025-12-09(화) file 갈렙 2025.12.09 151 https://youtu.be/RtYqkHw2TAk
2202 [질병치유시리즈(21)] 치유는 어떻게 일어나며 사역자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계22:1~2)_2025-12-08(월) file 갈렙 2025.12.08 162 https://youtu.be/6SploPXITvk
2201 [질병치유시리즈(18)] 질병을 주기 위해 뱀들과 귀신들이 침투해 들어오는 3가지 경로(막5:1~20)_2025-12-05(금) file 갈렙 2025.12.06 264 https://youtu.be/hmZusKGEaS4
2200 [질병치유시리즈(17)] 질병치유를 위한 회개, 과연 어떻게 하게 할 것인가?(02)(신28:21~28)_2025-12-02(화) file 갈렙 2025.12.04 147 https://youtu.be/rRenANKQUF0
2199 [질병치유시리즈(16)] 질병치유를 위한 회개, 과연 어떻게 하게 할 것인가?(01)(신28:21~28)_2025-12-01(월) file 갈렙 2025.12.01 188 https://youtu.be/beD6fRIqdDw
2198 [질병치유시리즈(14)] 나도 치유사역자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02)(마10:1~8)_2025-11-28(금) file 갈렙 2025.11.29 322 https://youtu.be/eMKekY7VPhE
2197 [질병치유시리즈(13)] 나도 치유사역자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01)(막16:15~18)_2025-11-28(금) file 갈렙 2025.11.28 255 https://youtu.be/4jjpwFr_tMg
2196 [질병치유 시리즈(12)] 축사와 치유사역의 차이점은 무엇인가?(마8:5~13)_2025-11-27(목) file 갈렙 2025.11.27 261 https://youtu.be/g7lU-w7PmDA
2195 [질병치유시리즈(11)] 질병을 치료할 때 ‘믿음’은 과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02)(막11:22~24)_2025-11-26(수) file 갈렙 2025.11.26 477 https://youtu.be/WhOZsVOu5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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