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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oI6_OpRuGfY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1)]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1)(창1:1~3,26~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I6_OpRuGfY

 

1. 들어가며: 그림자에서 실체로, 욕단에서 벨렉으로

  우리는 고대의 한자(漢字) 속에도 숨겨진 창세기의 역사, 즉 창조와 타락, 노아의 홍수와 바벨탑 사건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고대 한자는 우리 민족의 조상인 욕단 계열(동이족)이 동쪽으로 이동하며 남긴 위대한 신앙의 유산이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았고, 제사를 드렸으며, 무지개를 보며 활을 만들어 뱀(사탄)을 잡으려 했던 경건한 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욕단민족에게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기억'은 가지고 있었으나, 구체적인 '계시'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의 기억은 희미해졌고, 생명나무는 뽕나무로 바뀌었고, 여인의 후손은 벼농사로 바뀌었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조상 제사나 무속 신앙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것은 그림자는 있었으나 실체가 없었기에 빚어진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림자가 아닌 실체, 기억이 아닌 기록된 말씀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욕단의 형제인 '벨렉'의 후손을 통해 인류 구원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성경'인 것이다. 그리고 그 성경의 핵심은 오직 한 가지로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요 5:39). 그래서 이 시간부터 우리는 창세기라는 밭에 감추어진 보화,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떠나는 기독론의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성경 공부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잃어ㅁ버렸던 구원의 실체를 진짜로 회복하고, 참된 생명나무의 열매를 맛보는 감격적인 시간이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2. 성경은 왜 '벨렉'의 족보를 따라갔는가?

  창세기 10장 25절을 보면 셈의 현손 에벨에게서 두 아들이 태어난다. 첫째 아들은 벨렉(Peleg)이고, 둘째 아들은 욕단(Joktan)이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욕단은 13명의 아들들을 데리고 동쪽 산으로 떠나 우리 민족 곧 동이족의 조상이 되었지만, 성경의 카메라는 그들이 떠난 시점(창 10:30)에서 멈춘다. 반면, 에벨의 첫째 아들 벨렉은 그 땅(메소포타미아)에 남았고, 성경기록은 그의 5대 후손인 아브라함에게로 역사의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창세기 11장 이후의 모든 기록은  바로 벨렉 계열의 족보를 따라 흘러간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벨렉의 씨를 선택하셨는가? 그것은 '약속의 씨(Seed)'를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여자의 후손(씨)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창 3:15)이라고 이미 약속하셨다. 이 약속을 성취하려면 이 약속을 성취해줄 구체적인 혈통이 필요했다. 그런데 욕단 민족은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이미 멀리 떠나버렸기에, 하나님은 그 자리에 남은(혹은 부르심을 받은) 벨렉의 후손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메시아의 계보를 잇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단순한 인류 역사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구속사(Redemptive History)'인 것이다. 그리고 구속사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따라서 성경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을 닦은 사람들에 관한 기록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 그분을 잉태하고 낳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벨렉의 후손)이 선택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서양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다. 욕단 민족이 잃어버린 그 '씨'의 실체가 벨렉 민족(이스라엘)을 통해 보존되어 왔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기 때문에, 그분이 기록된  말씀으로 형성된 역사를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벨렉의 족보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려주는 하나의 이정표인 셈이다.

 

3. 한자(그림자)만 알고 성경(실체)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만약 우리에게 성경이 없고 고대 한자처럼 고조선의 기억만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상제(上帝)'라 부르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고인돌을 쌓고 정화수를 떠놓고 빌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제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죄 사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영생은 어떻게 얻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실제로 우리 민족은 성경을 몰랐기에, 생명나무를 기억하기 위해 뽕나무를 심었고, 여인의 후손을 기다리며 벼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본질을 모르고 지내다보니, 어느날 뽕나무는 비단 옷 만드는 수단이 되었고, 벼는 배 불리는 식량이 되고 말았다. 더 심각한 것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니, 인간인 단군이 중보자임을 자처하다가 결국 영험한 귀신의 힘을 빌리는 무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특별 계시(Special Revelation)' 부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진리가 없으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타락하고, 영적인 공백을 우상으로 채우게 되기 마련이다. 디모데전서 4장 1절은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확한 말씀, 정확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이처럼 미혹당할 수 있으며 속임당할 수가 있다.

  이것은 비단 그때만의 일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경을 덮어두고 신비주의나 은사주의, 혹은 민족 종교(환단고기 류)에 심취하면 그 끝은 이단이 되는 것이요 멸망으로 치닫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붙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성경만이 우리를 혼미하게 하는 뱀의 거짓말을 깨뜨리고 참된 구원의 길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성경이 증거해주고 있는 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나침반인 때문이다. 욕단 민족의 한계는 벨렉 민족이 가지고 있는 성경을 만날 때 비로소 극복이 되는 것이다.

 

4. 예수님은 구약을 어떻게 해석하셨는가? (모형론)

  그렇다면 우리는 구약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나 윤리 도덕 교과서로 읽을 것인가?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기록된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구약 성경을 해석하는 아주 중요한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모형론(Typology)'적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사건, 인물, 제도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Type)'이자 '그림자(Shadow)'이며, 신약의 예수님이 그 '실체(Antitype)'라는 것이다.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다음와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당시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킨다. 즉,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모든 말씀이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24장 27절에서도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

  둘째로 바울도 역시 구약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구약은 모형이요 신약은 실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보자. 고린도전서 10장 1절에서 4절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출애굽할 때에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고, 영적인 음식인 만나와 영적인 음료인 생수를 마셨는데, 그때 쪼개진 반석이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막대기로 반석을 치자, 반석이 쪼개졌고 거기에서 생수가 나와서 모든 백성들이 마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님의 부서진 몸으로부터 생명주는 영이신 성령께서 나온다는 것을 예표해주기 때문이다. 

  고로 모형론적 성경해석 방법이야말로 창세기를 읽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담을 볼 때'오실 자의 표상'인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롬 5:14). 또한 노아의 방주를 통해 구원의 피난처 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삭의 번제에서 우리는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그렇다. 이처럼 우리가 구약의 문자를 넘어 그 속에 숨겨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양식이 될 것이다.

 

5. 광야의 '놋뱀'은 왜 예수님인가?

  구약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관하여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어느날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께서는 창세기의 말씀을 보는 놀라운 열쇠를 하나 알려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독생자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럼 어떤 것이 믿는 것인가? 이에 대해 에수께서는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사건을 통하여 예수께서 과연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말씀하신 것인데, 이는 예수님이야말로 광야의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뱀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을 때에 사람은 죄의 독으로부터 해방받는다는 것이다. 그럼,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에 물려 죽었는가? 그것은 분명히 불뱀이었다. 즉 독이 있는 실제의 뱀이었다. 하지만 그때 사람들은 무엇을 쳐다보았을 때 해독이 되었는가? 그것은 장대 위에 높이 매어 단 놋뱀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뱀의 독과 같은 죄는 없는 분이시지만 인간의 죄를 뒤집어 쓰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불뱀이 아니다. 그러나 인류의 죄를 뒤집어 쓰시어 놋뱀과 같이 되셨다. 그래서 이것을 믿어야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정리해보자.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이 죄 없으신 분(독 없는 놋뱀)이시지만, 십자가(장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뒤집어쓰시고, 가장 흉악한 죄인(뱀)의 형상을 뒤집어 쓰시고 심판받아 죽으신 것이다. 바울은 이를 두고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고후 5:21)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 놋뱀 사건은 단순한 치료의 기적의 사건을 말함이 아니다. 장차 십자가에 달리실 인자(Son of Man)를 바라볼 때, 죄의 독이 해독되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복음의 정수(Essence)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사건 하나하나가 당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사실을 친히 보여주신 것이다. 

  

6. 야곱이 본 '사닥다리'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이제 또 하나의 예를 살펴보자. 창세기 28장에는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야곱이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었는데, 그것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것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이 신비한 꿈은 무슨 의미인가? 그때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 자기가 누운 그곳을 '하나님의 집(벧엘)'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말했지만, 그 사닥다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런데 그 해답이 요한복음 1장 51절에 나온다. 그 사닥다리가 무엇인지를 예수께서 직접 풀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빌립을 따라서 메시야를 만나보겠다고 찾아온 나다나엘을 형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人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요 1:51)"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보았던 그 사닥다리가 바로 당신 자신, 즉 '인자(Son of Man)'라고 알려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땅에서 하늘을 향하여 놓여있는 사닥다리의 기능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끊어진 채 있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 곧 유일한 '중보자(Mediator)'가 바로 원래는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조상이었던 단군은 스스로를 천자(하늘의 아들)라 칭하며 중보자를 자처했으나, 그는 땅에서 태어난 인간일 뿐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닿을 수 없었다. 사닥다리가 하늘까지 놓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단군들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중보자가 될 수 없었기에, 결국 귀신의 힘을 빌려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귀신과 접선하는 무당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은 시간이 지나면서 족장에서 점차로 무당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 무당으로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는데, 그 제단이 바로 한반도에 약 70%가 있는 고인돌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원래가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분은 참 하나님이신 것이다. 동시에 그분은 사람이셨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셨던 예수께서는 죄인은 사람들을 이 땅에서부터 하늘 꼭대기로 갈 수 있도록 연결해주시는 사닥다리와 같으신 분이시다. 그분만이 완전한 중보자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꿈을 통하여, 2천 년 뒤에 오실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볼 수가 있는 것이다. 

 

7. 멜기세덱이 가져온 '떡과 포도주'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가?

  그리고 이제 또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창세기 14장에는 아주 신비로운 인물로서 한 사람 등장한다. 그는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 그를 맞이하러 나온 살렘 왕 '멜기세덱'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아브라함을 축복하기 위해 등장하고 있는데, 그가 들고 나온 것이 특이하다. 그것은 '떡과 포도주'였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짐승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장차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제정하실 '성찬식'에 대한 완벽한 예표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 몸이라" 그리고 포도주 잔을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다(마 26:26-28). 그렇다. 대제사장이 해야 할 일은 포도주로 상징된 속죄를 제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떡으로 상징된 생명도 있다는 것이다. 

  고로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을 가리켜 말하기를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3)고 묘사하였다. 어떤 유대 전승(야살의 책)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공급하기 위해 나왔던 멜기세덱을 노아의 아들 '셈'이라고 기록하기도 한다. 셈은 홍수 이전의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아브라함에게 전수해 준 영적 거장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셈이라 할지라도, 구약성경은 그의 인간적인 족보를 감춤으로써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높이 세웠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먹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살과 피로 우리를 먹이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창세기에는 이처럼 성찬의 신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는 것이 곧 구약성경을 보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8. 왜 창세기를 읽을 때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는가?

  우리가 창세기를 읽는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단순히 이스라엘의 고대 역사를 알기 위함인가? 그게 아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족보를 외우기 위함도 아니다. 그 속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며 그분을 만나기 위함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구약 66권에 나오는 모든 성경의 주인공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부터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세상의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입은 '가죽옷'을 통하여 속죄양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의 의를 전가받은 방법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창세기 6~9쟁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ㄹ를 통하여, 구원의 피난처 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대신하여 죽임당한 '숫양'이 우리 인류를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대속의 에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성경을 읽고 있으면서도, 거기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율법주의자가 되어버리거나, 우리 조상들처럼 의미 없는 제사만 드리는 종교인이 되고 말 것이다. 성경의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통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인 동이족이 남겨놓은 한자는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희미한 그림자였던 것이요, 벨렉족속이 남겨놓은 성경은 선명한 실체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림자를 보고서 실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뽕나무 잎사귀를 통하여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벼를 보면서 여자의 씨로서 오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늘에 제사드렸던 단군을 통하여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로서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창세기는 더 이상 남의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태초부터 계획하신 나를 위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9. 나오며: 성경의 숲에서 예수를 만나라

 이제 이번 시간부터 우리는 구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라는 거대한 숲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이러한 숲에는 빛도 있고, 생명나무도 있고, 방주도 있고, 제단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려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눈을 들어 예수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광야의 놋뱀처럼 장대 높이 들리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야곱의 사닥다리처럼 죄인인 우리를 하늘까지 연결해 주시려고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리고 멜기세덱처럼 떡과 포도주로 우리 영혼을 살리고 먹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러면 그때부터 지식이 아닌 생명으로 성경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론이 아닌 인격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에서부터 놓임을 받게 될 것이고, 주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와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동방의 빛'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제 붙들자. 그래서 그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보자. 

 

 

2026년 01월 14일(수)
정보배 목사

 

[말씀핵심]

이 설교는 창세기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우리 민족의 기원을 욕단 족속으로 보며, 성경을 문자나 그림 문자로만 해석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이단적 변형과 미혹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야곱의 사닥다리나 멜기세덱의 떡과 포도주 같은 구약의 사건들이 결국 중보자이자 대제사장인 예수를 예표하는 것임을 신학적으로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신약의 관점으로 구약을 역추적하는 모형론적 성경 해석을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붙들고 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메시지의 핵심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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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대강절(12)] 성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에게 생명을 분배해주는 데에 있었다(요10: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pccxr52E7p0 file 갈렙 2025.12.26 215 https://youtu.be/pccxr52E7p0
2213 [대강절(11)] 예수께서는 사람이지만 어떻게 죄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실 수 있었는가?(히2:9~17)_2025-12-24(수) file 갈렙 2025.12.24 380 https://youtu.be/cnhKzIbA_X4
2212 [대강절(10)] 예수께서는 어떻게 사람으로 태어나셨으며 그렇게 하셔야만 했는가?(눅2:1~6)_2025-12-23(화) file 갈렙 2025.12.23 289 https://youtu.be/x4iTYaU6y_g
2211 [대강절(09)] 예수께서는 언제 탄생하셨는가 왜 그 시각은 밤이었는가?(눅2:1~20)_2025-12-22(월) file 갈렙 2025.12.23 181 https://youtu.be/hkJf3JU099I
2210 [대강절(06)] 복있는 사람이라 일컬어졌던 마리아보다 더 복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눅1:39~48)_2025-12-19(금) file 갈렙 2025.12.20 229 https://youtu.be/pVUxPt1uOXs
2209 [대강절(05)] 마리아의 찬가 속에 들어있는 마리아의 아픔과 기쁨은 무엇이었는가?(눅1:46~56)_2025-12-18(목) file 갈렙 2025.12.18 304 https://youtu.be/RU5UA31Bk24
2208 [대강절(04)] 요셉의 약혼녀였던 마리아의 사명은 대체 무엇이었을까(02)(눅 1:39~4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file 갈렙 2025.12.17 347 https://youtu.be/MaR9ww3OAo8
2207 [대강절(03)] 요셉의 약혼녀였던 마리아의 사명은 대체 무엇이었을까?(01)(눅1:26~38)_2025-12-16(화) file 갈렙 2025.12.16 313 https://youtu.be/OHWHPc3L5e4
2206 [대강절(02)] 마리아의 약혼남이었던 요셉의 사명은 대체 무엇이었을까?(02)(마2:13~23)_2025-12-15(월) file 갈렙 2025.12.16 362 https://youtu.be/0_jUgtWsZYw
2205 [질병치유시리즈(24)] 질병치료를 위한 내 몸의 건강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마9:12)_2025-12-11(목) file 갈렙 2025.12.11 316 https://youtu.be/kJq6cxCZ9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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