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공지

아침묵상

아침묵상

아침묵상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어가세요.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새로운 은혜로 하루를 세워가시기 바랍니다.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QLlOulKTCoY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22)]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이겨내야 할 대상은 대체 무엇인가?(창32:13~3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QLlOulKTCoY

 

1. 들어가며

  인생은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와 싸우며 살아간다. 때로는 사람과 부딪히고, 때로는 감당하기 벅찬 환경과 씨름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기는 자(The Overcomer)'가 되라고 명령한다.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에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며,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영광을 약속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무릎 꿇리는 것이 승리인가?

  성경에서 '이기는 자'의 가장 대표적인 표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야곱이다. 그는 얍복강 나루터에서 밤새 씨름한 끝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름을 얻었다. 야곱의 생애는 투쟁 그 자체였다.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순간부터, 장자권을 쟁취하고 거부가 되기까지 그는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얍복강 사건은 그가 평생 싸워왔던 대상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진짜 이겨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전환점이었다.

  이번 시간에 우리는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영적 현실을 통해, 진정한 승리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무엇인지 일곱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이 질문들은 막연했던 우리의 싸움 대상을 명확하게 조준해 줄 것이다.

 

 

2. 성경이 말하는 '이기는 자'란 단순히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승리자인가?

  세상은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을 승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이김(헬라어 니카오)'은 물리적인 힘의 우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극복해내는 것(prevail)'이며, '이겨내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을 통과해내는 것(overcome)'이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그가 형 에서를 무력으로 제압했는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다리를 절게 되었고, 육체적으로는 더 약해졌다. 하지만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영적으로 돌파해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난관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들,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는 에서와 같은 거대한 공포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는 것, 그리고 마침내 그 상황을 뚫고 지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이기는 자'의 본질이다. 힘이 세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들고 상황을 역전시키는 끈기가 바로 승리의 열쇠다.

 

 

3. 야곱에서 시작된 '이기는 자'의 계보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야곱은 구약 시대 '이기는 자'의 원형이다. 그는 혼자만 이긴 것이 아니라 열두 아들을 낳아 열두 지파를 형성함으로써, 집단적인 승리자의 모형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자체가 한 개인의 이름을 넘어 민족의 이름이 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이기는 자'의 계보는 신약으로 넘어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포하셨고, 요한계시록 5장 5절에서는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고 증거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가장 처참한 패배의 형상을 통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세우셨고, 그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으며, 오늘날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는 야곱의 열두 아들처럼, 예수님의 열두 제자처럼 이 거룩한 승리의 계보에 초청받은 자들이다. 특히 사도 바울은 이방인 사도로서 신약 시대 성도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승리자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구원을 넘어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보를 잇는 거룩한 사명이다.

 

 

4.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는 형 에서 앞에서, 야곱이 직면한 진짜 적은 과연 '에서'였는가?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형 에서였다. 20년 전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긴 형이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은 야곱에게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겉보기에 야곱이 싸워야 할 대상은 분명히 '에서'였다. 그는 에서의 마음을 풀기 위해 엄청난 예물을 준비하였고, 처자식들을 여러 떼로 나누어 보내는 전략을 짰다.

  그러나 얍복강 나루터에 홀로 남은 야곱을 덮친 것은 에서의 칼날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였다. "형이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창 32:11). 이 고백 속에 그의 진짜 적이 드러난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가진 것을 모두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제사 지내는 집안이나 무당 같은 우상 숭배가 심한 가문에서 자란 사람들은 안다. 영적인 세계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심리적인 불안일지 모르지만, 그 배후에는 '두려움을 주는 영'이 존재한다. 야곱을 짓누른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를 파멸시키려는 영적 세력의 압박이었다. 에서라는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면을 잠식하는 두려움의 영이다. 야곱은 이 밤에 그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5. 하나님은 왜 절체절명의 순간에 야곱을 돕는 대신,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의 환도뼈를 치셨는가?

  야곱은 얍복강에서 끝까지 잔꾀를 부렸다. 그는 예물을 먼저 보내고, 레아와 라헬을 비롯한 자식들을 먼저 강 건너로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맨 뒤에 남았다. 여차하면 혼자라도 도망치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는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요단을 건넜던 시절처럼, 이번에도 지팡이 하나 들고 도주하여 목숨을 부지하려 했을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자리 잡은 지독한 '자기 사랑(Self-love)'이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했다. 그리고 야곱이 끝내 굴복하지 않자, 그 천사는 야곱의 환도뼈(허벅지 관절)를 쳐서 위골시켰다. 뼈가 어긋나버린 것이다. 이제 야곱은 뛸 수도, 도망칠 수도 없게 되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가혹하게 하셨을까?

  "너 혼자만 살려고 도망치는 것은 안 된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다. 하나님이 야곱을 부르신 목적은 그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해 열두 지파가 세워지고, 그의 가문이 구원받아 아버지의 집에 함께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이기적인 자아, 즉 나만 살겠다는 '자기 사랑'을 깨뜨리신 것이다. 환도뼈가 부러짐으로써 야곱은 도망칠 수 있는 다리를 잃었지만, 대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 간절함을 얻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이었다.

 

 

6. 구약과 달리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이겨내야 할 싸움의 대상은 어떻게 구체적이고 명확해졌는가?

  구약 시대에는 싸움의 대상이 주로 눈에 보이는 적이나 환경으로 나타났다. 야곱에게는 에서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나안 족속들이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서 싸움의 실체는 훨씬 더 명확해졌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이다. 또한 사역 내내 귀신을 쫓아내셨다. 구약에는 귀신을 쫓아내라는 명령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신약 성도인 우리 안에는 성령이 계시기에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영들을 몰아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바로 마귀와 귀신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자아를 부추겨 교만하게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다. 겉으로는 사람과의 갈등이나 질병, 가난처럼 보일지라도, 그 배후에서 조종하는 악한 영들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대적해야 한다. 이것이 신약 성도가 싸워야 할 진짜 전쟁이다.

 

 

7. 회개를 방해하고 우리를 위축시키는 '두려움'은 단순한 감정인가, 아니면 실체 있는 영적 공격인가?

  많은 성도들이 회개를 시작하면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겪곤 한다. 몸이 아프거나, 예기치 않은 사고가 터지거나,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온다. 나 역시 회개사역의 초기에 회개에 깊이 들어갔을 때, 죽을 것 같은 공포와 오싹함을 수없이 경험했다. 등골이 쭈뼛 서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 이것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내 안에 집을 짓고 살던 악한 영들이 쫓겨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주는 위협이다.

  성경은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요일 4:18)고 말한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축시켜 영적 싸움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어떤 성도는 귀신이 계속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소리에 시달려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필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성도님, 귀신은 우리를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정 죽을 것 같으면 응급실에 가십시오. 가서 링거라도 맞으면서 계속 회개하십시오."

  결국 그 성도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회개를 통해 두려움의 영을 몰아내고 밝은 얼굴을 되찾았다. 두려움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다. 예수 이름의 권세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우리는 이 두려움이라는 감정 뒤에 숨은 영적 세력을 직시하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두려움은 떠나갈지어다"라고 선포하며 이겨내야 한다.

 

 

8. 우리가 이 치열한 싸움 끝에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는 어디이며, 왜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어야 하는가?

  야곱이 얍복강에서 그토록 처절하게 매달려야 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살아서 아버지의 집(가나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지 또한 분명하다. 저 천국, 새 예루살렘 성, 아버지의 집이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서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는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 혼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라도 그가 가족을 버리고 혼자 도망가는 것을 막으셨다. 이는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신약의 약속과 일맥상통한다. 야곱의 위대함은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열두 아들 모두를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는 데 있다(물론 르우벤처럼 개인의 죄로 탈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야곱은 끝까지 축복하며 그들을 세우려 했다).

  진정한 승리자는 나 혼자 구원받고 만족하는 자가 아니다. 내 자존심, 내 편안함, 내 육체의 안위를 깨뜨려서라도 내 가족, 내 구역 식구, 내가 맡은 영혼들을 이끌고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자다. 아가서의 신부처럼, 나 자신이 정결한 신부가 되어 마귀와 싸워 이길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또 다른 신부들을 낳고 길러내는 영적 어미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기는 자'의 완성이다.

 

 

9. 나오며

  얍복강의 밤은 깊었고 야곱은 홀로 남았다. 그러나 그 밤은 야곱이 '자기 사랑'이라는 껍질을 깨고 진정한 '이스라엘'로 거듭나는 산실이었다. 오늘 당신의 얍복강은 어디인가? 당신을 가로막고 있는 400명의 군대는 무엇인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직장 상사도 아니다. 진짜 적은 내 안에 숨어 있는 교만한 자아, 나만 살겠다고 움켜쥐는 이기심, 그리고 끊임없이 불안과 두려움을 주입하는 악한 영들이다. 우리는 이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아픔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놓지 말라. 상황이 절망적일수록 더욱 기도의 줄을 붙잡으라. 내 힘으로 도망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매달리라. 그때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바꾸어 주실 것이다. 패배자에서 승리자로, 도망자에서 상속자로 말이다.

  기억하라. 우리는 흙으로 돌아갈 육체를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한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내 영혼을 가꾸고 치열하게 영적 전쟁을 치르는 거룩한 전사들이다. 나를 넘어 우리 가정과 교회를 함께 살려내는 그날까지, 이 거룩한 씨름을 멈추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02월 11일(수)

정보배 목사

 

이겨야할 적 (3).png.webp

 

이겨야할 적 (4).png.webp

 

이겨야할 적 (5).png.webp

 

이겨야할 적 (6).png.webp

 

이겨야할 적 (7).png.webp

 

이겨야할 적 (8).png.webp

 

이겨야할 적 (9).png.webp

 

이겨야할 적 (10).png.webp

 

이겨야할 적 (11).png.webp

 

이겨야할 적 (12).png.webp

 

 

 

[ 또 다른 요약]

1. 들어가며: 야곱, 나의 거울이자 우리의 자화상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서 필자의 삶과 가장 닮아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야곱을 택할 것이다. 성경에는 이삭처럼 한 번의 순종으로 평탄한 복을 누린 사람도 있지만, 야곱처럼 험악한 세월을 보내며 깎이고 깨어져야만 했던 인생도 있는데 바로 필자의 삶도 그랬기 때문이다.

  야곱, 그는 흙에 속한 자로 태어나, 자신의 꾀와 힘으로 아등바등 살아가다 결국 하나님의 손에 의해 환도뼈가 꺾이고서야 비로소 하늘을 우러러보게 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곧 필자의 이야기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것이다.

  성경은 야곱을 가리켜 이기는 자(Overcomer), 즉 이스라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가 얻은 승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승리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는 칼을 휘둘러 적을 제압한 것이 아니었기 떄문이다. 오히려 얍복강 나루에서 처절하게 자아가 깨지고 무너짐으로써 승리자가 되었다. 이것은 역설(파라독스)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기는 것'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바로 그 대상은 무엇인가?

  그래서 이번 시간에 우리는 기독론의 관점에서 야곱의 생애, 특히 얍복강 사건을 조명하며 '이기는 자'의 참된 정의가 무엇인지를 결론 짓고자 한다. 야곱이 걸어간 그 길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시며, 그분이 완성하신 승리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깊이 묵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성경이 말하는 ‘이기는 자(Overcomer)’의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이겼다'고 말할 때에는 경쟁에서 승리하거나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이김, 곧 헬라어 니카오(Nikao)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깊고 넓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영어로는 오버컴(Overcome) 또는 프리베일(Prevail)이라는 단어로 번역되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닥친 절망적인 상황이나 한계를 극복해내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여 이겼다고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이겼다'는 말은 그가 천사를 자신의 힘으로 눌러서 제압했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는 환도뼈가 위골되어 더 이상 버틸 힘조차 없는 상황에서, 천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라고 간절히 매달림으로 이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물리적으로 패배한 것이요 항복한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믿음의 승리였던 것이다.

  고로 진정한 승리자는 자신의 무능을 철저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자신을 투항시킨 사람이다. 이기는 자란,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인 '아버지의 집'에 기어코 도달하는 자를 가리킨다. 상황을 역전시키는 힘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고 내 안의 주님이 사심을 확신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권세인 것이다. 따라서 이기는 자는 곧 자기를 부인하는 자이며, 끝까지 견디는 자임을 알 수 있다.

 

 

 

3. 왜 ‘이기는 자’라는 칭호는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되는가?

  요한계시록 2~3장을 보면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상급들이 기록되어 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음, 감추었던 만나를 먹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음, 보좌에 함께 앉는 영광을 얻음 등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영광스러운 칭호와 상급은 결코 천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강력한 존재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을 가리켜 '이기는 자'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천사에게는 극복해야 할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체가 없기에 질병이나 노화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 배고픔이나 피곤함을 느끼지 않으며, 죽음의 공포와 싸울 일도 없다. 명령이 입력되면 그대로 수행하는 AI 로봇과 같은 존재들이다. 반면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흙으로 지어진 연약한 육체를 입고 있기에, 끊임없이 본능과 싸워야 하고, 질병과 환경의 제약을 받으며, 사탄의 유혹과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를 가져오게 한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밤새 씨름했던 것은 단순히 천사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 안의 두려움, 자신의 육체적 한계,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과의 싸움이었다. 하나님은 그 치열한 과정을 통과한 인간에게만 '이기는 자'라는 면류관을 씌워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고난은 우리를 이기는 자로 만들기 위한 필수 코스임을 기억해야 한다.

 

 

 

4. 야곱은 얍복강에서 구체적으로 무엇과 싸워 이겼는가? (3가지 대상)

  야곱이 얍복강에서 마주했던 적, 곧 그가 이겨야 할 대상은 대체 누구였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형 에서와 그가 이끌고 오는 400명의 군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야곱이 싸워야 했던 대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첫째, 절망적인 상황(환경)과의 싸움이었다. 에서의 칼날 앞에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들과 자식들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둘째, 자기 자신(자아)과의 싸움이었다. 야곱은 평생을 자신의 꾀와 수단으로 살아왔다. 팥죽으로 장자권을 사들였고, 염소 가죽으로 아버지를 속였으며, 얼룩무늬 양을 얻기 위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그러나 얍복강에서는 그가 가진 모든 인간적 수단이 다 무용지물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철저히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했다. 가장 힘든 싸움은 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꺾어 주님 앞에 굴복시키는 것이다.

  셋째, 그 배후에 있는 악한 영(귀신)과의 싸움이었다. 에서의 마음에 20년 동안 증오와 살의를 불어넣었으며, 야곱에게 극심한 두려움을 심어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악한 영들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날 밤 싸워야 할 대상은 이러한 영적 세력이었다. 야곱은 그날 밤 이러한 영적인 대적들과도 함께 맞서 싸워야 했다.

  결국 야곱의 승리는 에서를 물리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잡음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깨뜨리고, 기도로 악한 영의 궤계를 무너뜨려 상황을 반전시킨 전인적인 승리였던 것이다.

 

 

 

5. 환도뼈가 위골된 사건은 패배인가, 승리의 시작인가?

  야곱이 밤새 천사와 씨름할 때, 천사는 야곱을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 그의 환도뼈(허벅지 관절)를 쳤다. 환도뼈는 우리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골반과 대퇴골을 연결하는 부위로, 힘의 근원이자 생명(생식 능력)을 상징한다. 그 뼈가 위골되었다는 것은 야곱이 더 이상 도망갈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제 힘으로 버틸 수도 없는 완전한 무력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것은 와전한 실패이다. 날이 새면 당장 형을 만나야 하는 상황인데, 다리를 절게 되었으니, 도망칠 마지막 힘조차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이것은 야곱에게 있어서는 축복의 시작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끝까지 의지하고 있던 그의 지팡이, 즉 자기 힘과 꾀를 그날 밤에 부러뜨리셨기 때문이다. "이제 너는 네 힘으로 설 수 없다. 나만 의지해야 산다."

  필자가 교회를 개척했을 때였다. 필자는 교육목회로 반드시 신도시에서 보란듯이 목회에 성공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신대원을 졸업할 무렵, 동기 중에 나이가 60대 이상 되신 분들이 개척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람 10명을 꼽았는데, 그 명단에 내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가르치는데 남다른 은사가 있었기에, 성경을 가르치고 제자훈련을 하면 목회에 성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초반에 승승장구하던 목회는 2년이 지나기가 무섭게 주저앉았다. 그러자 필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다시 시작하였다. 그리고 약 20년의 연단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2020년이 되었을 때 필자는 필자의 힘으로 목회하고 내 열정으로 성공하려 했던 교만을 철저히 회개해야 했다. 하나님은 필자의 환도뼈를 치심으로 필자를 주저앉게 하여 20년의 시간이 지나가게 하셨지만, 필자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만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이처럼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이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그때 가서야 얻었듯이, 우리의 깨어짐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6. '두려움'이라는 영적 실체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얍복강에서 홀라 남아 있었을 때에, 야곱을 진정 괴롭혔던 적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를 사로잡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창세기 32장 7절은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상황을 과장하여 자신을 마비시키는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아니 그 자체가 바로 두려움의 영으로서 악한 영들이다.

  그렇다면 야곱은 이 두려움을 과연 어떻게 이겨냈는가? 그도 처음에는 인간적인 방책(선물 공세, 무리 나누기)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은 홀로 남아 기도의 자리로 들어갔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창 32:11). 그는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래서 형의 분노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필자 역시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두려움들과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2020년 저주에서 해방되는 회개를 시작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사의 영이 많았던 제게 오히려 악한 영들은 더 강력하게 공격하고 들어왔다. 그때 느꼈던 공포는 내 몸의 털들을 쭈뼛쭈뼛 서게 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동안 배운 것을 서서히 접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 필자는 "나를 두렵게 하는 모든 영과 십자가 세운다"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늘의 군대천사를 불러서 결박하여 음부에 끌어가도록 명령하는 법을 배워 그래서 실행에 옮겨서 적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고로 내게 두려움이 찾아올 때에는 두려움을 주는 영을 향하여 십자가를 세우기를 하라. 그리고 하늘의 군대천사를 불러 그 영들을 결박하여 음부에 끌어가도록 명령하라. 그러면 거짓말처럼 평안이 찾아온다. 두려움의 영이 내게서 떠나가는 것이다. 두려움은 내가 피한다고 해서 내게서 스스로 떠나지 않는다. 나를 도와주실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 적들과 십자가 세우기와 명령과 선포의 기도로 맞서 싸울 때만 그것들은 떠나간다. 그날 야곱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씨름하여 천사로부터 이긴 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오늘날 우리들도 내게 두려움을 주고 있는 영이 떠나갈 때까지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7. ‘이기는 자’의 최고 정점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세상을 이기셨는가?

  야곱의 승리는 위대한 것이지만, 그것은 사실 하나의 모형에 불과하다. 진정한 이기는 자의 원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주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포하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과연 어떻게 이기셨는가? 예수께서도 역시 자신의 힘으로 악한 영들이나 로마 군대를 제압하신 것이 아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며,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에 복종시키심으로 이기신 것이다. 또한 십자가라는 가장 큰 고통과 수치를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심으로 이긴 자가 되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다.

  고로 우리 주 예수님의 이김은 순종을 통한 정복이었다. 그래서 자기를 죽기까지 낮추심으로 지극히 높은 이름을 갖게 되셨다. 요한계시록 5장은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라고 하며,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이 인봉을 떼기에 합당한 유일한 승리자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곱을 넘어 진정한 이긴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의 십자가 승리가 내 승리가 될 때, 우리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8. 우리가 이겨야 할 최종 목적지, '아버지의 집'은 어디인가?

  그렇다면 야곱이 그토록 살아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곳은 대체 어디였는가? 가나안 땅, 그곳은 브엘세바에 있는 '아버지 이삭의 집'이었다. 고로 그가 얍복강에서 사투를 벌인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약속의 땅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이기는 자의 최종 목표는 이 땅에서의 성공이 아니다. 바로 '아버지의 집', 곧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들어갈 때에 아버지의 상속자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실 야곱이 왜 20년동안 연단을 받으며 살았는가? 그리고 이제 얍복강에서 죽도록 하나님께 매달려야 했는가? 그것은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형 에서가 죽이러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집에 가서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려 하려는데, 그것을 막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이겨야 할 대상은 모두가 각각 다른 상황이겠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우리로 하여금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모든 것들을 가리킨다. 특히 그곳에 들어갔을 때에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을 막는 모든 것들을 가리킨다. 야곱에게는 형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도 있었으며, 자기 스스로 해보려는 잔꾀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용지물이었다. 그것으로는 형 에서의 분노를 이길 수 없었고, 그것을 잠재울 수 없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잔꾀와 힘과 능력을 내려놓고 오직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 살 길이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이기는 자들의 최종 목적지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곳은 아버지의 집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혼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관계된 육적인 영적인 가족들을 함께 데리고 들어가야 한다. 자기만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기는 자가 되게 하여 그 성 안으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그래서 야곱은 결국 그 일을 해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노고를 치하하시려고, 새 예루살렘 성의 문의 이름을 각 시대마다 있었던 위대한 성인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야곱의 12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야곱의 이러한 삶은 예수께서 오셔서 실제적으로 그렇게 하였다. 예수께서도 이기는 자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자들을 이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새 예루살렘 성의 기초석에 그 이름을 새기게 했기 때문이다.

  결국 새 예루살렘 성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이기는 자들이 함께 모여서 이루어진 나라라는 뜻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죄와 싸우고, 귀신과 싸우고, 자아와 싸워 이겨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한 가지다. 그것은 천국에서 나와 내게 속한 사람들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서 상속자(Heir)들이 되어 기업을 물려받고 결국에는 왕 노릇 하기 위함이다.

 

 

9. 나오며: 야곱을 넘어 이스라엘로

 구원받아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인 우리에게도 20년간의 연단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얍복강의 시험이 있다. 그때 우리는 그 환경에서 도망치려 해서는 아니 된다. 정면 돌파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시인하고 오직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드는 것이다.  지금 내 앞에 두려움과 절망적인 상황이 놓여 있는가? 그럼, 지금이 바로 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던 '야곱'을 벗어던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승리하는 '이스라엘'로 거듭날 기회가 온 것이다. 고로 내가 하나님 안에서 진정 이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내가 지금까지 의지했던 나의 지팡이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내 몸은 주님의 붙들어주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인하라.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꾀와 경험들 그리고 우리의 자존심이 우리를 압복강에서 이기는 자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것을 내려놓고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의지했던 자신을 파쇄시키라.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만 매달리라. "주님이 축복하지 않으시면 한 발자국도 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항복하는 순간,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 하나님께서 마하나임의 군대를 보내실 것이다. 그래서 악한 영들을 제압하고 사람들까지 제압시켜놓을 것이다. 그러면 원수가 변하여 친구가 되고, 막힌 담은 무너질 평탄한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 혼자만 구원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야곱이 가족을 살려내어 12아들을 모두가 상속자가 되게 하였듯이, 우리도 내 자녀와 이웃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내 자녀와 이웃이 천국에서 상속자가 되게 하고 왕노릇하는 자가 되게 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곧 있으면 주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이다. 그날, 우리 모두는 그분 앞에 이기는 자가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2월 11일(수)

정보배 목사

 

 

[ 더 간단한 요약 ]

 

1. 들어가며

  야곱이 요단 강을 건너던 그 밤을 떠올려 본다. 어둠 속에서 홀로 남은 야곱은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가오고, 아내와 자식들은 이미 강 건너편으로 보내 버렸다. 자신만 살려고 도망치려 했던 그 마음이 이제 환도뼈를 부러뜨리는 천사의 손길로 드러난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 혼자만 살려는 그 마음으로는 이기는 자가 될 수 없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성도들이 같은 밤을 보내고 있다. 직장, 가정, 건강, 미래에 대한 절망 속에서 “나만이라도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신다.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진짜 이겨내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야곱의 밤은 단순한 한 사람의 싸움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가 반드시 지나야 하는 영적 통과의례였다. 그 밤을 통해 우리는 깨닫는다. 승리는 에서나 마귀나 세상을 이기는 데 있지 않고, 나 자신 안에 있는 이기심과 두려움과 절망을 이기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승리의 목적은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내 식구들, 나와 연결된 모든 영혼이 아버지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책의 이 장은 야곱의 밤을 따라가며, 전 세계에서 진리에 목말라하는 성도들에게 묻는다. 7가지 질문을 통해 우리 각자의 ‘요단 강 밤’을 직면하게 하고, 그 밤을 이겨내는 길을 함께 찾아간다.

 

2. 이기는 자의 표상인 야곱이 가장 먼저 이겨내야 했던 진짜 대상은 누구였는가?

  야곱은 에서를 두려워했다. 창세기 32장 11절에서 그는 간구한다.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오니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두렵나이다.” 그러나 에서가 다가오는 동안 하나님은 야곱을 에서와 싸우게 하지 않으셨다. 대신 천사를 보내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은 야곱이 에서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겨야 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야곱은 평생 ‘나만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외삼촌 라반을 속이고,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그 모든 행동의 뿌리에는 자기 사랑이 있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은 말세의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야곱의 가장 큰 적은 에서가 아니라 바로 그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기도할 때조차 “주님, 제 발등에 불 떨어지게 해 주세요”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 혼자만 살려는 그 마음을 버려라. 그것을 이겨야 이기는 자가 된다.

 

3. 에서의 400명 군대보다 더 무서운 적은 무엇이었는가?

   야곱은 400명의 군대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의 마음속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영적 실체다. 요한일서 4장 18절은 분명히 말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나니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필자가 목회 30년 동안 수많은 성도를 만나 보았다. 두려움의 영이 가장 강하게 역사하는 순간은 회개가 깊어질 때였다. 회개 250번에서 500번 사이에 극심한 두려움이 밀려와 “죽을 것 같다”는 고백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귀신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필자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죽을 것 같아도 죽지 않습니다. 응급실 가면 살아납니다. 그러니 회개 계속하세요.”

  두려움은 이기는 자의 길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아무리 큰 믿음을 가졌다 한들 아버지 집 문턱을 넘지 못한다.

 

4. ‘나만 살려고 하는 이기심’이야말로 우리가 이겨내야 할 가장 깊은 죄의 뿌리인가?

  야곱은 가족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았다. 그것은 “나만이라도 살아야지”라는 이기심의 극치였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환도뼈를 부러뜨려 도망칠 길을 막으신 것이다. “너 혼자 사는 것은 내 뜻이 아니다. 너와 네 식구가 다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서 바울은 간수에게 말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결코 개인 구원만 원하지 않으신다. 나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모든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이기는 자의 길이다.

 

5.  완전한 절망의 바닥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아 승리할 수 있는가?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그제야 그는 천사를 붙잡았다.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놓지 않겠나이다.” (창 32:26) 절망의 바닥에서야 비로소 진짜 믿음이 나온다.

  필자 역시 회개 사역 중에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 교통사고 직전의 위기, 밤새워 기도하다 쓰러질 듯한 고통. 그러나 그때마다 붙잡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창세기 28장 15절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절망의 바닥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6.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겨내야 할 ‘아버지 집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야곱의 궁극적 목적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에서의 공격, 두려움, 이기심은 모두 그 길을 막는 장애물이었다. 오늘날에도 같다.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이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을 보라. 생명나무 열매, 둘째 사망에 해 받지 않음,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감. 반대로 이기지 못하면 성 밖으로 나간다. 우리의 모든 싸움은 결국 천국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7. 나 혼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영적 식구들까지 이기는 자로 만드는 것이 왜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인가?

  야곱은 12아들을 낳았고, 그들을 기업의 상속자로 세웠다. 그의 위대함은 자기만 약속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식들까지 기업의 상속자로 만드는 데 있었다. 창세기 49장에서 침상에서 지팡이 의지하며 12지파를 축복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주의의 나라가 아니다. 한 사람이 이기는 자가 되면 그 열매로 많은 사람을 이기는 자로 만든다. 이것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이유요,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세우신 이유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

 

8. 오늘날 신약 성도로서 우리가 반드시 이겨내야 할 대상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

  구약에서는 귀신을 쫓아내라는 명령이 없었다. 그러나 신약에 들어오면서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마 4장), 그때부터 귀신을 쫓아내셨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은 말한다. “그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그를 이겼느니라.”라고 말이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기는 자가 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무기들은 무엇인가? 그것에는 ① 어린 양의 피 ② 증거하는 말(회개와 고백) ③ 끝까지 붙잡는 믿음이다. 두려움, 이기심, 자아, 절망, 귀신의 모든 공격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뿐이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지 않았는가!

 

9. 나오며

  야곱은 그 밤을 극복하였다. 환도뼈가 부러졌지만,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곳에 있는 한 천사를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은 곧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이다.

  오늘 우리의 요단 강 밤이 혹시 오고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라. 환도뼈가 부러지는 듯한 절망이 오더라도, 그곳에서 우리는 이미 약속하신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주님을 놓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기억하라. 이 모든 싸움은 우리 혼자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다. 우리과 우리의 식구들, 우리의 구역 식구들, 우리의 영적 자녀들이 다 아버지 집에 들어가기 위한 싸움이다. 고로 모든 상황을 극복해내는 자가 되라. 그리고 많은 이기는 자를 낳는 자들이 되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두신 이유요, 우리가 살아야 할 유일한 이유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모두가 야곱처럼 환도뼈가 부러지는 밤을 지나 이스라엘처럼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요약]

이 설교는 신앙인이 이기는 자로 거듭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본질적인 대상이 무엇인지를 성경 속 야곱의 사례와 신약의 가르침을 통해 탐구합니다. 이 설교는 승리를 단순히 힘의 논리가 아닌 절망적인 상황과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이겨내는 과정으로 정의하며, 궁극적으로는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여 상속자가 되는 것을 신앙의 최종 목표로 제시합니다. 특히 신약 시대에는 우리 안에 거하는 귀신과 마귀의 방해를 회개로 물리쳐야 하며, 나 혼자만의 구원을 넘어 가족과 공동체 전체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책임감을 가질 때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두려움을 주는 영적 공격과 이기적인 자아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끈기 있는 믿음으로 극복하여 영원한 기업을 얻을 것을 촉구하는 영적 지침서 역할을 합니다.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아침묵상 #설교 #기독론 #창세기 #야곱 #이기는자 #영적전쟁 #자기자신과의싸움 #이기심 #두려움극복 #회개 #믿음 #기도 #아버지집 #천국 #가족구원 #새예루살렘 #이스라엘

 

 

 

unnamed (22).png.webp

 

unnamed (23).png.webp

 

unnamed (24).png.webp

 

unnamed (25).png.webp

 

unnamed (26).png.webp

 

unnamed (27).png.webp

 

unnamed (28).png.webp

 

unnamed (29).png.webp

 

unnamed (30).png.webp

 

unnamed (31).png.webp

 

unnamed (32).png.webp

 

unnamed (33).png.webp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동영상URL
2243 [기독론(23)] 유다와 요셉은 어떻게 이기는 자의 꽃과 열매가 될 수 있었는가?(창49:8~12, 22~26)_2026-02-12(목) updatefile 갈렙 2026.02.12 26 https://youtu.be/sw07P0kduc8
» [기독론(22)]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이겨내야 할 대상은 대체 무엇인가?(창32:13~32)_2026-02-11(수) file 갈렙 2026.02.11 62 https://youtu.be/QLlOulKTCoY
2241 [요한복음강해(38)]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요19:17~42)_2026-02-10(화) file 갈렙 2026.02.10 66 https://youtu.be/5rB15kQDOi4
2240 [기독론(21)] 야곱에게서 배우는 ‘이기는 자’에 대한 정의는?(창32:1~12)_2026-02-09(월) file 갈렙 2026.02.09 118 https://youtu.be/e_22aiDaUiY
2239 [기독론(19)] 야곱에게 나타난 성령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와 성령 하나님의 사역(요14:16~19)_2026-02-06(금) file 갈렙 2026.02.06 123 https://youtu.be/IcDhDiESaFA
2238 [기독론(18)] 야곱의 생애에 나타난 한 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마22:29~32)_2026-02-05(목) file 갈렙 2026.02.05 112 https://youtu.be/oYR7T1OGmU8
2237 [기독론(17)]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으로서의 이삭의 생애(03)(창22:9~19)_2026-02-04(수) file 갈렙 2026.02.04 121 https://youtu.be/DfF3BcZoBF0
2236 [기독론(16)]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으로서의 이삭의 생애(02)(창21:1~13)_2026-02-03(화) file 갈렙 2026.02.03 143 https://youtu.be/APdJm9ZBzDg
2235 [기독론(15)]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으로서의 이삭의 생애(01)(창21:1~13)_2026-02-02(월) file 갈렙 2026.02.02 146 https://youtu.be/PQ9O451Y9YU
2234 [기독론(13)]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대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충격적인 예표는?(창18:1~15)_2026-01-30(금) file 갈렙 2026.01.31 197 https://youtu.be/QaSUmKsLnL0
2233 [기독론(12)] 노아의 홍수 심판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는 무엇이었는가?(창6:13~22)_2026-01-29(목) file 갈렙 2026.01.29 167 https://youtu.be/u7kQJ9tC9bs
2232 [기독론(11)] 여자의 씨(제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최초의 약속은?(창3:9~16)_2026-01-28(수) file 갈렙 2026.01.29 173 https://youtu.be/cgEGtg-ksDg
2231 [방언통역(03)] 방언통역을 하려고 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들 5가지(02)(고전 14:12~18)_2026-01-27(화) file 갈렙 2026.01.27 156 https://youtu.be/B2YzNhNP9vQ
2230 [방언통역(02)] 방언통역을 하려고 할 때 주의해야할 사항들 5가지(01)(고전 14:12~18)_2026-01-26(월) file 갈렙 2026.01.27 167 https://youtu.be/GizonuTRWb0
2229 [기독론(10)]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면 가능한 일은 무엇인가?(창1:26~28)_2026-01-23(금) file 갈렙 2026.01.24 161 https://youtu.be/VRrhXHiKVLk
2228 [기독론(09)]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것의 의미와 그 어마어마한 활용(창1:26~27)_2026-01-22(목) file 갈렙 2026.01.22 196 https://youtu.be/SouzHRBryVY
2227 [기독론(08)]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이 자칫 삼신론 신앙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려면?(사9:6~7)_2026-01-21(수) file 갈렙 2026.01.21 248 https://youtu.be/ROWbBUOJxls
2226 [기독론(07)] 한 분 하나님 신앙과 양태론 이단은 어떻게 다른가?(02)(열왕기하 19:15~19)_2026-01-20(화) file 갈렙 2026.01.20 247 https://youtu.be/wtk4ytaEY7U
2225 [기독론(06)] 한 분 하나님 신앙과 양태론 이단은 어떻게 다른가?(01)(창2:1~9)_2026-01-19(월) file 갈렙 2026.01.19 498 https://youtu.be/GXQ4VPjxu3U
2224 [기독론(03)]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3)(창1:1~3,26~28)_2026-01-16(금) file 갈렙 2026.01.16 590 https://youtu.be/sUfpe5Q7u2I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3 Next
/ 113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