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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e_22aiDaUiY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21)] 야곱에게서 배우는 ‘이기는 자’에 대한 정의는?(창32:1~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e_22aiDaUiY

 

 

1. 들어가며: 흙에서 하늘로, 야곱이 걸어간 길

  인생은 흔히 나그네 길에 비유된다. 그중에서도 야곱의 생애는 우리 모든 인간이 걸어가는 영적 여정의 거울과도 같다. 흙에 속한 자로 태어나 하늘에 속한 자로 바뀌어가는 과정, 육체에 갇혔던 영혼이 성령을 통해 자유를 얻고 마침내 영원한 나라의 상속자로 인침 받는 그 드라마틱한 서사가 야곱의 발자취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많은 이들이 야곱을 그저 '복을 탐냈던 교활한 사기꾼' 정도로 기억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단순히 개과천선한 인격자로 만드시는 데 목적을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야곱을 이기는 자(Overcomer), 즉 이스라엘로 빚어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성품의 변화를 넘어선 영적 지위의 획득이며, 천국 보좌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고귀한 사역이다.

  필자는 지난 30년의 목회 여정 동안 나의 삶이 야곱과 참으로 닮아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적인 꾀로 목회의 성공을 꿈꿨던 시절부터, 환도뼈가 꺾이는 것 같은 육체적·영적 고통의 밤을 지나, 비로소 하나님의 주권 앞에 무릎 꿇기까지의 과정이 야곱의 얍복강 씨름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32장의 사건을 통해, 이 시대 우리에게 요구되는 '이기는 자'의 참된 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영광이 어떠한 것인지를 성경의 깊은 샘에서 길어 올리고자 한다.

 

 

 

2. 성경이 말하는 ‘이기는 자(Overcomer)’의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가?

  우리는 보통 '이겼다'라는 말을 들으면 상대방을 힘으로 제압하거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이기는 자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요한계시록에 17번이나 등장하는 '니카오(Nikao)'라는 단어는 단순히 물리적인 승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극한의 상황과 자기 내면의 한계를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함으로 극복해낸 상태를 의미한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하나님을 힘으로 눌렀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았던 지팡이(인간적 수단)와 기름병(인간적 지혜)이 더 이상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절망의 순간에,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잡고 늘어졌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고백은 항복 선언인 동시에 가장 강력한 승리의 선포였다.

  진정한 승리자는 자신의 무능을 철저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자신을 투항시킨 사람이다. 이기는 자란,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인 '아버지의 집'에 기어코 도달하는 자를 말한다. 상황을 역전시키는 힘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고 내 안의 주님이 사심을 확신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권세다. 따라서 이기는 자는 곧 항복하는 자이며, 극복하는 자(Prevailer)라고 정의할 수 있다.

 

 

 

3. 왜 ‘이기는 자’라는 칭호는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되는가?

  영적 세계에는 수많은 존재가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천사를 향해 '이기는 자'라고 칭한 대목은 없다. 하나님 역시 스스로를 이기는 자라고 부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승리자이시며, 천사들은 그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AI 로봇과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직 육체를 입고 한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만이 '이기는 자'라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

  천사는 감정이 없으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명령을 받으면 그 분량대로만 움직일 뿐, 상황을 판단하여 의지적으로 극복해내는 주도성이 없다. 반면 인간은 끊임없는 육체의 유혹과 사탄의 공격, 그리고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 고뇌한다. 그 척박한 현실 속에서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자신의 자아를 꺾어 순종의 자리에 이르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승리다.

야곱은 96세의 노구로 얍복강에서 사투를 벌였다. 그에게는 늙고 지친 육체가 있었고, 형 에사오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실존적 두려움을 기도로 돌파해 냈다. 이처럼 이기는 자의 권세는 오직 인간이었던 자들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이 무거운 이유는, 우리를 천사보다 높은 보좌에 앉히기 위한 하나님의 정교한 훈련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4. ‘이기는 자’의 최고 정점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세상을 이기셨는가?

  요한계시록 5장 5절은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라고 선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이기는 자의 원형이자 정점이시다. 주목할 점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이기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인간으로서 이기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인성(Humanity)의 자아를 신성(Divinity)의 뜻에 완전히 복종시키는 사투였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참혹한 형틀 앞에서도 12군단 더 되는 천사를 부르는 권세를 스스로 포기하셨다.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사탄의 머리를 짓밟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방식이다.

  예수님이 이기셨기에 그분을 믿는 우리도 이길 수 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너희도 이기면 내 보좌에 앉혀주리라"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델을 바라보며, 우리도 날마다 내 안의 정욕과 두려움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5. 얍복강에서 환도뼈(골반뼈)가 어긋난 사건이 상징하는 영적 파쇄의 의미는 무엇인가?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강력했던 것은 그의 '꾀'와 '끈기'였다. 그는 빈손으로 하란에 가서 거부가 되어 돌아온 자수성가형 인간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얍복강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가장 강한 부분인 환도뼈의 우묵히 패인 곳(허벅지 관절)를 치셨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이것은 골반뼈가 틀어져 탈골된 상태를 뜻한다.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완전한 무력함의 상태로 밀어 넣으신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 인생의 자아 파쇄(Brokenness)를 상징한다. 내가 의지했던 학위, 인맥, 재능, 그리고 나를 지탱해주던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나는 동탄에 처음 개척을 나왔을 때, 나의 교육학적 지식과 가르치는 은사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2년 만에 모든 재정을 탕진하고 성도들이 흩어지는 처참한 실패를 겪었다. 내 인생의 환도뼈가 부러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부러진 자리에서 비로소 '회개'의 문이 열렸고, 내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환도뼈를 치시는 이유는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붙들고 있는 '인간의 지팡이'를 내려놓게 하기 위함이다. 다리를 저며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하는 야곱이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었다. 파쇄는 축복으로 가는 필수 통문이며, 이기는 자로 거듭나기 위한 거룩한 진통이다.

 

 

 

6.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은 어떤 자의 삶에 동원되는가?

  야곱이 얍복강에서 항복했을 때, 하나님은 즉시 하늘의 군대를 움직이셨다. 야곱은 이미 길을 떠날 때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았고 그곳을 마하나임(Mahanaim), 즉 '두 무리의 군대'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군대는 야곱이 자신의 자아를 신뢰하고 있을 때는 단지 구경꾼에 불과했다. 야곱이 환도뼈가 꺾여 비명을 지르며 엎드렸을 때, 비로소 그 군대는 출동했다.

  외경 야살의 책에 따르면, 에사오가 야곱을 죽이려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올 때 정체불명의 강력한 거인 군대를 만나 혼비백산했다고 전한다. 그들은 "우리는 야곱의 종들이다"라고 외치며 에사오의 마음을 공포로 사로잡았다. 결국 동생을 죽이려던 에사오의 살기는 봄눈 녹듯 사라졌고, 야곱을 보는 순간 목을 안고 통곡하는 화해의 역사가 일어났다.

  영적 전쟁의 비결은 여기 있다. 내가 직접 칼을 들고 싸우면 하늘의 군대는 휴가를 가지만, 내가 기도의 무릎을 꿇고 주권을 이양하면 하나님은 마하나임의 천사들을 급파하신다.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보상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영적 청구권이다.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장깨를 굴리고 있는가? 아니면 얍복강의 씨름을 통해 마하나임의 호위를 요청하고 있는가? 이기는 자는 하늘의 군대를 다스리는 권세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7. ‘이기는 자’가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 ‘아버지의 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야곱의 20년 타향살이의 유일한 동력은 "내가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그가 얍복강을 건너려 했던 이유도 결국 브엘세바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이기는 자의 승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그 목적지가 어디냐에 달려 있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했어도 지옥으로 향한다면 그것은 가장 처참한 패배자일 뿐이다.

  이기는 자의 최종 목적지는 새 예루살렘 성, 즉 하늘 아버지의 보좌 앞이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주신 약속들을 보라.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으며, 만나와 흰 돌을 받고,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는 그 모든 보상은 오직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입성한 자들에게만 해당한다.

  우리는 이 땅의 성공에 취해 천국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야곱이 벧엘의 첫 사랑을 기억하며 다시 그곳으로 올라갔듯이, 우리도 신앙의 본질인 천국 소망을 회복해야 한다. 이기는 자란 단순히 고난을 잘 참아낸 사람이 아니라, 어떤 유혹 속에서도 '아버지의 집'을 향한 방향타를 놓치지 않은 사람이다. 당신의 시선이 지금 저 영원한 세상을 향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이기는 자의 길에 들어선 승리자다.

 

 

 

8. 우리는 어떻게 나 자신을 넘어 다음 세대를 ‘이기는 자’로 세울 것인가?

  야곱이 얍복강에서 사투를 벌인 이유는 단지 자기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내 자식들, 내 식솔들을 어찌합니까"라며 중보했다. 그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환도뼈를 내주었다. 이 헌신의 결과로 그는 훗날 애굽에서 12아들 모두를 하나님의 상속자로 축복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새 예루살렘의 12대문 위에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이 새겨진 이유는, 야곱이 이룩한 승리가 가문의 승리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사명도 이와 같다. 나 혼자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는 결코 성숙한 '이기는 자'라 할 수 없다. 내 자녀를, 내 남편을, 내가 섬기는 양들을 '이기는 자'로 길러내야 한다. 야곱이 죽음의 문턱에서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12아들에게 기업을 분배했듯이,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음 세대에게 영적 유업을 물려주는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이기는 자 한 사람이 나오면 그 가문이 산다. 당신이 얍복강의 씨름꾼이 되어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얻을 때, 당신의 자녀들은 천국 성문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2026년, 이제는 나의 안위를 위한 기도를 넘어 영적 자손을 산출하는 생산적인 이기는 자가 되라. 당신을 통해 누군가가 천국의 문을 통과하게 될 때, 주님은 당신을 향해 "참으로 내 아들이요, 이기는 자로다"라고 칭찬하실 것이다.

 

 

 

9. 나오며: 이스라엘의 유전자를 깨우라

이번 시간에 우리는 야곱의 생애를 통해 '이기는 자'의 참된 실체를 목격했다. 이기는 자는 강한 자가 아니라 부서진 자이며, 똑똑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만을 고집스럽게 붙잡는 자다. 당신의 환도뼈가 부러졌는가? 당신의 자아가 짓밟히는 고통 속에 있는가? 기뻐하라. 바로 그 자리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을 영광의 현장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은 우리를 속이고 라반처럼 우리의 노력을 갈취할지 모르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마하나임의 군대를 예비하고 계신다. 흙에 속한 야곱의 성품을 벗어버리고, 성령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의 권세를 회복하라.

  참으로 이 시대는 참된 이기는 자를 갈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듯이, 우리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마침내 저 황금 성 예루살렘의 진주문을 당당히 통과하자. 당신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이기는 자의 간증으로 가득 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2026년 2월 9일(화)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이 설교는 야곱의 생애를 통해 진정한 '이기는 자'란 단순히 힘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적인 꾀와 능력을 포기하고 고난의 상황을 극복해 내는 자라고 정의합니다. 이 설교는 천사와 씨름하며 환도뼈가 어긋난 야곱의 사건을 자기 부인의 과정으로 설명하며, 인간의 육체적 수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만이 유일한 승리의 근거가 됨을 강조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이기는 자의 원형이자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함을 설파하며, 신자들 또한 첫사랑을 회복하고 끝까지 인내하여 천국 보좌에 참여하는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오직 주의 동행하심을 의지하는 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핵심 열쇠임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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