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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10. (목)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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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0YyG0bFep3Q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89)]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0)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4)(단9:20~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0YyG0bFep3Q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7가지 질문들]

  1. 다니엘의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할 세 가지 기준은 무엇인가?
  2. 기름부음 받은 자는 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가?
  3.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는 왜 연속된 69이레로 보아야 하는가?
  4. 70년과 70이레는 안식년의 비밀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5. 안식년은 땅의 주권과 모든 피조물의 안식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6. 면제년은 빚과 종의 속박에서 어떤 자유를 선포하는가?
  7. 예수께서는 어떻게 희년을 성취하여 기업과 가족을 회복하시는가?

 

기독론(189)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0)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4)

(단 9:20-27)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다니엘서 9장의 70이레(七十週, seventy weeks)는 신구약 성경 가운데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예언들 가운데 하나다. 이 본문을 두고 비평적 해석, 무천년적 해석, 세대주의적 해석, 안식교적 해석, 연대기적 해석을 비롯한 여러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필자가 살펴본 것만 해도 적어도 일곱 가지에 이른다. 저마다 성경의 한 대목이나 역사적 연대를 근거로 삼고 있으므로 어느 하나를 고르는 일도 간단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70이레를 해석해야 하는가? 필자의 해석이 100퍼센트 옳다고 독단할 수는 없다. 앞으로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받는 종이 나타나 더 정확히 밝혀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주어진 계시와 성경 전체를 종합하면 분명히 붙들어야 할 기준들이  몇 가지 있다. 그 기준을 따라가면 70이레가 단지 포로 귀환의 연대를 계산하는 예언이 아니라, 인류를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건져 내시는 그리스도의 구원(救援, salvation)을 보여 주는 예언임이 드러난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읽다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끝날 것을 깨달았다(단 9:2). 그는 남은 기간을 계산하는 데 머물지 않고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쓴 채 자기와 자기 민족의 죄를 회개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여 단순한 70년을 넘어 70이레의 원대한 계획을 보여 주셨다. 이러한 70이레의 계획은 다니엘의 백성과 거룩한 성을 향하지만, 그 성취는 혈통적 이스라엘의 정치적 해방에 머물지 않는다.

  온 우주의 역사와 각 나라의 역사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역사의 흐름을 구경만 하지 않고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구한다. 다니엘이 조상의 죄를 남의 죄처럼 말하지 않고 자기와 자기 백성의 죄로 끌어안았듯이, 우리도 대한민국과 민족을 위하여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받으면 하늘의 상이 있지만, 끝까지 불순종하면 약속의 땅이 주민을 토해 내고 백성이 포로가 되었던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

  70이레의 중심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있다. 그는 허물을 그치게 하고 죄를 끝내며 죄악을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드러낸다. 또한 환상과 예언을 봉인하고 지극히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붓는다(단 9:24). 이런 일은 고레스나 느헤미야 같은 인간 지도자가 완전하게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루실 수 있다.

  또한 70이라는 수에는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비밀이 담겨 있다. 땅을 쉬게 하고, 빚을 탕감하고, 종을 풀어 주며, 잃었던 기업과 가족을 회복시키는 것이 이 세 규례의 흐름이다. 예수께서는 초림으로 이 자유를 시작하셨고 재림으로 영원한 희년을 완성하실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니엘의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할 세 가지 기준과 기름부음 받은 자의 정체, 69이레의 연속성, 그리고 안식년·면제년·희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니엘의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할 세 가지 기준은 무엇인가?

  70이레를 바르게 해석하려면 세 가지 기준 정도를 붙들어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基督中心的解釋, Christ-centered interpretation)을 해야 한다(요 5:39, 눅 24:44). 다니엘서의 환상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제국과 그 나라들을 심판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그리스도가 함께 등장한다. 제2장에서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돌이 신상을 치고, 제7장에서는 인자 같은 이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받는다(단 2:34-35, 44-45; 7:13-14). 그러므로 제9장의 기름부음 받은 자도 같은 흐름에서 읽어야 한다.

  둘째, 70이라는 숫자가 성경 전체에서 무엇을 가리키는지 살펴야 한다. 다니엘이 처음 깨달은 기간은 70년이고, 가브리엘이 알려 준 기간은 70이레다. 70은 7에 10을 곱한 수이며, 70이레는 다시 70에 7을 곱한 기간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7은 단순한 계산 단위가 아니다(대하 36:21). 이스라엘이 지키지 않은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 빚과 종을 풀어 주는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 일곱 안식년 뒤에 오는 희년(禧年, Jubilee)을 가리키는 열쇠다.

  셋째,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를 한 흐름으로 읽어야 한다. 70이레는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와 한 이레로 구성된다(단 9:25-27). 앞의 69이레가 끝난 뒤 정해지지 않은 긴 교회 시대를 집어넣고 마지막 한 이레만 종말로 떼어 내면 예언의 연속성이 무너진다. 그러면 마지막 한 이레의 ‘그’를 적그리스도로 돌리면서 7년 평화협정과 7년 대환난을 구성하는 해석도 나오게 된다. 그러나 본문의 흐름을 따르면 그 인물은 앞에서 말한 기름부음 받은 자이며, 그가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하고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다고 해석함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 세 기준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읽을 때 70이라는 수가 자유와 해방의 시간임을 알게 되고,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와 한 이레도 초림하신 그리스도의 사역 안에서 이어진다. 반대로 연대만 맞추거나 한 단어만 떼어 읽으면 고레스, 느헤미야, 적그리스도 등 서로 다른 인물이 중심에 들어오고 본래 예언의 목적이 흐려진다.

  성경의 계시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보아야 한다. 한 구절의 문법과 역사적 배경을 면밀히 살피되, 그 해석이 다니엘서 전체에서 반복되는 그리스도와 대적 세력의 대조에 맞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또한 초림으로 이미 이루어진 것과 재림 때 완성될 것을 구별해야 한다. 초림하신 주님은 십자가로 죄와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셨고, 재림하실 주님은 대적하는 세력을 심판하여 영원한 나라를 드러내신다. 이 큰 흐름 안에 들어올 때 부분적인 연대와 상징도 제자리를 찾는다.

  다니엘서 9장 24절이 이 세 기준의 출발점이다. 70이레가 정해진 목적은 정치 체제의 교체가 아니라 죄 문제의 해결이다. 허물이 그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야 한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반드시 속죄(贖罪, atonement)를 이루실 그리스도에게로 향해야 한다.

단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3.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가?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受膏者, anointed one)를 해석할 때 고레스나 느헤미야를 생각할 수 있는 역사적 이유는 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내 목자’라고 부르시며 예루살렘을 중건하고 성전의 기초를 놓게 할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를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부르셨다(사 44:28-45:1). 그래서 고레스는 포로 된 백성을 돌아가게 했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을 이끌었다. 두 사람 모두 그리스도의 사역 일부를 예표하고 있다.

  그러나 예표와 실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고레스는 바벨론 포로에게 정치적 자유를 주었으나 인류의 죄를 없애지 못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세웠으나 영원한 의를 가져오지 못했다. 다니엘서 9장 24절이 말한 여섯 가지 일, 곧 허물을 그치게 하고 죄를 끝내며 죄악을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드러내며 환상과 예언을 봉인하고 지극히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붓는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 이 일을 이루신다. 주님은 로마 제국을 무너뜨려 유대 민족에게 정치적 독립을 주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빌라도 앞에서도 자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8:36).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여겨 주님을 배척했지만, 병들고 귀신 들리고 소외된 자들은 주님에게 나아와 자유를 얻었다. 주님은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예루살렘을 품으려 하셨으나 그들은 원하지 않았다(마 23:37).

  그들이 메시아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혈통의 장벽을 허무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베풀며 자신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마 28:19-20).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며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다(롬 2:28-29). 또한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다(갈 3:29). 그러므로 70이레의 성취는 혈통적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킨다(단 9:26). 주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심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고, 공생애를 사신 뒤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셨다(마 3:16-17). 그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단번에 드린 완전한 제사였다. 주님은 자신의 피로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을 세우고 더 이상 짐승의 희생 제사가 필요하지 않게 하셨다(히 9:12; 10:10-14).

  마지막 한 이레에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한다는 말씀도 이와 연결된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잔을 주시며 이것이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언약을 세우는 ‘그’를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읽는 것이 그리스도 중심적인 흐름에 맞는다.

막 14: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4.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는 왜 연속된 69이레로 보아야 하는가?

  다니엘서 9장 25절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말씀이 나간 때부터 기름부음받은 자 곧 왕(나기도=지도자)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일곱 이레 뒤에 문장부호를 둘 것인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를 합하여 69이레로 읽을 것인지에 있다. 이 차이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느헤미야로 볼 것인지 예수 그리스도로 볼 것인지가 갈라진다.

  오늘날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대표 본문은 맛소라 본문(Masoretic Text)이다. 고대 히브리어는 본래 자음 중심으로 기록되었고 오늘날과 같은 마침표와 쉼표도 없었다. A.D.6세기경 후대의 맛소라 학자들은 독자들이 읽고 해석하도록 모음 부호와 악센트 부호를 더했다. 다니엘서 9장 25절의 일곱 이레 뒤에 놓인 아트나흐도 그런 후대의 구분 부호다. 그것을 따르면 일곱 이레에 기름부음을 받은 지도자가 나타나고 그 뒤 예순두 이레 동안 성읍이 건축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맛소라 본문은 귀중하며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 부호가 처음 계시가 기록될 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후대 부호 하나가 문장의 의미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고 볼 수는 없다. 더구나 그 구분으로는 다니엘서 9장 24절에서 선언한 완전한 죄의 해결을 느헤미야와 연결하기 어렵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의 지도자였지만 죄를 끝내고 영원한 의를 드러낼 메시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칠십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B.C.2세기경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은 고대 번역본으로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성경을 인용할 때 널리 사용한 본문이다. 그런데 이 번역의 흐름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를 합하여 읽도록 이끈다. 우리말 개역개정도 두 기간을 연결하여 기름부음 받은 자가 나타나기까지 모두 69이레가 지나는 것으로 번역한다.

단 9: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이렇게 읽으면 69이레 뒤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나고, 이어 그가 끊어지는 사건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단 9:26). 그리고 마지막 한 이레 동안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하며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다는 말씀도 예수님의 공생애와 십자가의 속죄로 이어진다(단 9:27). ‘그치게 한다’는 말은 단순히 제사를 폭력으로 금지한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한 제사를 드려 옛 제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한다는 의미로 풀린다.

  그리고 예루살렘 중건 명령의 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연대 계산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그 가운데 69이레를 해로 계산하여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출현을 주후 27년 무렵과 연결하는 해석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때와 맞물린다. 이어 한 이레의 절반인 약 삼 년 반 뒤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끊어지셨다고 본다. 연대 하나만으로 모든 해석을 확정할 수는 없지만, 이 계산은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가 초림하신 그리스도의 사역 안에서 연속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세대주의적 해석은 69이레 뒤에 긴 교회 시대라는 간격을 넣고 마지막 한 이레를 종말의 7년으로 옮기는 해석이다. 그때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가 3년 반 뒤에 제사를 금지한다고 본다. 그러나 본문은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그러한 간격을 명시하지 않는다. 70이레를 한 덩어리의 연속된 하나님의 계획으로 읽을 때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출현, 언약 체결, 죽음, 제사의 완성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관되게 연결된다.

5. 70년과 70이레는 안식년의 비밀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다니엘이 70이레의 환상을 받게 된 출발점은 언제였는가? 그때는 메대왕 다리오 원년이었다. 그런데 그때 다니엘은 예레미야가 이미 예언했던 바,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거기서 70년을 지낼 것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다니엘은 메대 사람 다리오의 통치 원년에 예레미야의 책을 통하여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그칠 것을 깨달았다(단 9:1-2; 렘 25:11-12; 29:10).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70년의 정확한 종료 시점만 그에게 설명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70이레라는 더 크고 긴 구속의 계획을 보여 주셨다.

  그렇다면, 70년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의 비밀은 역대하가 밝혀 준다. 역대하의 기록은 이렇게 말한다(댛 36:21). 갈대아 왕이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파괴하고 살아남은 자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그들이 떠난 뒤 황폐해진 땅은 비로소 안식년을 누리며 70년 동안 쉬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지키지 않았던 안식을 하나님께서 강제로 되찾으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그러므로 당시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간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함께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땅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의 죄악으로 땅이 더러워져 그 주민을 토해 냈다고 말씀하셨고, 이스라엘에게도 같은 죄를 범하면 땅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이다(레 18:24-30). 다른 하나는 안식년을 지키지 않아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땅을 자기 소유처럼 붙들고 한 번도 쉬게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70은 형벌의 숫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충분히 갚게 하시는 수이며, 자유와 해방을 완전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시간이다. 70이레는 70에 다시 7을 곱한 것으로써, 안식년의 10배의 기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와 속박을 이제는 완전하게 끝내시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처럼 연대 계산도 중요하지만 그 숫자 안에 담긴 구속의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7은 이 땅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를 보여 주는 수로 사용된다. 70은 7을 열 번 채운 수이고, 70이레는 거기에 다시 7을 곱한 수다. 그러므로 490년이라는 기간은 인간이 만든 우연한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충분하고 완전한 때를 통하여 구원의 경륜을 이루신다는 표지다. 하나님은 이 기간의 중심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죽음과 속죄를 두셨다.

  이 비밀은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에서도 풀어진다. 어느날이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하셨다. 여기에도 일곱과 일흔이 결합된다. 70이레의 정신은 정죄와 보복이 아니라 죄를 용서하고 속박에서 풀어 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가 셀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완전한 용서를 베풀라고 하신 것이다.

마 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70년은 불순종한 백성이 땅에서 쫓겨난 기간이지만, 70이레는 그들을 다시 불러 죄를 없애고 영원한 의를 주시는 계획이다. 그 중심에는 안식을 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러므로 70이레는 유대 민족의 포로 귀환을 넘어 온 인류를 마귀의 포로 상태에서 해방시키는 메시아의 사역을 가리킨다.

6. 안식년은 땅의 주권과 모든 피조물의 안식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이스라엘에게 안식년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육 년 동안 농사한 뒤 일곱째 해에 땅을 쉬게 하는 규례다. 그해에는 밭에 씨를 뿌리지 않고 포도원을 가지치지 않으며, 저절로 난 소출도 자기만의 것으로 거두어들이지 말아야 했다(레 25:1-5). 이는 농사 기술에 관한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고백하는 신앙 행위다.

레 25: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사람은 육 년 동안 자기 땅에서 수고하고 열매를 거두다 보면 그것이 영원히 자기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해에 손을 멈추게 하심으로 “그 땅은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안식년의 소출은 땅 주인만 먹는 것이 아니었다.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거류민이 함께 먹을 수 있었고, 심지어 가축과 들짐승도 먹을 수 있었다(레 25:6-7). 그 해는 주인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먹는 여러 존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 규례는 하나님의 안식이 이스라엘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종과 품꾼과 이방 나그네뿐 아니라 가축과 들짐승까지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롬 8:19-21). 사람의 범죄로 피조세계가 함께 탄식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온전히 나타날 때 피조물도 자유를 누린다.

  안식일에 열여덟 해 동안 허리가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던 여인을 고치신 사건도 이 원리를 보여 준다.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분노했지만, 예수께서는 사탄에게 매인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그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셨다(눅 13:16). 안식일은 사람을 규례로 더 묶는 날이 아니라 사탄의 결박에서 풀어 주는 날이다.

눅 13: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이 안식의 원리는 사람의 몸에도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창 2:7). 사람의 육체라는 땅에 악한 영이 들어와 주인 노릇하며 질병과 고통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침범하는 일이다. 필자가 영적 사역을 통하여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악한 영은 죄를 근거로 사람 안에 들어와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悔改, repentance)하여 그 근거를 제거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쫓아내야 한다.

  축사(逐邪, deliverance)는 내 몸이 귀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하고 주님의 소유권을 회복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빼앗긴 인간을 되찾아 참된 안식을 주러 오셨다(마 11:28-30).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정죄해서는 안 된다. 고통받는 사람을 사탄의 매임에서 풀어 주는 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시작하신 사역을 오늘도 이어 가는 일이다.

7. 면제년은 빚과 종의 속박에서 어떤 자유를 선포하는가?

  그런데 70이라는 숫자에는 7년의 안식년 뿐만 아니라, 7년의 면제년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안식년이 땅을 쉬게 하여 하나님의 소유권을 드러낸 것이었다고 한다면, 면제년은 빚진 자와 종 된 자를 풀어 주어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신명기 15장은 매 칠 년 끝에 면제를 선포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이웃과 형제에게 꾸어 준 채무를 독촉하지 말고 탕감해 주어야 했다(신 15:1-3). 이는 빚 때문에 자유를 잃은 사람을 계속 붙들어 두지 말라는 것이다.

신 15:1-2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 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그리고 면제년은 형제였지만 종의 신분으로 일하고 있는 자에게도 적용되었다.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가난 때문에 종으로 팔려 와 육 년 동안 섬겼으면 일곱째 해에 자유롭게 놓아주라고 했다. 이때는 빈손으로 내보내지도 말고 양 무리와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에서 후히 주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신 15:12-15). 이는 주인이 종을 자기 재산처럼 영원히 붙잡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기한을 정해 놓으신 것이다.

  고로 안식년과 면제년은 모두 칠 년을 단위로 하지만 다른 측면이 있다. 시작점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안식년은 공동체 전체에 정해진 해가 돌아오면 온 땅이 함께 쉬는 규례다. 그러나 면제년의 정신은 어떤 사람이 빚을 지거나 종으로 팔려 온 때부터 육 년을 섬긴 뒤 일곱째 해에 그를 풀어 주는 데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놓임을 받는 시점은 다를 수 있지만, 자유를 주라는 하나님의 뜻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면제년 규례의 영적 의미는 분명하다. 마귀는 죄를 통하여 사람을 빚진 자와 종으로 만들고 자기 소유처럼 지배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라고 선언하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빚을 대신 갚고 마귀의 종 된 인간을 해방하려고 오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몸값을 지불하셨으므로 마귀가 사람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고전 6:19-20; 벧전 1:18-19).

  그렇다고 마귀가 붙잡을 죄의 근거를 그대로 두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죄를 자백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요일 1:9). 회개로 죄의 근거가 제거될 때 악한 영이 떠날 합법적인 근거도 생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고 축사하는 것은 면제년의 자유를 오늘 자신의 몸과 삶에 적용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도 흘러가야 한다. 하나님께 빚을 탕감받고 죄의 종살이에서 놓임을 받은 사람은 자신에게 빚진 형제를 무자비하게 붙잡아서는 안 된다.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가난한 자와 고통받는 자를 긍휼히 여기고, 받은 은혜로 다른 사람을 풀어 주어야 한다. 면제년은 자유를 독점하지 말고 공동체 안에 선포하라는 명령이다.

8. 예수께서는 어떻게 희년을 성취하여 기업과 가족을 회복하시는가?

  그렇다면 희년은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안식년과 면제년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곱 안식년, 곧 칠 년을 일곱 번 계수하여 49년이 지난 뒤 50년째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라고 했다. 그리고 그해 일곱째 달 열흘인 속죄일(贖罪日, Day of Atonement)에 온 땅에서 나팔을 크게 불어, 이제 희년이 되었음을 알리고 자유를 공포하게 했다(레 25:8-10). 이때 사용되는 나팔을 가리켜 ‘요벨’이라고 하며, 여기에서 희년을 뜻하는 ‘주빌리’가 나왔다.

  희년에는 안식년처럼 기본적으로 2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로 땅을 쉬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면제년처럼 빚과 종의 속박을 끝내는 것이다.

  그러나 희년은 여기에 더하여 두 가지 회복이 더 이루어진다. 첫째로, 각 사람이 잃어버린 자기 소유지를 다시 되찾는 것이다(레 25:10). 가난 때문에 조상의 땅을 팔았더라도 희년이 되면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혹시 땅을 매매하려 할 때에는 땅을 사려는 사람은 희년까지 남은 햇수를 계산하여 값을 치러야 했으며, 그 땅을 영원히 차지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희년에는 원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땅의 참 주인이 하나님이심이 드러나는 것이다(레 25:13-16, 23-24).

  둘째, 각 사람이 자기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종으로 팔려 다른 집에 속해 있던 사람도 희년에는 본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희년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노동에서 쉬는 정도가 아니었다. 빼앗긴 신분과 관계와 소속을 되찾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희년은 잃었던 땅과 가족과 자유를 원래 상태로 돌리는 총체적인 회복인 것이다.

레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라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희년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 남에게서 산 땅을 돌려주는 것이 아깝고, 종을 자유롭게 하며 빚을 없애는 것이 손해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으리고 본다. 그러나 혈통적 이스라엘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이 실패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하늘의 기업과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신분을 주시기 때문이다. 원감람나무 가지들도 믿지 아니함으로 꺾였으므로 돌감람나무였던 이방인도 교만하지 말고 믿음과 회개 안에 머물러야 한다(롬 11:17-22).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던 시기에 그분은 자기 고향이었던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글을 펴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이 말씀이 듣는 자들의 귀에 응했다고 말씀하셨다(눅 4:16-21). 이는 주님께서 자신이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음을 밝히신 것이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그렇다. 초림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값을 지불하여 희년의 문을 여셨다. 그러나 희년의 완전한 성취는 재림(再臨, second coming) 때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가을의 절기 가운데 하나는 속죄일의 의미다. 왜냐하면 희년의 나팔은 속죄일에 울렸듯이, 마지막 때 주님은 악의 세력을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온전히 회복하실 것인데, 그 절기가 바로 속죄일인 것이다. 필자가 깨달은 바에 따르면 나팔절이 되면 나팔을 불어 알곡 성도들을 하늘로 소집할 것이다. 그리고 속죄일에 재림하시는 예수께서 소집한 성도들과 함께 온 세상을 청소하여 정결케 하실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초막절 날이 되면, 주님께서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동하여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여실 것이다. 이것이 초막의 완전한 성취이다. 그렇다. 예수님의 초림은 마귀의 속박에서 자유를 시작한 것이고, 재림은 악을 영원히 제거하여 완전한 희년의 나라를 여는 것이다.

  우리의 본래 기업은 하늘에 있었고, 본래 가족으로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며, 우리는 그의 자녀들이다. 마귀는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여 인간을 자기 가족으로 만들었고 하늘의 기업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피값을 지불하여 우리를 되사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에 응답하여 우리는 예수님만이 구원자요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 그리고 회개로 마귀가 붙잡은 근거를 없애고, 몸과 마음과 삶을 주님의 소유로 드리면 우리는 우리의 기업을 하늘나라에서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우리는 마귀의 종에서 영원히 해방되어 하늘에 준비된 영원한 땅으로 옮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 마련된 기업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영원히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9. 나오며

  지금까지 다니엘의 70이레를 해석하는 세 가지 기준과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정체, 69이레의 연속성, 그리고 안식년·면제년·희년에 담긴 자유와 회복을 살펴보았다. 70이레는 연대만 계산하는 수수께끼가 아니다. 허물과 죄를 끝내고 영원한 의를 드러내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보여 주는 구원의 시간표다.

  첫째, 70이레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레스와 느헤미야는 포로 귀환과 성벽 재건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역 일부를 예표했지만 죄를 영원히 없앨 수는 없었다. 기름부음을 받고 끊어지며 많은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완전한 제사로 옛 제사를 그치게 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둘째, 70이라는 수는 안식년의 비밀을 품고 있다. 이스라엘이 땅을 쉬게 하지 않고 자기 소유처럼 차지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에 보내 땅이 70년 동안 안식하게 하셨다. 70이레는 그 징계를 넘어 하나님께서 죄와 마귀의 속박을 완전하게 끝내고 참된 자유를 주실 계획을 보여 준다.

  셋째,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은 하나의 구속의 흐름이다. 안식년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면제년은 빚진 자와 종 된 사람이 하나님의 것임을, 희년은 기업과 가족까지 본래 주인에게 돌아가야 함을 선포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로 죄의 빚을 갚아 자유를 시작하셨고, 다시 오셔서 악을 심판하고 영원한 기업과 가족을 회복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혈통이나 한때의 신앙경력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원감람나무도 믿지 않을 때 꺾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날마다 회개하여 마귀가 붙잡을 죄의 근거를 제거해야 한다. 또한 고통받는 사람을 정죄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의 매임에서 풀어 주며, 우리 몸과 삶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하여 초림으로 시작된 자유를 누리고 재림으로 완성될 영원한 희년을 사모하며 하늘의 기업과 하나님의 가족에게 돌아갈 날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10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다니엘서의 70이레 환상을 단순한 날짜 계산이 아닌, 인류에게 참된 안식과 해방을 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70이라는 숫자가 성경의 안식년, 면제년, 희년 제도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민족을 넘어 온 인류를 마귀의 결박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을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70이레의 성취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어 재림 때 완성되는 연속적인 사건이며, 성도는 회개를 통해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영원한 기업을 되찾는 신령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이 설교는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그리스도가 어떻게 율법의 예표를 완성하고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는지를 명확히 밝히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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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기독론(170)] 이스라엘의 파수꾼이 되어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겔3:16~21)_2026-08-20(목)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0)] 이스라엘의 파수꾼이 되어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겔3:16~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wd5YlisLIk 기독론(170) 이스라엘의 파수꾼이 되어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 (겔 ...
    Date2026.08.20 By갈렙 Views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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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기독론(169)]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겔2:1~7)_2026-08-19(수)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9)]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겔2: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Jsel06jladM 기독론(169)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
    Date2026.08.19 By갈렙 Views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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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기독론(168)] 에스겔 선지자는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였는가?(겔1:1~3)_2026-08-18(화)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8)] 에스겔 선지자는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였는가?(겔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zcIuC5EjsI 기독론(168) 에스겔 선지자는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였는가? (겔 1:1-3) 동...
    Date2026.08.18 By갈렙 Views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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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기독론(167)] 왜 에스겔이 환상으로 본 새 성전은 아직까지 그대로 성취되지 못했는가?(겔40: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7)] 왜 에스겔이 환상으로 본 새 성전은 아직까지 그대로 성취되지 못했는가?(겔40: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EvIo4pmlCfg 기독론(167) 왜 에스겔이 환상으로 본 새 성전은 아직까지 그대로 성취되지 ...
    Date2026.08.17 By갈렙 Views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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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독론(164)] 이사야의 예언(24) 메시야가 주실 복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사66:1~6)_2026-08-14(금)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4)] 이사야의 예언(24) 메시야가 주실 복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사66: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olp4zYUE70 기독론(164) 이사야의 예언 (24) 메시야가 주실 복을 받기 위해 우리...
    Date2026.08.14 By갈렙 Views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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