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31(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기독론(108)]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14)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1)(시편 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Gd3d4_OwcU
1. 들어가며
시편은 기독교 예배의 찬양집이다. 그러나 시편은 단순한 찬송가 모음집이 아니다. 시편에는 수천 년의 신앙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고, 그 안에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 예언의 형태로 가득 담겨 있다. 시편을 기록한 사람들은 자신이 기록하는 내용이 단순히 자신의 감정과 신앙 고백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령의 감동 안에서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특히 73편의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그가 경험한 삶의 고통과 기쁨, 배신과 신뢰, 절망과 소망을 노래하면서 자신도 처음에는 미처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장차 오실 메시아의 생애를 예언하고 있었다.
지난 시간(기독론 107강)에는 다윗이 받은 고난을 통해 메시아를 알아 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고 가족들에게 버림받으며, 가장 가까운 벗에게조차 배신당하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까닭없이 자기를 죽이려하는 자들을 향해 저주의 시편들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 저주의 기도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예언의 언어로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그 연장선에서, 다윗이 시편 전체에 걸쳐 예언한 메시아에 대한 풍성하고도 놀라운 예언들을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과 비교하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천국에서의 찬양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리고 성도들이 지금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시편을 예수님에 관한 예언서로 읽어야 하며, 예수님 자신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많은 성도들이 시편을 찬양의 책, 혹은 기도의 책으로만 읽는다. 물론 시편은 찬양이다. 시편 150편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6)로 마무리되며, 시편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시편이 찬양의 책이라는 사실이 시편이 예언의 책이 아니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시편이 자신에 관한 예언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자,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구약 성경이 어떤 예언이었는지를 가르치신 장면을 보자.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여기서 예수님이 인용하신 "모든 성경"에는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과 선지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비롯한 대선지서와 소선지서 전체)가 포함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만으로 설명을 끝내지 않으셨다. 이후 열한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같은 내용을 말씀하시면서 시편을 아예 따로 특정하여 언급하셨다.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모세의 율법(토라)과 선지자의 글(느비임)과 시편(케투빔)". 이것은 구약 성경 전체를 세 범주로 나눈 유대교의 전통적인 분류이다. 예수님은 이 세 범주 모두에 자신에 관한 예언이 담겨 있다고 선언하셨다. 특히 예수께서 시편을 따로 거명하신 것은, 시편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풍성하게 담겨 있는지를 당신 자신이 친히 강조하신 것이다.
이 사실은 시편을 읽는 성도들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야 한다.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아름다운 시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선한 목자이심을 미리 예언한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시편 110편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을 읽을 때도,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과 제사장직에 대한 예언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시편을 단순한 찬양의 책으로만 읽는 것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가르쳐 주는 예언의 책으로 읽어야 한다. 시편의 가치는 단지 아름다운 시문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가득 담겨 있다는 데 있다.
3. 천국에서 찬양에 계급이 있다면, 성도는 어떤 찬양의 자리를 준비해야 하는가?
시편이 찬양의 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천국에서의 찬양은 지금 이 땅에서 드리는 찬양처럼 모든 이가 동일하게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천국의 찬양이 참여 주체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아무나 아무 찬양이나 부를 수 없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는 천국에서 드려지는 찬양의 계층 구조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첫째,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24장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구속의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드린다. 24장로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의 최고봉이자 대표이다. 그들만이 이 찬양을 부를 수 있다.
계 4:10-11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5:8-10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둘째, 그 다음으로는 모든 천사들의 찬양이 있다.
계 5:11-12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셋째, 천사들의 대표인 네 생물 역시 또 그들만이 드리는 찬양이 있다.
계 4: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네 생물은 천사들의 대표자들이다. 이들이 부르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이사야 6장에서 이미 나온 찬양이다. 이사야가 주님을 뵈었을 때 스랍들(세라핌)이 같은 찬양을 불렀다.
넷째, 인간 중에서도 오직 이기는 자들, 곧 십사만 사천 명만이 부를 수 있는 새 노래가 있다.
계 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다섯째, 모든 피조물도 함께 부르는 찬양도 있다.
계 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이렇게 천국에는 찬양의 계층이 있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부르는 찬양이 있고, 천사들만 부르는 찬양이 있고, 인간들만 부르는 찬양이 있고, 인간들 중에서도 십사만 사천 명만 부르는 찬양이 있으며, 스물네 장로만 부르는 찬양이 있는 것이다.
사실 천국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천국은 엄격한 질서와 계층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누가 어느 찬양을 부를 수 있는가는 이 땅에서 얼마나 깊이 회개하고, 얼마나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겼으며, 얼마나 영적으로 성장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공산주의가 평등을 내세워 모든 계층을 없애려는 체제라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탄의 사상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공산주의가 되지 않도록 성도들은 기도해야 한다. 천국에서의 찬양 총지휘자는 다윗이다. 그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체계를 세운 자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 땅에서 드리는 예배와 찬양을 통해 천국에서의 영원한 찬양의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
4.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최고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가 예언한 메시아의 핵심은 무엇인가?
구약의 예언자들 가운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가장 풍성하게 남긴 사람은 누굴까? 그는 바로 이사야 선지자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대선지자라 부르는 이유는 예언의 분량이 많기 때문이다. 예언의 내용이 방대할수록 대선지자라 불렀고, 내용이 적을수록 소선지자라 불렀다. 그 대선지자 가운데 가장 많은 메시아 예언을 쏟아낸 사람이 이사야이다.
이사야가 이토록 풍성한 예언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순종의 삶이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삼 년 동안 옷을 벗고 벌거벗은 채로 예언하라고 명령하셨다(사 20:3). 남 앞에 알몸으로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주님 말씀에 순종하였다. 하나님은 그 순종에 응하여 이사야에게 메시아에 관한 놀라운 계시를 부어 주셨다. 천국에서 이사야를 만나고 싶다면 어렵지 않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이사야이기 때문이다. 삼 년 동안 벗고 다닌 수치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은 영원한 영광의 옷이었다. 이것이 천국의 원리이다. 이 땅에서의 수고와 순종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하나님의 정체에 관한 것이다. 이사야는 다른 누구도 발설하지 못했던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였다. 하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며, 그 한 분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아들로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것이다.
사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에 있을 자도 내가 곧 그니라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 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선언은 이사야서에 세 번 반복된다. 그런데 이 선언이 요한계시록에 이르러 충격적인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것이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부터 나았다.
계 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고로 예수께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스스로 선언하셨다면, 예수님은 이사야서에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하나님을 사칭하는 자가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기꾼이 아니시다.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 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신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그분이 아기로 태어나 아들로 오신다는 충격적인 계시를 전한 것이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아들로 오셔야 했는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죽으실 수 없다(요 4:24). 그러나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 죽어야 한다(막 10:45, 히9:22, 레17:11).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아들로 오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하였으나(시 2:6-7), 이사야는 그 아들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심을 더 분명하게 계시한 것이다. 이것이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이다.
5.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어떻게 예언했으며, 신분·출생·공생애·수난·부활·재림의 순서로 무엇을 기록했는가?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에 관한 놀라운 계시뿐 아니라, 그분의 구체적인 생애 전체를 예언하였다. 출생부터 재림까지, 그분의 삶의 모든 주요 단계가 이사야서 안에 기록되어 있다.
먼저 '출생'에 관해서이다. 이사야는 처녀에게서 아들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또한 그분이 이새의 혈통, 곧 유다 지파 다윗의 계보에서 오실 것도 예언하였다(사 11:1-2). 그리고 그분이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공생애를 사실 것을 예언하였다.
사 9:1-2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예수님은 왜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셨는가? 그것은 이사야가 이미 예언해 놓았기 때문이다. 나사렛이 스불론 지파에 속하고, 가버나움이 납달리 지파에 속해 있었으며, 이곳을 갈릴리라고 불렀다. 고로 예수님의 공생애의 주요 무대가 갈릴리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 예언의 성취였다(마 4:13).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전세를 얻어 사셨는데,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지붕을 뜯어 내려보낸 것도 그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이 그 집에 계셨기 때문에 뜯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생애 중 행하신 이적들도 이미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다.
사 35:5-6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예수님이 눈먼 자를 고치고, 귀먹은 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벙어리의 입을 여신 것은 이사야의 이 예언을 이루신 것이다. 귀신 들린 자를 자유케 하신 것도 이사야가 예언하였다.
사 61:1-2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선구자가 나타나 그분을 소개할 것도 이사야가 예언하였다.
사 40:3-4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이것이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말라기도 같은 내용을 기록하였다. 사실 세례 요한이 나타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소개한 것은 이 모든 예언의 성취였다.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관한 예언이 이사야 53장에 집중되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채찍에 맞으시고 못 박히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유월절에 어린 양은 흠이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채찍으로 두들겨 맞았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이시다. 흠이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채찍이었다.
사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가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리고 장차 올 메시아가 부자의 묘실에 장사되실 것도 이미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되어 있었다.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부자가 자신의 묘실을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내어 드린 것은(마 27:57-60) 이 예언의 정확한 성취이다.
사 53: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그리고 이사야는 또한 사람의 부활에 대 예언하였다.
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어놓으리로다
마지막으로 이사야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까지도 예언하였다(사 66:15-16, 65:17-18). 출생에서 재림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가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최고로 불리는 이유이다.
6. 다윗의 메시아 예언이 이사야보다 더 풍성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 예언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의 최고봉인가?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다윗이 시편에 남긴 메시아 예언은 이사야의 예언보다 더 많고 더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기록한 시편의 메시아 예언은 이사야보다 두 배, 세 배가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다윗의 메시아 예언이 이토록 풍성할 수 있었는가. 그 뿌리는 다윗이 받은 고난에 있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와 같이, 다윗은 까닭 없이 고통을 당하고 억울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께 쏟아 내었다. 그 절규와 탄원의 언어가 성령의 감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는 언어가 되었다. 다윗이 더 많이 고통받을수록, 더 많은 배신과 조롱과 수치를 당할수록, 그의 시편 속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관한 더 구체적인 예언들이 새겨졌다. 고난이 예언의 원천이 된 것이다.
다윗이 시편에서 예언한 메시아의 신분에 대한 내용은 크게 여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시 2:6-7). 둘째,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시 2:2). 셋째, 목자(시 23편). 넷째, 왕(시 110:1). 다섯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시 110:4). 여섯째, 고난받는 종(시 22편). 이 여섯 가지 정체성이 다윗의 시편 속에 고루 예언되어 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신분에 관해 다윗이 이야기하지 못했던 부분, 곧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신다는 계시를 선포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사야의 예언은 매우 독보적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체적인 삶, 고난의 세부 내용, 죽음의 방식, 부활의 영광, 승천 후의 사역에 관해서는 다윗의 예언이 이사야를 훨씬 능가한다. 다윗은 이사야보다 약 300년 앞서 살았으나, 그의 시편은 이사야의 예언보다 더 많고 더 구체적인 메시아 예언을 담고 있다.
특히 다윗이 저주의 시편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억울한 고통, 그 고통의 언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언하는 통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저주의 시편을 성경에서 제거하지 않으셨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구약을 최종 편집할 때도 저주의 시편을 삭제하지 않았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기 위하여 그것을 보존하셨다. 이것이 저주의 시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에 남겨진 결정적인 이유이며, 동시에 다윗이 시편 22편을 비롯한 수많은 메시아 예언의 통로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7. 시편 22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십자가 수난까지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
이번에 다루는 시편 22편은 다윗의 메시아 예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본문 중 하나이다. 이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십자가 수난에 이르는 전 과정을 놀라울 정도의 정밀함으로 예언하고 있다. 다윗이 이 시편을 기록한 것은 그가 사울 왕에게 쫓기던 젊은 시절이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보다 적어도 천 년 전에 기록된 것이다.
먼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유아기에 관한 예언이 있다.
시 22:9-10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이것은 다윗 자신의 경험을 노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태어나 어머니 마리아의 젖을 먹으며 자라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그분도 갓난아기처럼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먹으셨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낸다.
이어서 둘째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수치와 조롱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
시 22: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져내실 걸 하나이다
마태복음 27장에서 종교 지도자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신다고 했으니 구원해 보시지"라며 조롱하였다(마 27:43). 이것이 바로 시편 22편 6-8절의 성취이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사람들에게 비방당하던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였지만, 그 언어는 정확히 천 년 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실 조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시편 22:1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친히 외치신 말씀이다(마 27:46).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마태복음 27:46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예수님의 절규를 기록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시편 22:1을 인용하심으로써, 이 시편이 자신의 십자가 사건에 관한 예언임을 친히 증언하셨다.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신 것은 즉흥적인 절규가 아니라, 다윗의 예언을 성취하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셋째로, 십자가 처형의 장면과 속옷을 제비뽑는 모습을 거의 그대로 묘사한 예언이 나온다.
시 22:16-18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사실 로마시대에 활용되었던 죄수의 십자가 처형 방식은 다윗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다윗은 수족이 찔리는 처형 방식과 옷을 나누는 장면을 예언하였다. 요한복음 19:23-24은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누고 속옷은 제비 뽑아 가진 것을 기록하며, 이것이 시편의 성취임을 명시한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라는 표현은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모든 뼈가 드러나는 처참한 상태를 묘사한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을 천 년 전에 성령의 감동으로 보고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십자가에서 찔리시고, 예언대로 겉옷이 나뉘어지고, 예언대로 조롱을 받으셨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다윗이 예언을 해 놓았기 때문에 그 예언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시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예언임을 증명한다.
8. 다윗이 시편에서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승천·왕권·재림·심판의 내용은 무엇인가?
시편의 메시아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이어서 그분의 부활과 승천, 보좌 우편에 좌정하심, 재림과 심판, 그리고 영원한 왕국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예언하였다.
먼저 첫째로, 그분의 부활에 관한 예언을 하였다.
시 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것은 죽은 상태로 음부에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죽음 이후의 부활을 가리킨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시편 16:10을 직접 인용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다(행 2:27). 다윗 자신은 결국 죽어 무덤에 묻혔으므로, 이 예언은 다윗 자신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이사야는 부활을 간접적으로 예언하였으나, 다윗은 직접적인 언어로 부활을 선포하였다.
둘째로, 그분의 승천에 관해서는 시편 24편이 웅장하게 노래한다.
시 24:7-10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시는 장면을 묘사한다. "셀라"는 히브리 예배의 추임새로, 감탄과 강조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 웅장한 찬양은 예수님의 승천을 천 년 전에 미리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승천 후 성령과 은사를 주실 것도 다윗이 예언하였다.
시 68:17-18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이끌어 올리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 받으시며 반역자들에게서도 받으사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게 하려 하심이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8에서 이 시편 68편을 직접 인용하여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의 은사 부여를 설명하였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의 은사들을 교회에 주신 것이 바로 이 예언의 성취이다.
넷째로, 그분의 왕권과 우편에 좌정하심에 관해서는 시편 110편 1절이 핵심이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보좌 우편에 앉으신다는 것은 공간적 위치가 아니라 승리와 왕권과 영광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천국의 보좌는 하나뿐이며, 예수님이 거기에 앉아 계신다.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부활·승천·왕권·심판의 모든 권세를 갖게 되셨다는 의미이다.
다섯째로, 부활의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중보사역도 같은 시편에 예언되어 있다.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브리서는 이 구절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설명한다. 예수님은 왕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해 영원히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이시다. 왕이면서 제사장이신 분은 구약에서 멜기세덱 외에는 없었다. 예수님은 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왕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
마지막으로 여섯째로, 재림과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예언이 시편 110편 5-7절에 기록되어 있다.
시 110:5-7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들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들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아마겟돈에서 악의 무리를 심판하시고 왕들을 쳐부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에 기록된 아마겟돈 전쟁의 예언이 이미 시편에 담겨 있었다.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이 개선장군으로서 머리를 드시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처럼 다윗의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승천과 왕권, 재림과 심판까지 전체 구원 역사의 파노라마를 담고 있다. 시편 145편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찬양한다(시 145:1-2, 12-13). 다윗은 실로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
9. 나오며
오늘은 다윗이 왜 메시아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시편이 예수님에 관한 예언서임을 예수님 자신이 누가복음 24장에서 친히 증언하셨다는 것, 천국의 찬양이 계층에 따라 구분되어 있으며 성도는 이 땅에서의 삶으로 그 자리를 준비한다는 것, 이사야가 메시아 예언자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와 그가 선포한 놀라운 계시 곧 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신다는 진리를 살펴보았다. 또한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부터 재림까지 생애 전체를 포괄한다는 것과, 다윗의 메시아 예언이 이사야보다 더 많고 더 구체적이며 그 원천이 다윗이 받은 고난에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시편 22편이 천 년 전에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수난을 정밀하게 예언했다는 것, 다윗이 부활·승천·왕권·재림·심판에 관한 예언도 시편에 풍성하게 남겨 두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며 쏟아 낸 절규가, 가장 가까운 벗에게 배신당하며 흘린 눈물이, 까닭 없이 당한 수치와 조롱이 단순한 인생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예언이 되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고통을 헛되이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다윗의 삶을 통해 수천 년의 구원 역사를 예언하게 하셨고, 그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하나 이루어졌다. 오늘날 성도들이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이 하나님의 더 깊은 경륜 안에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당하는 억울함과 배신과 수치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언젠가 더 큰 진리를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고로 오늘날 우리가 시편을 읽을 때는 그 안에 숨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 다윗의 탄원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다윗의 찬양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보며, 다윗의 왕권 찬양 속에서 재림하실 만왕의 왕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그리하여 시편 한 편 한 편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의 책으로 읽으며, 그 예언이 이루어진 복음의 감격 안에서 더욱 깊이 주님을 찬양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01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다윗이 지은 시편 속에 투영된 메시아 예언자로서의 위대한 면모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을 이사야보다 더 풍부한 예언적 기록을 남긴 최고의 예언자로 규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고난,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에 이르는 구속사적 생애가 시편에 정밀하게 예고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인간적인 결함과 억울한 상황 속에서 쏟아낸 다윗의 저주와 탄식마저도 메시아가 겪을 고통을 예표하는 도구로 승화되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시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온전히 발견하고, 다윗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신앙적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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