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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닥사스다와 포로귀환 2013. 2. 13
대다수의 연대기가 그림과 같이 되어있다
BC538년 1차 귀환
BC458년 2차 귀환(1차 80년 후)
BC444년 3차 귀환(1차 94년 후)
1차 귀환은 목백 세스바살이 인도한다.
이렇게 고레스가 유대인을 귀환시키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BC605년 16세 정도의 어린나이에 바벨론으로 끌려왔다
바벨론에서 교육을 받고 다니엘의 총명함을 인정받아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는 등 세 친구와 함께 왕 가까이 있게 된다.
그렇게 다니엘을 인정한 느부갓네살이 죽고(BC560) 정치적 혼란 시기가 지나면서 벨사살이 왕위에 오르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니엘은 표면에 등장하지 않고 약 20년이 지난다.
그러던 중 다니엘의 나이 82세쯤 된 BC539년 벨사살이 귀인 1,000명과 연회를 하는 자리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온 성스런 기구에 술을 붓는 우를 범하는데, 이는 이미 바벨론성을 포위하고 있는 고레스왕을 비웃고 다니엘의 하나님을 비웃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음이었다.
[단] 5:1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단] 5:2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그러자 벽에 글을 쓰는 손이 나오고 그 날 밤 벨사살이 죽는다.
고레스를 따르는 벨사살 반대파인 “반(半) 마르둑 파”(마르둑 + 다니엘의 하나님 인정)가 쳐들어온 고레스에게 성문을 열어줌으로써 고레스는 무혈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 분봉왕으로 다리오를 세운다.
[단] 5:30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단] 5:31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바벨론 분봉왕이 된 다리오는 다니엘을 전국총리로 세운다.
[단] 6: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그러나 이를 시기한 사람들의 모함에 다니엘은 사자굴로 들어가게 되지만, 이는 오히려 다니엘을 높이고 유대인의 여호와를 높이는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단] 6:25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단] 6: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단] 6: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리고 나서 다니엘은 분봉왕 다리오를 통해서 고레스에 청원하였고 유대인 귀환조서를 받아 내므로로써 유대인이 1차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1차로 귀환하게 된 해가 BC538년으로, 이 때 스룹바벨, 여호수아, 느헤미야가 함께 온다.
이 때 이들의 나이를 에스라(30세), 스룹바벨(40세), 여호수아(40세), 느헤미야(20세)로 본다면,
스룹바벨이 총리가 되어 2차 귀환을 할 때의 나이는 120세가 되고 3차 귀환 시 느헤미야는 114세이며또 학개도 102세가 된다.
(나이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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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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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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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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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38년 1차 귀환
(분봉왕 다리오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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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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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4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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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40세)
목백(세스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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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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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58년 2차 귀환 (1차 80년 후)
(아닥사스다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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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110세)
(학개, 스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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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1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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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1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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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10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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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44년 3차 귀환 (1차 94년 후)
(아닥사스다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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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12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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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134세)
(엘리아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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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13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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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11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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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스가랴 사역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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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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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후) 2차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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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BC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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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1:1) 다리오1세 2년 6월1일 (BC521)
BC520(KCM 연도) (40세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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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58년(102~10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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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BC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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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75(81~8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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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연대표가 되고만 것이다.
[시]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아하수에로의 후임 왕인 아르타 크세륵세스1세를 아닥사스다로 본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BC510년 고레스의 사위인 다리오 1세는 그리이스 원정에 나가서 이오니아 지방과 마케도니아 지방의 남부를 장악한다.
그리고 BC490년 다티스장군을 보내서 아테네 동북부 약 42km지점의 스코이니아에 상륙하여 마라톤에서 전투를 벌이지만, 아테네군에게 패퇴하고 만다.
그러자 다리오 1세는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기 위해서 시리아 해안에서 대형 함선을 건조(7년 동안)하기 시작하는데, 이즈음 애굽에서는 반란(BC487)이 일어난다.
이렇게 그리이스 원정의 실패와 애굽 반란이 겹치자 다리오1세는 홧병이 나서 죽었다고 한다.
그러자 뒤를 이은 왕이 아하수에로로써 아하수에로는 왕이 되고 바로 애굽반란 진압에 나서 180일 만에 진압을 마치고 돌아온다.
[에] 1:4 왕이 여러 날 곧 일백팔십 일 동안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그리고 장군, 방백들과 승전 연회를 베풀고 이어서 도시 유지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푸는 중에 왕후 와스디에게 청한 춤을 추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어 왕후가 폐위되는 일이 일어난다.
[에] 1:5 이 날이 다하매 왕이 또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그리고 그 뒤 에스더가 왕후 수업에 들어간다.
[에] 2:12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을 행하되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케 하는 기한을 마치며
이렇게 에스더가 왕후수업을 마칠 즈음 시리아 해안에서 건조되던 함선이 완성되고 전쟁준비가 끝나자 아하수에로는 아테네로 출정을 한다.
아테네를 원정한 아하수에로는 이미 점령한 마케도니아 남부로 들어가서 아테네로 내려가 텅 비어있는 아테네를 점령하고 온 도시를 불태운다.
이 때 아테네군은 대규모로 몰려오는 대형 함선의 공격을 막느라 온 힘을 해군에 투입하고 있던 터라 아하수에로의 군대를 막을 힘이 부족하였고, 아테네는 쉽게 아하수에로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온 전력을 투입해서 전투를 벌이는 해상전도 대형함선으로 공격하는 바사군을 막을 수 없었고, 계속해서 밀리다가 살라미스 해협까지 쫓겨 가 더 이상은 도망갈 곳도 없는 막다른 상황까지 가게 된다.
그러나 좁은 해협인 살라미스에서 벌리는 전투는 작은 함선이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고, 결국 바사해군은 패퇴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상 전에서 패한 아하수에로는 육로를 통하여 도망하였고, 이렇게 아하수에로가 돌아올 때까지 이미 수업을 마친 에스더는 3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 4년 만에 왕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이 BC479년이고 그 후 하만의 계략을 깨트리고 모르드개가 총리가 된 때가 BC473년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15년 후인 BC458년 아르타크세륵세스 7년에 2차 귀환, 또 14년 후인 BC444년 3차 귀환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BC473년 모르드개가 총리가 된 후 유대인들은 자기를 싫어하는 자들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는데 모두 75,800명을 죽인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죽이려는 하만을 나무에 달았고, 자기들의 대적자들을 죽인 일을 기념하는 절기로 부림절을 제정하는데
[에] 9:29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전권으로 글을 쓰고 부림에 대한 이 둘째 편지를 굳이 지키게 하되
문제는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은 점이다.
부림절이 제정되고 8년 후 BC465년 쿠테타가 일어난다.
당시 왕자의 호위대장이 쿠테타를 일으켜 왕자와 아하수에로를 죽이고 왕좌를 찬탈한다.
이렇게 왕좌를 찬탈한 자는 아르타파누스로 그는 신하들의 추대로 왕좌에 앉지만 6개월뿐이었다.
6개월 후 아르타파누스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자가 바로 성경학자들이 결론 내린 아닥사스다라고 하는 아르타 크세륵세스 1세이다.
이 쿠테타에 후궁과 친척들이 대거 참여했고 왕과 왕자가 죽는 상황에 75,800명을죽이면서 복수극을 벌렸던 유대인들과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무사했다면, 이 사람들은 천사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만약 에스더를 비롯해 모든 유대인들이 죽었다면, 2차 3차 귀환한 유대인들은 누구란 말인가?
이 사건은 바벨론이 아닌 수산성에서 있었던 일이다.
[에] 1:2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에] 1:3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도의 귀족과 방백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복수극에 희생된 사람들은 메데인이거나 바사인들이다.
그런 본국사람들이 이방인인 유대인들을 그대로 두었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이 아르타 크세륵세스 1세가 아닥사스다가 아니라는 증거이며 유대인의 귀환도 이때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유대인의 2차 귀환은 주로 제사장과 레위 인들이 주류를 이룬다.
[스] 7: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스] 7:7 아닥사스다 왕 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스] 7: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칠년 오월이라
이때는 성전 재건이 마무리되는 해와 일치시켜 놓고 보면 햇수로 7년 전 다리오1세가 등극한다.
즉 다리오1세가 성전 재건을 재개하도록 배려했고, 또 그 성전이 마무리 단계에 이른 때에 2차로 귀환을 시키되 성전 제사와 관계되는 사람을 주류로 귀환시킨 것이다.
그리고 은과 금을 주어서 제사에 쓰일 제물을 사도록 하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던 왕이다.
[스] 7:16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그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즐거이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스] 7:17 그 돈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전 단 위에 드리고
[스] 7:19 네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기명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이렇게 성전이 완공된 해는 BC516년으로 다리오 1세가 위에 오른 지 7년 째 되는 해로써 아닥사스다로 이름한 왕은 다리오1세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시 사람들의 나이가 훨씬 젊어지고 따라서 학개도 44~45세로 젊어진다.
(나이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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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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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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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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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38년 1차 귀환
(분봉왕 다리오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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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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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4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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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40세)
목백(세스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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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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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16년 2차 귀환 (1차 22년 후)
(다리오1세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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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52세)
(학개, 스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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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6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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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6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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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4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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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03년 3차 귀환 (1차 35년 후)
(다리오1세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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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6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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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75세)(卒)
(엘리아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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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75세)(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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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5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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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스가랴 사역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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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후) 2차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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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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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BC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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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1:1) 다리오1세 2년 6월1일 (BC521)
BC520(KCM 연도)(40세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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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16년(44~4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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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BC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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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15(44~4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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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BC516년 성전이 완공되었고 한 달 후 2차 포로귀환이 실행된 것이었다.
[스] 7:7 아닥사스다 왕 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스] 7: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칠년 오월이라
그리고 그 다음 3차 귀환은 느헤미야 총독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그 목적은 성곽과 성문수리이다.
[느] 1: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 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느] 1:3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아닥사스다 20년이 BC503년으로 다리오1세가 왕이 된지 20년째 되는 해이다.
이때부터 느헤미야는 유대 총독으로 12년을 재직하는데 이때가 BC491년으로 다리오1세가 다티스 장군을 세워 아테네 원정(BC490)을 떠나 보낼 즈음이다.
[느] 5:14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부터 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이후 말라기가 등장하기까지 9년 후가 되는데 이 차이가 어디에서 계산된 숫자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숫자가 맞는다면 말라기 선지자의 등장은 BC494년이 된다.
그리고 이 후 에스더가 등장하는 BC479년은 15년 후에 일어난 일로써, 구약의 마지막으로 쓰여진 책은 말라기가 아니고 에스더서이며, 말라기는 마지막으로 활동한 선지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