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로마서' 내지는 '기독교자유의 헌장'이라 불리는 갈라디아서, 우리는 이번주부터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신칭의 믿음을 통한 구원 그리고 율법의 목적과 그 한계 그리고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인도함받는 삶 등을 배우게 될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 갈라디아 성의 여러 교회들에게 보낸 일종의 회람용 편지이다. 로마의 한 성인 갈라디아 성에는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안디옥과 같은 도시들이 위치해 있다. 바울의 1차전도여행으로 인해 그곳에 세워진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가 갈라디아서인 것이다.
이 편지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에 갈라디아의 잘못된 상황을 듣고 바울이 보낸 일종의 변증편지이면서 경고편지이다. 왜냐하면 순수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미혹을 받아 갑자기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교회들을 미혹했던 자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들은 유대교적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다시 말해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이면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예수만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할례도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이방인들이 구원받은 것에 무슨 할례가 필요하며 모세의 율법이 필요한가? 오직 예수님이면 족한 것이다.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만 믿으면 율법이 규정해 놓고 있는 모든 저주에서 자유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핏 듣고 있노라면 그것이 맞는 것이 같다. 하지만 이것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아주 잘못된 누룩과 같은 것이다. 이것에 미혹되는 자는 과거의 저주 가운데로 회귀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무엇이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구원관이 흔들린다. 당신의 구원은 확실한 것인가? 뿐만 아니라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이 그 교회들을 잠시 빈 틈을 이용해서 바울을 끌어내리려고 안간힘 쓰고 있었다. 그 방법은 사도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베드로나 요한과 같은 12제자들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의해 직접적으로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므로 사도권이 확실하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육신을 입은 그리스도로부터 그러한 권한을 위임받지는 않았다. 그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그러자 사도바울은 구원관에서 흔들리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바로잡고, 또한 자신이 받은 복음이 성육하신 그리스도가 아닌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직접적으로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변증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쓴 것이다. 바울의 사도권이 무너진다면 그가 전한 복음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속히 떠나 율법주의로 회귀한데 대해 이신득의의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사도성을 변증하기 위해 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상당히 엄중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갈1:4에 나와 있다. 그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기록하면서 곧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송영을 올린다. "이는 그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계획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구해내기 위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몸)을 주셨으니(갈1:4)" 이것을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다. 그가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상관없다. 모든 저주는 그리스도에 의해 끝나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도 율법의 어떤 행위를 가지고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는 유대교적 그리스도인들의 가짜 복음은 설 곳이 없다. 그러나 복음의 기초를 정립하지 못했던 갈라디아의 여러교회들은 흔들리고 말았다. 이제 우리가 알 것은 갈라디아서와 야고보서의 차이를 알아서 혼돈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가 이제 갓믿은 이방인 신자로 하여금 구원에 관한 바른 진리를 얻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라면, 야고보서는 이리 오랫동안 율법 안에서 살아오던 유대인들이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면 족하다. 하지만 오랜 신앙생활을 해 온 자에게 성령이 그 사람과 함께한 열매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고, 믿음에 따른 순종이 없는 자는 그가 진정 구원받은 자인지를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것이 야고보서의 말씀이다. 행함으로 나타나지 아니하는 믿음을 믿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은 갓 믿은 신자인가? 아니면 오래동안 신앙생활을 해 온 자인가? 그러면 갈라디아서를 통해 당신의 믿음의 기초를 확립하고, 야고보서를 통해 당신의 믿음을 견고케 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