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역사의 흐름에는 크게 양대 축이 있다. 그것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예루살렘 교회의 복음전파사역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안디옥 교회의 복음전파 사역이 그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로 파송을 받은 베드로 중심의 사역이었으며, 안디옥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로 파송을 받은 바울 중심의 사역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자신이 해야 할 사역과 복음전파를 감당하는데, 오직 예수님의 계시에 따라 움직일 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은 베드로로부터 어떤 재가나 인가를 받으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주님으로부터 직접 파송을 받아 이방인과 임금들과 유대인들(중심은 이방인)에게 파송을 받은 사역자다. 그는 그때부터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전파했다. 그리고 그는 율법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어라 기록되어있는지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유대교 안에 갇혀 있을 때만해도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소경이었다. 눈을 뜨고 성경을 보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목격한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그가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며 전했던 할례와 율법준수가 사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필요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율법은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는 신분으로 하나되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인 줄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바울은 이제는 모든 사역의 방향과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오직 예수님이 주되신 것과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해서 수년동안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교회는 각자 따로 복음을 전파했다. 바울은 자신이 회심한 후 3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예루살렘에 갔고 거기서 바나바의 중재로 인하여 베드로와 주의 동생 야고보를 만나보지만 그들로부터 자신의 사역에 대한 재가 내지는 허락을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14년후에 바울은 또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때는 안디옥교회에서 보낸 부조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바나바와 이방인디도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과 이방인의 선교결과 등을 베드로와 요한과 주의 동생 야고보에 전한다. 그리고 양쪽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복음전파사역에 대해 교류를 한다. 하지만 그 어떠한 유력한 자들도 바울이 복음에서 빗나갔다느니, 할례와 안식일준수와 율법준수를 경홀히 여기고 있다느니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심지어 예루살렘교회에 데리고 간 이방인 디도에게도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복음전파사역의 대상은 다르지만 사역의 내용은 똑같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바울도 예수님으로부터 파송받은 사역자인 것을 인증받았음을 의미한다.
한데 문제가 발생했다. 주의 동생 야고보가 시키지도 아니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유대인 그리스도인(대부분 바리새파인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이방인교회에 돌아다니며,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하며, 구원을 받는 조건은 예수님을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표징으로서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고 율법을 지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안디옥교회와 같은 이방인교회의 교인들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더불어 율법도 준수해야 한다는 논지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은 일파만파로 퍼저갔다.
그러자 바울은 오직 죄인은 그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상관없이 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3차에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행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공의회다. 하지만 여기서 베드로와 주의 동생 야고보는 구원관에 있어서 바울과 다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회의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확정하기에 이른다.
그후 베드로가 그의 일행을 데리고 안디옥교회를 심방을 가게 된다. 이방인교회가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보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로부터 즉 주의 동생 야고보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탁교제에 참여한 것을 확인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슬그머리 그 자리를 뜨게 된다. 이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이었던 안디옥교회에 큰 상처를 안겨 주었다. 정말 유대인들은 믿는 자라 할지라도 이방인들을 개취급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그쯤에 이르자, 사도바울은 베드로를 불러 공개석상에서 책망을 한다. 그가 유대인이지만 이방인과 그동안 친교하여 왔는데, 어찌 이번에는 이방인으로 하여금 유대인처럼 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복음의 본질을 바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열심히 일을 해 놓고도 책망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의 본질을 흐트러뜨리는 행동을 삼가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떠한가? 책망받을 자인가 아니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