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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과연 어디까지 해야 하나?

[일시] 20190929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68장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396장 주 예수 이름 소리 높여

PW: 믿음, MIW: 댓가

T.S: 믿음이란 기도하지만 불의한 자에게서는 기꺼이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조금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은 정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정치하면,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목회자라도 잘 다루지 않으려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갈 수만은 없는 것이기에 성경이 말씀하고 있고 예수님과 사도들은 어떻게 정치에 대해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과연 그리스도인들도 정치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옳을까요? 그래서 정부가 잘못하면, 정부를 향해 촛불을 들거나 아니면 데모행사에 참여하여 어떠한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나라가 사상의 기류에 흔들리고 어지러운데 바른 소리를 내지 않고 기도만 해도 괜찮은 것인가요? 어떤 분은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 교회는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는 권면하는 분들도 계시고, 어떤 분은 종교는 곧 정치체제에 따라 달라져서, 어떤 정치체제에 있어서는 종교를 억압받거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때에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적극 정치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요?

여자 분들에게는 조금 생소하거나 낯선 주제일 수 있지만, 우선 먼저, 정치 참여란 무엇인지부터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정치참여 주권자 국민이 정치현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정치과정에 참여를 하거나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정치 참여정치적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활동, 즉 정치활동에 대한 지지를 보내거나 반대하는 행동 등을 가리킵니다.

사실 현대사회는 사회구조가 복잡다변해지면서 국민의 다원적 이익들이 표출되고, 이러한 국민의 다양한 이익들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또한 사회가 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려는 정도는 더욱 늘어가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국민 주권주의를 기본 원리로 하고 있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정치과정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부합하는 과정인 것이죠. 또 이를 통하여 정치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독재권력을 방지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의 정치 참여는 법이 정한 정당한 절차와 방법 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불법적 수단을 동원하거나 탈법적 행위를 통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치 참여의 방법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민주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정치참여는 민주주의 실현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입니다.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으로는 약6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선거를 통한 참여의 방법이 있습니다. 선거는 대의정치의 승패가 걸린 것으로 시민 스스로가 후보자로 입후보 하거나 또는 유권자가 되어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둘째, 현대 대의제 민주정치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를 통하여 참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국민투표는 국민의 의사가 직접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셋째, ‘여론언론활동을 통한 참여의 방법이 있습니다. 국민이 주도적으로 정치적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정치권에 전달하여 올바른 정치가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넷째, ‘시민 사회 단체를 통하여 참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가장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와 유사한 목적을 지닌 단체를 지지, 후원함으로써 정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자신의 의사를 집회시위를 통하여 표출할 수도 있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국민들이 함께 모여 의사를 결집하고 결집된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국가에 대한 청원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청원은 국가에 문서로써 일정한 행위를 요구하고 국가는 반드시 이를 심사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기에, 청원도 국민의 정치참여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리스도인들이라도 한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모든 성도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법이 정한 정당한 절차와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요? 간단히 말해서, 나가서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거나 데모행사에 활동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기도하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요?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자신에게 넘겨준 예수님을 불러다가 그가 유대인들의 왕인지를 심문하지만 예수께서는 당신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만약 예수님의 왕국이 이 세상으로부터 있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의 부하들(종들)이 아직도 싸우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자, 그에게서 죄될 만한 아무런 원인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왜 자기를 죽이려고 로마의 권력에 넘겨주는 유대 당국자들과 싸우지도 않았으며, 자기를 죽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는 로마의 총독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았던 것인가요? 예수님은 유대당국자들과 싸울만한 능력이 없어서였을까요? 아니면 빌라도에서 억울함을 호소할만한 언변능력이 부족했던 것인가요? 왜 예수님은 유대당국자들과 로마에게 대항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30년경 예수께서 공생애를 다 마치시고 이제 유대당국자들의 손에 의해 빌라도의 손에 넘겨져서, 사형언도를 받기 직전,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이때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자기에게 넘긴 이유로서, 정말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되고자 했으며, 세금을 내지 말아서 로마를 부정하라고 반란을 꾀했는지를 질문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당신은 유대인의 왕은 아니지만, 하늘의 참된 진리를 전파기 위해 이 땅에 온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꿈꾸어온 나라 곧 왕국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만약 예수께서 꿈꾸었던 왕국이 이 세상 나라였다면 예수은 자신의 종들 아마도 천사들이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들로 하여금 싸우게 하여서 자신을 유대당국자들이 빌라도에게 넘기지 못하게 가로막았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꿈꾸신 왕국은 이 땅으로부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이 세상의 당국자들과 싸우려고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 세상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고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국가의 권력 자체를 부정하려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국가의 권력을 부정하라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시킵니다.

믿음이 없으면, 국가의 권력을 무력화시키려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탈법적 그리고 위법적으로 국가의 권세를 허물어 뜨리려고 시도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늘의 진리에 눈을 뜨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에 눈을 뜨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 세상에만 집착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과 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그러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이 세상에 두셨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도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요? 그것은 한 마디로 성경적인 관점으로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예수께서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으며,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구약시대에 정치참여는 어떠했는가?

어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의한 정권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는 바로왕에게 대항하여 백성들을 이끌고 나온 것이 그러한 예이고, B.C.760년경 구약 선지자 중에 아모스가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5:24)”이라고 선포했으니, 불의한 왕에 대해서는 대항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모세가 과연 백성들을 무장시켜 바로 왕에게 대항하라고 시켰습니까? 아모스 선지자가 백성들을 선동하여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에게 대항하게 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싸우고 있는 대상은 바로왕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싸우고 있는 대상은 바로왕을 붙잡고 있는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오직 오직 기도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출해 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모스 선지자도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을 선지자로서 지적한 것이지, 백성들을 선동하여 왕권을 부정하게 한 일이 없습니다.

 

. 사도바울이나 사도요한은 국가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라고 했을까요?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로마의 압제 하에 있던 시절,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사도바울이나 사도요한은 어떻게 말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A.D.54~56년경 사도바울로마서 13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성도들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13:1~7의 말씀을 직역해봅니다.

(01) 모든 혼(사람)은 위에 있는(능가하고 있는) 권세들에게 [계속해서] 복종하라. 왜냐하면 만일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가 아니라면 [그것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존재하고 있는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배치된 채 있는 것으로 있다.

(02) 그 결과, 권세를 반대하고(저항하고,맞서고) 있는 자는 하나님의 명(분명한 지시)를 대적한 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한 채 있는 자들은 자기자신에게 장차 심판을 취할 것이다.

(03) 왜냐하면 통치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으로 있지 않고, 오히려 악한에 일에 대하여 [두려움으로] 있기 때문이다.

(04) 그런데 네가 권세를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않기를 원하느냐? 너는 선을 [계속해서] 행하라. 그리하면 너는 그것(권세)로부터 장차 칭찬을 가지게 될 것이다.

(05) 왜냐하면 (통치자)는 네게 선한 것을 베푸는 것 안으로, 하나님의 봉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네가 악을 행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두려워하라. 왜냐하면 그가 공연히(이유없이) 칼을 항상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악을 실행하고 있는 자에게 진노 안으로, 보복하는(체벌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봉사자이기 때문이다.

(06) 왜냐하면 이것 때문에 너희도 역시 조세를 수행하고(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일 안으로 충성하고(몰두하고) 있는 하나님의 수종자들이기 때문이다.

(7) 너희는 모든 자들에게 의무를 돌려주되(갚아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는 조세를, 관세를 받을 자에게는 관세를 바치며,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는 존경하라.

이 말씀을 요약해본다면,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사람이라면 다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권세에 맞서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맞서는 것이니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정부라도 하나님의 봉사자가 되어서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다 국가가 평안하기를 기도하며, 가가 이를 위해 세금을 거둬들일 때에 세금을 잘 바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A.D.90~95년경 사도요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요한이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시기는 로마제국의 최고의 핍박자였던 도미시안 황제(A.D.81~96)가 다스리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때는 국가가 예수믿는 자들의 신앙을 빼앗고 불이익을 주고 핍박하고 죽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13:9-10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그때에는 로마의 군병에게 사로잡히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고 했고, 칼에 죽을 자는 칼에 죽는 것이 기독교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비로소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국가나 정부가 신앙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가나 정부일 때에는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왕국과 정부의 가치관과는 정면으로 배치될 때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조직적으로 국가의 권위에 맞서거나 데모를 하거나 체제전복을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 예수님은 어떻게 했나?

그럼, 예수께서는 국가나 정부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했습니까? 예수께서는 세상정부의 당국자 앞에서, 당신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새로운 정부를 세우고자 온 것이 결코 아니며, 오직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수행한 것이 문제가 되어 죽어야 한다면, 죽음으로서 그 길을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일해왔는데, 그것 때문에 죽어야 한다고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라도 한 명의 시민으로서, 국가에 대해서 자기나름대로 정치참여를 하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다만, 교회나 교회지도자들은 복음을 위해 부름받은 종들이기 때문에, 신앙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이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2)청중의 문제와 해결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싸워야 할 대상은 이 세상의 정부나 국가가 아닙니다. 모세가 그랬듯이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국가나 정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하나님의 정부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오직 하늘의 진리만을 추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정부를 만들려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사탄마귀가 이 세상의 임금으로 있는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다가 주님이 부르실 때에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정부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권선징악을 실행하는 자들에게 의해 세워지고 다스려지면 됩니다. 아무리 못난 정부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어느 정도 치안과 질서를 유지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국가나 권력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위배되는 일을 강요할 때입니다. 그때는 정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 명령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고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저항해야 합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법으로 칠 때 위법이 되어 죽임을 당해야 한다면, 우리는 신앙의 수호를 위해 기꺼이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 나왔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불의한 권세자가 나타나서, 예수믿는 자를 핍박하고 죽일 때에는 기꺼이 죽음에 동참함으로 하늘의 법을 따르고 저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을 수호하기 위함인 것이지 정부나 국가권력을 반대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체제를 전복하거나 이 세상에 새로운 정부를 세우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늘 언제나 국가나 정부에 맞선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권위에 맞서게 하는 일을 선동하는 것이 됩니다. 국가의 권위는 되도록 존중되어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권위를 받은 국가와 정부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지 않을 때는 예외입니다. 만약 그때에 세상의 지도자가 신앙을 억압하고, 신앙인들을 죽이려 한다면 기꺼이 죽음으로서 세상 지도자에게 대항해야 합니다. 그것은 신앙을 지키고자 함인 것이니, 민주주의와 같은 사상을 지키고자 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이지 결코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사상에 목숨을 바쳐야 하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신앙의 분파가 4가지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열혈당원과 에세네파입니다. 이중 바리새파는 말씀대로 지키려고 하는 경건한 율법주의자들을 가리키며, 사두개파는 성전의 제사장들로 구성된 자들로서, 성전을 이용하여 돈과 권력을 손에 쥐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열혈당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려고 애썼던 독립투사들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힐 때에 함께 못박혔던 자객들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마긍로 정치에는 완전히 관심을 끝 채 광야로 들어가, 물로 자신을 성결케하고, 금식하며 기도로 보낸 에세네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네 가지 유대인들의 파에 소속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열혈당원처럼 로마에 대항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세상이 싫어서 은둔생활을 하는 에세네파 사람들처럼 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직 예수님은 하늘의 진리를 전파하여, 사탄에게 매여있는 인류를 구속하여 천국으로 데려가는 일몰두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을 불법으로 간주하여 죽이려는 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일 제사였던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국가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권선징악의 일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국가가 늘 평온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국가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어긴 채,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고의로 어기도록 법을 만들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하게 외쳐야 합니다. 마치 아모스 선지자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우리는 불의한 정부나 국가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나의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국민으로서 누구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하등의 잘못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이 세상에서 부름받은 자인 것이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부름받은 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정부가 사탄에게 매수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자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끊임없이 악한 영들을 결박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이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너희들은 묶임을 받고 잠잠하라라고 선포기도를 해야 합니다.

 

2)결단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어느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핍박하는 로마에게 대항하여 반기를 들고 싸웠습니까? 우리는 정부와 국가의 배후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탄의 권세가 깨어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것들에 영향을 받아서 정치지도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나라에 정의가 실현되고 공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법을 제정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성도들은 그러한 법제정을 국가가 시도하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단호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해주면, 나중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기독교신앙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핍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믿는 것이 불법이 될 때에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고난과 순교를 각오하며 그것을 저항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라도 정부를 해체되도록 데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과 위배되는 것을 중단하라고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신앙의 수호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러나 신앙인이라도 한 명의 시민으로서, 국가에 대해서 자기나름대로 정치참여를 하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다만, 교회나 교회지도자들은 복음을 위해 부름받은 종들이기 때문에, 신앙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이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추구하고 바라는 나라는 이 세상에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요, 그러한 나라는 영적인 나라요 하늘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탄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에서 싸워서 쟁취하는 것인 것이지, 이 세상의 국가나 정부와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을 국가가 강요할 때에 그것에 저항해야 합니다. 때로는 죽음으로서 말이죠. 건투를 빕니다.

. 결단의 축복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의 바른 태도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국가와 정부에게 주어진 권세는 권선징악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의 권세에 기본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리스도인들이 진정 싸워야 할 대상은 이 세상의 정부나 국가가 아니라 그들을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사탄마귀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세상 지도자가 신앙을 억압하고 신앙인들을 죽이려 한다면 기꺼이 죽음으로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신앙인이라도 한 명의 시민으로서 국가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국가의 권위에 순종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악한 정부 배후에 있는 사탄마귀와 싸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신앙수호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복음을 위해 내 몸을 바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국가에게 주신 권위의 용도를 알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세상의 권력을 장악하라고 부추기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국가의 권위에 순복할지어다. 신앙을 불법화시키려는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는 저항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그리스도인일지라도 하나의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로구나.

2.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음이 없구나.

3.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행사하는 국가와 정부에는 순복해야 하는구나.

4.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신앙을 불법적인 것으로 획책하려는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는 저항해야 하는구나.

5.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불의한 국가나 정부가 아니라 그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악한 마귀로구나.

6.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상의 수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앙수호와 복음전파를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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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주님 앞에 결산은 어떻게 이뤄지는가?(마11:1~15)_2019-12-29(주일) 갈렙 2019.12.29 155
262 감추어져야 했지만 알려져야 했던 놀라운 소식(마2:1~12)_2019-12-25(수) 갈렙 2019.12.25 132
261 세 종류의 경배자들(마2:1~12)_2019-12-22(주일) 갈렙 2019.12.22 186
260 스룹바벨이 들려주는 놀라운 메시야 족보 이야기(마1:12)_2019-12-15(주일) 갈렙 2019.12.15 281
259 메시야의 조상 다윗이 들려주는 족보 이야기(마1:6)_2019-12-08(주일) 갈렙 2019.12.08 187
258 메시야의 족보에 담겨있는 놀라운 비밀(마1:6~11)_2019-12-01(주일) 갈렙 2019.12.01 187
257 그 길을 어떻게 영광의 길이라 할 수 있나?(요13:30~32)_2019-11-24(주일) 갈렙 2019.11.24 141
256 죽은 자를 기념하는데 왜 예수님은 되고 죽은 자들은 안 되는가?(고전11:23~26)_291-11-17(주일) 갈렙 2019.11.17 209
255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눅13:22~30)_2019-11-10(주일) 갈렙 2019.11.10 272
254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정말 비를 내리지 아니하는가?(슥14:16~19)_2019-11-03(주일) 갈렙 2019.11.02 268
253 왜 하나님은 일주일간 초막에 거주하라고 했을까?(레23:39~44)_2019-10-27(주일) 갈렙 2019.10.27 183
252 받은 은혜에 내 한 목숨 주님께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눅17:11~19)_2019-10-20(주일) 갈렙 2019.10.19 213
251 외부세력의 위협 앞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4:23~32)_2019-10-13(주일) 갈렙 2019.10.13 381
250 이제는 WCC와 WEA에 속한 교회를 떠나야 하는가?(계18:1~8)_2019-10-06(주일) 갈렙 2019.10.06 262
»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과연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18:33~38)_2019-09-29(주일) 갈렙 2019.09.29 194
248 예수님 이후 참된 지혜자는 누구인가?(마11:25~27)_2019-09-22(주일) 갈렙 2019.09.21 219
247 우리의 본향은 진정 어디인가?(히11:8~16)_2019-09-15(주일) 갈렙 2019.09.15 352
246 주기도문강해(08)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6:13)_2019-09-08(주일) 갈렙 2019.09.07 183
245 주기도문강해(0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6:9)_2019-09-01(주일) 갈렙 2019.09.01 184
244 바울의 기도와 내가 드려야 할 기도(엡1:15~19)_2019-08-25(주일) 갈렙 2019.08.25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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