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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13:22~30)

[일시] 20191110(주일) 오전9, 11

[찬송] 37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 411장 아 내 맘 속에,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PW: 믿음, MIW:

T.S: 구원받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적극적으로 그것을 붙잡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제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게 된 때에는 201410월경부터입니다. 201310월경입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을 읽다가 2가지 사실을 발견하고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3:5에 사데교회에 주신 말씀 중에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지워질 수 있다는 말씀과 22:1,3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3개가 아니라 한 개 밖에 없고, 그 보좌에 처음이요 마지막이시며, 알파와 오메가이신 전능하신 예수께서 앉아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성경을 다시 보기 시작하였고, 구원은 그저 쉽게 믿음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살펴보니, 구원은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붙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회개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회개와 천국복음에 관한 성경말씀을 찾아서 전하기 시작했는데, 201410월부터 약 3년동안 오직 회개와 천국복음을 줄곧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던 해 1220에 드디어 회개와 천국복음이라는 진리를 정리할 수 있었고 그것을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책에 쓴 내용을 간추리면 대체로 이렇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칭의를 얻는 것도 아니며,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다. 회개 없이는 칭의도 구원도 얻지 못한다.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죽는 날까지 안전한 것은 아니다. 구원은 만세전부터 예정된 것이지만 개인이 예정된 것은 결코 아니다. 구원은 한 번 믿은 순간이 결판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며, 일생을 통해서 완성된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얼마든지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

이러한 말씀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우리의 구원은 믿음과 회개를 통한 구원이자 좁은 길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 것으로 남아 있으려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구원이 전적인 은혜로 그저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늘 본문에서처럼 왜 예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그것도 계속해서 힘쓰라고 말씀하셨던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오늘 말씀 중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13:24)는 말씀을 거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반어법적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써 봐야 소용없으니 포기하라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521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참 좁으며를 찬송가에서 빼내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 본문의 말씀을 읽을 때, 그렇게 읽힙니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원이라는 것이 그저 그냥 쉽게 받게 되는 것인지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나도 이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에 안기는 그날에 구원을 받는 사람에 속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실히 믿고 깨달을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어떤 사람이 예수께 구원받는 숫자가 적은 것이 아니냐며 질문을 던지자, 예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면서 곧 문이 닫히게 되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고 경고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구원의 문을 넓게 만들어놓아서, 누구든지 구원받으라고 말씀하실 것이지 왜 좁은 문을 만들어놓고 그곳을 통하여 들어와서 구원받으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인가요?

주님은 구원받은 기회는 언제든지 있을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자신을 구원하기로 작정했다면, 어찌하든지 다 구원받게 하실 것이니 급하게 서두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왜 집주인이 문을 닫아버리면 더 이상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왜 주님은 한 번 닫아버린 문은 결코 다시 열어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때 문을 두드리는 자를 밖으로 내쫓아버리겠다고 냉정하게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 본문 말씀은 늘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참고 기다리시는 주님이 아니라 냉정하고 차가운 주님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인가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29년경 그러니까 공생애 2년차 되던 해에, 각 도시와 각 마을로 다니시면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예루살렘에 가던 여행길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4)문제발생원인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23절입니다. “주여, 구원을 받고 있는 사람이 적습니까?그러자 주님께 들려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헬라어에서 직접 직역해 보겠습니다.

(24) "너희는 좁은 문을 통하여 [단번에] 들어가기를 [계속] 분투적으로 힘쓰라.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자들이 [단번에] 들어가기를 장차 찾을(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장차 할 수 없을 것이다.

(25) 만일 집주인이 일어나게 되어질 때부터 그리고 문을 닫아버린다면, 너희가 밖에 선 채 있기를 시작할지라도 그리고 문을 두드린 채 있을지라도 [어떻게 되겠느냐?] [너희가] 말하고 있기를. "주여! 당신은 우리에게 [단번에] 열어주소서" 그러면 그가 대답한 후에 그가 [장차]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가 어디서부터 있는지 너희를 알지 못한 채 있느니라"

(26) 그때에 너희가 [장차] [계속] 말하기를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의 앞에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의 넓은 길들 안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런데 그가 [장차] 말할 것이다. [그가] 말하고 있기를. "나는 너희가 어디서부터 있는지 너희를 알지 못한 채 있느니라. 모든 불의의 행위자들아, 나로부터 [단번에] 떠나가라!"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가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것[장차] 볼 때에. 그런데 너희는 [현재] 밖에 내쫓기고 있는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울부짖음과 이빨들의 갊이 [장차] 있을 것이다.

(29) 그리고 그들(사람들)이 동쪽들과 서쪽들과 남쪽들과 북쪽들로부터 [장차] 다다를(도착할) 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장차] 기대여 앉게 될 것이다.

(30) 그리고 보라! [장차] 처음에 있을 자들이 어떤 마지막의 자들로 있느니라. 그리고 [장차] 마지막에 있을 자들이 어떤 처음의 자들로 있느니라.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있어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는 자는 그날 버림받고 말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자는 그날 버림받고 말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자신이 예수님과 교제한 일이 있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다면서 구원의 기회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밖에 내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구원은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는 것이니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고 하는 자는 그날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날 문을 두드려봤자 문을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우리들은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질 때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것이라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그것을 굳게 붙잡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어떤 사람은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니 안심하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끊을 수 없으니 한 번 얻은 구원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설령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회개시킬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이러한 주장은 맞는 것일까요? 만약 죄를 짓더라도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으며, 죄를 지으면 다만 징계만 받을 뿐이라는 말이 옳은 것일까요? 그런데 이러한 주장을 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10:28의 말씀입니다.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래서 이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 한 번 주신 영생을 받은 자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절대주권에 따라 이미 만세전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해놓은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데 누가 과연 영생을 빼앗아갈 수 있겠느냐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렇구나. 한 번 받은 영생을 빼앗기도 아니하고 또한 그러한 영생을 받은 자는 영원히 멸망당하지도 아니 하는구나하고 믿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자신이 미리 정해놓은 논리와 교리적인 관념에 빠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그 영생을 받게 되는지 누가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을 사람인지는 이 구절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이 누군지에 관해서는 바로 앞 구절에 들어 있습니다.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그렇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양들로서, 주님의 음성을 현재 듣고 있으며, 주님께서도 그를 알고 있고, 계속해서 주님을 따르고 있는 자입니다. 그런 자가 아니면 그에게 주어진 영생은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면, 그들에게 주어진 영생이란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시대의 생명(조엔 아이오니온)”에 불과하며, “영원토록이라는 말도, “에이스 톤 아이오나(그 시대까지)”라는 뜻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얻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선물로서 값없이 턱 던져주었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문제는 계속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분의 말씀에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이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2d186729.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67pixel, 세로 295pixel 뜻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분을 계속해서 따라가야 영생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 구원의 모든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구원의 판단의 기준은 자기가 만들어놓은 논리나 교리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은 오직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전파했던 사도들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기의 논리가 옳다고 주장하려고 성경을 잘못 번역하거나 해석하려고 시도해서는 아니 됩니다.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관점이나 기존의 만들어놓은 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말씀이어야 하며 그것의 핵심은 예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먼저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적인 틀을 만들어놓고는 거기에다가 성경말씀을 끼워 맞춘다면 우리는 이단의 방법을 사용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주장합니다. 13:24의 말씀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번역이 잘못 되었다고 하면서 자기의 논리를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13:24의 말씀을 우선 개역개정성경과 킹제임스번역으로 대조해 보겠습니다.

13:24[개역개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13:24[킹제임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자들이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능히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러분은 이 번역본에서 뭔가를 눈치 채셨습니까? 두 번역이 반대의 번역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역개정성경의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누구나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좁은 문이지만 그것을 통과하여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들어가기를 구하겠지만 결국 들어가는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킹제임스 번역은 이와 반대입니다. 들어가기를 힘쓴다고 해도 능히 들어가지 못한다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헬라어원문은 실제로 어떻게 나와 있을까요?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2d180001.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67pixel, 세로 295pixel

 

(24) "너희는 좁은 문을 통하여 [단번에] 들어가기를 [계속] 분투적으로 힘쓰라.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자들이 [단번에] 들어가기를 장차 찾을(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장차 할(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지 말고 주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기다리라고 주장하는 분들 중에는 이렇게 번역하는 분이 있습니다.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투쟁하라.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절대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역개정성경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반어법적인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절대 구해서는 안 된다는 문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하지 말라는 강한 부정의 문장이 되려면, “우 메라는 부사어가 나와야 하는데, 여기서 우크만 나옵니다. 누구 허락받고 절대로라는 혹은 능히라는 그 문장에 절대부사로 집어넣어 예수님의 말씀을 변경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표현은 무슨 뜻입니까?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아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적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믿기만 하면 구원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문이 닫히기 전에 구원받기 위해 분투적으로 힘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잘못 번역하여, 아예 구원받을 것은 꿈도 꾸지 말라는 식으로 해석하여, 구원을 위한 인간의 노력이 아무 필요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줄 때에 적극적으로 구원받기를 힘쓰지 않는다면 어느날 문지기이신 예수님이 문을 닫아버리면, 아무리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외쳐도 소용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은 구원받을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 앞에서 먹고 마시지 않았습니까? 또한 당신은 우리 앞에서 가르치지 않았습니까?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누군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 자신은 자기 딴에는 예수님의 사역도 지켜보았고 그분이 교육하는 것도 지켜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유대인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그토록 힘쓰라고 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님과 교제가 있었고 그분이 교육하는 장면을 본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까지 자신이 구원에서 탈락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들려주신 메시지를 듣기만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들도 주님과 교제하고 있고 주님의 말씀을 접한 적이 있으니, 자신은 구원받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진정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원의 문이 비록 좁지만 그 구원의 문이 열려있을 때에 그 구원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오기를 힘쓰라고 얼마나 그들에게 말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과 주님과 관계만을 생각한 채 구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그만 그 순간에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왜냐하면 혈통적인 측면에서 이스라엘 나라 사람에게 속했다고 하는 것이 구원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방인들이 오히려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구원의 잔치에 동참하는 것을 그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 구원의 문이 결코 넓거나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다 구원받거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으면 놓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번 믿었으니 그것으로 구원이 끝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지속적으로 회개를 통해 죄를 씻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오늘 자신에게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질 때에 분투적으로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적극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한 번이라도 더 들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주님과의 관계만 생각했지 주님의 말씀과 명령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날 버림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하지만 우리는 주님말씀을 곡해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데에 우리의 행위로 공로가 필요하다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구원받으려면 우리의 선한 행위가 추가되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을 받는 길이 비록 좁고 험한 것이지만 그것을 얻으려면 분투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것에 분투해야 합니까? 그것은 오늘 본문에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누군지가 나옵니다. 그들은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첫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이 진짜인 줄 믿고 끝까지 따라갔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놓치 않았습니다. 둘째 선지자들입니다. 선지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장차 메시야가 와서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외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회개를 외치는 자들입니다. 메시야를 영접하려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 자들입니다.

 

 

4. 영적 법칙

과연 회개가 쉬우며,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구원을 받는 것이 비록 어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잘 들어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면 구원받을 수 있음을 알고 지금 기회가 주어질 때에 적극적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설명은 다 자세히 못하지만 누가복음은 사실 회개복음입니다. 누가복음 5에 베드로의 회개가 나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 그리고 누가복음 15에는 돌아온 탕자의 회개가 나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6에서는 음부에 떨어진 부자의 때늦은 회개가 나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8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오는데 거기서도 세리의 회개기도가 나옵니다. 그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다만 가슴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8:13)”. 그리고 누가복음 19에는 세리 삭개오의 회개가 나오고, 누가복음 23에서는 한 편강도의 회개가 나옵니다. 회개해야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빌라도에게 죽임당한 갈릴리 사람이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며, 실로암 망대에 치어죽은 열여덟 사람이 죄가 더 많아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그렇습니다. 좁은 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10:22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아도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하루가 지나가기 전에 주님께 회개하여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 결단의 축복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잘못하게 되면, 마지막에 가서 거꾸로 역전될 수 있습니다. 마땅히 구원받을 줄 알고 있아는 자가 그만 구원에서 탈락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자가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구원은 기회가 주어질 때 적극적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방법에 따라 회개하고, 끝까지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아서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적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구원받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구원의 기회가 주어질 때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좁은 길은 날마다 회개하는 것이요,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좁은 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구원의 문이 좁아도 그리로 들어가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날마다 회개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힘들어도 오직 외길을 가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넓은 패망의 길로 유혹했던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좁은 문이라도 그리로 들어가기를 더욱 힘쓸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누구든지 믿고 회개함으로 구원을 얻는구나.

2.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구원을 얻는구나.

3. 구원받을 기회는 붙잡아야 하는구나.

4. 영생얻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구나.

5. 좁은 길 구원이라도 구원얻는 자가 있구나.

6. 기회를 놓친다면 후회한다해도 소용없는 때가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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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메시야의 조상 다윗이 들려주는 족보 이야기(마1:6)_2019-12-08(주일) 갈렙 2019.12.08 187
258 메시야의 족보에 담겨있는 놀라운 비밀(마1:6~11)_2019-12-01(주일) 갈렙 2019.12.01 187
257 그 길을 어떻게 영광의 길이라 할 수 있나?(요13:30~32)_2019-11-24(주일) 갈렙 2019.11.24 141
256 죽은 자를 기념하는데 왜 예수님은 되고 죽은 자들은 안 되는가?(고전11:23~26)_291-11-17(주일) 갈렙 2019.11.17 209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눅13:22~30)_2019-11-10(주일) 갈렙 2019.11.10 272
254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정말 비를 내리지 아니하는가?(슥14:16~19)_2019-11-03(주일) 갈렙 2019.11.02 268
253 왜 하나님은 일주일간 초막에 거주하라고 했을까?(레23:39~44)_2019-10-27(주일) 갈렙 2019.10.27 183
252 받은 은혜에 내 한 목숨 주님께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눅17:11~19)_2019-10-20(주일) 갈렙 2019.10.19 213
251 외부세력의 위협 앞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행4:23~32)_2019-10-13(주일) 갈렙 2019.10.13 381
250 이제는 WCC와 WEA에 속한 교회를 떠나야 하는가?(계18:1~8)_2019-10-06(주일) 갈렙 2019.10.06 262
249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과연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18:33~38)_2019-09-29(주일) 갈렙 2019.09.29 194
248 예수님 이후 참된 지혜자는 누구인가?(마11:25~27)_2019-09-22(주일) 갈렙 2019.09.21 219
247 우리의 본향은 진정 어디인가?(히11:8~16)_2019-09-15(주일) 갈렙 2019.09.15 352
246 주기도문강해(08)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6:13)_2019-09-08(주일) 갈렙 2019.09.07 183
245 주기도문강해(0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6:9)_2019-09-01(주일) 갈렙 2019.09.01 184
244 바울의 기도와 내가 드려야 할 기도(엡1:15~19)_2019-08-25(주일) 갈렙 2019.08.25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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