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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언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것(고전14:14~25)

[일시] 20150802일 주일낮예배설교안

[찬송] 찬송 48장 거룩하신 주 하나님,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PW: 믿음, MIW: 마음으로

T.S: 믿음이란 마음으로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방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방언에 대해 알고 나니 방언을 사모하는 성도님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방언을 받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들어보시면 자신이 방언을 더 사모해서 받야야 하는지 아니면 방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어떤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하는지 감이 잡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방언에 무엇인지에 대해 들었습니다. 방언은 한 마디로 표적이며, 은사이며, 기도의 또 다른 영역입니다. 다시 말해, 방언은 첫째, 믿는 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때 주어지는 표적으로서, 성령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표적들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16:17~18). 사실 믿는 자들에게 따라오는 표적이 상당히 있습니다. 축사(귀신을 쫓아낼 수 있음), 방언말함, 귀신을 결박함, 어떤 독으로부터도 보호받는 것, 치유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방언은 둘째, 성령의 다양한 은사(선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고전12:. 사실 성령의 은사들에는 지식의 은사, 지혜의 은사,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함, 영들분별함, 방언말함, 방언들 통역함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셋째, 방언은 자신의 영으로 드리는 기도의 다른 한 방편입니다. 고전14:2에 보니, 방언은 하나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서 하나님께 비밀을 아뢰는 것이며, 고전14:14에 보면, 자신의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방언은 기도로 자기와 남들을 섬기라고 주신 은사인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 교인들방언을 성령의 최고의 은사로 생각하고는 그것을 자신의 영성을 자랑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했습니다. 방언의 용도를 잘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방언은 개인의 덕을 세우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은사이므로, 다른 사람(성도)에게 대놓고 말해서는 아니 되는 은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역없이 방언만 말하고자 한다면, 방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은사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단에서는 방언의 은사가 만능인 것처럼 과장되이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방언은 말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순복음의 교단사람들이 오히려 제사의 음식을 먹음으로 우상숭배하여 지옥에 더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보고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만능이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방언을 많이 말하는 자라 할지라도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방언을 그렇게 많이 사용하는 교단 사람들의 인격이 매우 거칠다는 것을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인격의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방언을 많이 말하는 것과 인격의 변화와는 상관관계까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방언이 개인의 덕을 끼치기에는 매우 유익한 은사이지만 방언을 아무리 말해도 대신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방언을 말한다 할지라도 마음 곧 이성으로 해야하는 일을 방언이 대신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방언은 성령께서 자기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표적이니만큼, 방언으로 말하고 있다면 자기는 구원받은 것이 아니냐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뿐만 아니라,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성령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니만큼 죄를 지어도 덜 지을 것이고, 지은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지는 아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정말 올바른 생각일까요?

또한 방언은 말하게 되었다면 이미 신령한 사람이 된 것이니, 자신이 이제 방언으로만 쭉 기도한다면 영적인 삶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것도 과연 올바른 생각일까요? 또한 방언을 말하게 되면 자기는 이미 신령한 사람이 되었기에 그때부터는 그 누구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 그리고 주일날 굳이 교회에 까지 나와서 설교를 듣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과연 그런 생각이 맞는 것일까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에 와서도, 방언이나 예언이나 신유같은 성령의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 부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방언의 은사가 만능인 것처럼 생각하고 방언기도만 할 뿐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도 하지 않고 또 주의 종으로부터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과연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55년경 바울이 방언의 은사만을 최고로 여기고 새로 들어온 신자들을 배려하지도 않은 채 그것을 자신의 자랑거리로 떠벌리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방언의 은사는 영이 기도하는 기도의 은사이니 더 많이 기도하는 데에 써야 한다고 말씀하면서, 아무리 방언으로 말한다 하더라도 결코 방언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문제발생원인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방언을 받은 자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하겠지만, 방언기도로도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문제 심리묘사

이쯤되면 정말 힘들게 방언을 받았는데, 방언에도 한계가 있다고하니, 괜히 방언의 은사를 받지 않았나?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분은 더 많이 기도를 바쳐야 할 사람들이라는 사실과 아울러, 방언을 받지 않았더라도 신앙인이라면 정말 힘써야 할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방언의 한계를 모르는 자는 방언을 말한다고 교만해질 수 있으며, 방언을 못받은 자는 괜히 주눅이 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고 안심하거나 기뻐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방언을 말하게 된 것이 사명인 줄 알고 더욱 기도에 매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방언을 말해도 절대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것을 보완해야 하는것입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받은 은사를 자랑거리로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사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알고 보완하여 천국에 들어가시기를 원하십니다.

 

. 방언에도 한계가 있다.

여러분은 혹시 불신자들의 영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신 분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정녕 불신자라 할지라도 믿는 자처럼 똑같이 한 개의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은 놀랍게도 이 세상을 누가 창조하셨는지 알고 있으며, 예수님이 누군신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이 세상임금으로서 자기를 따라오도록 사람에게 쾌락과 음란과 명예와 인기와 돈에 미치도록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타락한 천사들인 귀신들이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누구시며,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했을 때 장차 어떤 심판을 받게 되는지 전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불신자들의 영은 지금도 이렇게 자기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 지옥가기 싫어. 제발 회개해. 더 이상 죄짓지 마. 너도 예수 믿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의 탄식을 자신의 마음 곧 이성으로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자들의 영도 불신자들의 영처럼 탄식하고 있는데, 단지 한 가지 그들과 차이가 있다면, 믿는 자들의 영은 자신의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이 드리는 기도와 탄식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대체할 수가 없습니다. 영의 기도와 탄식은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단지 도와줄 수만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 곧 이성이 이를 깨닫고 돌이킬 때에 영이 하는 기도가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방언기도는 기도를 더 많이 하라고 주신 은사이지, 방언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방언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방언이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방언으로 드리는 기도 즉 영의 기도로서 해결되지 아니하며,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그리고 방언기도의 한계를 깨닫고 이를 잘 보안하여 꼭 천국에 이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방언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방언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것을 3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방언기도를 한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특히 회개기도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14).

고전14:14-15a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이성)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렇습니다. 방언기도는 영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것도 나의 영을 성령께서 꽉 붙잡아 주셔서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지 못하도록 바꾸어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로 바꾸어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기도요, 악한 것이 없는 기도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자기의 영이 자기자신과 가족과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목회자와 선교사들을 기도하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자신의 마음에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카르디아(heart)”가 아니라 누우스(mind)”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아무리 영으로 기도를 한다 할지라도 나의 지적인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누우스가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 기도가 좋기는 하지만 그것이 마음으로 기도해서 맺어야 할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으로 기도해야겠지만 반드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으로 드려야 할 첫 번째 기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회개의 기도입니다. 예루살렘의 마가다락방에 모여있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오순절날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영으로 기도드리고 있는 것을 15개국에서 올라온 헬라파유대인들이 들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그들에게 뭐라고 하였습니까? 영의 기도를 들었고, 영의 기도를 통역해서 들었으니 너희들은 회개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까?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회개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라는 헬라어 단어를 보면, 그 단어가 헬라어로, 이성으로 기도하라고 던 바로 그 단어 즉 누우스라는 단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헬라어 동사는 메타노에오라는 것인데, 이 단어는 메타(after)’에다가 누우스(mind)’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동사입니다. 회개하다는 뜻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뒤에 먹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누우스라는 단어는 카르디아와는 다른 단어입니다. 카르디아(마음)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관으로서 영의 기관이라고 한다면, 누우스(이성, 이해력, 지성)는 지적인 기능을 관장하는 기관으로서 혼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누우스라는 단어를 고전14:19에서는 깨달은 마음이라고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내가 영으로 기도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내가 깨달아서 회개치 못한다면 방언기도가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방언기도는 일체의 인격과 지적 기능을 수행하는 좌소인 누우스의 변화와 성장에 관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는 영으로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해와 깨달음 및 인격변화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방언으로 기도한느 것은 나라는 존재의 전체 즉 전 인격이 아니라 단지 그 가운데 일부분인 영과 관계되는 것일 뿐, 내 본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성은 활동하지 않은 채로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성도가 자신은 방언으로 많이 기도하고 있으니 자신은 회개하지 않아도 천국에 들어갈거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대단히 위험한 사람입니다. 방언기도가 회개기도를 대신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의 기도가 마음으로 드려야할 기도를 대신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의 기도는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고 한다면,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우리의 자발적인 의지와 깨달음으로 주께 드리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 방언기도를 못하시는 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즉시 회개하신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이 말씀에 다시 주목해보십시오.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다시 말해,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는 등의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사용하고, 호화호식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사실 예언의 은사와 능력행함의 은사를 어디 쉽게 받을 수 있는 은사입니까?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해야 얻어지는 은사입니까?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런 은사들을 받은 자라도 얼마든지 천국에 못 들어가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답은 방언으로도 기도하고 영으로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방언기도를 한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와 찬양을 방언이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15b!~17)

고전14:15-17 그러면 어떻게 할까...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다시 말해 영으로 기도하여 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상대방을 축복하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감사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 방언기도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송하고 감사하려면 영으로만 할 것으로 아니라, 진정 우리의 이성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감사할 일이 있으면 영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끝내지 마십시오. 만약 그래도 괜찮은 것이라면 예수께서 는 왜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시고 나서, 자기에게도 감사하러 돌아온 한 명의 사마리아 문둥병자에게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17:17~18)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영이 감사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이 문둥병자처럼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시 돌아와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드릴 것은 없어도 감사의 경배를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의 기도가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찬송과 감사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과 이웃에게 감사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마지막으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배우는 설교나 가르침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19).

고전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말의 뜻은 나 자신이 아무리 일만 마디의 방언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마땅히 들어서 알아야 할 설교나 가르침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방언을 날마다 3~4시간을 하고 있다고 칩시다. 그는 매주 설교를 듣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성경말씀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결국 마귀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매주 알아듣기 쉽게 선포되는 주일 설교말씀을 소홀히 여긴다거나 성경말씀을 전혀 배우려하지 않는다면, 마귀는 그 사람을 보고 쾌재를 부를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성도는 마귀의 밥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

다시 말해, 방언으로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들어서 깨달고 믿어야 할 계시나 지식, 교훈들을 방언이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방언으로 일 만 마디의 기도를 한다 해도 깨달은 마음(이성)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더 배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혜와 지식의 은사로, 계시와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지식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아는 것이요, ‘예언은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는 것이며, ‘가르치는 것은 계시의 내용을 각자의 수준과 형편에 맞게 풀어 설명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의 기도인 방언은 믿는 자의 표적이요 성령의 선물이자 기도 많이 하라고 주신 은사이니만큼 자신은 지금 영의 기도를 많이 하고 있으니,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단지 방언은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방언기도를 많이 했으니 안 해도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이성)으로 해야 할 일들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첫째,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수시로 감사와 찬양을 주께 바쳐야 합니다. 셋째, 매주 설교말씀을 들어야하고 새벽시간에 나오든 따로 정하든 성경말씀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4. 영적 법칙

믿음이란 방언을 말했다고 자신은 이미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이 영의 기도이니만큼 영의 기도가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돕기 위해 존재함을 안느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드려야 할 기도를 결코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언기도가 마음으로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주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방언은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므로 그것만으로는 남을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이란 아무리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깨달은 마음을 사용하여 남들을 가르치고, 또한 성도들은 기꺼이 주의 종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방언기도가 영적 지식을 직접적으로 알게 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방언기도를 통역해서 나오는 영적 지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떤 것의 일부분만을 알려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을 귀중히 여기고 성경말씀을 늘 듣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그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믿음으로 방언의 은사만이 최고의 은사라고 생각했던 것을 내려놓고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첫째,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회개했습니다. 방언 못하는 자들을 배려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둘째,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던 바울일행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셋째, 그들은 방언기도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것은 기도를 많이 하라고 주신 은사인 줄 알고 그것을 가지고 자기자신과 가족과 나라와 민족, 목회자와 전도자를 남을 섬기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더불어 날마다 주의 종으로부터 말씀을 배우고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였습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은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니 신령한 사람인 줄 착각하고 그것을 떠벌리듯 자랑만 하고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방언의 은사는 기도 많이 하라고 주신 은사인 줄 알고 더욱 더 영으로 드리는 기도를 많이 하여, 사람이 마음으로 깨닫고 주께로 돌아오도록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방언을 받은 자는 방언의 은사를 받지 않은 자들에게 으시대는 태도를 지양해야 합니다. 오히려 깨달은 마음으로 믿음이 약한 지체를 돕거나, 회개하고 감사찬양을 드리며 열심히 말씀을 배우는 지체들과 함께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2)결단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방언을 아무리 말해도 이성의 이해력으로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듣는 시간에는 집중하지 않고 나중에 집에 가서 방언을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방언의 기도가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성)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듣고 깨닫는 것이요, 죄를 회개하는 것이요, 돌아볼 때 너무나 감사한 것에 대해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요, 우리의 입술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영적 지식을 남들에게도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 결단의 축복

만약, 우리가 방언기도의 한계를 알고 마음으로 해야 할 일들을 잘 감당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주실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회개하여 구원받게 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감사와 찬양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삶에 더욱 풍성한 열매들을 맺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셋째, 말씀을 제대로 배워서 영들분별함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아무쪼록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는 분들은 더욱 더 기도로 섬겨주시기를 바랍니다. 혹 방언으로 기도할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시고, 감사할 일이 생기면 꼭 감사와 찬양을 주 앞에 드리시고, 내가 먼저 깨달은 것을 남들에게 알려주어 그들도 실수함없이 신앙생활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방언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은 표적이자 은사로서 기도를 많이 하라고 주신 선물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그것이 대신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해도 그것이 마음으로 해야 할 회개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해도 그것이 마음으로 해di 할 감사와 찬양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해도 마음이 배우는 설교나 가르침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방언으로도 기도하고 마음으로도 기도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방언만 앞세우지 말고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꼭 감당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마음을 다해 회개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마음을 다해 감사하고 찬양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마음을 다해 말씀을 듣고 또 배우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방언이 만능인 것처럼 꾸미려했던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떠날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마음으로 회개하고 마음으로 감사하며,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배울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방언은 믿는 자의 표적이요 성령의 은사이며, 기도를 많이 하라로 주신 선물이었구나.

2. 방언이 신령한 은사이기는 하지만 만능은 아니로구나.

3. 방언만으로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 있구나.

4. 영으로 드리는 기도라도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대신할 수는 없구나.

5. 방언과 같은 수많은 은사들을 아무리 받았더라도 그것이 구원을 보장해주지는 아니하는구나.

6. 마음을 다해 회개하고, 마음을 다해 감사하고 찬양하며, 마음을 다해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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