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의 행위들로부터는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이 말씀을 오해하여,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어떠한 죄를 지어도 괜찮으며, 자신이 이미 받은 칭의와 구원에 있어서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과연 그러한 뜻에서 이러한 언급을 했던 것일까? 그런데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읽어보면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울이 율법의 행위들과 관련지어서 말을 할 때에 그것은 십계명을 어겨도 괜찮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율법의 의식적인 것들(할례, 음식, 안식일, 절기, 부정)의 실천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얻으려는 시도와 관련지어 그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데에 십계명의 준수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와 밀접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은 그것을 들여다보자.
1. 들어가며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방법은 대체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부터 말미암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하여 얻는다고 말하였다(갈5:4, 2:16, 롬3:28).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얻는 데에 아무런 지장은 없다는 것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개혁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자신의 행위에 아무런 상관없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오늘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성도들을 향하여 사람이 어떻게 의롭다함을 받는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해서는 칭의를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람이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거꾸로 사도바울은 우리가 칭의를 얻는 데에 율법의 행위들이 필요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아도 칭의를 얻는데에 지장이 없다는 뜻인가? 오늘은 이 두 방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2.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사도바울이 말했던, 율법의 행위로부터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율법을 지킨다고 해도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만 믿고 있으면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가? 예수님만 믿고 있으면, 우상숭배해도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으며, 예수님만 믿고 있으면, 간음을 해도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사도바울이 율법의 행위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의 진짜 의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사도바울이 율법의 행위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사람이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율법 중에서도 의식법들을 아무리 잘 지킨다고 해도 그것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즉 사도바울은 "율법의 행위들"을 언급한 대상은 "십계명준수"가 아니라,"의식법들의 준수"를 말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어떤 의식법의 준수가 사람에게 칭의를 줄 수 없다고 했는가? 그것은 칭의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나와있는 말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의 경우다. 첫째, 할례의 경우다(롬2:25~29, 갈5:2~65,11, 6:12~15). 이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데에는 할례를 행했다는 의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 그들은 난지 팔일만에 이미 할례를 받았던 자들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이미 선택된 백성에 속하며, 또한 그것은 자기들을 의롭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혹시 할례를 받아 유대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육체에 할례를 행한 것 자체가 그로 하여금 진정한 언약백성이 되게 해주거나 칭의를 얻게 해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자신의 몸에 할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경우라면 할례 자체가 그 사람에게 그 어떤 효력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육체에 할례를 행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에 진정 할례를 행하는 일 곧 자기자신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는 자에게 할례는 그리 중요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할례를 의식행위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사람의 마음에 어떤 변화를가져다 주거나 주님의 죽으심을 통한 의의 전가가 결코 이뤄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언약백성이 되거나 의롭게 되기 위해서 할례를 육체에 행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 행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경우다(갈4;10, 골2:16). 이는 율법 중에서 안식일법을 포함한 절기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세상의 초등학문에 속하는 율법, 그것들 중에서도 의식법에 속하는 절기법의 준수가 사람을 의롭게 해 주는 데에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달랐다. 그들은 날(안식일과 금식일), 달(월삭), 절기(유월절,초실절,맥추절,초막절 등), 해(면제년, 희년)을 목숨처럼 지켰다. 그래야 자신은 언약자손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자신을 의롭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그런 것들은 천박한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으로서, 그것 자체가 그리스도에게서 의롭다함을 얻도록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안식교의 경우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거나, 안식일을 주일로 대체하여 지키는 것은 우상숭배행위에 해당하며 그것이 게13장에 나오는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666표는 우상숭배의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셋째, 마지막으로 먹고 마시는 것을 지키는 경우다(골2:16). 이것은 율법 중에서 정부정법 혹은 정결법의 준수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깨끗하게 하거나 거룩하지 하거나 의롭게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나중에 좀 더 확대되어, 이방인과 접촉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은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것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틀렸다는 말이다. 무엇은 먹고 무엇은 먹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결케 되거나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 예수만 믿고 있으면 우리는 칭의를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은 끝까지 계속해서 유효한 것인가?
그렇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사람은 진실로 의롭함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원칙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보면 사실은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각론으로 들어가서 보았을 때에는 이 문제는 생각해볼 많은 의문을 자아내게 하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종교개혁의 전통 아래에 있는 자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5대 선언인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우리 하나님께 영광" 가운데 오직 하나인 "오직 믿음"을 과신하고 맹신하고 있다고 판단 된다. 왜냐하면 이 두 계명을 너무 강조한 나버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예수님을 믿는다고면서 지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면), 자신은 무슨 죄를 현재 짓고 있어도 칭의가 이미 주어진 상태이며, 그 칭의로 말미암아 자신이 구원받는 일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판단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만(only)을 통하여 그 사람에게 칭의가 주어진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의가 주어진다는 말은 "오직 믿음" 곧 "오직 지적인 동의"만으로 칭의를 받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가 예수님의 속죄를 온전히 믿고 신뢰할 때 그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주어진다고 말하기보다는 "오직 믿음과 회개" 혹은 "오직 예수와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다고 말해야 한다.
이는 칭의의 근거에는 예수 이외에 그 어떤 다른 것도 끼어들 수 없으며, 끼어들어서도 아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를 보라.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칭의를 얻거나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토요 안식일 준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레11장에 나오는 음식규정에 따라 부정한 짐승은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품성의 변화를 얻어 완전성화(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다 안식교를 이단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예수님 이외에 또 다른 무엇인가가 끼어있어야 거룩함도 얻고 칭의도 얻으며 구원도 얻는다는 주장은 정말 잘못된 주장이기 때문이다. 왜나하면 예수님을 믿는 자라 할지라도 십계명을 준수하고 있지 않는 자는 마지막 날 심판대에 섰을 때에 하늘의 생명책에서 자기의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도바울은 한 번도 십계명의 준수를 포함하여 안식일 준수를 거론하지 않았던 것이다.
4. 그렇다면 칭의와 관련지어 우리는 무엇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칭의와 관련지어 우리는 과연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고 살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 믿음과 회개생활 여부요, 둘째는 십계명준수와 의식법들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라 할지라도 칭의를 얻으려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야 할 뿐만 아니라 최소한 회개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끗히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칭의와 관련지어서 자신은 이미 칭의를 받았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십계명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면 자신은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칭의의 은혜를 아는 자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더불어 자신은 지금 의식법들을 지키고 있으니까 자신의 받은 칭의과 구원은 안전하다고 쉽게 판단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진정 예수님을 내 구주요 속죄물로 믿고 있는자는 자신의 범죄를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으며, 십계명을 준수하지 아니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것 하나 이유 때문에 자신은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것 때문에 지금 현재 자신이 범죄하고 있는데도 자신이 장차 구원얻는 데에는 아무런 영향을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잘못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미래에 있을 우리의 구원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항상 현재가 중요하다. 지금 계속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신뢰가 굳건하지가 중요하다. 또한 지금도 지은 죄들에 대한 회개생활을 지속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십계명을 어기면서 십계명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회개 그리고 십계명준수가 잘 되어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여전히 우상숭배하고 있고, 음란하는 등 십계명을 어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칭의를 받은 자라도 마지막 순간에 버림받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믿음생활을 제대로 하기를 원하면 반드시 회개가 뒤따라야 하며, 자신이 어떻게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자발적인 순종이 뒤따라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늘 의무적으로만 무슨 일을 감당하고 있다면 그는 아마도 율법주의자일 확률이 높다. 율법주의자는 인생이 매우 힘들다. 지친다. 자기를 늘 율법의 잣대로 재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 안에서, 믿음 안에서 자유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방종하는 데에 쓰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당하게 그리고 선한 일에 사용해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18년 12월 21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