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고린도후서강해(04)] 고린도후서의 인사말과 축도에 나타난 성령 하나님의 비밀(고후1:1~2,13: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1. 들어가며
고린도후서에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알려주는 몇몇 단서들이 나온다. 그 단서들은 고린도후서의 맨 처음과 중간과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나온다. 고린도후서의 서두의 머리말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온다. 그리고 중간에 '그런데 주는 그 영'이라고 나온다(고후3:17). 그리고 맨 마지막 축도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성령'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쓴 이 편지를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가 있으며, 그중에서도 성령이 왜 고린도후서의 서두의 인사말에는 나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왜 성령께서는 서두의 인사말에는 나오지 않지만 편지의 축도에는 나오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나 성부와 성자와 성자의 위격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1561년에 나온 벨직 신앙고백에 따르면,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고, 성자는 성부가 아니시고, 이와같이 성령은 성부와 성자가 아니심이 명백합니다."라고 규정해 놓음으로써,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이 훼손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이요(사9:6, 딤전3:16), 성령님은 주님이신 예수님이 또 다른 오심이기 때문이다(고후3:17).
그러므로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공부하려고 할 때에는 교리를 따라가서는 아니 된다. 교리는 단지 성경을 해석하고 요약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에 나온대로 믿어야 한다. 성경만이 진리일 뿐 교단에서 만든 교리는 진리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교리는 교단마다 다 다른데, 어떤 것들은 정반대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교단의 교리가 제대로 된 것이라면 다른 교단의 교리는 틀린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한 쪽은 정통이 되는 것이고 또 한 쪽은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단 교리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후13: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그렇다. 우리는 진리만을 말하려고 해야 한다. 그것은 성경66권에 나오는 것을 진리로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만이 우리를 참된 구원으로 이끌어주며, 우리를 잘못된 이단세력으로부터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항상 자신을 성경의 진리만을 전하리라는 각오와 결단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야 한다.
3. 왜 사도 바울은 서두의 인사말에서 성령의 기원을 넣지 않았는가?
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뿐만 아니라 자신이 쓴 모든 편지들의 서두의 인사말에서, 성부와 성자의 기원만을 언급하고 성령의 기원은 언급하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사9:6, 딤전3:16). 그런데 이 비밀은 한 분 하나님의 비밀에 담겨있다. 즉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분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오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실 사도 바울은 서두의 인사말에서 하나님의 기원만 쓰면 되었다. 하지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로 오신 예수님도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든 이들이 알 수 있도록 일부러 예수님을 언급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쓰지 않고 일부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기 때문에, 구약의 성도들이 불렀던 '주'(아도나이)라는 명칭을 일부러 예수님에게 사용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유대인들을 위한 것도 되고 이방인을 위한 것도 된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인정하고 있는데, 편지의 서두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아들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음을 알고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둘째로, 아들이 죽고 부활승천하여 오순절날에 보내주신 성령님은 예수님의 또다른 오심이었기 때문이다(요14:18~19, 고후3:17, 고전15:45). 그것은 고린도후서 3:17에서 고스란히 들려준다. 그것은 이제 주님은 그 영 곧 성령이라고 한 것이다. 구약시대만 해도 주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으니 처음에는 그 사실을 잘 몰랐지만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시자 제자들은 그제야 비로소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자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구약이 나타난 한 분 하나님 곧 여호와와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구원을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속죄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로 되돌아가셨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그분은 아버지의 품 속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으셨다. 그리고 당신이 이 땅에서 행하신 일 곧 속죄사역을 모든 죄인들이 받아들여 구원받을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을 당신을 대신하여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14:18~19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이는 예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재림하실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으로 다시 오시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가셨지만 보혜사 성령으로 다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의 또 다른 오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이제 주는 영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고후3:17). 그리고 바울은 이미 고린도전서에서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 생명주는 영이 되신다는 것을 알려준 바 있다(고전15:45). 그러므로 서두의 인사말에서 굳이 성령님을 언급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이 곧 성령님의 오심이었기 때문이다.
4. 바울이 말했던 성령 하나님은 대체 어떤 분이신가?
사실 하나님께서 한 분이신데 그분이 곧 예수님으로 오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만세전부터 존재하셨던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으로 오셨다는 식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렇지만 이 말만 따로 떼어서 본다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아들로 오셨다고 해야 가장 옳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제 존재양식면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존재하시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에도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아들은 이미 아버지의 품 속에 영원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1:18). 그러나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존재하셨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삼신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래 세 분으로 존재하셨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질에서 하나요 뜻에서 또한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하나님의 아들의 나타나심으로 말하기보다는,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좋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믿음을 훼손하지도 아니하면서, 또한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기에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에 존재하시게 되었다고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대체 어떤 분이신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령님도 하나님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성령님은 항상 하나님의 영이나 여호와의 영 혹은 주의 영으로 표현되었을 뿐 성령 하나님이라고 표현된 적은 없었다. 이는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은 아직 단독적으로 활동하신 적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성령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으로서 활동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당신이 갖고 있는 생명을 성령님께 드리심으로, 성령은 이제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이때부터 단독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므로 이때부터는 성령님도 성령 하나님이라고 표현해도 되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님의 영으로서 하나님과 아들의 또 다른 오심이지만, 동시에 단독적으로 오셔서 활동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구약시대와 예수님 공생애 때만 해도 성부와 성자에 의존하는 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순절 이후부터는 단독적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성령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기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하심을 함께 언급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도 하나님이시며, 예수님도 하나님이시며, 성령님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
5. 나오며
한 분 하나님이시면 삼위일체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2가지만 알면 사실 이러한 논쟁으로부터 해방받게 된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명확하지 하지 못한다면, 자꾸 이단들이 우리 순진한 성도들을 속이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삼위일체 신앙고백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만세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아들 하나님도 계신데, 어찌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 계실 수 있겠느냐 주장한다. 그래서 선량한 성도들을 미혹하여 장길자라는 여인을 어머니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미혹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는 100% 이단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하나님의 반열에 올려서 하나님으로 섬기라고 종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히 우상숭배집단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단이 발생하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교회의 설립자인 안상홍만 탓할 일은 결코 아니다. 이미 교회의 정통신조에서도 이미 이러한 잘못된 고백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초기교회 신앙고백의 총 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칼케돈 신조(A.D.451)에서도 이미 동정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데오토코스)'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간 예수님을 태어나게 했기에 예수님의 어머니일 뿐이다. 그녀는 결코 하나님을 낳은 어머니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고백 때문에 지금까지 천주교에서는 예수님보다도 마리아를 더 높이려고 한다. 그러므로 천주교도 거의 이단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성경에 나온대로 해서, 온전한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런데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고, 아들로 오신 예수께서 다시 보혜사 성령으로 오셨다. 그래서 지금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시에 존재하시게 되었고 동시에 활동하고 계시는 것이다.
2025년 03월 14일(금)
정보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