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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GXQ4VPjxu3U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6)] 한 분 하나님 신앙과 양태론 이단은 어떻게 다른가?(01)(창2:1~9)_2026-01-19(월)

https://youtu.be/GXQ4VPjxu3U

 

1. 들어가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진짜인가, 섞여진 것인가?

  우리는 매주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런데 우리가 듣는 설교 말씀 가운데 나오는 교리와 신학이 100%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니면 인간의 사상과 전통이 뒤섞인 '오염된 것인가? 이것은 매우 심각한 질문이다. 불량식품을 먹으면 몸이 병들듯이, 오염된 하나님을 믿으면 영혼이 병들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30년을 믿어도 귀신 하나 쫓아내지 못하고, 삶의 저주를 끊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오늘날 한국 성도들의 가장 큰 신학적 문제는 하나님을 알게 모르게 '세 분(Three Gods)'으로 믿는 '삼신론(Tritheism)'적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삼위일체"를 말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 천국 탁자에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명령하여 내려보내는 그림을 그린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유일신 신앙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고 강조하면 대뜸 "너 양태론(Modalism) 이단 아니냐?"라고 공격하기 일쑤다. 양태론이 무엇인지, 성경이 말하는 한 분 하나님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정죄부터 한다. 필자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다. 필자는 성경이 '한 분'이라고 하면 한 분으로 믿고, 예수님이 '내가 곧 그니라'(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시면 그대로 믿는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성경 66권을 관통하고 있는 '한 분 하나님(One God)'의 신비를 파헤치고, 또한 이것이 어떻게 이단적 양태론과 근본적으로 다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당신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앞에 눈물 흘리가 감사하게 될 것이다.

 

2.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를 누구라고 하셨는가? (요한복음 8장의 비밀)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 첫번째 증거는 예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직접 말씀하셨다는 것이다(요 8:24, 28, 58). 다시 말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아들로 오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신학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그들은 한사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가르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진정 누군지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신학자들조차 그 사실을 잘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당신 자신이 누군지를 아주 충격적으로 말씀해주셨다.

  먼저, 요한복음 8장 24절을 보자.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여기서 "내가 그(I am He)"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에고 에이미(Ego Eimi)'다. 직역하면 "나는 ~이다(혹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단어들이 왜 그리 중요한가? 이것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주신 당신의 이름이 곧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2가지를 알 수 있다. 하나는 예수님은 "내가 바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말했던 그 여호와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 분 하나님이 구약시대에 여호와로 나타나셨지만 한 분 한님께서 이제는 아들로 나타나셨다 것이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 기겁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물었다. "네가 나이가 50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질문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Ego Eimi)"라고 다시 한번 확인 사살을 하시자, 돌을 들어 예수님을 쳐 죽이려 했다. 이는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 아닌데도 하나님처럼 말했다고 해서 신성모독죄를 그를 죽이려고 한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오셨지만, 그 본체는 만세 전부터 스스로 계셨던 하나님 자신이시다. 아버지가 따로 활동하시고 아들도 따로 활동하고 있다가, 아버지가 아들을 파송한 것이 결코 아니다. 표현은 아버지가 아들을 '보낸 것'이지만, 그 내막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육신을 입고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이 예수께서는 예수게서 스스로 계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유대인들조차 여전히 "죄 가운데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구원자는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신데(사 43:11), 예수님이 바로 그 여호와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거나, 한 분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로 오셨음을 믿지 못한다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3. '알파와 오메가'는 두 분인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두 번째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선언하셨다는 것이다(계 1:17, 2:8, 22:13).

  그런데 구약성경을 읽어 보면, 이미 그렇게 자기자신을 소개하신 분이 나온다. 그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분은 자신을 오직 홀로 한 분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가리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선언하신다(사 41:4, 44:6, 48:12). 

계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사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그렇다. 이제는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하는 존재가 둘일 수가 있는가? 알파가 두 개고 오메가가 두 개일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여호와가 처음과 마지막이고, 예수님도 처음과 마지막이라면, 여호와가 곧 예수님이든지, 아니면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자신을 여호와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신약시대에 자신을 예수라고 말씀하신 것일 수밖에 없다. 혹시 하나님이 세 분이라고 한다면 "나는 알파고, 성자은 베타이며, 성령은 감마다"라고 해야 옳다. 그러나 오직 한 분 하나님께서는 구약에는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으며, 신약에는 자신을 예수로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니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 여호와'(출20:11)라고 말씀하셨듯이, 공생애를 마치고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도 역시 '나 예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계 22:16)

  특히 요한계시록 11장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말씀이 나온다. 그것은 24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호칭을 달리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때 24장로들은 "옛적에도 계셨고(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라고 찬양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전까지만 해도 주 하나님이자 전능하신 이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표현되었었다(계 1:4, 8, 4:8). 그런데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지면서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강림하시게 되자,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장차 오실 이'(헬라어 원문에 의하면,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가 주 하나님의 호칭에서 빠지면서,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신 이"라고 바뀐 것이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꼐서 공중으로 재림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곱째 나팔 이후에 주 하나님에 대한 명칭은 이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신 이"라고만 나올 뿐이다(계 16:5).

  그렇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실제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원래 하나님을 수식하는 관용구로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계 1:8)였던 하나님의 호칭이 요한계시시록 11장에서는 "장차 올 자"가 사라진 채 사용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그분이 일곱째 나팔 때에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오실 이'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장차 오실 여호와'가 바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시다.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4. 바울은 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했는가?

  이제는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세 번째 증거를 살펴보자. 그것은 사도 바울의 증언이다.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셋째 하늘(삼층천)을 다녀온 후에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 달라졌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피흘려 교회를 사셨다고 말한 것이다.

  먼저, 첫째로, 사도 바울 은 디모데전 3:16에서 이와같이 말했다.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그렇다. 딤전 3:16에 나오는 '그는'는 앞구절에 있는 '하나님'을 받은 인칭대명서 주격표현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려지신 것이다. 이는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어 아들로 오셨음을 그대로 증언해주는 것이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면서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에 불러서 고별 설교를 할 때에 이렇게 말했다.

행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그렇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피로 교회를 사셨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를 흘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육체를 지닌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만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요 4:24). 고로 영에게는 살과 뼈가 없고, 피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 피(His own blood)'를 흘릴 수 있었겠는가? 이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열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육신(Incarnation)'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우리 인류를 구원하고 싶으신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지은 죄값을 사망이기 때문에, 인류의 죄값을 지불하려면 죄없는 사람이 대신 죽어야 했다. 그런데 인류 가운데에는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인류의 죄값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피흘려 죽어야만 했다. 또한 하나님도 그렇게 하고 싶으시지만 그렇게 하실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피를 흘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를 흘릴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육체를 입으신 채 이 땅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뚝뚝 떨어진 하나님의 피는, 예수님의 피였던 것이다. 이 피는 사실 아들로서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피이지만 동시에 본질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의 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고도 남음이 있는 피였다. 그 피에 모든 지구의 사람들을 다 속죄할 수가 있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피로서 언제나 살아있는 피로서 효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랬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취하신 행동은 당신이 만든 피조물인 천사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들을 하나를 따로 만들어 보내시면서 "네가 내려가서 대신 죽고 와라"고 시킨 것도 아니다. 창조주께서 직접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자기 피를 쏟으시어 인류를 죄로부터 건져내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사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류를 위해 베푼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삼신론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한 분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5. 양태론(Sabellianism)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양태론이 아닌가?

  여기까지 설명하고 나면 많이들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렇다. "목사님, 하나님이 한 분이신데 그분이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주장하면, 그게 바로 '양태론' 아닙니까?"라고 말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 절대적으로 아니다. 그것은 정보배 목사의 설교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는 결코 양태론자들이 주장하는 신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온 그대로를 믿는 신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보배 목사가 말하는 '한 분 하나님'신앙과 양태론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함부로 사람을 정죄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양태론(Sabellianism)이란 대체 무엇인가? 나중에 이 부분을 자세히 살피겠지만, 양태론이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다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가리켜 한 분 하나님께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각 시대를 따라 '가면(Mode)'만 바꿔쓰고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아버지로 계셨는데, 신약 때에는 아들로 변신해서 내려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으로 변신하여 성령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엄청나게 위험한 주장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한 분이신 하나님이자 한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성육신하여 내려오셨다면 하늘에는 아버지가 없이 텅 비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주를 통치하는 통치자의 자리가 사실상 폐쇄되고 만다. 더욱이 이 예수께서 나중에 성령으로 변신하여 오신다면 아들도 없어지고 만다. 이제는 성령 하나님의 시대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양태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인 삼역(一人三役)의 연극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믿고 있으면 가르치는 성경적 신론은 이와는 다르다. 그러면 정보배 목사가 주장하는 신관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셨지만 신약시대에는 그분이 자신을 아들로 계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양태론과 비슷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하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서부터 양태론과 많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피조물과는 달리 동시존재(Simultaneous Existence)가 가능하시기 때문에, 예수께서 아들로 이 땅에 오셨다고 해서 하늘에는 아버지가 아니계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여전히 아버지가 계시며 동시에 이 땅에는 아들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아들의 성육신 이후부터는 둘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한 분이신 방식을 취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시존재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에게까지 계속해서 적용된다. 즉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어 보혜사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보내주신 것이지만, 또한 아들의 오심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도 성령의 오심은 곧 생명을 주는 영으로서, 아들의 오심이지만 동시에 아들과는 인격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오심이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일이 가능하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전능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자 전능자로서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동시 존재'가 가능하신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 분 하나님께서는 동시다역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한 분이신데, 하늘에서는 아버지로서 사역하시고, 이 땅에서는 아들로서 사역하시고, 또한 성령으로도 사역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는 아버지가 계셨고,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머리 위에 나려오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에, 양태론자는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때 예수님(아들)의 뜻과 아버지(성부)의 뜻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인격적으로 구별'되어 있으셨다. 그러므로 둘이 이제는 구약시대와는 달리 서로 대화하고 교제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신 예수께서 자기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동시에 존재하시게 되신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한 분이신데, 서로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고 있는 것이다. 고로 이러한 설명은 사실 양태론의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가 가진 성경적인 신관을 최신 AI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제미니 AI가 말하기를 "목사님의 견해는 한 분 하나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양태론과 출발점이 비슷해 보이나, 위격의 실제적 분리와 상호 관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양태론을 극복하고 있다"고 평가해 주었다. 그리고 정보배 목사의 신관이야말로 가장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신관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다. 이단이 무서워서 진리를 포기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우리를 위해 동시에 셋으로 일하시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6.구약 창조 기사(엘로힘)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이제는 다시 창세기 1장으로 돌아가 보자. 삼신론적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창세기 1장의 '하나님(엘로힘)'이 복수형이라는 점을 들어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 합작하여 세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더 읽어보면 이 주장이 얼마나 빈약한 주장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창조기사에 이어지는 새로운 설명인 창세기 2장 4절의 시작을 보라.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전까지 창세기 1장에서 2장 1~2절까지는 '하나님(엘로힘)'께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창조를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창세기 2장 4절부터는 엘로힘이 누군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준다. 그것은 바로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창세기 1장의 엘로힘(하나님)은 막연한 신들의 집합이 아니라, '여호와'라는 한 분 하나님의 존엄성을 나타내는 장엄 복수(Plural of Majesty)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엘로힘(하나님)이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성경을 살려보면,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20장 11절을 보자. 그것은 하나님이 곧 여호와이셨다는 것에 쐐기를 박는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그렇다. 만약 창조 때 성자 예수님이 별도의 인격으로 옆에서 아버지의 분부를 받잡고 망치질을 시작 했다면, 여호와께서는 결코 "나 여호와가 홀로 천지만물과 인간을 만들었다"(사 44:24)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셋이 만들었다"고 해야 맞는 것이고 정직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시종일관 천지만물과 인간은 "나 여호와가 만들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창조주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바로 그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여호와께서 신약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신 것이기에, 예수님은 곧 창조주 자신이신 것이다. 그리고 창조의 근본목적이자 원인이자 통로요 설계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3절에서 "만물이 그(말씀=예수)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였던 것이다.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아들과는 별개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신 그 말씀(로고스) 안에서, 그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그 말씀을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으시고 만드신 것이다(골 1:16). 따라서 창조주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7. 하나님은 왜 굳이 '아들'이 되어 죽으셨는가?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왜 굳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오셔서 그토록 비참하게 죽으셔야 했던 것인가? 그 답은 이렇다.

  첫째,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 4:24) 죽으시고 피흘릴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면 죄없는 누군가가 생명을 내놓고 피를 흘려야 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은 죽을 수도 없도 피도 없으시다. 죽고 싶어도 죽을 육체가 없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를 대신하여 죽어서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육체'를 입으신 것이다. 그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을 가리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십자가 사건은 인류를 위해 피흘리고 죽어야 하는 일을 아버지가 자신도 하기 싫은데, 아들에게 떠넘긴 것이 결코 아니다. 아들 학대가 아니다. 아버지 자신이 우리 인류를 살리기 위해 직접 사람이 되신 것ㄷ이다. 이는 마치 불이 났는데, 자녀를 살리기 위해 아버지가 불 속으로 뛰어든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 나타난 아버지의 비할데 없는 큰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말씀은 곧 이 눈물겨운 사연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종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하신(빌 2:8)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은 결코 쇼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육신을 입은 '아들'은 기꺼이 자신을 보낸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굴복시킨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죽음의 두려움을 우리와 똑같이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의 육체의 한계 속에서 철저하게 아버지(신성)의 뜻에 복종하셨다. 그래서 불순종한 아담이 망가뜨린 질서를 다시 세우신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가리켜, '한 분 안에서의 구별과 순종'이라고 믿는다. 

 

8. 우리가 믿어야 할 참된 삼위일체는 무엇인가?

  이제 우리도 결론을 내려보자. 우리는 결코 삼신론자도 아니고, 양태론자도 아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한 분 하나님(Biblical Monotheism)'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대체 어떤 분인가?"를 보자.

  첫째,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신 6:4). 둘째, 한 분 하나님은 구약에는 창조주 여호와로 활동하셨다. 셋째, 한 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예수(아들)로 오셨다. 넷째, 한 분 하나님이 지금은 우리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신다. 다섯째, 그러나 이 셋은 시간 차를 두고 변신하는(양태론) 것이 아니라, 동시에 존재(Simultaneous Existence)하시며 상호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시존재와 동시다역이 불가능한 인간으로서는 이 신비로운 연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성경은 지금까지 우리가 나누었던 한 분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그러므로 한 분이셨던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진리 위에 똑바로 서야 한다. 그래야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예수를 피조물이라 함)을 물리칠 수가 있고, 동시에 막연한 삼신론적 다신교 신앙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9. 나오며: 신학적 논쟁을 넘어 사랑의 고백으로

  이번 시간에 우리는 정말 공부하기 어려운 부분에 맞딱뜨렸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조직신학의 핵심은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 그런데 이것을 아버지와 아들의 단독적인 역사로만 볼 것이 아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기독론의 핵심은 삼위일체를 신비적인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보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천사 한 명을 지정하여 이 땅에 보내었거나, 자신과 전혀 다른 아들을 보내어 대신 죽게 했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홀로 한 분이신 그분이 친히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저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오신 것이다. 그래서 저주의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고귀한 피를 흘리신 것이다. 나를 살리기 위해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사랑의 증표로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것이다. 

  고로 만약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깨닫는다면, 어찌 우리가 대충대충 신앙생활을 하겠는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기와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신앙고백도 좀 더 달라져야 한다. 예수께서는 의인 정도가 아니셨던 것이다. 그분은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던 창조주이자, 나를 위해 이 땅에 죽으러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진리 앞에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낮아져야 한다. 그리고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오직 한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고 그분만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길 끝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 나를 영원한 당신의 신부로 나를 맞이해주실 것이다. 

 

 

2026년 01월 19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한 분 하나님 신앙의 핵심을 강조하며, 이를 고전적 이단인 양태론과 명확히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이 설교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원어 해석을 근거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곧 신약에 아들의 형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분임을 역설하며, 그리스도가 스스로 계신 이이자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단순히 아들을 대리로 보낸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육신을 입고 피 흘리신 사건의 신비와 그 속에 담긴 지극한 사랑을 부각합니다. 또한, 성육신 이후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존재하며 인격적 관계를 맺는다는 점을 들어, 한 존재가 장소에 따라 역할만 바꾸는 양태론적 오류를 성경적으로 반박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텍스트는 신자들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오해 없이 이해함으로써,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신 유일한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과 감사를 드리도록 인도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기독론 #한분하나님 #삼위일체 #양태론 #삼신론 #유일신 #예수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의사랑 #성육신 #에고에이미 #나는스스로있는자 #알파와오메가 #하나님의피 #십자가 #구원자 #창조주 #아침묵상 #설교 #정보배목사

 

 

 

 
십자가 모양의 빛줄기와 그림자 아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인지 섞여진 신앙인지 묻는 슬라이드이다.
삼신론 경향과 양태론이라는 두 가지 신학적 오해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 슬라이드이다.
요한복음 8장 24절을 인용하며 예수님의 충격적인 자기 선언 ‘내가 그니라(Ego Eimi)’의 의미를 설명하는 슬라이드이다.
구약의 여호와(I AM THAT I AM)와 신약의 예수님(Ego Eimi)의 이름 선언을 비교하며 동일성을 증명하는 슬라이드이다.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을 인용하여 여호와와 예수님이 동일한 ‘처음과 마지막’임을 알파와 오메가 상징을 통해 증명하는 슬라이드이다.
요한계시록 1장 8절과 11장 17절을 비교하여, 예수님의 재림 시 '장차 오실 이'라는 호칭이 사라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슬라이드이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을 인용하며 영이신 하나님이 ‘자기 피’를 흘리신 역설과 그 해답인 성육신을 설명하는 슬라이드이다.
성부, 성자, 성령이 시간 순서대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양태론의 오류(Sequential Mode Switching)를 지적하는 슬라이드이다.
하나님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며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동시 존재' 개념을 설명하는 슬라이드이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양태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육신을 입은 아들과 하늘의 아버지가 인격적으로 구별됨을 설명하는 슬라이드이다.
창세기에서 사용된 '엘로힘'과 '여호와'의 차이를 정의하고 창조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셨음을 강조하는 슬라이드이다.
죽을 수 없는 영이신 하나님이 대속을 위해 육체를 입고 ‘아들’로 죽으신 성육신(Incarnation)의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는 슬라이드이다.
십자가 사건이 아동 학대가 아닌,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으로 자기 피를 쏟은 자기 희생임을 강조하는 슬라이드이다.
성경적 유일신 신앙의 핵심 5가지를 번호와 상징적인 아이콘을 사용하여 정리한 목록형 슬라이드이다.
우주 배경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이미지와 함께, 예수님이 바로 구원자이신 하나님임을 선언하는 요한복음 20장 28절을 인용한 슬라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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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오염 문제를 제기하며, 금이 가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을 보여주는 슬라이드입니다.
삼신론, 성경적 진리, 양태론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며, 진짜 한 분 하나님을 찾는 길을 제시하는 슬라이드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에고 에이미(ΕΓΩ ΕΙΜΙ)’라고 칭하며 구약의 여호와와 동일함을 강조하는 성경 구절 비교 슬라이드입니다.
이사야와 요한계시록 구절을 통해 여호와와 예수님이 모두 처음과 마지막이므로 한 분 하나님임을 증명하는 슬라이드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째 나팔 이후 '장차 오실 이'라는 칭호가 사라지는 현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설명하는 슬라이드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피가 곧 '하나님 자신의 피'임을 강조하는 신학적 역설 슬라이드입니다.
예수님이 땅에 계실 때 하늘의 보좌가 비게 되는 모순 때문에 연극적 양태론을 거부하는 슬라이드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시공간 제약 없이 성부와 성자로 동시에 존재하며 실제적 관계를 맺는 '동시 존재'를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슬라이드입니다.
제미니 AI 분석 결과를 제시하며, 동시 존재 교리가 고전적 양태론을 극복했음을 현대적으로 검증하는 슬라이드입니다.
이사야 44장 24절을 근거로 창조주가 세 분의 합작이 아니라 여호와(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심을 강조하는 슬라이드입니다.
대속을 위해 죽을 수 없는 영이신 하나님이 죽을 수 있는 육체인 '아들'이 되셔야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슬라이드입니다.
왕좌(주인)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품꾼)을 대비시켜,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위해 오신 것이 궁극적인 사랑임을 설명하는 슬라이드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동시 존재 원리로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시한다는 핵심 교리(성경적 유일신론)를 요약한 슬라이드입니다.
휘장 밖으로 빛이 비치는 극적인 그림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고 참된 예배로 나아가도록 촉구하는 슬라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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