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8)]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이 자칫 삼신론 신앙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려면?(사9:6~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ROWbBUOJxls
1. 들어가며: 우리는 진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오염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우리는 매주 교회에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라고 신앙을 고백한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과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교리나 전통, 혹은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낸 '변질된 하나님'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가장 심각한 신학적 질병은, 입으로는 유일신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세 분(Three Gods)으로 믿는 '삼신론(Tritheism)'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 천국 회의실에 둘러앉아 의논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파송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심지어 누구에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 "아버지께 했다가 예수님께 했다가 또는 성령님께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께 기도하면 아들이 섭섭할 것 같고, 예수님께 기도하면 성령님도 섭섭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삼신론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One) 여호와시니"(신 6:4)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이 '한 분 하나님'의 절대성을 놓치고 셋으로 나누어 믿는다면, 그것은 다신교적 우상숭배로 갈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시간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난해하다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의 껍질을 깨고, 그 속에 담긴 '한 분 하나님'의 진수(眞髓)를 맛보려고 한다. 이 공부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그동안 자신이 믿어왔던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분이신지, 그리고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눈물나는 것인지를 깨닫고 전율하게 될 것이다.
2. 삼위일체 교리가 '한 분 하나님'을 강조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5가지 폐단)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위격(Person)의 구별'만 강조하지만 '본체(Essence)의 하나됨'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매우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할 때에 본질의 하나를 강조하지 않고 위격만 강조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영적 폐단이 생기는 것일까?
첫째, 기도의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동안 "기도는 예수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만 받는 대상은 아버지여야 한다"라고 배웠기에, 예수님께 직접 "사랑해요,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면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셋으로 찢어 놓게 되면, 기도할 때에도 과연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할지 걱정이 앞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기에 어느 분에게 기도해도 상관은 없다. 한 분 하나님이 받으시기 때문이다.
둘째, 영원한 삼신론에 빠질 수 있다. 말은 삼위일체라고 하겠지만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하나님이 본질에 있어서 하나인 것을 강조하지 않게 되면, 믿는 이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태초 전부터 영원까지 세 분으로 존재한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면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라 세 신들의 사귐과 상호침투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신학자가 있으니, 독일의 조직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1926.04.08~)과 레오나르도 보트 등의 현대신학자들이 그들이다. 몰트만은 하나님의 단일성보다는 세 위격 간의 사귐(community)와 페리코레스(상화 침투)를 강조하는 신학자다. 그는 하나님이 군주가 아니라 평등한 공동체임을 주장하며 민주주의적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공식적으로 삼신론을 부정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면 세 분이 탁자 위에 앉아 회의하는 그림을 신학적으로 정당화시키고 있는 장본인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은 현대 교회 안에 실질적인 삼신론을 퍼뜨리는 데에 일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한 분이심을 강조하지 않으면, 영원한 삼신론에 빠지게 되고 그러면 이러한 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셋째, 다신론과 이단의 온상이 된다. 하나님이 사실 셋이라고 한면, 하나님을 얼마든지 넷은 안 되고 다섯은 안 될 이유가 전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가 다신론이 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이 있고 아들 하나님(성경에는 '아들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없다)이 있으니, '어머니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단 곧 '하나님의 교회(안상홍증인회)'와 같은 이단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교주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틈을 주게 준다. 하나님이 여럿이 있으니 얼마든지 자기를 거기에 끼워넣어 자신을 하나님이나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려면, 신성(신적 본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최소 4가지의 자격인데, 자존, 무소부재(동시존재), 전지전능, 영원불변 등의 속성이 있어야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속성을 하나도 가지지 않는 자가 감히 하나님을 사칭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하나님을 셋으로 강조하다 보면, 예수님의 죽음은 아버지가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죽게 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면 생각해보라. 하나님(아버지)이 제3자인 아들을 보내 죽게 했다면, 그것은 아들 학대이거나 대리 희생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아들을 달랑 보내 인류의 죄를 위해 죽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분 하나님이 때가 차매 친히 육신을 입고(아들로) 오셔서 자기의 피를 흘리셨다고 한다면(행 20:28), 이것은 우주적인 사랑의 극치가 된다. 어찌 창조주께서 피조물이 되셔서 인류의 죄값을 치러줄 수 있다는 말인가! 삼신론은 이 감격을 빼앗아 버린다.
다섯째, 한 분 하나님을 '협의체'로 착각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경륜적으로 삼위로 활동하신 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처음부터 삼위가 활동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한 분이 하나님께서 홀로 창조하신 일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협의해서 창조한 것으로 말해버린다. 하나님을 마치 국회나 이사회의 협의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믿는 이들은 하나님 셋이 함께 모여 서로 의논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된다. 구약시대에도 삼위가 각각 활동하신 것으로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협의체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역사하시는 분"(엡 1:11)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홀로 뜻하시고 홀로 행하시는 분이시다.
3. 구약 성도들은 삼위일체를 몰라서 지옥에 들어갔는가?
극단적인 삼위일체 교리주의자들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으면 이단이다"라고 정죄하기에 바쁘다. 특히 오늘날 이단정죄론자들(이단 사냥꾼들)에게 이러한 경향이 매우 강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어본 후, 자신을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 곧바로 이단이라고 정죄해버린다. 그렇다면 질문해 보자. 구약시대에 살았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은 과연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었는가? 그들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단어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오직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철저히 믿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다 천국에 들어가 있다(마 8:11-12, 히11장).
과연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만을 믿었던 그들은 다 지옥에 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도 분명하게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마 8:11)라고 알려 주셨다. 그들은 분명히 천국에 있다. 그들은 삼위일체 교리가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실 '구원자(메시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은 자들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신학 이론을 암기해야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사람이 되신 한 분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요 17:3). 왜냐하면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신학적 사상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구원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
4. 중세의 삼위일체 그림(러시아의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성삼위일체 이콘 등)에는 어떤 함정이 있는가?
천주교나 정교회, 그리고 일부 개신교 서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A.D.1,360~1,430)가 1411년에 그린 '성삼위일체' 이콘(Icon)이다. 세 명의 천사가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다(아래).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며 "아, 하나님은 저렇게 세 분이 서로 사랑하며 교제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의자가 세 개'라는 점이다. 그리고 셋 다 날개를 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자. 가운데 있는 분(예수님)은 붉은색(인성/피) 옷에 푸른색(신성) 옷을 걸쳐 입고 있다. 왼쪽(우리가 볼 때)의 성부는 황금색(영광) 겉옷에 푸른색 옷을 입고 있고, 오른쪽의 성령은 푸른 색 옷에 녹색(생명) 겉옷을 걸쳐 입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엇인가 손짓을 하고 있다. 예술적으로는 훌륭할지 몰라도, 신학적으로는 우리 뇌리에 강력한 '삼신론적 이미지'를 심어준다. "하나님은 세 분이구나."라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도 날개를 달고 있으니,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여호와의 천사'와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바로 예수님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결코 셋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22장을 보라. '하나님의 보좌(Throne)'는 항상 단수로 나온다.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인 것이다(계22:1,3). 한 의자에 두 분이 겹쳐 앉은 게 아니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곧 어린 양이시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이러한 시각적인 이미지에 속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붓으로 그려낼 수 있는 그러한 분이 아니다. 우리는 세 의자에 앉은 세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홀로 하나이신 주재(Master)를 믿는 것이다.

5. 우리는 왜 '경륜적 삼위일체'를 믿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가? 아니다. 필자 역시 삼위일체를 100% 믿는다. 다만 '존재론적 삼위일체(영원 전부터 셋)'보다는 '경륜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성경적이고 안전하다고 믿는다.
여기서 '경륜(Economy)'이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섭리를 가리킨다. '경륜적인 삼위일체'가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본래 홀로 한 분이시다(신 6:4).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자신을 '나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다(출 20:11). 그분이 홀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사44:24). 그리고 이때 홀로 한 분이신 여호와께서는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아들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골 1:16).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홀로 한 분이신 여호와께서 하나님으로서 창조사역을 하시고 역사하셨다. 고로 구약시대에 아들은 아직 아버지의 품속에 계셨다(요 1:18).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곧바로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고 육체를 가진 채 영생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선악과를 먹는 편을 선택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부득이하게 플랜B를 작동시켜, 사람이신 아들로 오셔야 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흠없는 속죄제물이 될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동시에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피흘릴 수가 없고 죽으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홀로 한 분이시고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아들로 오셨다(요 8:24).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눅2:8~9). 그런데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고 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하늘 보좌에도 계시고(성부), 동시에 땅에서 육신을 입고(성자) 활동하실 수 있으시다. 이것이 한나님만이 가진 '동시 존재'의 신비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우리 안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들어오시려고 영으로 오셨다. 이분을 우리는 보혜사 성령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모든 죄인인 인간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곧 아들로 오셔서 속죄의 피를 흘려 죽으신 것과 그분을 믿는 자들 속에 생명을 가지고 성령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통하여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셋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목적(경륜) 때문에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자신의 존재 방식을 확장하고 활동하신 것이다. 이것을 깨달으면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셋으로 일하시는구나!"라는 감격이 밀려올 것이다. 나 하나 살리려고, 그 높고 거룩하신 분이 종의 형체를 입고 아들이 되셨으며, 영이 되어 내 안에까지 들어오신 것이다. 이것을 믿는 것이 진짜 삼위일체 신앙인 것이다.
6. 구약 시대에 예수님은 활동하셨는가? (천사 vs 아들)
삼위일체를 삼신론적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의 사자(Angel of the Lord)'나 혹은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선재(Pre-existence)하신 그리스도로 해석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천사나, 여호수아 앞에 나타난 군대 대장을 보고 "아, 이때에도 벌써 예수님이 활동하고 계셨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해석이다. 만약 천사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인 천사급으로 격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호와의 증인은 이 논리를 이용해 "예수는 미가엘 천사장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성경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히브리서 1장 5절을 보라.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하나님은 천사를 향해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하신 적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천사는 부리는 영(종)이고, 아들은 상속자(주인)다. 그 신분이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에 나타나서 하나님처럼 말하고 경배를 받았던 그 천사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천사로서, '전권 대사(Plenipotentiary Ambassador)'의 자격으로 온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왕의 칙서를 들고 온 사신에게 절을 하거나 대접하는 것은 사신이 그 왕이라서가 아니라, 왕의 권위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 시대에 아들(예수)은 대체 어디 계셨는가? 요한복음 1장 18절에 따르면, 구약시대에 예수께서는 아직 '아버지 품 속'에 계셨다. 존재하셨으나, 아직 밖으로 나와 활동하지 않으신 것이다. 아들이신 예수님의 활동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태어나신 '성육신' 사건 후부터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춰야 한다. 억지로 구약의 천사를 예수님으로 끼워 맞추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해석이 오히려 예수님의 유일무이한 성육신 사건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7. 하나님은 왜 굳이 사람이 되셔야만 했는가? (사랑의 극치)
여기서 우리는 기독론의 가장 본질적이고 감동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굳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오셔서 그토록 비참하게 죽으셔야 했는가?"하는 것이다. 천사 하나를 보내어 대속하게 할 수도 있었거나, 죄 없는 인간을 하나 새로 창조해서 죽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러한 길을 택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아들로 오셔야 했는가?
그 답은 하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죽으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가 지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 우리를 살리려면 누군가 생명을 내놓고 피를 흘려야 한다(레 17:11, 히 9:22). 그러나 하나님께는 피가 없다(눅 24:39). 죽고 싶어도 죽을 육체가 없다(딤전 6:15-16). 그래서 하나님께서 피를 흘리시기 위하여 그래서 죽으시기 위하여 스스로 '육체'를 입으신 것이다. 그 육체를 입으신 그 하나님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 놀라운 비밀을 폭로한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고 말이다. 십자가에서 흐른 피는 아들의 피였지만 동시에, 본질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의 피'였던 것이다. 인류의 속죄는 아버지가 아들을 사지로 내몬 비정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것이 '경륜적 삼위일체'의 핵심이다. 하나님이 셋이어서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로서 아들이 되신 것이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이 사랑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이론적으로 분석할 것이 아니라, 그 발앞에 엎드려 눈물흘리며 감사할 수밖에 없다.
8. 예수님의 기도는 1인 2역 혹은 3역의 연극인가? (인격의 구별과 동시 존재)
마지막으로 우리가 제대로 된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하나의 난제가 남아 있다. 과연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은 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하는 1인 2역의 연극을 한 것인가?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질문이야말로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는 자들에게 양태론자들이라고 매도하는 대표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양태론자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로 존재하며, 동시에 활동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동시존재(Simultaneous Existence)'와, 아버지의 아들의 '인격적 구별'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과 다르다. 그분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신다. 그래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하늘 보좌에 계시면서(성부), 동시에 땅에서 육신을 입고(성자) 계실 수가 있다. 이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셨기에, 인간으로서의 지정의(인격)를 가지셨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 육신의 연약함과 죽음의 공포를 느끼셨다. 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신성의 뜻(인격)을 가지고 계셨다. 겟세마네의 기도는 육신을 입은 아들의 인격이 신성을 가진 아버지의 인격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기도의 과정이었다.
고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결코 연극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일어난 '거룩한 상호 교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셨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지극히 높여 만유의 주가 되게 하셨다(빌 2:9).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는 셋이 모여 회의하는 삼신론도 아니고, 혼자서 가면 바꿔 쓰는 양태론도 아니다. 한 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동시에 존재하시며, 완벽한 연합과 순종으로 구원을 이루신 신비인 것이다.
9. 나오며: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그분을 닮아가라
이번 시간에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다. 오직 한 분이시다. 그 한 분 하나님이 구약에는 창조주 여호와로, 신약에는 구원자 예수로, 지금은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세 분은 동시에 존재하시면서 동시에 일하시고 계신다. 그런데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오직 한 가지, '나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 때문이었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아들이 되는 비하(낮아짐)을 선택하셨고, 또한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의 피를 쏟으셨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 기도해도 되고, 아버지께 기도해도 된다. 어차피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아버지에게 순종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영혼 구원, 마귀 멸함)을 우리도 담당함으로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우리도 감당해야 한다. 그럴수록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님에게 주셨던 하늘의 기업과 보좌를 우리에게도 상속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삼신론의 혼란을 벗어던지고, 나를 위해 사람이 되신 한 분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원히 사랑하고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1월 18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경륜적 삼위일체 관점을 통해 신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삼신론적 오류를 바로잡고 하나님의 단일성을 회복할 것을 역설합니다. 본 설교는 성경의 구약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나님은 본래 홀로 한 분이시며, 인류 구원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부득이하게 아들과 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삼위일체를 위격 간의 독립된 활동으로만 이해할 경우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이 퇴색될 수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신 분이 곧 유일하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신자들이 교리적 틀에 갇히기보다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한 분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깨닫고 그분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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