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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x8sEPsZkH70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61)]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03) - 대제사장의 의복(02)(출28:1~4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x8sEPsZkH70

 

 

1. 들어가며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어떤 분이신지를 온전히 깨닫는 과정은 매우 신비롭기까지 한다. 신약 성경의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위대한 구속의 성취들을 보여주지만, 그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이 지닌 우주적인 스케일과 깊은 영적 의미를 완벽하게 해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약 성경이라는 정교한 설계도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장차 오실 메시아의 인격과 사역을 구약의 성막과 제사 제도, 그리고 제사장의 규례 속에 놀라운 모형과 그림자로 낱낱이 숨겨 두셨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을 통해 우리는 번제단과 물두멍, 성소와 지성소를 거치며 짐승의 피를 들고 나아가는 대속죄일 제사의 비밀에 대해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단순한 제사장을 넘어, 온 인류의 죄를 단번에 영원히 씻어내시고 참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신 큰 대제사장이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아론이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그를 위해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을 지어 입히라고 엄히 명령하셨다. 대제사장의 의복은 결코 단순한 종교적 장식품이나 권위의 상징물이 아니다. 그 옷의 색깔과 재질, 가슴에 품은 흉패와 빛나는 보석 하나하나에는 장차 온 우주의 심판자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과 사역이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다. 이제 대제사장의 의복 속에 감춰진 웅장한 영적 비밀을 해부하면서, 주님이 입으셨던 그 거룩한 옷이 오늘날 영적 전투를 벌이는 우리에게 어떤 위대한 사명과 소망을 주는지 깊이 파헤쳐 보도록 하자.

 

2. 변화산에서 하얗게 빛난 예수님의 옷은 대제사장으로서 어떤 자격을 증명하는가?

  구약의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후손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고귀한 직분을 맡았지만, 그들 역시 타락한 본성을 지닌 연약한 죄인에 불과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죄일 제사를 집례하기 전, 반드시 먼저 수송아지를 잡아 자신과 자기 집안의 죄를 속죄해야만 했다.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지성소의 거룩한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평소 직무를 수행할 때 금실과 각종 보석으로 수놓은 화려한 에봇을 입었지만, 1년에 단 하루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속죄일만큼은 그 화려한 겉옷을 모두 벗고 오직 순백의 세마포 속옷과 관만을 써야 했다. 철저한 순결함과 죄 없음을 상징하는 하얀 옷을 입어야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의 영원한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아론의 반차와는 차원이 다른 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혈과 육을 지니고 이 땅에 오시어 온갖 시험과 고난을 받으셨지만, 그 내면에는 털끝만 한 죄의 그림자도 없으신 완벽하게 거룩하고 흠 없는 분이셨다(히 4:15, 요일 3:5). 평소 갈릴리의 먼지 나는 길을 걸으실 때 주님은 목수의 아들로서 평범한 서민의 겉옷을 입고 계셨기에, 사람들은 그분 안에 감춰진 대제사장으로서의 영광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주님의 겉옷이 빛과 같이 하얗게 변형되는 경이로운 사건이 일어났다(마 17:1-2).

마 17:1-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이 변화산의 영광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신 목적이 단순히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대속죄일 제사를 집례하러 오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제자들의 영안을 열어 직접 보여주신 사건이다. 예수님의 옷이 해같이 빛나며 희어졌다는 것은 구약의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순백의 세마포를 성취하는 것이며, 그분 자신이 세상의 어떤 세탁부도 희게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순결과 무죄함을 지니신 분임을 온 우주에 선포하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가 훗날 증언했듯, 우리가 구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다(벧전 1:18-19).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아론과 같은 인간 대제사장들은 죽음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 직분이 아들들에게 계속 세습되어 갈려야만 했고(히 7:23), 그들 스스로도 죄인이라 끊임없이 피를 흘려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예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시며(고후 5:21), 부활하심으로 영원히 살아계시기에 그 직분이 결코 갈리지 아니하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분이시다(히 7:17). 그러므로 우리는 흠 없고 점 없는 완전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의지할 때,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추악한 죄악의 찌꺼기들을 담대히 씻어내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3. 대제사장의 의복을 수놓은 네 가지 색실과 금실은 주님의 어떤 속성을 상징하는가?

  구약의 일반 제사장들은 회막에서 섬길 때 오직 하얀색 세마포로 만든 반포 속옷, 그리고 하체를 가리는 속바지 등 철저하게 흰옷만을 입었다. 허리띠에만 약간의 무늬가 들어갔을 뿐, 그들의 의복은 정결함과 순결함을 상징하는 백색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온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중보하는 단 한 사람, 대제사장의 옷은 달랐다. 하나님은 대제사장의 '겉옷'과 '에봇', 그리고 흉패를 지을 때 반드시 네 가지 색깔의 실, 즉 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꼰 베 실(흰색)을 사용하여 정교하게 짜도록 명령하셨다. 이 네 가지 색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4중 복음과 그분의 완벽한 신적 속성을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예표하고 있다.

  먼저 '청색'은 하늘의 색으로, 예수님께서 땅에 속한 피조물이 아니라 태초부터 하늘 보좌에 계시던 참 하나님이심을 상징한다. '자색'은 고대 사회에서 왕들만이 입을 수 있었던 황제의 색으로,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로 오신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한다. '홍색'은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씻어내기 위해 남김없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대속의 희생을 웅변한다. 마지막으로 가늘게 꼰 베 실의 '하얀색'은 앞서 언급했듯 주님에게는 털끝만 한 죄나 불의도 섞여 있지 않다는 완벽한 순결과 인성(무죄함)을 의미한다. 네 가지 색실이 어우러져 하나의 에봇을 이루듯,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고, 고난받는 희생 제물이자 동시에 만물을 통치하시는 영광의 왕이심을 대제사장의 의복 전체가 강력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일반 제사장의 옷이나 성막의 휘장을 짤 때 사용되었던 이러한 네 가지 색실에 더하여, 오직 대제사장의 옷을 지을 때만 특별히 추가된 재료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찬란하게 빛나는 '금실'이다(출 28:5, 6, 8, 15, 39:2, 5, 8). 대제사장의 에봇을 짤 때는 앞서 말한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흰색의 베실 외에도 금을 얇게 쳐서 오려낸 금실을 함께 섞어 짜야 했고, 흉패를 고정하는 사슬과 겉옷 자락의 방울, 그리고 머리 관의 전면에 부착하는 거룩한 패(여호와께 성결)까지 모두 순금으로 만들어졌다.

  성경에서 '금(gold)'영원히 변치 않는 신성(Divine Nature)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상징한다. 세상의 썩어질 물질과 달리 금은 불에 연단될수록 그 광채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일반 제사장들의 직무가 아무리 거룩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흙으로 빚어진 피조물에 불과하기에 그들의 옷에는 금이 들어갈 수 없었다. 오직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만물을 창조하시고 심판하실 영원한 대제사장만이 그 영광스러운 금빛 예복의 주인이 되실 자격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 올라갔을 때 보게 될 영광의 보좌는 온통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며, 이 땅에서 처절한 회개로 내면의 악한 영들을 몰아내고 정결하게 된 자의 영안에는 이미 그 은하수와 같은 금빛 임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4. 제사장 직분을 위해 '물', '옷', '기름', '피'로 거룩시키는 구별 과정의 참된 의미는?

  이처럼 장엄하고 거룩한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직무는 인간적인 결단이나 혈통만으로 불쑥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위임받아 성막 봉사를 시작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철저하고 엄격한 네 가지의 영적 성결 과정을 모세에게 명령하셨다(출 29:4-9). 이 위임식의 매뉴얼은 오늘날 신약 시대를 살아가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 모두가 반드시 몸에 새겨야 할 영적 전투의 철칙이자 거룩함의 공식이다.

  첫째, 그들은 회막 문에서 흐르는 물로 온몸을 씻어야 했다(출 29:4). 더러운 육체를 가지고서는 결코 거룩한 직분에 나아갈 수 없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내 몸과 혼에 깊이 뿌리내린 조상들의 우상 숭배 죄악과 뱀들을 예수의 피와 회개의 물로 씻어내는 정결의 과정을 의미한다. 둘째, 물로 씻은 후에는 하나님이 지정하신 거룩한 옷을 입어야 했다(출 29:5-6, 8-9). 수치스러운 인간의 의를 가리고,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의의 겉옷이자 영적 전사의 갑옷을 입어야만 보이지 않는 마귀의 참소를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거룩한 옷을 입은 제사장의 머리에는 관유, 즉 거룩하게 구별된 특별한 기름을 부어 발라야 했다(출 29:7). 이는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던 것처럼, 사역자에게 부어지는 성령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을 뜻한다. 아무리 회개하고 옷을 입었어도, 하늘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권능과 지혜가 덧입혀지지 않으면 우리는 악한 영들을 쫓아내는 실전 사역에서 처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오직 기름 부음이 임할 때 우리의 입술에서 나가는 권세 있는 명령이 마귀의 진을 깨뜨리는 쇠 지팡이가 되는 것이다.

  넷째, 가장 중요한 마지막 단계는 희생 제물의 피를 오른쪽 귓불과 엄지손가락, 엄지발가락에 바르고, 나아가 제단 주위의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제사장의 몸과 그가 입은 옷 전체에 흠뻑 뿌리는 의식을 치러여 했다(출 29:20-21).

출 29:20-21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 제단 위의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

  여기서 피를 '귀'와 '손'과 '발'에 피를 바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청각, 사역을 감당하는 행동, 그리고 복음을 들고 걸어가는 모든 발걸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씻기고 구별되어야 함을 웅변한다. 나아가 '옷에 피를 뿌린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깨끗한 옷에 붉은 피를 뿌리는 것이 더럽히는 행위 같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오직 희생 제물의 피가 묻은 옷만이 거룩함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훗날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환상 중에 보았던 모습 곧 백마를 타고 재림하시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역시 피 뿌린 옷을 입고 계신 장엄한 모습이었다(계 19:13).

계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그렇다. 그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당신의 거룩한 피를 옷에 적신 채 심판주로 강림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매일매일 자백과 눈물로 내 영혼의 옷을 빨며 그 위에 예수의 보혈을 뿌려야 한다. 회개의 물과 예수의 피, 성령의 관유로 온전히 무장된 자만이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신 큰 대제사장의 능력을 힘입어 어둠의 영들을 박살 내는 진정한 이기는 자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5. 어깨의 견대와 가슴의 판결 흉패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품은 행위는 무엇을 예표하는가?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의 가장 중요한 상단부에는 두 개의 '견대(어깨받이)'가 있었고, 각 견대에는 '호마노'라는 보석이 금테에 물려 부착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두 개의 호마노 보석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아들들의 이름을 나이 순서대로 여섯 명씩 나누어 도장 새기듯 깊이 새겨 넣으라고 명령하셨다(출 28: 7-14).

  또한 에봇의 앞가슴에 부착하는 '판결 흉패'에는 유다 지파를 상징하는 붉은 홍보석부터 납달리 지파를 상징하는 벽옥에 이르기까지, 열두 지파의 각기 다른 이름을 새긴 12개의 찬란한 보석을 네 줄로 물려 달도록 하셨다(출 28:15-29).

  대제사장이 지성소를 출입할 때 이스라엘의 이름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가슴에 품었다는 것은 기독론적으로 엄청난 구속사의 비밀을 예표한다. 인간의 신체에서 '어깨'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힘과 책임감, 권위를 상징한다.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았을 때 기뻐하며 양어깨에 메고 돌아오듯,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죄짐을 홀로 어깨에 짊어지시고 골고다의 십자가를 오르셨다. 그분은 한 영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담보로 모든 구원의 책임을 다하신 참된 선한 목자이시다.

  또한 '가슴'은 심장이 뛰는 곳, 즉 끊임없는 사랑과 긍휼, 애끓는 중보의 자리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 요한복음 17장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자신의 영광을 구하시기보다 남겨질 제자들(요 17:6-19)과 장차 제자들의 전도를 통해 믿게 될 모든 성도(요 17:20-26)를 가슴에 품고 피땀 흘려 애절하게 중보하셨다. 대제사장이 흉패에 달아놓은 열두 보석은 흙먼지 묻은 죄인들이 장차 천국에서 얼마나 찬란한 영광의 존재들로 빚어질 것인지를 미리 보여주는 소망의 결정체다.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이름을 그 불타는 심장에 새기시고, 우리가 그 나라의 보석처럼 빛날 때까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책임지고 이끌어 가시고 있다.

  이 대제사장의 모습은 오늘날 영혼을 맡은 영적 지도자들과 중보자들이 취해야 할 절대적인 사명의 태도를 준엄하게 꾸짖는다. 목회자와 사역자는 자기 가족의 안위나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다. 성도들의 무거운 영적 질병과 귀신의 억압을 자신의 양어깨에 짊어지고, 그 영혼들이 빛나는 보석으로 변화될 때까지 피눈물로 가슴에 품고 기도해야 하는 자들이다. 십자가를 피하려 하거나 영혼의 짐을 부담으로 여겨 내동댕이치는 자는 결코 천국 보좌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주님이 우리를 가슴에 새기셨듯, 우리도 맡겨진 영혼을 위해 기꺼이 땀과 피를 흘리는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6. 판결 흉패 안에 간직한 '우림'과 '둠밈'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절대적 권위를 계시하는가?

  대제사장의 앞가슴에 매달린 판결 흉패는 두 겹으로 접어 주머니처럼 만들어졌는데, 그 안에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지을 때 사용하던 제비뽑기 도구인 '우림'과 '둠밈'이 깊숙이 보관되어 있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갈지 말지, 혹은 다윗의 길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등 국가의 중대사를 하나님께 물을 때 대제사장은 이 우림과 둠밈을 꺼내어 그 판결을 백성에게 선포했다. 사울 왕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났을 때,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선지자로도, 그리고 우림으로도 대답하지 않으셨다는 사무엘상 28장 6절의 기록은 이 도구들이 하나님의 응답과 심판의 절대적인 통로였음을 입증한다.

  그리고 이 '우림'과 '둠밈'의 히브리어 원어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만유 주재권과 심판자로서의 권위가 웅장하게 계시되어 있다. 우림(Urim)은 '불꽃, 빛'을 뜻하는 '우르'의 복수형으로 '빛들'이라는 뜻을 지니며, '둠밈(Thummim)'은 '완전함, 흠 없음'을 뜻하는 '탐'의 복수형으로 '완전함들'이라는 의미다. 이 두 단어는 빛이시며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본성을 상징한다(요일 1:5). 더 놀라운 것은 우림의 첫 글자가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레프(Aleph)'이고, 둠밈(툼밈)의 마지막 글자가 끝 글자인 '타우(Taw)'라는 점이다. 이는 헬라어의 알파와 오메가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요한계시록에서 수차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선언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역사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천명하는 것이다.

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우림'과 '둠밈'을 가슴에 품은 대제사장의 모습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백보좌 심판대 앞에 앉으시어 인류의 모든 행위를 달아보시고 영원한 천국과 지옥을 판결하실 최종적인 심판장이 되실 것임을 온 우주에 선포하는 위대한 그림자다. 사실 요한계시록 20장에 묘사된 최후의 심판대를 보면, 보좌 앞에 두 종류의 책이 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죽은 자들의 모든 죄악과 공로가 낱낱이 기록된 행위책들이며, 또 다른 하나는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과 찬란한 행적이 삽화처럼 요약되어 기록된 단 한 권의 생명책이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회개하여 성령을 받아 거듭날 때, 비로소 우리의 이름이 이 '생명책'에 등재된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영이 살아나서 이 땅에서부터 방언을 말하게 되고, 깊은 회개로 내면의 악한 영들을 몰아낼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심판 날에 둠밈(완전함)의 판결을 받아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의 잣대이심을 잊고 방종하게 살아가는 자는 우림의 불꽃 같은 심판의 눈동자를 피하지 못하고 영영한 유황 불못으로 던져지고 마는 것이다.

 

7. 겉옷 가장자리에 달린 금방울 소리는 안식일에도 쉬지 않으시는 주님의 어떤 사역인가?

  대제사장이 에봇 아래에 입는 청색의 '에봇 받침 겉옷'의 맨 아래 가장자리에는 수놓은 석류 장식과 함께 순금으로 만든 금방울이 교대로 촘촘하게 매달려 있었다. 대제사장이 회막 안 성소를 걸어 다닐 때마다 이 금방울들은 서로 부딪히며 딸랑딸랑, 맑고 청아한 금속성 소리를 끊임없이 울려 퍼지게 했다. 바깥뜰에서 기도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성소 안에서 들려오는 이 방울 소리를 통해, 지금 대제사장이 살아 움직이며 자기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치열하게 일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안도할 수 있었다.

  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금방울 소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렬하게 일하시는 그 처절한 사역의 현장을 청각적으로 예표한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에는 어떤 노동도 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의 껍데기에 갇혀 있었다. 그러므로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신 예수님을 향해, 그들이 살기를 띤 채 정죄했을 때, 주님은 대제사장의 금방울 소리처럼 심장을 찌르는 위대한 선언을 내뱉으셨다(요 5:17).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은 율법에 얽매인 바리새인들을 향해, 안식일의 참된 주인이신 아버지가 죄와 마귀의 억압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니, 나 역시 쉬지 않고 그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다고 단호하게 선포하셨다. 안식일의 율법 규정이 생명을 살리는 긍휼보다 앞설 수 없다는 통쾌한 일갈이었다. 피곤하여 뱃전에서 주무시다가도 풍랑 속에서 부르짖는 제자들의 소리에 즉시 깨어나 바다를 잔잔케 하신 주님은, 오늘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금방울 소리를 내시며 우리의 질병을 치유하시고 악한 귀신들을 결박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

 

8. 대제사장 예수님을 모신 우리는 환난과 영적 전투 속에서 어떤 사명자로 서야 하는가?

  이처럼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인류를 위해 불꽃같이 일하시는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적당히 예배당 뜰이나 밟으며 내 가족의 평안과 물질의 축복만 구하다 끝나는 종교 생활로는 결코 이기는 자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대제사장의 흉패에 새겨진 보석처럼 천국에서 빛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이 땅에 숨 쉬는 동안 뼛속 깊이 스며든 악한 영의 진들을 깨뜨리는 영적 전투를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

  필자 역시 극심한 우상 숭배와 불교에 찌든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마귀의 소름 끼치는 공격과 해코지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죽을 고비를 넘겼고, 학창 시절에는 흑암의 영들에 눌려 잠잘 때에 가위에 눌려 식은 땀을 흘리며 사는 일이 다반사였다. 목회자가 된 이후에도 사탄의 공격으로 허리가 무너져 내려 6개월 동안 꼼짝없이 누워 폐인처럼 지내야 했던 처절한 고난의 터널이 있었다.

  그러나 그 극심한 통증과 절망의 수렁 속에서도 필자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정한 입술을 놀리지 않았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내 영혼의 불순물을 태워 정금같이 빚어내시는 거룩한 연단의 과정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기도의 호흡조차 가빠오던 그 흑암의 시간에 필자가 붙든 유일한 무기는 오직 회개였다. 내 가슴에 예수의 보혈을 뿌리는 회개와 악한 영의 혀를 묶는 맹렬한 방언 기도를 통해 영적 에너지를 높혔다. 사실상 성도들에게 방언기도는 내 영이 살아서 호흡하는 생명의 박동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방언 찬양과 전투 방언 기도로 나아갈 때 우리 내면의 영안이 열리고 귀신을 박살 내는 영적 전사로 비로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나태하게 누워 적당한 구원에 만족하려 하지 말라. 주님이 오늘도 나를 위해 피 묻은 손으로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 역시 부정한 입을 닫고 불평과 원망의 찌꺼기를 토해내야 한다. 매일 새벽을 깨워 회개의 제단을 쌓고, 영혼들을 어깨와 가슴에 짊어지는 이타적인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때, 환난은 변하여 정금 같은 면류관이 될 것이며 우리는 마침내 사망 권세를 짓밟고 승리하는 천국의 찬란한 별들로 영원히 빛나게 될 것이다.

 

9. 나오며

  우리는 장장 세 번의 강해를 통해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복에 감춰진 웅장한 기독론의 정수를 살펴보았다. 하얗게 빛나는 무죄한 세마포, 영원한 영광을 상징하는 찬란한 금실, 열두 지파의 이름을 가슴에 품은 보석들, 심판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우림과 둠밈, 그리고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은혜의 금방울 소리까지. 이 모든 구약의 예표들은 우리를 죄악과 마귀의 억압에서 건져내어 새 예루살렘 성의 보좌로 이끌어 올리시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이다. 

  그러므로 이제 이러한 엄청난 계시를 깨달은 우리는 이제 바깥뜰의 얄팍한 신앙에 머무를 수는 없다.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더이상 내가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현실에 만족하려는 안일한 생각는 이제 걷어내야 한다. 나를 위해 지금도 피 흘린 옷을 입고 중보하시며 지성소에 초대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내 육체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어둠의 영들을 날마다 치열한 회개와 성령의 능력으로 쫓아내야 한다. 그래서 내 영이 맑아짐으로 인하여, 더욱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힘써서, 저 하늘나라의 위대한 왕의 반열에 오를 때까지 우리 주님처럼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04월 08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영설교는 출애굽기 28장에 나타난 대제사장의 의복을 통해 그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역을 깊이 있게 통찰합니다. 흰색 속ㄴ옷과 화려한 겉옷은 각각 흠 없는 순결함과 하나님의 신성한 영광을 상징하며, 피와 관유를 뿌리는 절차는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핵심 요소로 설명됩니다. 특히 어깨 견대와 가슴 흉패에 새겨진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은 모든 성도를 사랑으로 품고 책임지시는 중보자로서의 사역을 보여주며, 판결 흉패 속 우림과 둠밈은 그분이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자이심을 입증합니다. 끝으로 의복 하단의 금방울 소리는 안식일조차 쉬지 않고 자기 백성을 위해 지금도 일하시는 주님의 열심을 강조하며, 성도들이 그분의 은혜를 신뢰하고 회개함으로 나아갈 것을 독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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