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88)] 하나님이 보내실 왕을 준비하며 그를 세울 자는 누구인가?(삼상1:1~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_xhnKIwdZVg
1. 들어가며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사 시대의 350년은 처절한 실패와 타락의 연속이었다.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고통 속에서 부르짖고, 사사가 구원하면 또다시 타락하는 악순환을 무려 여섯 번이나 반복했다. 이 끔찍한 영적 암흑기의 원인에 대해 성경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고 진단한다. 진정한 왕, 즉 백성들을 철저히 하나님만 섬기도록 이끌어 줄 영적 통치자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통해, 장차 천국에서 철장 권세로 만국을 다스릴 '국가적 차원의 이기는 자'를 세우는 과정이다. 현재 사탄 마귀의 우두머리는 무저갱에 철저히 결박되어 있고 하늘에서는 영광스러운 천년왕국이 진행 중이지만, 이 땅에는 여전히 합법적으로 내려온 조상의 영과 무당 귀신들이 우리 육체 속에 파고들어 왕 노릇 하려 든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천국의 거룩한 4대 계급에 오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왕적 신앙을 회복하고 우리 자신을 나실인처럼 바쳐야만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의 혼란과 진정한 왕을 준비하는 과정, 한나의 태를 닫으셨던 영적 섭리와 자궁에 들어찬 악한 영의 실체, 그리고 나실인으로 바쳐진 자가 천국의 4대 계급 속에서 얻게 될 영광의 실상이 무엇인지, 더불어 우리 몸속에 들어와 견고하게 집을 지은 귀신들을 몰아내는 정확한 회개 메커니즘이 어떠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이스라엘 사사 시대의 혼란과 천국 계급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궤계는 무엇인가?
사사 시대의 백성들은 이방 민족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정작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도록 이끌어 줄 영적인 왕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외적을 물리치고 자신들의 재산과 육신을 보호해 줄 세상적인 왕이었다(삼상 8:19-20).
삼상 8:19-20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세상적 가치관에 찌든 백성들은 군림하고 지배하는 권력을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의 질서는 이 땅의 타락한 권력 구조와 완전히 다르다. 천국은 대제사장(24장로), 제사장(144,000명), 레위인, 느디님 사람(물 긷는 자)이라는 명확하고도 거룩한 4대 계급으로 이루어진 철저한 행정 국가다. 이 계급은 억압과 착취가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고 영적 전쟁에서 이긴 분량에 따른 공의로운 상급이다.
그러나 사탄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질서를 파괴하려 든다.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며 지주와 사제를 학살했던 공산주의 사상이나 인민재판은, 영적으로 볼 때 천국의 질서를 허물고 무정부 상태를 만들려는 마귀의 극악한 궤계다. 겉으로는 평등을 외치지만 결국 힘센 독재자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여 인간을 잔인하게 숙청하는 것이 사탄의 방식이다. 천국의 계급은 영원토록 서로를 존중하며 기쁨으로 섬기는 질서다. 마귀의 거짓된 평등주의에 속아 신앙의 지위와 상급을 뭉뚱그려버리면, 영원한 영광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맞게 된다.
3. 진정한 왕의 선구자 사무엘을 준비하기 위해 한나의 태를 닫고 기도를 시키신 섭리는?
백성들은 육신을 보호해 줄 사울을 왕으로 원했지만, 하나님은 진정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 곧 다윗을 세우기 원하셨다. 그리고 그 진정한 왕을 찾아내어 기름을 부을 위대한 선지자요 영도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제도권 교회라 할 수 있는 엘리 제사장의 가문은 홉니와 비느하스의 타락으로 이미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하나님은 이 썩은 제도권을 뚫고 새로운 영적 거목을 탄생시키기 위해 에브라임 산지의 엘가나와 한나 가정을 택하셨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한나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삼상 1:5-6).
삼상 1:5-6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하나님이 한나의 태를 막으신 것은 진정 무엇인가? 그것은 그 집안의 저주가 아니라 위대한 사명자를 낳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만약 한나가 브닌나처럼 쉽게 아들을 낳았다면, 그녀는 결코 눈물로 밤을 새우며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아들을 하나님께 평생 바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낳지 못하는 뼈저린 고통과 격분 속에서 한나는 마침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다. "아, 하나님께서 쓰실 특별한 종이 필요하구나!" 이 깨달음이 한나를 통곡의 기도로 이끌었고, 마침내 위대한 선구자 사무엘을 잉태하게 한 것이다.
4. 자궁에 들어찬 악한 영의 실체와 예수 피, 성령의 불로 축사할 때 나타나는 팩트는?
한나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태가 닫힌 경우도 있지만, 영안이 열려 영적 세계를 들여다보면 오늘날 수많은 여성들이 임신하지 못하는 진짜 원인은 따로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은 자궁 안에 악한 영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무당을 부르고 제사를 지내서 내려온 가문의 영들, 그리고 부정한 성생활을 통해 남편의 가문에서까지 밀고 들어온 음란의 영들이 여성의 자궁 속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견고하게 집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자궁에 영이 가득 차면 육체에는 두 가지 명확한 특징이 나타난다. 바로 '차디차고', '단단하다'는 것이다. 뱀과 같은 귀신들이 아랫배에 실처럼 줄어들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자궁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굳어버려 생명이 착상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물리적으로 아랫배를 따뜻하게 하면 불임 여성이라도 임신이 되기도 한다.
이 견고한 진을 부수기 위해 감상적인 위로나 인간적인 의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오직 철저한 자백의 회개를 통해 축사 메커니즘을 가동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나와 조상의 우상숭배와 음란의 죄를 피 토하듯 자백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가 처음에는 한 방울로 시작되어 회개가 깊어질수록 내 몸 안으로 점진적으로 들어와 악한 영을 완벽하게 이격시키고 녹여낸다. 그리고 이후 성령 사역자들에 의해 성령의 불과 칼이 작동되어 그 잔재와 영적 쓰레기(저주와 질병의 집)를 흔적도 없이 불태워 소멸시키고, 질긴 사슬을 단숨에 잘라낸다. 이렇게 뱀들이 쫓겨나가면 차갑고 단단했던 자궁이 성령의 불로 따뜻하고 부드럽게 변하며, 비로소 잉태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5. 한나가 쉽게 아들을 낳았다면 일어났을 비극과 하나님이 처절한 기도를 요구하신 이유는?
만약 한나가 겪었던 고통의 시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아들을 낳자마자 브닌나를 향해 "나도 아들을 낳았다"며 득의양양하게 자랑하기 바빴을 것이다. 그 아들은 그저 엘가나 가문의 대를 잇는 평범한 자식으로 전락했을 것이며, 이스라엘의 왕을 세울 위대한 선지자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쓰실 위대한 종, 영적 전쟁의 야전 사령관은 적당한 기도나 얄팍한 헌신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나는 자식을 주시면 평생 여호와께 드리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겠다는 서원을 올렸다(삼상 1:11).
삼상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 하나를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기를 비우고 눈물로 서원하는 헌신의 그릇을 찾으셨다. 기도를 통해 영적 그릇이 찢어지고 넓혀질 때, 비로소 사탄의 궤계를 부수고 시대를 이끌어갈 거대한 영혼이 담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의 처절한 기도는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돌릴 영적 발전기를 돌리는 숭고한 산고의 고통이었다.
6. 위대한 사명자가 탄생하기 위해 부모의 눈물 어린 기도가 필수적인 영적 이유는 무엇인가?
사무엘뿐만이 아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 역시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늙도록 자식이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눅 1:5-7). 왜 하나님은 시대를 뒤바꿀 위대한 사명자들을 쉽게 태어나게 하지 않으시고, 부모의 뼈를 깎는 기도를 요구하시는가?
그것은 사명자가 감당해야 할 영적 전쟁의 무게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무저갱에 갇혀 있지만, 이 땅의 조상 귀신들과 어둠의 주관자들은 위대한 사명자가 태어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고 공격한다. 부모의 기도가 쌓이지 않으면, 태어나는 자식은 악한 영들의 맹렬한 공격을 견뎌낼 수 없다.
부모가 눈물로 드리는 회개와 간구는 자녀의 영혼과 육체를 보호하는 강력한 영적 방패막이 된다. 한나의 눈물과 사가랴의 탄식이 쌓여 사무엘과 세례 요한이라는 무결점의 나실인, 곧 영적 장수들이 빚어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자녀들이 숏폼 중독이나 세상의 음란에 빠지지 않고 천국의 이기는 자로 자라나게 하려면, 부모가 먼저 피눈물 나는 회개 기도로 가문의 악한 영들을 끊어내고 하늘의 불을 끌어내려야 한다.
7. 세상 향락과 세속적 얽매임을 끊는 나실인의 3대 규례는 우리의 영적 헌신과 어떻게 매칭되는가?
그때 한나는 비로소 아들을 얻으면 그에게 삭도를 대지 않겠다고 서원했다. 이는 민수기 6장에 등장하는 '나실인(바쳐진 자)'의 규례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실인은 다음의 세 가지를 엄격하게 금해야 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포도주와 독주, 심지어 생포도나 건포도조차 먹지 말아야 했고, 둘째는 삭도를 머리에 대지 말아야 했으며, 셋째는 부모 형제가 죽었을지라도 시체를 가까이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아야 했다(민 6:3-7).
민 6:3-7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이것은 오늘날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결단해야 할 영적 헌신과 정확히 매칭된다. 포도주를 끊는다는 것은 육신의 향락과 세상의 쾌락으로부터 기쁨을 찾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것은 나의 고집과 자존심을 꺾고, 내 인생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절대 통치에만 복종하겠다는 의지다.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혈연의 정이나 세상의 도리보다 하나님의 사명을 목숨처럼 최우선으로 여기겠다는 거룩한 단절이다. 영적 야전에서 이 세 가지를 끊어내지 못하면 결코 천국의 정예 부대로 쓰임 받을 수 없다.
8. 사역적 예정 없이 스스로 헌신한 나실인이 천국 4대 계급 속에서 얻게 될 영광의 실상은?
천국은 4대 계급이 통치하는 영광스러운 국가다. 가장 꼭대기에는 이미 2천 년 전에 거의 확정된 대제사장(24장로) 계급이 있다. 이들은 천국에 10층 이상의 초고층 저택과 1,000평 이상의 광활한 영토를 소유하며, 성 밖으로 나가 은하계의 별들 위에서 절대적인 왕 노릇을 한다. 두 번째는 만세 전부터 파송된 사명자인 제사장(144,000명) 계급이다. 이들은 천국 예배 시 14만 4천 석의 보좌에 앉아 예배드리며, 500~1,000평의 영토에 3~10층 규모의 저택을 짓고 왕과 주인의 노릇을 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위대한 사명자로 태어나지 못한 일반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헌신하여 나실인처럼 바쳐진 자들이 오르는 반열이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인 레위인 계급은 비록 사역자로 지명받진 않았으나 이 땅에서 치열하게 영적 전쟁을 치러 이기는 자가 된 성도들이다. 이들은 예배 시 14만 4천 명의 보좌 뒤에 서서 예배드리며, 50~500평의 땅과 1~5층 규모의 집을 소유한다. 삼손이나 사무엘처럼 자원하여 나실인으로 바쳐진 자들은 이 반열을 훌쩍 뛰어넘어 144,000명, 심지어 24장로의 엄청난 지위까지도 오를 수 있다.
반면, 아무런 수고 없이 턱걸이로 들어간 네 번째 느디님(물 긷는 자) 계급은 집이 없어 연회를 열 수 없고, 꽃밭의 돗자리 크기 땅에 거주하며 왕 노릇 하는 이들의 저택으로 기쁨의 출근을 한다. 그러나 이조차도 못하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거짓 교리에 속아 회개치 않고 죄짓던 자들은 죽을 때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그들은 성 밖으로 쫓겨나 평생 땀 흘려 노동해야 하고, 다쳐서 생명나무 잎사귀로 치료를 받아야 하며, 더 바깥 어두운 곳으로 가면 무서운 형벌을 받거나 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 스스로를 나실인으로 바친 헌신이야말로 이 비참함을 면하고 천국 보좌를 쟁취하는 유일한 열쇠다.
9. 나오며
우리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의 혼란과 진정한 왕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자궁을 가로막은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의 메커니즘, 그리고 나실인으로 헌신한 자가 천국의 4대 계급 속에서 누리게 될 영광과 성 밖으로 쫓겨나는 자들의 팩트를 낱낱이 살펴보았다.
천국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거저 얻어지는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결코 아니다. 이 땅에서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더러운 영들과 피 터지게 싸우며 내 육체를 쳐서 복종시킨 분량만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내 시간과 물질을 온전히 나실인처럼 바친 분량만큼 영원한 집의 층수와 땅의 평수, 그리고 보좌의 영광이 완벽하게 1:1로 결정되는 공의로운 세계다.
그러므로 더 이상 썩어질 육신의 편안함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오늘 당장 눈물로 무릎을 꿇고 뼈를 깎는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가 처음에는 한 방울로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들어와 악한 영을 완벽하게 이격시키고 녹여낼 때까지, 그리고 성령 사역자들을 통해 성령의 불과 칼이 작동되어 그 잔재와 영적 쓰레기를 태우고 질긴 사슬을 단숨에 잘라낼 때까지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노동과 상처가 가득한 성 밖으로 쫓겨나는 비참한 자가 아니라, 기꺼이 자기를 바친 나실인이 되어 천국 4대 계급 안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세세 무궁토록 다스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11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이스라엘의 혼란했던 사사 시대를 종식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을 세우기 위해 준비된 사무엘의 영적 가치를 조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백성들이 요구한 단순한 군사적 지도자가 아닌,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인도할 참된 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이를 위해 나실인으로서 구별되어 철저히 기도로 준비된 사무엘의 탄생 배경을 설명합니다. 특히 한나의 불임과 고통이 결국 전적인 헌신을 이끌어내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강조하며, 오늘날의 성도들 또한 세속적 가치관을 버리고 회개와 기도를 통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영적 질서에 동참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타락한 시대를 변혁하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친 헌신된 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결정적 열쇠임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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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독론(88)] 하나님이 보내실 왕을 준비하며 그를 세울 자는 누구인가?(삼상1:1~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_xhnKIwdZVg
1. 들어가며
사사기는 한 문장으로 그 영적 결론을 토해낸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350년 동안 이스라엘은 여섯 번의 타락과 여섯 번의 회복을 반복하였다. 우상에게 절을 하고, 이방 신을 섬기고, 음란을 따라가고, 형제의 피를 흘리고, 결국에는 이방 민족의 손에 짓밟혔다. 그러다가 고통이 극한에 이르면 잠시 부르짖고, 사사가 일어나 구원해 주면 또다시 우상에게로 돌아갔다. 이 끔찍한 순환의 마지막 페이지에 사사기는 한 문장을 못 박아 놓는다. 왕이 없었다는 것이다.
왕이 없으므로 사람은 자기 눈에 옳은 대로 살았다. 이것이 핵심이다. 인간은 본래 왕이 없으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 인간의 본성 안에는 우상을 향해 무릎을 꿇으려는 강력한 끌림이 있고, 그 끌림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면서 자손의 몸 안에 영을 집을 짓고 살게 만들었다. 그래서 왕이 필요하다. 그것도 백성을 우상에게서 끌어내어 오직 한 분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는 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왕은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왕보다 더 어려운 자리에 한 사람이 먼저 서야 한다. 그 왕에게 기름을 부어 줄 자, 그 왕을 세상에 알릴 자, 그 왕의 길을 미리 닦을 자가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그가 누구인가? 사사기의 마지막 장면을 닫고 사무엘상의 첫 장면을 여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한 여인을 부르신다. 한나라는 이름의 한 여인을 부르신다. 그리고 그 여인의 태(胎)를 일부러 닫으신다.
이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다. 자식을 갖지 못해 매년 신로에 올라가 통곡하는 한 여인의 사사로운 슬픔 뒤편에, 하나님은 다윗 왕을 세울 자, 곧 사무엘이라는 한 영혼을 보내실 준비를 하고 계셨다. 더 멀리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릴 세례 요한의 출생을 미리 예표하고 계셨다. 한나의 닫힌 자궁은 슬픔이 아니라 섭리였다. 그것은 진짜 기름 부을 자, 진짜 선구자, 진짜 받쳐진 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쳐 두신 영적 장벽이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사사기 350년의 영적 결론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왕의 본질, 천국의 네 가지 신분 체계, 한나의 닫힌 태(胎)에 담긴 섭리, 사무엘과 세례 요한이 동시에 나실인으로 태어난 까닭, 민수기 6장 나실인의 세 규정이 담은 영적 메커니즘, 그리고 받쳐진 자의 천국 지위와 평신도의 동참 방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보내실 왕을 준비하며 그를 세울 자가 과연 누구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사 시대 350년의 타락은 왜 '왕'의 출현을 요구하는가?
사사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한 가지 패턴이 끈질기게 반복된다. 백성이 우상을 섬긴다. 하나님이 이방 민족을 붙이신다. 백성이 부르짖는다.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신다. 백성이 잠시 평안을 누리다가 또다시 우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 여섯 번이다. 사사기 1장부터 16장까지의 이야기가 여섯 번의 같은 패턴으로 굴러간다. 이 끝없는 순환의 이유가 무엇인가? 사사기 저자는 그 답을 마지막 두 에피소드 — 미가의 신상과 레위인의 첩 사건 — 으로 보여 주고, 17장과 21장 두 곳에 같은 문장을 박아 놓는다. 왕이 없었다는 것이다(삿 17:6).
삿 17:6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왜 왕이 필요한가? 사람은 통제되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떠난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우상에게 끌리는 영적 무게가 있다. 조상 대대로 제사를 지내 온 가문에서는 그 영이 자손의 몸 안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영이 들어 있는 한 사람은 자기 눈에 옳은 대로 살 수밖에 없다. 사사기의 350년은 이 사실을 여섯 번에 걸쳐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왕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왕인가? 백성을 보호해 주는 왕이 아니다. 백성의 재산을 지켜 주는 왕이 아니다. 백성을 전쟁에서 승리시키는 왕이 아니다. 그런 왕은 이방 민족에게도 얼마든지 있다.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왕은 다르다.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끌어내고, 우상을 부수고, 회개시키며, 오직 한 분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인도하는 왕이 필요하다.
남유다의 역사를 한 번 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가 드러난다. 르호보암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왕들이 다윗의 자리에 앉았지만, 진짜 다윗 왕과 같은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호사밧도 부족했다. 요시야도 그러했다. 그나마 히스기야 정도가 비교적 괜찮았다. 그러나 그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자기 아들을 몰렉 신에게 바친 자였다. 부친의 신앙이 자식에게로 그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히스기야에게는 헵시바라는 부인이 있었다. 히스기야왕과 헵시바 왕비는 아들 므낫세를 위해 끝까지 기도하는 자였다. 그리고 므낫세는 결국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감옥에서 눈물로 회개하고 돌아온다. 열왕기하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역대하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대하 33:12~13).
대하 33:12~13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므낫세는 60이 넘어 회개하였고, 천국에 가서는 상당히 높은 지위에 올라간 자가 되었다. 이것이 어머니의 기도의 위력이다. 그러나 정작 다윗 왕과 같은 자, 즉 백성을 우상에서 끌어내어 하나님을 섬기게 만드는 왕은 다윗 한 사람을 빼고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성경은 이 350년 동안 한 가지 메시지를 외친다. 다윗 왕의 출현을 요구하는 메시지이다. 다윗 왕은 그냥 다윗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다(행 13:22).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말은, 그가 백성을 우상숭배에서 끌어내어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이끌었다는 뜻이다. 다윗이 비록 밧세바 사건으로 죄를 지었으나, 그는 우상을 섬긴 일이 없었고, 그가 죄를 자각했을 때 즉시 회개로 들어갔다. 그래서 다윗 왕은 진짜 왕이었다. 그리고 다윗 왕은 더 큰 그림자였다. 그가 가리키는 분이 따로 계셨다. 곧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3. 백성이 구한 왕과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왕은 어떻게 다른가?
사사기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백성은 왕을 구한다. 그런데 그들이 구한 왕은 하나님이 보내시려는 왕이 아니었다.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사무엘상 8장에 그 차이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삼상 8:19~20).
삼상 8:19~20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위에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백성이 구한 왕은 무엇을 하는 왕인가? 두 가지이다.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우는 왕이다. 다스림과 전쟁. 곧 자기 재산을 지켜 주고 자기 자식들을 보호해 주는 왕이다. 어디에도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왕"이라는 표현이 없다. 어디에도 "우리가 섬기는 우상을 부수는 왕"이라는 표현이 없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사람은 보이는 것에 매달린다. 자기 재산이 보이고, 자기 자식이 보이고, 적군이 보인다. 그래서 그것을 지켜 줄 왕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영혼이 영원히 어디로 가는지는 관심이 없다. 우상숭배를 하면서 자기 영혼이 영원한 고통의 자리로 떨어진다는 사실은 보이지 않으니까 외면한다. 보이지 않는 영원보다 보이는 오늘이 더 무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사울을 세우신다. 사울은 하나님이 예정에서 보낸 왕이 아니다.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세워 주신 왕이다. 그래서 사울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머리 하나 만큼 키가 크고 외모가 준수했으나, 그것은 백성이 원한 조건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조건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왕은 다르다. 영적 나이가 높은 자이다. 천국에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파송된 자이다. 그 사람은 눈동자가 다르다. 말하는 것이 다르다. 행동거지가 다르다. 그는 백성을 이끌어 가되 우상을 부수게 하고 회개하게 만든다. 그가 입을 열면 백성의 가슴 속에 박혀 있는 우상이 흔들린다. 그가 손을 들면 조상 대대로 자손의 몸에 들어와 있던 영이 떨려 나간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런 의미에서 왕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종속된 신하들도 없었고, 공물을 받는 체계도 없었다. 그들은 지도자였지 왕은 아니었다. 그래서 모세와 여호수아가 죽고 나서 이스라엘 12지파 체제가 시작되었을 때, 중앙의 통일된 영적 통치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결과가 사사기 350년의 그 끔찍한 순환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짜 왕을 세우시려 한다. 그것이 다윗 왕이다. 그리고 다윗 왕을 통해 진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그려 두려 하신다. 다윗은 그림자이고 예수님이 실체이다. 다윗은 예표이고 예수님이 본체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는 말이 무엇인가? 백성의 몸 안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고 있던 영을 몰아내는 것이다. 우상을 부수는 것이다. 조상의 영이 자손의 몸에서 떼어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성령이 들어와 다스리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이다. 백성이 구한 왕은 적군을 무찌르는 왕이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은 영을 무찌르는 왕이시다. 백성이 구한 왕은 재산을 지켜 주는 왕이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은 영혼을 지켜 주시는 왕이시다. 이 둘은 같은 단어를 쓰지만 전혀 다른 실체이다.
4. 천국의 4대 신분 체계와 평등 사상이 사탄의 계략인 이유는?
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천국의 영적 구조 한 가지를 알려 준다. 천국에는 신분 체계가 있다. 누구나 똑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천국에는 네 가지 신분이 있다. 왕, 장관, 백성, 종이다. 그리고 제사 체계로 본다면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그리고 남은 무리이다.
이것을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한 마디로 묶어 놓는다(벧전 2:9).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어두운 데서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을 한국어 성경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그러나 원어로 보면 이 표현은 "왕 같은"이 아니라 "왕의" 또는 "왕에 속한"이라는 뜻이다. 즉 "왕의 제사장 체계"라는 뜻이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제사장 체계, 그 안에 대제사장 - 제사장 - 레위인 - 남은 무리의 계급이 있다는 뜻이다. 번역을 잘못하면 이것이 마치 모든 성도가 다 왕이고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천국에 가서 보면 분명히 구별이 있다. 24장로의 자리가 있고, 14만 4천의 자리가 있다. 자기 집을 분양받는 자리가 있고, 꽃밭에 거하는 자리가 있다. 그리고 성 밖에 거하는 자리가 있다. 신분과 자리가 다르다.
성 밖 거주자가 누구인가? 구원은 받았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주의 뜻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어 죄를 짓고도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회개조차 하지 아니한 자이다. 그런 자는 성 밖에 거한다. 같은 천국이지만 자리가 다르다.
그래서 사탄은 무엇을 하는가? 이 신분 체계를 무너뜨리려 한다. "모두가 평등하다", "계급은 없어져야 한다",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 — 이것이 사탄의 생각이다. 이것이 공산주의 이념의 본질이다. 사탄은 천국의 질서를 이 땅에서 무너뜨리려 한다. 그래서 인민재판이 벌어지고, 완장을 찬 자들이 마을 어른들을 끌어다가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공산당이 북한에 내려와서 한 일을 한 번 보라. 노동자들이 완장을 차고 인민재판을 열어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죄가 없는 자도 죽였다. 김일성은 거짓말을 하나씩 만들어 정적을 다 숙청하였다. 질서가 무너지면 결국은 힘세고 입센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것이 공산주의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질서는 다르다. 하나님의 질서는 가진 자가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질서이다. 그러나 그 질서를 가진 자의 자리와 받는 자의 자리는 구별되어 있다. 이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사탄의 계략이다. 그래서 천국의 24장로가 어떤 자리인지를 알아야 한다. 24장로는 천국 24개 마을의 수장이다. 그들이 주님께 나아갈 때는 먼저 수금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그다음에 성도들의 기도를 대접에 담아 올린다(계 5:8).
계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리고 천국에서는 결코 더러워지지 않아 세탁이 필요 없는 흰 세마포 옷을 입고 살아간다. 천국에는 생명나무의 과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나와 다양한 떡, 견과류, 포도주가 풍부하다. 이것이 천국의 실상이다. 그리고 이 실상에는 분명히 신분 체계가 있다. 24장로는 24장로의 자리에서 일하고, 14만 4천은 14만 4천의 자리에서 일한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섬긴다. 그래서 왕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곧 그 왕을 섬기는 자들의 자리도 중요하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 한 분을 섬기는 체계는 입체적이다. 그리고 그 체계의 가장 윗자리에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 아래에 24장로가 있고, 그 아래에 14만 4천이 있고, 그 아래에 분양받은 백성이 있다.
5. 하나님은 왜 한나의 태(胎)를 일부러 닫으셨는가?
하나님이 보내실 왕을 위해서는 그 왕에게 기름을 부어 줄 자, 그 왕을 만들어 세울 자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가 사무엘이다. 그런데 사무엘은 그냥 태어난 자가 아니다. 사무엘은 닫힌 태(胎)에서 태어난 자이다. 닫힌 태에서 기도의 통곡을 거쳐 태어난 자이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게는 두 가지 고통이 있었다. 첫째는 자식을 낳지 못한 것, 둘째는 적쳐 브닌나가 그것을 가지고 매일 그녀를 격분하게 한 것이었다(삼상 1:5~6).
삼상 1:5~6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하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중요한 것은 여기에 두 번 반복된 한 문장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한나가 자식을 못 낳은 것은 한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의학적 문제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막으셨다는 것이다. 일부러 막으셨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식을 못 낳는 이유는 영적으로 보면 자궁 안에 강력한 영이 들어와 있는 까닭이다. 조상 대대로 제사를 지내 온 가문에서 그 영이 여자에게 들어오고, 성관계를 통해 남편의 가문에까지 들어가 자궁을 가득 채운다. 영이 가득 차면 자궁이 차지차고 단단하다. 차지차고 단단한 자궁은 임신이 되지 않는다. 영이 나가면 자궁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진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궁은 임신이 된다. 사람도 동일하다. 영이 많은 사람은 차지차고 단단하다. 고집이 세고 성질이 불 같다. 영이 빠져나가면 따뜻하고 부드러워진다.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피가 들어와 그 영을 몸에서 떼어내어 이격시키고 녹이면, 그 사람은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회개한 사람은 가정에서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는다. 자식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안에서 부드럽다. 그것이 영의 일이다. 그러나 한나의 경우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한나의 닫힌 자궁은 영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일부러 닫으신 것이다. 본문은 두 번이나 그 사실을 강조한다. 여호와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일부러 닫으셨는가?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만일 한나가 정상적으로 자식을 낳았다면, 그 자식을 결코 하나님께 바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어머니가 젖먹이 어린 아들을 다른 자에게 보내고 싶겠는가. 어느 어머니가 처음 낳은 귀한 아들을 신로에 바치고 싶겠는가. 안 할 것이다. 절대 안 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한나의 태(胎)를 일부러 닫으신 것이다. 못 낳고 못 낳고 또 못 낳고 — 그 고통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어느 날 한나는 깨닫는다. "하나님이 아들을 달라고 그러신 것 같다." 그래서 한나는 서원한다(삼상 1:11).
삼상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나실의 서원이다.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겠다는 그 말이 바로 나실인 규정이다. 그러니까 한나는 자기 자식을 나실인으로 바치겠다고 서원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한나의 닫힌 태(胎) 안에는 사무엘이라는 한 영혼이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그 영혼은 그냥 들어가서는 안 되었다. 기도로 얼룩진 태, 통곡으로 적셔진 태, 서원으로 묶인 태 안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야 그 영혼이 진짜 받쳐진 자로 태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영혼이 다윗 왕에게 기름을 부어 줄 자로 자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천국에서 보시기에 매년 신로에 올라와 통곡하며 기도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자식을 위해 그렇게 부르짖는 여인이라면 자식을 낳은 뒤에도 그 자식을 위해 계속 기도해 줄 것이 분명했다. 술이나 마시고 노는 여인에게는 그 영혼을 보낼 수 없다. 자기 잘못을 돌아보지 않는 여인에게는 그 영혼을 보낼 수 없다. 하나님은 그 한 여인을 찾고 또 찾아 마침내 한나에게 사무엘의 영혼을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한나의 고통은 한나의 죄 때문이 아니었다. 한나의 고통은 한나를 통해 한 위대한 영혼을 세상에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한나의 닫힌 태(胎)는 슬픔이 아니라 영적 진통실이었다.
6. 사무엘과 세례 요한이 동일하게 나실인으로 태어난 까닭은?
사무엘이 나실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무엘의 출생 구조는 그대로 세례 요한의 출생 구조에 복사되어 나타난다. 한나와 엘가나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된다.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둘 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말한다(눅 1:13~17).
눅 1:13~17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아오게 하고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여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여기 보라.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 이것이 나실 규정의 첫 번째 항목이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도 나실인이다. 그리고 그의 부모가 자식을 못 낳다가 기도 끝에 얻어 바친 아들이다. 사무엘과 정확히 같은 구조이다. 왜 같은 구조인가? 진짜 왕을 세울 자는 진짜 위대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기도해서 태어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흐리멍덩한 자가 다윗 왕에게 기름을 부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가짜 선지자가 메시아의 길을 닦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윗 왕은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에 기름을 부은 자가 사무엘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가리키는 실체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였고, 그 실체의 길을 닦은 자가 세례 요한이었다. 그래서 사무엘의 출생과 세례 요한의 출생은 같은 패턴으로 묶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무엘은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었다. 사무엘은 다중 직무자였다. 그는 사사였다. 엘리 제사장이 50세에 제사장직을 마치고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제사장직을 위임한 뒤, 58세에 사사로 부르심을 받아 98세까지 40년간 사사를 보았다. 그리고 사무엘은 그 엘리의 뒤를 이어 사사가 되었다. 또한 사무엘은 제사장 일도 감당하였다. 베델과 길갈과 미스바를 돌며 회개 운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무엘은 선지자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사이면서 제사장이면서 선지자였다. 거의 왕적 존재의 지도자였다.
왜 이렇게 다중 직무자로 만드셨는가? 다윗 왕에게 기름을 부어 줄 자는 그만큼 완벽한 영적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사 한 직분만으로는 부족했다. 제사장 한 직분만으로는 부족했다. 선지자 한 직분만으로는 부족했다. 세 가지가 한 사람 안에 다 있어야 했다. 그래야 그 사람이 부어 주는 기름이 진짜 기름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부터 광야에 가서 금식하며 일평생 헌신된 자였다.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은 나실인이었다.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그러다 단 한 번 메시아를 가리키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친 뒤(요 1:29),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고 자신은 사라졌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의 첫 두 제자가 누구였는가? 안드레와 요한이었다. 그런데 그 두 제자가 예수님께 가 버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내 제자를 빼앗아 갔다"고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한 마디로 끝낸다(요 3:30).
요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그분은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 그분은 확장되어야 하고 나는 축소되어야 한다. 이것이 어떤 인격인가? 이것이 어떤 영적 깊이인가? 메시아의 길을 닦을 자는 이 정도 인격이 되어야 한다. 이 정도 영적 깊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그리고 한나는 어떠한가? 한나도 신앙의 위인이다. 천국에 가서 보면 한나는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다. 자식을 위해 그렇게 통곡하며 기도하고, 그 자식을 받자마자 하나님께 바친 어머니이다. 그래서 사무엘과 세례 요한이 동일하게 나실인으로 태어난 까닭은 한 가지이다. 진짜 왕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가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흐리멍덩한 자는 안 되기 때문이다. 빡세게 기도된 자, 그것도 부모의 통곡으로 빚어진 자만이 진짜 왕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7. 나실인의 세 가지 규정이 담고 있는 영적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나실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나지르(נָזִיר)"에서 왔다. 그 뜻은 "구별된 자", "분리된 자", "받쳐진 자"이다. 곧 세상에서 떼어내어져 하나님께만 속한 자라는 뜻이다. 단순한 종교적 호칭이 아니다. 영적 신분이다. 받쳐진 자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다. 받쳐진 자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받쳐진 자는 하나님의 소유이다.
민수기 6장이 그 나실 규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세 가지 규정이다(민 6:2~8).
민 6:2~8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어떤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첫 번째 규정은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철저하다. 포도주, 독주, 그것들로 만든 초, 포도즙, 생포도, 건포도, 심지어 포도나무의 씨나 껍질까지 먹지 말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상의 향락을 즐기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 자기 기쁨을 찾지 말라는 것이다. 목회자는 오직 주님만을 기뻐해야 한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 주님 위에 즐거움을 찾는 자는 받쳐진 자가 아니다. 또한 어려움이 있어도 술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담배로 해결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이것이 받쳐진 자의 첫 번째 규정이다. 그리고 이 규정은 그대로 제사장 규정과 연결된다. 회막에 들어가는 제사장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실 수 없었다(레 10:9).
정신이 흐려서는 안 된다. 영적 분별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받쳐진 자는 첫째로 정신을 맑게 한다. 세상의 향락에 자기를 던지지 않는다.
레 10:9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두 번째 규정은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것이다. 곧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무엘은 머리를 깎았는가, 깎지 않았는가? 깎지 않았다. 본문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나실 규정대로 살았다면 깎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어린 사무엘을 단발머리로 그려 놓은 그림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 전체를 보지 않고 그린 그림이다. 삼손도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힘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들릴라가 그 머리를 잘라 버리자 삼손의 힘은 사라졌다(삿 16:19).
삿 16:19 들릴라가 자기 무릎을 베고 삼손을 잠들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왜 머리카락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가?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것이 곧 받쳐진 자의 표였기 때문이다. 본문이 분명히 말한다.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머리카락은 받쳐졌다는 영적 표식이다. 그 표식을 잃으면 받쳐진 자의 능력도 잃는다.
세 번째 규정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도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극단적 규정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속의 가치관에 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가족의 죽음조차도 받쳐진 자의 사명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마 8:21~22). 세속적인 일은 세속의 손에 맡기고, 받쳐진 자는 오직 주님의 명령만 따라가야 한다. 부모의 장례조차도 받쳐진 자에게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이것이 받쳐진 자의 무거움이다. 이것이 받쳐진 자가 짊어진 영적 짐이다. 쉬운 길이 아니다.
마 8:21~22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그래서 나실인의 세 가지 규정을 한 마디로 묶으면 이렇다. 세상의 향락에서 떼어내고, 받쳐진 표를 머리에 두고, 세속의 가치관에서 분리되라. 이 세 가지가 한 사람 안에 다 있어야 그 사람이 진짜 받쳐진 자이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그는 받쳐진 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 규정은 오늘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세상의 향락을 즐기는 목회자는 받쳐진 자가 아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영적 표식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받쳐진 자가 아니다. 세속적인 명예와 인기에 매이는 자는 받쳐진 자가 아니다. 받쳐진 자는 무겁다. 받쳐진 자는 외롭다. 받쳐진 자는 자기 것이 없다.
8. 받쳐진 자의 천국 지위와 평신도가 동참할 길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받쳐진 자들은 천국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가? 천국에 올라가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삼손은 사도 바울 바로 아래급이다. 우리가 사사기만 읽고 삼손을 "여자에 빠져 힘을 잃은 자"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삼손은 부모의 손에 의해 바쳐진 나실인이었다(삿 13:5).
삿 13: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그래서 삼손은 그냥 사사가 아니다. 일반 사사와 격이 다르다. 천국에서 그의 자리는 사도급에 가깝다. 그리고 사무엘과 세례 요한은 24장로급이다. 천국 24개 마을의 수장이 되는 자리이다. 왜 그렇게 높은 자리인가? 그들이 받쳐진 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천국에서 미리 능력이 부어진 채로 이 땅에 보내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무거운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준다. 천국의 영적 일은 보내어진 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무나 자기 좋아서 그 자리에 가는 것이 아니다. 14만 4천의 자리도, 24장로의 자리도, 그 누구도 자기 결심만으로 차지할 수 없다. 그것은 보내어진 자의 자리이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한 가지 착각을 한다. "내가 주의 종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라는 착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주의 종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24장로의 자리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내어진 자의 자리이다.
그렇다면 보내어지지 않은 자, 즉 평범한 성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 가지 분명한 길이 있다. 보내어진 자를 돕는 것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종을 돕는 것이다. 그 종이 일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을 책임지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 다음에 보혜사 성령이 오셨다. 그 성령의 한 가지 큰 역할이 보내어진 자들을 돕는 일이다. 우리가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내어진 자의 한 팔이 되고 한 다리가 되어 그 사명이 이루어지도록 떠받쳐 주는 것이다. 그것이 평신도의 동참 방식이다. 예수님이 마지막 심판 때 무엇으로 양과 염소를 가르시는가? 한 가지이다(마 25:40).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인가? 단순히 가난한 자가 아니다. 보내어진 자를 가리킨다. 보내어진 자를 입히고 먹이고 돌본 자가 곧 예수님을 그렇게 한 자라는 것이다. 이것이 평신도가 천국에서 큰 자리를 받는 방식이다. 이름 없이 빚도 없이 건축 헌금을 보낸 수많은 성도들이 있다. 형제간에도 천만 원 도와주기 어려운데, 천만 원을 보낸 분도 있고, 1억을 보낸 분도 있다. 자기 남편이 죽음의 자리에 누워 있는 가운데 그 평생의 재산을 기꺼이 하나님 앞에 드린 분도 있다. 왜 그렇게 했는가? 그분들이 보내어진 자가 아니지만, 보내어진 자가 일할 수 있도록 떠받쳐 주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들의 이름은 천국 생명책에 그렇게 기록된다. "보내어진 자를 도운 자"로 기록된다. 그래서 그분들의 천국 지위가 결코 낮지 않다. 자기 스스로는 24장로의 자리에 가지 못하지만, 24장로를 도운 자의 자리에 간다. 그 자리도 영광스러운 자리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영적 사실이 있다. 자기 자신을 전체로 바치는 길이 있고, 한 부분으로 바치는 길이 있다. 전체로 바치는 길은 매우 무겁다. 그것은 보내어진 자만이 갈 수 있다. 그러나 한 부분으로 바치는 길은 누구나 갈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한 부분 — 시간, 재물, 기도, 봉사 — 을 주님께 떼어내어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평신도의 받쳐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한다. 한 부분으로 바치는 길도 쉽지 않다. 기도가 많이 필요하다. 한나가 사무엘 한 명을 바치기까지 얼마나 통곡했는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 한 명을 바치기까지 얼마나 늙도록 기도했는가. 받쳐짐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영광이다. 그 영광은 영원하다.
9. 나오며
지금까지 하나님이 보내실 왕을 준비하며 그를 세울 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보았다. 사사 시대 350년의 반복된 타락이 왜 왕의 출현을 요구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백성이 구한 왕과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왕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았다. 천국의 4대 신분 체계와 평등 사상이 사탄의 계략인 까닭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이 왜 한나의 태(胎)를 일부러 닫으셨는지를 살펴보았다. 사무엘과 세례 요한이 동일하게 나실인으로 태어난 까닭을 살펴보았다. 나실인의 세 가지 규정이 담고 있는 영적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 받쳐진 자의 천국 지위와 평신도가 동참할 길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 시대에 다시 오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할 자가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사무엘이 다윗을 세웠듯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닦았듯이, 이 시대에도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닦을 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기도해야 한다. 더 회개해야 한다. 더 받쳐져야 한다. 우리는 백성이 구한 왕의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자기 재산을 지켜 주는 왕, 자기 자식을 보호해 주는 왕만 찾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의 길로 가야 한다. 곧 우리 영혼을 우상에서 끌어내어 오직 한 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는 천국의 4대 신분 체계의 영적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천국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계략에 속아서는 안 된다. 24장로의 자리가 있고, 14만 4천의 자리가 있고, 분양받은 백성의 자리가 있고, 성 밖의 자리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만왕의 왕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한나의 통곡을 기억해야 한다. 한나의 닫힌 태(胎)가 어떻게 사무엘을 빚어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자식의 영혼이 빚어지는 자리는 어머니의 기도 무릎이다. 어머니가 기도하지 않으면 자식의 영혼은 빚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의 기도가 사무엘을 만들고, 어머니의 기도가 세례 요한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슴에 새겨야 한다.
우리는 나실인의 세 가지 규정을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한다. 세상의 향락에 자기를 던지지 말아야 한다. 받쳐진 표를 무겁게 짊어져야 한다. 세속의 가치관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 이 세 가지가 한 사람 안에 다 있을 때, 그 사람이 받쳐진 자이다.
우리는 받쳐진 자의 천국 지위를 기억해야 한다. 삼손이 사도급 자리에 있고, 사무엘과 세례 요한이 24장로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내어진 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보내어진 자를 돕는 길이 우리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 부분을 떼어내어 주님께 드리는 그 길이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 시대의 마지막에 어떤 자가 살아남는가?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자이다. 회개하고 기도하는 자이다. 주님을 붙잡는 자이다. 어떤 환난과 핍박이 와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그 길을 가는 자이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작은 한 부분이라도 변함없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의인 열 명이 있으면 한 성을 멸하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창 18:32).
창 18: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열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멸하지 아니하리라
이 시대에 그 의인 열 명이 누구인가? 받쳐진 자이다. 한 부분이라도 자기를 떼어내어 주님께 드린 자이다. 한나처럼 기도한 자이다. 사무엘처럼 평생 흔들리지 아니한 자이다. 세례 요한처럼 그분은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인격을 가진 자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보내실 왕, 곧 다시 오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며, 그분의 길을 닦는 받쳐진 자가 되어,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이르며 주님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듣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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