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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IwGzbUx6KzA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9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를 위한 왕을 구한 대가는?(삼상8:1~2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wGzbUx6KzA

 

 

1. 들어가며

  많은 성도들은 천국에 가는 것만으로 신앙의 모든 목표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천국에서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임을 분명히 가르친다. 어떤 자는 아들의 신분으로 들어가고, 어떤 자는 상속자의 신분으로 들어가며, 또 어떤 자는 왕의 신분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왕의 신분은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이다.

  왕의 신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명예로운 호칭에 그치지 않는다. 새 하늘과 새 땅, 곧 새 예루살렘 성 밖의 광활한 영토에서 실제로 다스림의 권세를 행사하는 자리이다. 어떤 자는 열 고을을 다스리고, 어떤 자는 다섯 고을을 다스리며, 어떤 자는 두 고을을 다스린다. 더 나아가 24장로의 반열에 속한 자들은 은하의 별까지도 다스리게 된다. "이기는 자에게 내가 새벽 별을 주리라" 하신 그 영광스러운 약속이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는 이 놀라운 계획에 대해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예수만 믿으면 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식의 평면적 신앙 안에서 만족하며 살다가, 정작 천국에 들어가서는 변두리에서 살게 된다. 거기에 부끄러움은 없을지라도 부러움은 분명히 있다. 천국에서 산꼭대기에 살며 별을 다스리는 자들을 바라볼 때 "아, 내가 이 땅에 있을 때 이런 말씀을 들었더라면 더 깊이 헌신했을 것을" 하는 회한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의 반열에 들 수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구약의 한 사건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왕을 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 체제 변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과 인간이 원하는 왕이 어떻게 다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우리가 천국에서 진정한 왕노릇할 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영적 거울이다.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늙은 사무엘에게 나아와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라고 요구했다. 하나님은 이 요구에 깊이 탄식하시며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요구의 대가는 결국 이스라엘 역사에 깊은 상흔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를 위한 왕을 구한 대가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영적 도전과 적용을 주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천국에서의 왕노릇은 무엇을 의미하며 왜 그렇게 중요한가?

  먼저 우리는 천국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안과 밖이 있다. 성 안의 가장 높은 자리에는 보좌가 있고, 그 보좌 아래 지역에 큰 산 시온산이 있다. 이 시온산의 꼭대기 부분에 24장로들이 살고 있으며, 그 아래로 중간 쯤에14만 4천 명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산의 밑부분에 허다한 무리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시온산을 내려와 변두리 부분에 또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14만 4천에 해당하는 사람들 중에는 왕노릇하는 자들 이들은 새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서 그곳에서 사는 민족들 위에 왕노릇하며 심지어 24장로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우주의 별들을 다스리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주님께서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를 통해 이 진리를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눅 19:17-19).

눅 19:17-19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주목할 것은 같은 은사와 달란트를 가지고 일하는 경우에 보상이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더 남긴만큼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자는 열 고을의 권세를, 어떤 자는 다섯 고을의 권세를, 또 어떤 자는 두 고을의 권세를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사용된 권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천국에서 실제로 누리게 될 통치의 영역을 가리킨다. 더 나아가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보좌에 가장 가까이 앉는 24장로들에게는 은하의 별까지도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계 2:26-28).

계 2:26-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이것이 곧 천국에서의 왕노릇이 가지는 영광이다. 그렇다. 모든 성도가 천국에서 동일한 환경을 누리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환경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된다. 더위와 추위가 없고, 노동의 수고도 없으며,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걱정이 없다. 생명나무뿐 아니라 포도나무와 사과나무 등 온갖 종류의 열매를 언제든지 먹을 수가 있고, 떡의 종류도 수없이 많다. 흰 예복은 모두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그 너머에 차등이 있는 것이다. 화려하게 입을 다양한 옷들은 이 땅에서 충성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다른 성도를 자기 집에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 수 있는 큰 집은 헌신의 분량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 변두리에서 다만 돗자리를 펼 크기의 땅 위에서 사는 자와 산꼭대기의 24장로의 저택에 사는 자가 같을 수 없다. 곧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이 곧 왕노릇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왕노릇하는 자의 꽃은 누구인가? 구약에서 그 모범으로 가장 분명하게 제시되는 인물이 바로 '다윗왕'이다. 구약의 이야기는 결국 다윗왕에 와서 한 정점을 이룬다. 후대의 모든 왕은 "다윗왕과 같은 자가 없었더라"는 평가의 기준 아래 놓이게 된다. 다윗왕이 곧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간 왕의 최고의 표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의 반열에 들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다윗과 같은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윗과 같은 자가 되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다윗과 정반대의 길을 걸은 자,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욕심대로 세운 왕 사울이다. 그리고 그 모든 비극의 출발점이 된 사건, 곧 사무엘상 8장의 왕 구함 사건을 우리는 깊이 살펴야 한다.

 

3.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한 표면적 이유와 궁극적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한 사건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표면적 이유와 궁극적 이유이다. 우리가 이 두 차원을 분명히 구별하지 못하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을 놓치게 된다.

  먼저 표면적 이유를 살펴보자. 사무엘이 늙어 자신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를 사사로 삼았는데, 그 아들들이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고 뇌물을 받으며 판결을 굽게 했다(삼상 8:1-3). 이것이 백성이 왕을 구한 표면적 이유이다. 곧 부패한 지도자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 우리도 다른 나라처럼 왕이 있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자는 것이었다.

삼상 8:1-3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진정으로 깨달은 백성이라면 사사의 부패를 보고 무엇을 했어야 하는가? 회개를 했어야 한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가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께서 부족한 자를 지도자로 세워 주셨구나. 우리의 잘못이 큽니다"라고 자복하며 미스바에 모여 회개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도리어 "저 나쁜 사사를 없애 달라, 우리에게 왕을 달라"고 외쳤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인간의 모습이다. 자신의 죄는 보지 않고 지도자의 죄만 끌어내려 한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왕을 구한 궁극적 이유는 무엇인가? 사무엘이 이 요구를 듣고 마음이 무거워져 여호와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 본질을 명확히 드러내 주셨다(삼상 8:4-5, 7).

삼상 8:4-5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삼상 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라

  여기에서 두 가지 결정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첫째는 "모든 나라와 같이"라는 표현이고, 둘째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라"라는 표현이다. 백성의 진짜 속내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다른 나라들과 같이 되고 싶었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님이 아니라 주변 나라들에 맞춰져 있었다.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어 친히 다스리시는 거룩한 나라가 되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방 나라처럼 인간 왕이 다스리는 평범한 나라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분명하게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냈다(삼상 8:19-20).

삼상 8:19-20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위에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그렇다면 그들이 진정 원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전쟁에서 자기들을 보호해 줄 왕이었다. 자기들 앞에 나가서 싸워 줄 왕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왜 외부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들의 고통은 본질적으로 우상숭배의 결과였다. 가나안 거민들과 통혼하며 그들의 신을 섬기고, 자녀들을 신앙 없이 키운 결과 영적으로 약해진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진정한 해결책은 회개와 영적 회복이었지, 군사적 강자로서의 왕이 아니었다.

  이것이 곧 우리에게 주는 영적 거울이다. 오늘날 우리도 같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본질적 문제는 외면한 채 표면적 해결만을 구한다. 영혼 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은 다루지 않은 채, 환경만 바꿔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먼저 그분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4. 하나님은 왜 인간의 잘못된 요구도 들어주시는가?

  이 사건에서 가장 신비로운 부분이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가 자신을 버린 행위임을 분명히 아셨다. 그리고 그 요구가 결국 백성에게 큰 후회와 고통을 안겨 줄 것을 미리 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요구를 들어주셨다. 왜 그러셨는가? 여기에 자유 의지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성품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강제로 사람을 끌고 가시는 분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을 존중하시며, 그 결단이 잘못된 것일지라도 끝까지 인내하시며 허락하신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인간이 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에서 침묵하지 않으셨다. 사무엘을 통해 분명하게 경고하셨다. 왕이 세워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다(삼상 8:11-17).

삼상 8:11-17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그의 밭을 갈게 하고 그의 추수를 하게 하며 그의 무기와 그의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되리라

  이것이 곧 왕의 제도였다. 보호자가 되어 줄 것 같았던 왕이 사실은 가장 큰 착취자가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아들들은 군사로 끌려가 전쟁터에서 죽고, 딸들은 왕궁의 요리사와 향료 제조자로 끌려가며, 곡식과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은 왕의 신하들에게 빼앗길 것이라고 하셨다. 결국 백성은 왕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미리 알려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백성은 끝까지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워 주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신앙의 원칙 하나를 발견한다. 곧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 응답해 주실 수 있는 분이지만, 그 응답이 반드시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먼저 구해야 한다(마 6:33).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로 이것이야말로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지 않는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항상 시선을 맞춘다. "하나님이 나를 이 시대 가운데 이 자리에 두신 뜻이 무엇인가? 나에게 이 말씀을 듣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끊임없이 이렇게 묻는 자들이다.

  필자인 나 자신도 이 원칙을 따라 목회한다.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무엇을 강제하지 않는다. 새벽 기도에 나오지 않는다고 권사들에게 전화하여 책망하지 않는다. 다만 원칙을 분명히 가르치고, 본인이 듣고 본인이 결단하도록 한다. 강제는 자유 의지를 침해하는 일이며, 강제로 한 헌신은 천국에서 면류관이 되지 않는다. 본인이 듣고 깨달아 자원하여 헌신할 때, 그 헌신이 비로소 천국에 쌓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자유 의지를 존중하시되, 그 자유가 자신을 떠나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는 깊이 탄식하신다. 그래도 막지 않으신다. 다만 결과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구할 때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인가?"

 

5. 사울왕의 비극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떻게 끝났는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요구를 들어주셔서 세우신 첫 왕이 곧 사울이다. 사울은 처음 등장할 때 매우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키가 어깨 위로 모든 백성보다 컸고, 외모가 준수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처음에 보여 준 겸손이었다. 사무엘이 그를 왕으로 세우려 할 때 그는 행구 사이에 숨었다. "나는 베냐민 지파,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사람이 아니니이까" 하며 자신을 낮췄다.

  그러나 여기에 깊은 영적 진리가 있다. 겸손은 평범한 자리에 있을 때는 드러나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겸손인지 가짜 겸손인지는 그 사람이 큰 권세의 자리에 올랐을 때 비로소 밖으로 드러난다. 권세가 주어지면 그제야 그 사람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사울은 왕이 된 후 점차 그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울의 첫 번째 결정적 실패는 아말렉 사건에서 일어났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다. 사람과 가축을 모두 진멸하라 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부분적으로만 순종했다. 좋은 양과 소는 살려 두었다.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따랐고, 자기 편의대로 하나님 말씀을 가감했다.

  그런데 사울의 변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자기 기념비를 세우는 일에 정신을 쏟았다. 처음의 그 겸손은 어디로 갔는가? "내가 응당 이것을 받을 만하다"는 자기 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나님이 그를 왜 왕으로 세우셨는지에 대한 본질적 자각은 사라졌다.

  그리고 가장 비참한 변질은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 다윗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드러났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고 백성의 칭송을 받자, 사울은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혔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라는 노래를 듣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추격은 무려 10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 10년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동안 사울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주변 이방 나라들의 침입을 막아내고 우상숭배를 척결하는 일에 힘을 쏟지 않았다. 도리어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종을 죽이는 일에 자신의 모든 군사력을 쏟아부었다. 이것이 악한 영에 사로잡힌 지도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울의 광기는 결국 놉땅의 학살로 이어졌다(삼상 22장). 다윗이 도망하던 중 놉땅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갔을 때, 그가 다윗에게 떡과 골리앗의 칼을 주었다. 이것을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고해바쳤고, 사울은 그날 놉땅으로 쳐들어가 제사장 85명을 한꺼번에 학살했다. 아히멜렉을 비롯한 거룩한 직분자들이 피의 강을 이루었다. 아비아달 한 사람만이 가까스로 도망쳤다. 하나님께 평생을 헌신한 종들을 학살한 것이다. 왕이 그 자리에 세움 받은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도리어 하나님의 종들을 학살하는 자가 되었다.

  사울의 마지막 타락은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사건이었다(삼상 28장). 이스라엘에서 우상숭배와 신접한 자들을 척결해야 할 책임을 가진 왕이, 정작 자신이 위기에 처하자 그 신접한 자를 찾아갔다.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세움 받은 왕이, 정작 우상숭배의 우두머리가 된 셈이었다. 이것이 인간이 세운 왕의 끝머리이다.

  그리고 마침내 사울은 길보아 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자결하려 했으나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아, 결국 한 소년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처음의 겸손한 모습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가장 비참한 죽음이었다.

  이러한 사울의 비극은 오늘 우리에게도 거울이 된다. 작은 권세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 권세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고 겸손히 감당하는가, 아니면 자기 명예와 권력의 도구로 변질시키는가? 영적 나이가 낮은 자에게 큰 자리가 주어지면 반드시 사울과 같은 비극으로 끝나게 됨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6. 다윗왕은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의 모범이 되었는가?

  그런데 사울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자가 있다. 이는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다윗이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의 가장 분명한 표본이 되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다윗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왕위를 기꺼이 버릴 줄 아는 지도자였다는 점이다.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에 들어왔을 때, 다윗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군사를 모아 결사 항전하지 않았다. 자기 왕위를 지키기 위해 백성의 피를 흘리지 않았다. 도리어 맨발로 머리를 가리고 예루살렘을 빠져나갔다. "압살롬이 이 자리를 원한다면 그에게 주리라" 하는 마음이었다. 자기 왕위에 집착하지 않는 자, 이것이 다윗의 첫 번째 위대함이다.

  필자는 다윗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최고의 자리를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는 자,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그가 왜 왕이 되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왕이 되고 싶어서 왕이 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왕이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내려가게 하시면 기꺼이 내려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자세였다.

  다윗의 두 번째 위대함은 백성에 대한 책임 의식이었다. 인구 조사 사건에서 이것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윗이 군사력을 의지하여 인구 조사를 했을 때, 하나님은 이를 책망하셨다. 세 가지 징계 중 하나를 택하라 하셨고, 결국 전염병이 임하여 7만 명이 죽었다. 그때 다윗이 하나님 앞에 무엇이라 부르짖었는가?(삼하 24:17)

삼하 24: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나와 내 집을 치소서." 이것이 곧 진정한 왕의 마음이다. 자기 죄로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자신과 자기 집을 대신 치시기를 간구한 것이다. 이러한 왕 아래서 신하 노릇 하는 자들은 얼마나 보람이 있었겠는가!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왕은 항상 하나님께 관심이 있는 자, 백성이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는 데 관심이 있는 자, 자기 명예와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시선이 맞춰진 자이다. 다윗은 바로 그러한 자였다. 그는 자기 통일 왕국의 모든 자산을 동원하여 성전 건축의 기초를 준비했다. 자기 이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다. 자기가 직접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솔로몬에게 그 사명이 넘어가는데도, 다윗은 기꺼이 모든 것을 모아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다윗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우리는 이 부분도 정직하게 살펴야 한다. 몇 가지가 있다. 그런데 신명기 17장은 왕의 규례를 명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핵심 세 가지가 있다. 군마를 많이 두지 말 것,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다(신 17:17).

신 17: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그런데 다윗은 이 규례 중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명령을 지키지 못했다. 다윗의 속에는 음란의 영이 있었다. 이를 깨끗이 씻어 내지 못한 결과, 그는 여러 아내를 두었고, 결국 밧세바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자녀들 사이에 왕자들의 난이 일어나고 말았다. 암논의 죄와 압살롬의 반란이 모두 거기서 비롯되었다. 그는 비참한 가정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다윗의 진정한 위대함은 그 아픔 가운데서도 회개를 알았다는 사실이다. 시편 51편은 그의 깊은 회개의 고백이다. 그는 처음에는 회개의 진수를 잘 몰랐다. 그러나 점차 깨달아 가면서 자기 죄를 솔직히 자복할 줄 아는 자가 되었다.

  결국 다윗에게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자기 자리에 집착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백성과 공동체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자기에게 돌릴 줄 알아야 한다. 셋째, 자신에게도 약함과 아픔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부분을 회개로 다루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곧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의 자질이다.

 

7. 악한 지도자가 세워지는 영적 원인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사울과 다윗을 통해 우리는 좋은 왕과 악한 왕의 대조를 보았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이 있다. 왜 악한 지도자가 세워지는가? 그리고 악한 지도자가 세워졌을 때 백성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분명한 답은 사사기에 있다. 사사기는 일정한 패턴을 반복적으로 보여 준다. 곧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지면 하나님이 이방 나라를 보내어 그들을 압제하게 하시고, 백성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으면 사사를 보내어 구원하시며, 평화를 누리던 백성이 다시 타락하면 또다시 이방의 압제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사이클이 350년 동안 반복되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진실이 있다. 악한 지도자나 외부의 압제는 하나님이 백성을 깨우치시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이다. 백성이 회개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더 무거운 짐을 그들 위에 두신다. 그러므로 악한 지도자의 시대를 살게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지도자를 끌어내리는 시도가 아니라,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회개이다.

  그런데 사무엘이야말로 이 진리를 잘 보여 주는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그가 어떻게 했는가? 그는 백성을 미스바에 모아 회개하게 했다(삼상 7:5-6).

삼상 7:5-6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미스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는 통회의 의식을 행했다. 종일 금식했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자복했다. 이것이 본격적인 회복의 출발점이었다. 백성이 진심으로 회개했을 때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했고, 블레셋이 큰 우레로 무너졌다.

  그러나 백성은 이 미스바의 영성을 끝까지 붙들지 못했다. 사무엘이 늙어 가는 시점에 그들은 다시 본질을 외면하고 표면만 보았다. 사사가 부패하니 왕을 세워 달라 요구했다. 만약 그들이 미스바의 영성을 기억했다면, 그들은 또다시 미스바에 모여 회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 대신 정치적 해결책을 구했다.

  오늘날 우리도 같은 함정에 빠진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거리로 나가 시위하고, 지도자를 끌어내리려 한다. 더 악한 지도자를 끌어내리려 하면 더 악한 지도자가 나타난다. 이것이 회개 없는 사회의 비극이다.

  진정한 살길은 우리 자신의 회개에 있다.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악한 영, 곧 음란의 영, 교만의 영, 혈기와 분노의 영, 시기와 질투의 영, 우상숭배의 영을 회개를 통해 뽑아내는 일이다. 6년 전까지만 해도 필자인 나 자신도 그것을 잘 몰랐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회개를 통해 내 안의 악한 영을 다루지 않으면 결코 깊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 회개 기도문을 전하면 이단이라고 하는 핀잔을 받는 일이 빈번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이단이 아니다. 자기 안에 자리 잡은 영을 다루어야 한다는 본질적 진리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이를 거부하는 이유는 자기 안에 있는 교만이 그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나라가 진정 살아나려면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들보를 보아야 한다. 남의 허물을 보기 전에 자기 들보를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회개의 자리로 들어간다면, 하나님은 하루아침에 악한 지도자를 갈아치우실 수 있다. 느부갓네살을 한 방에 끝내신 하나님이 우리 시대의 지도자도 한 방에 처리하실 수 있다. 다만 우리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으니,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직시해야 할 영적 현실이다.

 

8. 마지막 시대 대한민국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엇인가?

  이 모든 가르침이 결국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가? 마지막 시대의 대한민국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른다. 나는 이 부분을 매우 진지하게 말하고자 한다.

  먼저 세계 영적 지형을 살펴보자. 한때 세계 선교의 중심이었던 미국은 지금 어떠한가? 신사도 운동과 빈야드 운동까지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 가짜 예언이 횡행하고, 영적 분별이 흐려지고, 신령한 나라라는 외피 아래 깊이 부패한 상태이다. 진정한 예언자, 진정한 깨어 있는 자가 점점 희소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이 사용하실 한 민족은 어디인가? 나는 그곳이 대한민국이라고 확신한다. 우상에 찌들었던 우리 나라이지만, 우리에게는 깊은 영적 뿌리가 있다.

  우리 민족의 영적 기원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고조선의 셈족 후예들은 함족이 동방에 인간 나라를 세울 때 그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더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거룩한 동기였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가장 깊은 영적 뿌리에는 "알이랑" 사상이 있다. 알이랑, 알이랑, 알이리요. 여기서 '알'은 곧 하나님을 뜻하는 고대 표현이다. 알이 들어 있는 것이 곧 '얼'이고, 얼이 곧 영이다. "얼굴"이라는 말도 본래 "알이 깃든 곳"이라는 뜻이며, "얼또랑이 한다"는 "얼이 빠졌다"는 표현도 영적 본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얼씨구 좋다"는 "영이 너무 기뻐한다"는 의미이다.

  그뿐 아니다. 한국 곳곳에 흩어진 고대의 흔적들이 우리 민족의 영적 정체성을 증언한다. 화순 운주사의 석탑과 와불을 한번 살펴보라. 사람들은 이를 단순히 불교 사찰의 유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본래 고조선 시대 별자리를 새겨 놓은 천문 유적이다. 북두칠성을 비롯한 별들의 위치를 따라 석탑들이 세워졌고, 그 앞에 있는 와불은 본래 부처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형상이다. 우리 조상들이 하늘의 별을 따라 살았던 거룩한 흔적이 거기에 있다. 봉분이 둥근 것도, 우리가 죽으면 둥근 하늘로 돌아간다는 의식의 표현이다. "박혁거세"의 "박"도 본래 "박에서 나왔다"는 알의 신화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 민족의 가장 깊은 영적 본능 안에는 하나님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영적 유산을 가진 대한민국을 마지막 시대에 사용하고자 하신다. 이 우주의 단 한 나라만이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신다. 미국이 타락했으니 이제 한 민족이라도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 민족이다.

  그러나 이 부르심에 응답하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 회개 없는 부흥은 가짜이며, 회개 없는 사역은 결국 사울의 길로 빠진다. 우리는 우리 안의 악한 영을 진정으로 다루어야 하며, 영적 전쟁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한 사람을 살려 보려고 몸부림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영적 세계를 열어 주시는 은혜를 체험했다. 손에서 칼이 나가 악한 영을 잘라 내고, 그 영이 고통 가운데 떠나가는 일이 일어났다. 바울에게 일어났던 손수건과 앞치마의 기적과 비슷한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는 곧 마지막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며, 진리를 전파하라는 사명의 표지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천국에 갔을 때 "대한민국에서 왕노릇할 자가 많이 나왔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결국 그 부르심을 이루지 못했지만, 대한민국은 그 부르심을 이루어 내는 마지막 민족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곧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영적 도전이다. 자기 안일에 만족하지 말고, 자기 욕심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항상 시선을 맞추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자들이 열 명만 있어도 한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그 열 명, 백 명, 천 명이 일어나 회개와 영적 전쟁의 자리에 서기를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9. 나오며

  지금까지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를 위한 왕을 구한 대가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영적 도전과 적용을 주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천국에서의 왕노릇이 무엇을 의미하며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한 표면적 이유와 궁극적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의 잘못된 요구도 들어주시는 이유, 사울왕의 비극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떻게 끝났는지, 다윗왕이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의 모범이 되었는지도 살펴보았다.

  더 나아가 악한 지도자가 세워지는 영적 원인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마지막 시대 대한민국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도 함께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천국에서의 왕노릇이라는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단순히 천국에 들어가는 데 만족하는 평면적 신앙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열 고을, 다섯 고을, 두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 24장로의 새벽 별을 받는 영광이 우리에게 열려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향해 우리는 더 깊이 헌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의 기도와 구함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자주 점검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다른 나라들과 같이 되기를" 구하는 자리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먼저 구하고, 그분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 육신의 필요만을 위해 구하는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구하는 신앙으로 자라가야 한다. 셋째, 어려움이 닥칠 때 환경만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을 깊이 돌아보아야 한다. 악한 지도자, 어려운 시국, 외부의 압제는 종종 우리 안의 영적 문제가 외화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외부를 바꾸려 하기 전에 먼저 자기 들보를 보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미스바에 모여 통회하는 사무엘과 백성의 본보기를 따라야 한다. 넷째, 다윗과 같은 왕의 자질을 갖춰 가야 한다. 자기 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공동체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며, 자신의 약함과 아픔도 정직하게 회개로 다루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울처럼 권세가 주어졌을 때 변질되는 자가 아니라, 다윗처럼 일관되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마지막 시대 대한민국을 향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민족의 깊은 영적 뿌리를 기억하고, 알이랑의 후예답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일어서야 한다. 회개와 영적 전쟁의 자리로 나아가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는 일에 자신을 드려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왕의 자리를 분별하고, 자기를 위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왕을 구하는 자리에 서며, 천국에서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에 왕노릇하는 자들이 많이 나왔다"는 말을 듣게 될 때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서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14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인간적인 왕을 세우려 했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신앙인이 추구해야 할 참된 천국 시민의 자세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저자 정보배 목사는 백성들이 당장의 안보와 풍요를 위해 왕을 요구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권력의 착취와 영적인 타락이라는 비극적인 대가를 치르게 되었음을 강조하며 사울 왕의 실패를 그 증거로 제시합니다. 특히 천국에서의 신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철저히 회개하는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결정되므로, 개인의 욕심을 채워줄 지도자가 아닌 영적 진리를 전하는 지도자를 분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육신의 필요를 넘어서는 거룩한 열망을 품고,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 같은 존재로 준비될 것을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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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26.04.17 By갈렙 Views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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