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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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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INsYN08YZ2k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9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1)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NsYN08YZ2k

 

1. 들어가며

  성경은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 그 평가의 표준이 되는 한 인물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구약 성경 전체를 흐르는 인물 평가의 기준은 놀랍게도 단 한 사람, 바로 다윗왕이다. 다윗왕 이후 등장하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은 한결같이 다윗을 기준으로 그 신앙과 행적이 평가된다. 어떤 왕은 "다윗과 같이 행하였더라"라는 호평을 받았고, 또 어떤 왕은 "다윗과 같지는 아니하였으니"라는 안타까운 평가를 받았다. 이는 단순히 다윗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인간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특별히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은 자가 어떠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다윗의 삶에 담겨 있다는 영적 팩트를 말해 주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님 자신께서 다윗을 자신의 정체성 안에 넣어 자신을 소개하셨다는 사실이다. 인간 가운데 단 한 사람의 이름을 들어 "나는 ○○의 뿌리요 자손이니"라고 표현하신 그 한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묵상하면 가슴이 떨려 옴을 느낀다. 만세 전부터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인간의 한 이름을 빌려 자신을 표현하실 만큼 다윗은 예수님의 가장 정확한 예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 성경 사무엘상하를 읽을 때 다윗왕의 개인적 영웅담이나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읽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모습이 그림자처럼 미리 그려져 있고, 동시에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장차 왕 노릇 할 자로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의 표준이 담겨 있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 가운데 천국의 모습이 있다. 그 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빛나는 왕복을 입고 다니는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가 바로 다윗이었다. 솔로몬은 왕이었음에도 도리어 초라한 왕복을 입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솔로몬같이 살면은 천국에서 초라한 자가 되고, 다윗같이 살면은 빛나는 왕복을 입은 자가 된다는 영적 팩트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천국이고, 천국에서의 우리의 위치는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왕복이라는 것은 결국에 우리 인생의 하나님의 뜻과 경륜의 최고봉을 의미하기에 우리는 다윗을 공부해야 하고 다윗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 다윗의 특징을 사명과 마음의 두 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떠한 모습으로 자신의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다윗은 모든 신앙인의 표준이자 예수님의 가장 정확한 예표가 되었는가?

  요한계시록의 맨 마지막 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다(계 22:16).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천사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여기에서 "나 예수는"이라는 표현은 구약의 "나 여호와는"이라는 표현과 정확히 일치하는 일인칭 자기 선언이다. 자기 자신을 '나'를 붙여서 절대적으로 선언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 절대자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 '다윗'이라는 한 인간의 이름을 자신의 정체성 안에 넣어 표현하셨다. 이것은 충격적인 사실이다. 인류 역사 가운데 수많은 위인이 있었고 수많은 선지자가 있었으며 수많은 의로운 자가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의 이름과 결합시켜 부르신 인간은 다윗 단 한 사람뿐이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다윗이라는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정확한 예표라는 영적 팩트를 말해 주는 것이다. 다윗의 출생과 다윗의 고난과 다윗의 기름 부음과 다윗의 왕 됨과 다윗의 통치와 다윗의 목양과 다윗의 정복, 그 모든 것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윗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깊이 알게 되고, 예수님을 깊이 알수록 다윗의 삶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모든 신앙인의 표준이 되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다윗 이후의 모든 왕들은 한결같이 다윗을 기준으로 평가받았다. 이는 단순히 다윗이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의 모든 표준이 다윗의 삶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신앙의 표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다윗에게 두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신앙인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다윗을 닮아가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사실이 있다. 다윗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다윗을 위한 보조적 무대 장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선지자도 다윗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고, 사울왕의 그 모든 비극도 다윗의 등장을 위한 배경이 되었으며, 골리앗이라는 거인도 다윗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한 무대였다. 그만큼 다윗이라는 인물이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이며, 그리고 그 다윗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구약 성경을 이러한 영적 안목으로 읽어야 한다.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이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3. 다윗에게 주어진 '철장 권세'는 군림인가 아니면 목양인가?

  시편 2편에는 메시아의 통치에 관한 놀라운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이 예언은 다윗이 받은 계시이며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통치권을 미리 보여 준다(시 2:9).

시 2: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여기에 등장하는 '철장 권세'라는 표현은 우리가 흔히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철장 권세를 자기 백성을 두들겨 패고 강압적으로 다스리는 폭압적 통치권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정확히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 요한계시록에서 두아디라 교회에 약속하신 말씀과 시편 2편의 인용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계 2:27).

계 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여기에서 '다스려'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포이마이노(ποιμαίνω)'이다. 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목양하다, 목자가 양을 치다'라는 뜻이다. 단순히 다스린다는 일반적 통치의 개념이 아니라, 목자가 양떼를 인도하고 보살피고 먹이는 그 목양의 의미가 담긴 단어이다. 그러므로 철장 권세를 가지고 다스린다는 말씀은 정확히 번역하면 "철장 권세를 가지고 목양한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과 깨달음을 준다. 진정한 통치자, 진정한 왕은 자기 백성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하셨다(요 10:11).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이것이 진정한 왕의 모습이다. 그러면 그 철장은 누구를 향하는가? 자기 양떼를 향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양떼를 해치려는 악한 영들을 향하는 것이며, 자기 양떼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려는 사단의 세력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장 권세를 가진 왕은 악한 영들을 두들겨 패고 자기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자라는 영적 팩트가 여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 사실은 오늘날의 사역자들에게 깊은 도전을 준다.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는 두 가지 극단의 모습이 보인다. 한쪽 극단은 겁을 상실한 죄종들이 가득 차서, 조금 부흥되고 좀 성장하면 떵떵거리며 자기 백성 위에 군림하려 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극단은 그와 정반대로 청빙받은 목사가 장로들이나 재력 있는 성도들 뒤에 잡혀서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쫓겨날까 봐 두려워서, 식구들을 다 데리고 나갈 곳이 없을까 봐 두려워서, 진리의 길을 알면서도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개와 같은 사역자가 되어 버린 모습이다. 이 두 가지 모습이 다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왕의 모습은 평소에는 절대 남에게 군림하지 아니하고, 그러나 주의 말씀을 증언할 때에는 정확히 말씀을 증언하는 자이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정확히 완수하는 자이다. 자신은 주님의 대변자라는 그 신분의 자각 위에서 정확하게 진리를 증언하는 자이다. 그러면서도 삶 속에서는 절대 군림하지 아니하고 양떼를 사랑하고 목양하는 그러한 자이다. 이것이 다윗이 받은 철장 권세의 진정한 의미이고, 또한 다윗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예수님의 통치 방식이며, 동시에 오늘날 주의 종으로 부름받은 모든 성도가 본받아야 할 모습인 것이다.

 

4. 구약의 왕들은 다윗을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되었는가?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다윗 이후 등장하는 유다의 왕들은 거의 모두 다윗을 기준으로 그 신앙과 행적이 평가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영적 팩트이다. 우선 부정적인 평가의 예를 살펴보자. 아마샤왕에 대한 평가가 등장한다(왕하 14:1-3).

왕하 14:1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제이년에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왕하 14: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왕하 14:3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더라

  아마샤는 결코 악한 왕이 아니었다. 본문은 분명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곧이어 결정적인 한마디가 따라붙는다.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라는 평가이다. 정직하게 행하기는 했지만 다윗같이 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 평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단순히 정직한 삶을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윗의 수준에 이르러야 진정한 왕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도전이 된다. 우리도 어쩌면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은 수준의 신앙에 이르지 못했다면 우리도 동일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긍정적인 평가의 예를 살펴보자. 히스기야왕에 대한 평가가 등장한다(왕하 18:1-3).

왕하 18:1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왕하 18: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왕하 18: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여기에서는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히스기야는 다윗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살았던 왕으로 평가받았다. 이것이 가장 높은 평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 수 있다. 구약 성경에서 왕의 표준은 다윗이었다는 사실이다. 다윗을 따라가는 자는 칭찬을 받았고, 다윗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는 안타까운 평가를 받았다. 이 영적 팩트는 우리의 영원한 미래와 연결된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그곳에서도 왕의 표준은 다윗이다. 천국에서 빛나는 왕복을 입고 다니는 자는 다윗같이 산 자이고, 초라한 왕복을 입고 다니는 자는 다윗같이 살지 못한 자이다. 솔로몬도 천국에 가서는 초라한 왕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환상으로 보였다고 한다. 솔로몬은 비록 지혜로운 왕이었으나, 말년에 우상숭배의 죄에 떨어졌고 하나님의 마음을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영적 팩트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다윗을 닮아가야 한다. 단순히 정직하게 사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살아가는 그 깊은 수준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했는지, 다윗이 어떻게 양떼를 목양했는지, 다윗이 어떻게 영적 권세를 사용했는지, 다윗이 어떻게 회개하고 돌이켰는지, 그 모든 것을 우리도 본받아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천국에서 빛나는 왕복을 입는 자가 되는 길이고, 우리 인생의 하나님의 뜻과 경륜의 최고봉에 이르는 길이다. 다윗이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믿음의 선배라면, 우리도 그 선배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히브리서 11장이 우리에게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선배들의 마지막 한 사람의 자리를 우리가 채워야 하는 것이다.

 

5. 사울왕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다윗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인물이 바로 사울왕이다. 사울왕의 실패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준다.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영적 팩트가 있다. 사울왕은 본래 왕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가 아니었다. 지도자로서는 보내심을 받았으나 왕으로서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백성의 요구에 의해 하나님이 왕으로 허락하신 것이다(삼상 8:7).

삼상 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실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본래 뜻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울왕이 본래 자신의 그릇보다 과분한 직분을 맡았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했겠는가? 그 직분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야 했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통성으로 기도했어야 했다. 영적 은사를 사모하고 '영분별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추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사울왕은 그 일을 하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사울왕이 보인 모습은 정반대였다(삼상 15:12).

삼상 15:12 사무엘이 일찍이 일어나 사울을 만나려고 갈 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사울왕은 갈멜산에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드러내려는 교만의 극치이다. 자신이 부족한 자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더욱 엎드려야 할 사람이, 도리어 자기 자랑의 기념비를 세웠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왕의 자격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이다.

  반면 다윗은 어떠하였는가? 다윗은 처음부터 자신을 가난하고 천한 자로 인식하였다. "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불러 주시므로 비로소 내가 이 자리에 왔습니다"라는 그 깊은 겸손이 그의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늘 자신을 살피며 살았다. 두로 왕 히람이 와서 자신을 위해 왕궁을 지어 준 그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이 진정한 왕이 되었음을 깨달았다(삼하 5:11-12).

삼하 5: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삼하 5: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의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그 정도로 그는 자신을 살피며 살았던 자이다. 사울왕처럼 되지 아니할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할까, 늘 살얼음판을 걷듯이 자신을 살피며 살았던 것이다. 사울왕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사무엘상 15장에 그 가슴 아픈 결말이 기록되어 있다(삼상 15:10-11).

삼상 15:10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삼상 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같은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다시 등장한다(삼상 15:35).

삼상 15: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표현인가. 하나님께서 한 인간을 세우셨다가 후회하시기까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얼마나 형편없이 감당하였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사울왕의 실패는 단순히 한두 가지 명령에 불순종한 데 있지 않았다. 더 깊은 차원에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과분한 직분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영적 은사를 추구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지 아니하였으며, 오히려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 권력을 지키는 데 모든 힘을 쏟았던 것이다.

  사울왕의 말년의 모습은 더욱 처참하였다. 자기보다 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시기하여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10년 동안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다. 엔게디 황무지에서, 하길라 산에서, 그렇게 다윗의 목숨을 노렸다. 하길라 산에서 다윗에게 사로잡혔을 때에는 잠시 정신을 차리고 "네가 나보다 하나님의 사람이 맞다"라고 인정하기도 했다가, 또 돌아서서는 다시 다윗을 죽이려 들었다. 영적 나이가 어리니까 그렇게 왔다 갔다 한 것이다. 자기 아들 요나단에게도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고, 심지어 자기 아들을 창으로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영적 권세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아니한 결과가 이렇게 비참하게 나타난 것이다.

  이 사실은 오늘날의 사역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주의 종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 직분을 감당하기에 합당한 은사와 능력이 있어야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 직분만 탐하고 실력은 갖추지 아니하는 자는 결국 사울왕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족함이 있다면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영적 은사를 사모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부르짖어야 한다. 이것이 사울왕의 비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이다.

 

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첫 번째 특징인 '사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첫 번째 특징은 '사명'의 측면이다. 다윗은 우연히 왕이 된 자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왕으로 예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자였다. 이 영적 팩트가 매우 중요하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러 가는 장면에 하나님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삼상 16:1).

삼상 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여기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 히브리어 원문으로는 '한 멜레크(왕)'를 보았다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들을 보시면서 그중에 한 명의 왕을 이미 정해 놓으셨다. 다윗이 왕이 되기 훨씬 이전에, 다윗이 어머니의 태에서 형성되기도 이전에, 하나님은 이미 그를 왕으로 예정하시고 그를 보내신 것이다. 이것이 '사명'이라는 단어의 영적 의미이다.

  다윗 자신은 처음에는 이 사실을 다 알지 못하였다. 사무엘이 와서 기름을 부었을 때에도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다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한 단계 한 단계 그 사명이 자신에게 어떻게 임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로 왕 히람이 자신을 위해 왕궁을 지어 준 그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는 깨달았다(삼하 5:12).

삼하 5: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의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비로소 알았더라"라는 이 표현이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다. 다윗 자신도 자신이 진정한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만큼 다윗은 자신을 늘 살피며 살았던 자이고, 자신이 정말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맞는가를 의심하며 살았던 자이다. 사울왕처럼 버림 당하지 아니할까 두려워하며 살았던 자이다. 이 영적 팩트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분이시다.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을 처음부터 다 아는 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한 단계 한 단계 하나님께서는 그 사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다.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환경을 통해, 환상을 통해,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사명을 알려 주신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영적 팩트가 있다. 하나님은 14만 4,000명의 종들을 만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고 계신다. 아담 이후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그 14만 4,000명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고 있는데, 이제 거의 그 수가 차고 있다. 거의 차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이 영적 팩트를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에게 어떤 사명이 임하였다면, 그 사명은 우리가 우연히 가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그 사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은사도 함께 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에 합당한 사람으로 자신을 빚어 가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요셉의 모범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셉은 17세에 팔려가서 13년 동안 애굽에서 모함과 오해와 배신을 겪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부탁마저도 잊어버렸다. 그러나 요셉은 단 한 번도 "내가 나가면 보디발의 아내를 찢어 죽이리라"라고 한 적이 없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하고 있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까지 낮추게 하셨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요셉처럼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세우고자 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미 필요해서 이 땅에 보내신 자들이다. 그 사명의 길에는 반드시 고난과 권난의 통과 과정이 있다. 다윗에게도 엄청난 10년의 고난의 세월이 있었던 것처럼, 요셉에게도 13년의 시련의 세월이 있었던 것처럼, 사명자에게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할 통과 과정이 있다. 그 통과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고 다듬어져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주의 종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결코 자기가 좋아서 가는 길이 아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여 보내신 자가 가는 길이다. 자신이 합당하지 아니하면서 단지 직분이 좋아서 가는 길이 아니다. 하나님이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그 부르심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정말 주의 종의 길로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사울왕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다윗의 길로 가야 한다.

 

7.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두 번째 특징인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는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특징이다.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책망의 말씀을 전할 때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다(삼상 13:13-14).

삼상 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삼상 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이는 왕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고

  여기에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다윗을 가리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또한 다윗의 외모가 그 자격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히 드러난다(삼상 16:6-7).

삼상 16: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 곧 그 마음을 보신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 마음인가?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고, 목자가 양떼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며,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끝까지 충성하는 마음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죄 짓고 떠나간 자들을 살리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과의 작별 인사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증언하였다(행 20:28).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이 표현이 얼마나 충격적인가.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본래 피를 가지신 분이 아니시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교회를 사실 수 있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팩트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레위기 17장 11절은 '피'에 대한 결정적 정의를 내려 준다(레 17:11).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리고 히브리서는 이 영적 원리를 다시 한 번 확증해 준다(히 9:22).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가 곧 생명이고,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피가 없으셨다. 그렇다면 인류의 죄를 어떻게 속하실 것인가? 인간 가운데서 누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모두 어머니의 태로부터 악한 영의 지배를 받아 어느 누구도 깨끗한 자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친히 결단하셨다. 인간이 죄짓고 자신을 떠나면 그 떠나간 자를 찾아 살리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시리라고 결단하셨다. 이것이 만세 전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 사랑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사랑인가. 죄 짓고 떠나간 자, 버려진 우리를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 사랑. 우리가 이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영혼을 우리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살리고자 하신 영혼을 우리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사람을 무시한다든가,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사람 위에 군림한다든가 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없다. 사울왕이 바로 그러한 자였다.

  다윗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다윗은 양떼를 목자의 심정으로 사랑하였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백성을 이용하지 아니하였고, 도리어 백성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였다. 압살롬이 반역하여 자신의 자리를 빼앗으려 할 때에도 다윗은 기꺼이 그 자리를 내어주고 도망하였다. "내가 내 자식을 죽일 수가 없다"고 하며 떠났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이다. 권력에 집착한 사울왕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다윗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다윗은 자식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였다. 다윗의 어머니가 어쩌면 사생자로서 다윗을 낳은 듯하다. 그래서 다윗은 어머니로서의 따뜻한 정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러다 보니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하였다. 자식을 너무 과보호하였고, 마땅히 책망해야 할 때 책망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왕자들의 난이 일어났고, 셋째 아들 압살롬이 자신의 후궁들을 대낮에 간통하는 그 장면까지 보아야 했다. 이 영적 약점도 우리가 깨닫고 본받지 아니할 부분이다. 다윗의 장점은 본받되 그의 약점은 우리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위계의 질서를 제대로 세우는 것, 책망해야 할 때 정확히 책망하는 것, 이것이 가정과 사역의 영역에서 모두 중요한 영적 원칙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마음을 품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가 깨닫고, 그 사랑이 우리 가슴에 새겨질 때,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한 영혼 한 영혼이 하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영혼임을 깨닫고, 그 영혼을 사랑하고 살리는 자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두 번째 특징을 갖춘 자가 되는 것이다.

 

8. 주의 종은 어떠한 영적 자질을 갖추어야 하며 왜 '한 분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하는가?

  주의 종으로 부름받은 자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영적 자질이 있다. 먼저는 말씀에 대한 깊은 연구이다. 에베소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직분에 관한 매우 중요한 말씀을 전한다(엡 4:11).

엡 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여기에서 헬라어 원문을 보면 "목사와 교사"라는 표현이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목사라면 당연히 교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삼대 사역을 보아도 이것이 분명히 드러난다(마 4:23).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이 삼대 사역에서 첫째가 무엇인가? 회당에서 가르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은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터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밤을 새워 가며 연구해야 하고, 그것이 진정으로 재미있어서 즐겁게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새벽 기도를 준비할 때에도 "오늘 어떻게 또 생수 같은 말씀을 우리 성도들에게 들려 줄 것인가"를 고민하며 즐거이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주의 종의 모습이다.

  다음으로 갖추어야 할 영적 자질은 영적 은사이다. 단순히 말씀만 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말씀과 함께 영적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영분별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그래야 영의 세계를 정확히 분별하고 진단할 수 있다. 사울왕이 라마 나욧에서 한 번 성령의 부으심을 받은 그것이 끝이었던 것처럼, 영적 은사에 관심을 갖지 아니하면 결국 사울왕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또한 가장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자는 사역할 때 그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게 된다. 책망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 말에 비수가 섞여 나간다. 그러면 듣는 사람도 그 책망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게 된다. "저 말은 나를 두고 한 얘기야"라며 상처를 받게 된다. 반대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 자는 똑같은 책망의 말씀을 전해도 듣는 자가 상처를 받지 아니한다. 모든 사람을 위해 하는 말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차이가 얼마나 큰가. 그러므로 주의 종은 반드시 어릴 적의 모든 상처를 치유받아야 한다. 특별히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다면 그 상처를 반드시 치유받아야 한다.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은 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회개'를 통해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자기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 그러한 치유의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좋은 사역자가 될 수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신학적 자질을 다루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교단과 교회들이 가르치는 삼위일체 교리에는 약점이 있다. 삼위일체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한 분 하나님'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분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삼위일체로 가니까 결과적으로 삼신론을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영적 팩트를 정확히 살펴보자. 구약에는 예수님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활동하지 아니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단들은 구약 때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께서 회의하셔서 인간을 만드셨다는 식으로 가르친다. 이것이 정확하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4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영적 팩트가 분명히 드러난다(마 4:1-3).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여기에서 우리가 깊이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사단 마귀가 예수님께 다가와서 시험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하였다. 사단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단은 그동안 천상에 있었던 자이다. 욥기에서 사단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함께 여호와 앞에 섰던 장면이 나온다(욥 1:6).

욥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사단도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 천상에 있었던 자였다. 그러므로 사단이 만일 그동안 천상에서 예수님이라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더라면, 결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시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단이 이렇게 시험하였다는 것은 그동안 천상에서 사단이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 영적 팩트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 사실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의 사건과 정확히 일치한다(계 12:7-9).

계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계 12: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사단이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에게 쫓겨난 사건은 예수님 승천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는 사단도 천상을 드나들 수 있었다. 스가랴서에서도 사단이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서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참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슥 3:1).

슥 3: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열왕기상에서는 거짓말하는 영이 여호와의 어전 회의에 참석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왕상 22:21-22).

왕상 22: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왕상 22:2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 모든 본문이 사단이 그 당시까지 천상을 드나들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창세기 1장 2절의 시점에 이미 사단이 쫓겨났다고 가르친다면, 욥기와 스가랴서와 열왕기상의 이 본문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영적 팩트는 사단이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비로소 쫓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적 팩트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이시지만, 구약 시대에는 아직 활동하지 아니하셨고 인간 세계에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한 분 하나님' 여호와의 시대였고, 신약 이후에 비로소 삼위일체로 인류에게 자신을 알려 주신 것이다. 이러한 영적 팩트를 정확히 알아야 우리가 신학적 오류에 빠지지 아니한다. 한 분 하나님을 먼저 알고 삼위일체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삼신론에 빠지지 아니하고 정확한 신학 위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위에서 우리는 인류를 살리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며, 그 깨달음이 곧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9. 나오며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을 다윗을 중심으로 사명과 마음의 두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다윗은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의 정체성 안에 그 이름을 넣어 표현하실 만큼 가장 정확한 예수님의 예표였고, 동시에 모든 신앙인의 표준이 되었음을 살펴보았다. 그에게 주어진 철장 권세는 군림이 아니라 헬라어 원어 '포이마이노'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목양의 권세였다. 구약의 모든 왕들은 다윗을 기준으로 평가받았으며, 다윗과 같이 행한 자는 칭찬을 받았고 다윗과 같지 아니한 자는 안타까운 평가를 받았다. 사울왕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분한 직분을 감당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기 자랑의 기념비를 세우는 교만에 빠짐으로써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첫 번째 특징은 사명이었다. 다윗은 만세 전부터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한 왕으로 보내신 자였다. 자신은 그 사실을 두로 왕 히람이 왕궁을 지어 줄 그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만큼 늘 자신을 살피며 살았던 자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만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보내신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에 합당한 사람으로 자신을 빚어 가야 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그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의 마음은 죄 짓고 떠나간 자를 살리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깊은 사랑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사랑을 깨닫고 그 마음을 품어야 한다. 하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영혼을 우리도 사랑하고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윗처럼 양떼를 목양하는 선한 목자의 심정을 가져야 하며, 다윗의 약점이었던 자식 농사의 영역에서는 그를 본받지 아니하고 더욱 위계의 질서를 정확히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주의 종으로 부름받은 자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영적 자질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말씀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하고, 영적 은사를 사모해야 하며,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한다. 상처가 치유되지 아니한 자가 사역하면 그 말에 비수가 섞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통해, 용서를 통해, 자신의 모든 상처를 주님 앞에 가져가 치유받아야 한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 위에 서야 한다. 구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아직 활동하지 아니하셨고, 사단이 천상을 드나들 수 있었음을 영적 팩트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삼신론에 빠지지 아니하고 정확한 신학 위에서 사역할 수 있다.

  다윗은 우리의 신앙의 표준이 된 인물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윗을 통해 예표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진정한 표준이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다윗처럼 자신을 늘 살피며 살아야 한다. 자신이 사울왕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다윗의 길로 가고 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한다. 자기 자랑의 기념비를 세우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늘 낮추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권력에 집착하는 자가 아니라 양떼를 목양하는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 어둠과 방황 가운데 신음하는 영혼들에게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천국에 가서 빛나는 왕복을 입고 다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18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약 성경의 다윗왕을 신앙의 절대적 표준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핵심 인물로 제시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왕의 특징을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단순히 역사적 인물을 넘어 천국 시민과 영적 지도자가 지향해야 할 기준점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사울왕과 같은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특히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자는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목자의 마음을 품어야 하며, 자기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하나님의 대변인으로서 철저한 자기 훈련과 말씀 연구에 매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다윗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숙한 신앙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는 영적 지침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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