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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7. 30. (목)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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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y0_DUg7dzUw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55)] 이사야의 예언(15)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7)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러 오신다(이사야65:17~2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y0_DUg7dzUw

 

기독론(155)

이사야의 예언(15)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8가지 특징(07)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러 오신다(01)"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행하실 것인지를 여러 모습으로 예언하였다. 그 가운데 재림주요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특징을 살펴보면, 그분은 여호와로 오시고, 그날은 여호와의 날이며, 악인과 악한 영들을 심판하시고, 충성한 자들에게 천국 집과 면류관과 보좌의 자리를 상으로 주시며,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신다. 그리고 마지막 특징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종말론의 전체 구조가 달라진다. 예수님의 재림 뒤에 이 땅에서 문자적인 천년왕국이 펼쳐진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지금 교회 시대가 계시록 20장이 말하는 천년왕국이며 주님의 재림과 함께 곧바로 최후의 심판과 영원한 새 창조가 시작된다고 볼 것인가? 이 문제는 단순히 한 교단의 교리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주신 후대의 계시와 어떻게 연결하느냐의 문제다.

  종말론을 잘못 이해하면 사람은 날짜와 환상과 특정 인물의 주장에 쉽게 흔들린다. 1992년 10월 28일 재림을 주장했던 다미선교회와 이장림의 사례처럼, 날짜를 계산하거나 천사가 알려 주었다는 환상을 앞세우는 주장은 사람을 두려움과 미혹으로 이끈다. 신천지가 대한민국의 사건과 특정 인물을 계시록의 성취라고 풀이하고 이만희를 재림주와 같은 자리에 올려놓는 것도 마찬가지다. 육체를 가진 한 인간이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주장한다면 성경이 증언하는 재림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구절만 떼어 자기 주장에 맞추는 짝풀이와 비유풀이를 경계해야 한다. 이사야 65~66장의 예언을 존중하되, 베드로후서 3장과 요한계시록 20~22장이 그 예언의 최종 성취를 어떻게 밝히는지 보아야 한다. 앞선 계시가 그림자를 보여 주었다면 뒤의 계시는 그 그림자가 가리킨 실체를 더 분명히 드러낸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재림하실 예수께서 어떻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며, 이사야의 예언이 사도들의 계시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고, 그 나라를 기다리는 성도가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재림해 창조와 심판을 행하실 여호와는 왜 예수님인가?

  이사야의 재림 예언에서 먼저 눈여겨볼 사실은 ‘아들이 오신다’고 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오신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여호와는 구약에 계시된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다. 신약에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자신을 밝히신 예수님은 바로 그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며, 다시 오실 때에도 한 분 하나님으로서 심판과 새 창조를 행하신다. 여호와를 오직 아버지의 이름으로, 예수를 그와 분리된 또 다른 아들의 이름으로만 생각하면 구약과 신약의 증언을 온전히 연결하기 어렵다.

  예수께서는 초림 때에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 때에는 왕과 심판자로 오신다. 그날은 주의 날이며 동시에 여호와의 날이다. 그분은 악인과 악한 영들을 심판하고, 충성한 성도들에게 약속한 상을 주며,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주는 다른 분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가 만물을 새롭게 하시며,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신다고 증언한다(계 21:5-7).

계 21:5-7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 사실을 붙들면 재림주를 지상의 어떤 육체적인 인물에게서 찾을 수 없다. 사람의 몸을 가진 교주가 자신을 재림주라고 선전하거나 자신을 통해서만 육체 영생과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재림하실 예수님은 단지 능력 있는 인간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만희가 여호와일 수 없고, 어떤 종교 지도자도 만물을 창조한 알파와 오메가가 될 수 없다.

  또한 재림의 날짜를 안다고 주장하는 말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은 배교와 불법의 사람의 출현이라는 징조를 말하며, 말이나 영이나 편지로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도 쉽게 미혹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날짜를 맞히는 일이 아니라 오실 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고, 그분 앞에 설 수 있도록 회개와 충성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3. 이사야 65~66장의 새 하늘들과 새 땅은 어떤 세상인가?

  이사야 65장이 보여 주는 새 하늘과 새 땅은 기쁨과 평화와 안전이 충만한 세상이다. 이전의 고통은 기억되지 않고, 예루살렘은 즐거움이 되며, 백성 가운데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사라진다. 집을 건축한 사람이 그 집에 살고,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이 그 열매를 먹는다. 침략자에게 집과 소산을 빼앗기던 저주의 역사가 끝나고,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 손으로 수고한 것을 오래 누린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며 예루살렘과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으실 것이라고 예언한다(사 65:17-19).

사 65:17-19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그 세계에는 인간과 자연의 적대도 사라진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뱀은 흙을 먹는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 이전을 떠올리게 하는 평화의 그림이다. 사탄의 미혹과 열방의 침략으로 무너졌던 창조 질서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회복되는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보여 준 것이다.

  이사야 66장도 하나님께서 지으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그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이름이 보존되고, 모든 혈육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한다. 동시에 하나님께 패역한 자들의 심판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새 창조는 단순한 환경 개선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백성과 하나님을 거역한 자가 최종적으로 갈리는 심판의 세계다.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 앞에 항상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과 그 이름도 보존될 것이라고 말한다(사 66:22).

사 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65장 17절의 히브리어 ‘샤마임 하다쉼’은 형태상 복수적인 ‘하늘들’을 사용한다. 다만 ‘샤마임’ 자체가 히브리어에서 하늘을 가리킬 때 통상 쓰이는 형태이므로, 그 문법만으로 서로 다른 여러 하늘의 체계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 계시록 21장 1절은 단수인 ‘새 하늘’을 말하지만, 베드로후서 3장 13절은 다시 복수인 ‘새 하늘들’을 쓴다. 핵심은 단수와 복수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낡은 질서를 끝내고 의가 거하는 새로운 창조 질서를 여신다는 데 있다.

  이사야가 먼저 바라본 것은 전쟁과 수탈과 조기 죽음이 끝나고,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평화로운 세계였다. 그 예언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지만 그 뜻은 이스라엘 민족의 안녕에만 갇히지 않는다. 예루살렘과 시온을 중심으로 묘사된 회복은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에게 열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새 창조를 향한다.

4. 이사야의 세계에 죽음과 저주가 남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사야 65장의 새 창조에는 놀라운 평화가 있지만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고 부르고, 백 세가 되지 못해 죽는 자는 저주받은 자라고 한다. 사람의 수명이 나무의 수한과 같아지고 재난을 당하지 않지만, 죽음 자체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저주와 사망이 남아 있다는 점은 요한계시록 21~22장이 보여 주는 영원한 새 예루살렘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사야는 그곳의 수명이 크게 연장되지만 죽음과 저주의 가능성은 남아 있는 모습으로 예언한다(사 65:20).

사 65: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이 대목 때문에 역사적 전천년설은 이사야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재림 뒤 지상에 펼쳐질 천년왕국으로 이해한다. 부활한 성도는 하늘에서 왕 노릇하고, 육체를 가진 사람들은 회복된 땅에서 장수하며 자녀를 낳는 과도기적 왕국을 말한다. 사탄이 결박되어 전쟁과 수탈이 멈추지만, 천년이 끝나기 전까지는 육체의 죽음이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서는 먼 산맥을 한눈에 바라보듯 가까운 회복과 먼 영원한 완성을 한 장면 안에 겹쳐 보여 주기도 한다. 이사야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이해할 수 있는 장수와 풍요와 안전의 언어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묘사했다. 그 그림 안에는 바벨론 포로와 열방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역사적 회복, 메시야가 다스리는 평화의 나라, 마지막 새 창조의 소망이 한꺼번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예언에 죽음이 남아 있다고 해서 영원한 새 창조에도 죽음이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 후대의 계시는 그 예언이 가리킨 종착점을 더 선명하게 밝힌다.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에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과 곡함과 아픔도 없다. 이전 세계에 속한 처음 것들이 모두 지나갔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에서 죽음과 슬픔과 아픔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증언한다(계 21:1-4).

계 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록 22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시 저주가 없으며”라고 선언한다. 이사야의 그림에 남아 있던 죽음과 저주의 흔적이 사도 요한의 최종 계시에서는 완전히 제거된다. 따라서 이사야 65장의 평화 세계를 문자적인 미래 지상 천년왕국으로 고정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바라신 회복의 이상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된다고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

5. 역사적·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무엇이 다른가?

  천년왕국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견해에는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무천년설이 있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예수께서 재림하신 뒤 이 땅에서 실제 천 년 동안 왕국을 다스리신다고 본다. 한국 장로교 안에서는 흔히 합동측 전통이 이 견해를 따르고, 이사야 65장의 장수와 평화 및 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중요한 근거로 삼는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도 재림 뒤 지상 천년왕국을 말하지만, 이스라엘과 교회를 강하게 구분하고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사이에 환난과 휴거와 천년왕국을 세분한다. 순복음권과 여러 세대주의 전통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 견해가 문자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유대인이 제사장 나라가 되고 이방인이 예루살렘에 와서 율법을 배우며 제3성전에서 다시 제사를 드리는 체계로 나아가기 쉽다.

  그러나 성전과 제사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킨 모형이었다.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단번에 속죄를 이루셨고, 성령께서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우셨다. 그런데 마지막 때에 다시 짐승의 제사와 초하루와 안식일의 문자적 제도로 돌아간다고 하면 그림자를 실체보다 앞세우는 문제가 생긴다. ‘백 투 예루살렘’이라는 구호도 복음을 땅의 예루살렘과 육체적 성전에 다시 묶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신중히 분별해야 한다.

  한국복음서원 계열의 일부 해석은 천년왕국을 충성한 성도에게 주는 보상의 나라로, 그 후 새 하늘과 새 땅을 모든 구원받은 자가 같은 신분으로 들어가는 영원 세계로 설명한다. 그러나 성도의 충성과 헌신에 대한 보상은 천 년의 한정된 기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님이 주시는 집과 면류관과 보좌의 자리는 영원한 나라에서 이어진다. 천년왕국을 보상 기간으로 한정하면 영원한 상급의 의미가 약해진다.

  무천년설은 계시록의 천 년을 재림 뒤에 시작되는 별도의 지상 왕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 교회 시대를 상징하는 기간으로 본다. 한국 장로교 통합측 전통이 대체로 이 견해를 따른다.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 사탄은 무저갱에 결박되어 복음의 세계적 전파를 이전처럼 막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성도들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한다. 마지막 때에 사탄이 잠시 놓이고 최후의 미혹과 전쟁이 일어난 뒤 주님이 재림하셔서 모든 심판을 완성하신다.

  지금 밝히는 견해도 무천년설에 가장 가깝지만 기존의 모든 무천년설 설명과 완전히 같다는 뜻은 아니다. 계시록의 천 년은 문자적으로 정확히 365,000일을 계산하는 기간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정하신 충만한 기간이다. 베드로가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말한 것처럼, 묵시문학의 숫자는 실제 의미를 가지면서도 상징적 충만성을 함께 지닌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며, 주의 약속이 더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라고 말한다(벧후 3:8-9).

벧후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어느 교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성도가 같은 종말론을 믿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정죄해서도 안 된다. 다만 서로 충돌하는 주장을 모두 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사야의 예언을 사도들의 최종 계시로 해석하고, 주님의 재림과 최후 심판과 영원한 새 창조가 하나의 종말 사건으로 이어진다는 성경의 큰 흐름을 붙들어야 한다.

6. 베드로와 요한의 후대 계시는 이사야 예언을 어떻게 완성하는가?

  하나님의 계시는 시대를 따라 점진적으로 밝아졌다. 아담에게는 생명나무와 에덴동산을 통해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길을 보여 주셨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실패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과 어린양의 희생을 거쳐 마침내 아들을 보내셨고,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사망을 이기는 길을 여셨다. 먼저 주어진 계시는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더 충만한 뜻을 드러낸다.

  예언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사람이 믿음으로 응답해야 할 책임이 함께 있다. 에스겔이 본 성전과 열두 지파의 땅 분배도 문자 그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북이스라엘 지파들이 흩어지고 남은 백성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 예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성전 중심으로 온전히 회복하고 각 사람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기 원하신다는 뜻을 모형으로 보여 주었으며, 그리스도와 교회와 새 예루살렘 안에서 더 크게 성취된다.

  이사야 65~66장의 새 창조도 같은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누릴 수 있었던 평화와 장수와 안전이 먼저 제시되었고, 동시에 그 그림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보편적 구원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 예수께서 오셔서 참 이스라엘이 되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새 사람으로 묶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다.

  베드로후서 3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될 때 현재의 물질 질서가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히 한다. 주의 날이 오면 하늘은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은 뜨거운 불에 풀어지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일이 드러난다. 파괴된 지구를 다시 원상복구하여 육체의 사람들이 천 년을 더 사는 장면이 아니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질서가 심판을 통과하여 의가 거하는 새 창조로 바뀌는 장면이다.

  베드로는 주의 날에 현재의 하늘과 물질이 풀어지고, 성도가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고 증언한다(벧후 3:10-13).

벧후 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요한계시록 21장은 그 새 창조의 중심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있음을 보여 준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으며,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신다. 여기서 ‘새’를 뜻하는 헬라어 ‘카이노스’는 단지 시간적으로 뒤에 생긴 것만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워진 것을 가리킨다. ‘먼저의 것’을 뜻하는 ‘프로토스’의 질서는 지나가고, 사망과 저주가 침범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질서가 열린다.

  새 예루살렘에는 밤이 없고 해와 달의 빛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부활의 몸을 입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뵙고 영원히 왕 노릇한다. 이사야가 이리와 어린 양의 평화, 장수와 풍요의 언어로 내다보았던 소망이 요한에게 이르러 사망과 저주가 영원히 사라진 빛의 나라로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후대의 계시는 이사야를 부정하지 않고 해석한다. 이사야는 예언의 씨앗과 그림을 주었고, 베드로는 현재의 물질 세계가 심판으로 풀어질 것을 밝혔으며, 요한은 새 예루살렘과 불못이라는 영원한 두 결말을 보았다. 앞선 예언을 문자적으로만 붙잡아 별도의 지상 천년왕국을 만들어 내기보다, 사도들에게 주신 완성된 계시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7. 계 20:10은 아마겟돈과 곡과 마곡의 전쟁을 어떻게 밝혀 주는가?

  계시록 16장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온다고 말한다. 용은 사탄이고,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권세이며, 거짓 선지자는 그 권세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미혹의 세력이다. 이 악의 삼위는 온 세상의 왕들을 모아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전쟁을 준비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전쟁은 단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군사 충돌이 아니라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함께 일으키는 영적 반역이다.

  계시록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에게서 나온 세 더러운 영이 왕들을 하나님의 큰 날의 전쟁으로 모은다고 증언한다(계 16:13-14).

계 16:13-14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시록 19장은 아마겟돈 전쟁의 결말을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심판에 초점을 맞추어 보여 준다. 두 존재는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진다. 이어지는 계시록 20장은 사탄이 천 년 동안 결박되었다가 잠시 놓이고,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성도들의 진을 에워싸게 하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키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 뒤 마귀도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다.

  계시록 20장 10절의 헬라어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졌고, “그곳에 또한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있다고 말한다. 동사가 생략된 이 표현은 문법만으로 세 존재가 정확히 같은 순간에 던져졌는지, 문자적인 천 년의 간격을 두고 던져졌는지를 확정하지 않는다. 개역개정의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도 그 점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한 접속사만으로 종말의 시간표를 단정하기보다 계시록 전체의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

  요한은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같은 불못에서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고 증언한다(계 20:10).

계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시록 16장에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한 전쟁을 준비하고, 19장에서는 인간 역사 속에 나타난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패배를 보여 주며, 20장에서는 그 배후인 사탄의 최종 멸망을 보여 준다. 이런 구조에서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서로 천 년이나 떨어진 두 전쟁이라기보다 같은 마지막 반역과 심판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묘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활동에, 다른 하나는 그들을 조종한 사탄의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 사탄의 권세를 제한하시고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게 하신 천년왕국의 기간이다. 사탄 자체는 무저갱에 결박되어 있고, 악한 영들은 세상에서 사람을 미혹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순교자들과 믿음으로 먼저 떠난 성도들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한다. 마지막 때 사탄이 잠시 놓이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통해 최후의 미혹을 일으키지만, 주님의 재림으로 그 반역은 즉시 끝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 뒤에 다시 별도의 지상 천년왕국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주님의 재림은 최후 심판의 시작이 아니라 완성이다. 그때 악의 세력은 불못에 던져지고, 죽은 자들은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으며,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간다. 재림 이후에 회개하고 준비할 두 번째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깨어 있어야 한다.

8. 영원한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는 성도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아는 목적은 종말의 도표를 완성하는 데 있지 않다. 베드로는 이 모든 것이 풀어질 것을 안다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을 기다려야 한다고 권면한다.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거나 누가 적그리스도인지 맞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옷이 깨끗한지, 내 이름이 생명책에 보존되어 있는지, 내게 맡기신 일에 충성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면서 죄를 품고 회개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주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자동으로 처리되었으니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계시록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으며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성문을 통해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고 말한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날마다 죄를 인정하고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하는 삶이다.

  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생명나무와 성문에 나아가지만, 죄를 버리지 않는 자들은 성 밖에 있다고 경고한다(계 22:14-15).

계 22:14-15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새 예루살렘 성 밖에 있다는 경고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안심한 채 죄를 짓고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성 안의 영광과 멀어질 수 있다. 성 밖의 상태를 어떻게 세부적으로 이해하든, 계시록의 분명한 요청은 음행과 살인과 우상숭배와 거짓을 버리고 두루마기를 빨라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은 회개를 없애는 구실이 아니라 더 거룩하게 살게 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서 죄로 끌어가는 악한 본성과 영적 세력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바울은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하는 죄가 자기 안에 거한다고 탄식했다. 죄의 유혹은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을 붙잡아 불순종으로 끌고 가는 실제적인 힘이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살피고, 죄를 자백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의 역사를 물리쳐야 한다. 다만 모든 죄의 책임을 귀신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혹을 분별하고 자기 선택을 회개하며 주님께 순종해야 한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일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약속하신 보상은 천년 동안만 누리는 임시 보상이 아니다. 천국의 집과 면류관과 보좌의 자리는 영원한 나라에 속한다. 지금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며, 맡겨진 직분에 충성하고,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모든 수고를 주님은 기억하신다.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는 일은 곧 그 나라에서 영원히 누릴 것을 오늘 믿음으로 쌓는 일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과 통제 체계를 급속히 바꾸는 시대를 보며 마지막 때의 징조를 분별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특정 기술 하나를 곧바로 적그리스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기술과 권력이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고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는 방향으로 사용되는지를 깨어 살피는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보다 진리를 알고, 거짓 표적과 선전에 미혹되지 않으며,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회개할 때요 충성할 때다. 적그리스도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환난이 극심해진 뒤에 준비하려 하면 너무 늦을 수 있다. 오늘 마음의 우상을 버리고, 형제를 용서하고, 감추어진 죄를 자백하고,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주님이 도둑같이 오실지라도 빛의 자녀에게 그날은 멸망의 기습이 아니라 오래 기다린 신랑을 맞이하는 기쁨의 날이 되어야 한다.

9. 나오며

  지금까지 재림해 창조와 심판을 행하실 여호와가 왜 예수님인지, 이사야가 예언한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과 그 안에 죽음과 저주의 흔적이 남은 이유가 무엇인지,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어떻게 다르며, 베드로와 요한의 후대 계시가 이사야의 예언을 어떻게 완성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계시록 20장 10절을 중심으로 아마겟돈과 곡과 마곡의 전쟁을 한 최후의 반역과 심판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묘사한 것으로 이해하고, 영원한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는 성도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이사야가 본 평화로운 세계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보여 준다. 집을 짓고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으며, 심은 것을 자신이 먹고,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는 세상은 죄와 전쟁과 수탈이 끝난 하나님의 통치를 그린다. 그러나 그 예언의 완전한 종착점은 육체의 사람이 오래 살다가 여전히 죽는 지상 왕국이 아니다. 베드로가 말한 대로 처음 물질 질서가 심판으로 풀어지고, 요한이 본 대로 사망과 저주가 완전히 사라진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영원한 새 창조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알파와 오메가이신 한 분 하나님이다. 그분은 악인과 악한 영을 심판하고, 충성한 자들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신다. 어떤 육체적인 인간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고, 어떤 날짜 계산이나 환상도 말씀보다 앞설 수 없다. 교단의 전통과 익숙한 도표가 아니라 성경의 전체 계시를 따라가야 한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날마다 두루마기를 빨듯 회개하고, 악한 영의 미혹을 분별하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을 사모해야 한다. 주님이 맡기신 복음과 교회와 영혼을 위해 충성하고, 세상의 권력과 기술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 할 때 믿음을 지켜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약속이다. 그곳에는 다시 사망도, 저주도, 아픔도, 밤도 없으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수가 흐른다. 성도는 그 약속을 바라보며 오늘을 거룩하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하여 날마다 회개하고 맡겨진 사명에 충성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30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에 수반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를 이사야의 예언과 요한계시록의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재림의 여덟 가지 특징 중 마지막 단계로 새로운 피조 세계의 도래를 꼽으며, 특히 천년왕국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견해를 비교하여 물질 세계가 사라지고 영원한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는 무천년설적 입장이 성경적임을 역설합니다. 이 설교는 이사야 65장의 예언이 당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바람을 담은 것이라면, 요한계시록과 베드로후서는 그 완성을 나타낸다고 보아 계시의 점진성을 강조합니다. 결국 신자들이 회개를 통해 내면의 악한 영을 씻어내고, 곧 다가올 적그리스도의 시대와 재림의 날을 위해 거룩한 신부로서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는 강력한 권면을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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