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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2W3V5ZMN45I
날짜 2026-04-12
본문말씀 요한복음 4:23~24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4-12(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왜 신약시대에는 제사를 드리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가?(요한복음 4:23~2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2W3V5ZMN45I

 

 

1. 들어가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행하는 신앙의 행위는 바로 주일마다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은 장소에 모여 찬송을 부르고,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기도하며, 피 같은 돈을 헌금으로 바치는 성도들의 모습이 대단히 기이하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심지어 교회에 갓 출석한 초신자들조차 예배 순서에 따라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면서 예배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잘 깨닫지 못한 채 종교적인 의식 정도로만 생각한 채 그 의식 속에 젖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예배는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니다. 예배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들은 예배를 가리켜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받은 인간의 영적인 만남이라고 정의한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만남을 이루기 위해 짐승의 피를 흘려 속죄의 제사를 드렸으나,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이상 소나 양의 목을 치는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제사가 끝난 자리에 '예배'라는 새롭고도 위대한 영적 교제의 방법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모든 것에는 변하지 않는 원형과 뿌리가 있듯이,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모든 순서와 감격의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부터 치밀하게 준비해 놓으신 예배의 원조가 숨어 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신약 시대에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리게 된 구속사적 이유를 살펴보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아 보도록 하자.

 

2. 구약의 제사 제도가 폐지되고 신약 시대에 예배를 드리게 된 근본적인 구속사적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구약의 백성들은 짐승의 피를 의지해야만 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흠 없는 짐승에게 죄를 전가하고 그 생명을 바치는 피의 희생 제사 없이는 결단코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에 제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절대적인 요소가 필요했다. 첫째는 제사를 드릴 거룩한 장소인 성막(성전)이요, 둘째는 흠 없는 희생 제물이며, 셋째는 백성을 대신하여 피를 뿌릴 제사장이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 번거롭고 반복적인 제사 제도가 영원히 종식되었다. 그 이유는 구약의 제사의 삼 요소를 완벽하게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셨던 모리아 산, 즉 골고다 언덕이라는 지정된 장소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흠 없는 대속제물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대제사장이 되시어 자기의 거룩한 피를 가지고 참 하늘의 성소(지성소 포함)에 들어가셔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만약 우리가 오늘날에도 죄를 지을 때마다 황소나 염소를 끌고 와서 피를 흘려야 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불완전하다고 모독하는 인정하는 꼴이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자기의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율법의 불완전한 제사를 완성하시고 끝내셨다고 장엄하게 선포한다(히 9:11-12). 더 이상 짐승의 피가 필요 없는 이 완벽한 속죄의 은혜 덕분에, 우리는 짐승의 목을 따는 두려운 제사 대신 찬양과 감사가 넘치는 영광스러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히 9:11-12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3.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명하신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겨 피해서 돌아가던 사마리아 땅을 의도적으로 관통하시며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셨다. 이 여인은 자신의 비참한 삶의 해답을 찾고자 메시아를 대망하며 예배에 대한 깊은 영적 갈급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시는가에 대하여, 오랜 종교적 딜레마를 간직한 채 그것을 예수님께 아뢰었다.

  이때 예수께서는 장소의 개념에 갇혀 있던 예배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엎는 위대한 폭탄선언을 하신다. 그것은 앞으로 예배는 예루살렘이나 그리심산이라는 특정한 지리적 장소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진정한 예배의 자격과 방식을 가리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고 선포하셨다(요 4:23-24). 여기서 '영과 진리로'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영과 그리고 진리 안에서" 라는 뜻이다.

요 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안에서) 예배할지니라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인간의 죗값을 완벽하게 청산하심으로써, 특정한 성전 건물이 없어도, 동물의 피를 가지고 가지 않아도, 거듭난 성도들이 자신의 정결해진 영과 진리의 말씀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과 시공간을 초월하여 직접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을 만나는 새롭고도 찬란한 은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예배는 더 이상 두려움으로 제물을 바치는 억압된 종교 의식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맛보며 무한한 기쁨을 누리는 신령한 잔치인 것이다.  

 

4. 대속죄일 제사의 완성을 통해 우리가 영 안에서 예배할 수 있게 된 영적 원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인간을 구성하는 육과 혼과 영의 삼분설 가운데, 가장 깊은 본질인 우리의 영(Spirit)이 깨어나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영은 죄와 악한 영들의 지배를 받아 그 기능이 마비되고 죽어 있었다. 이 훼손된 영을 가지고서는 거룩하고 영이신 하나님을 대면할 수도 그리고 제대로 섬길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보혈을 가지고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그래서 지성소의 속죄소와 성소의 분향단에 대속죄일 제물의 피를 뿌리겼다. 그러자 2가지 일이 일어났다. 첫째는 하늘에 있는 지성소(속죄소)와 성소(분향단)가 정결케 되었다. 둘째는 지성소를 더럽혔던 그룹천사인 사탄마귀가 쫓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제사를 예수께서 구약의 대제사장이 되시어 행하신 것이다.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 지성소와 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려 지성서와 회막을 정결하였는데, 예수께서는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을 만들어진, 이 땅에 속한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 있는 지성소와 성소에 직접 들어가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거룩한 피를 그곳에 뿌리심을 지성소와 성소를 정결케 하시고 그룹천사인 사탄마귀를 하늘에서 쫓아버리신 것이다.

  그런데 그때 다시 말해 예수께서 하늘의 지성소와 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드릴 때에 또 하나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사람의 영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예수께서 하늘의 지성소에 피를 뿌리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죽었던 우리의 영도 정결케 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직 히브리서만이 우리에게 들려준 놀라운 영적 비밀이었다. 그날 하늘의 지성소인 뿌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악하고 무뎌진 양심까지도 함께 깨끗하게 해준 것이었다(히 9:14).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왜 예수께서 그날 하늘의 지성소에 피를 뿌리셨는가? 그것은 하늘만 정결케 하신 것이 아니라 더럽혀졌던 지성소와 같은 우리의 영도 함께 정결케 하고자 함이었다. 이는 예수님의 마지막 속죄제사를 통하여 영적인 감각을 되살려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영으로(영 안에서)' 온전히 섬길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4:23-24에서 말하는 '영으로' 예배하게 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예배당에 앉아 있는다고 할지라도, 영이 살아나지 않는한, 우리는 몸만 예배당에 왔다가는 일이 될 뿐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날 예수님의 속죄제사와 대속죄일 제사는 하나님을 이제는 제물이 아니라 '영으로' 섬길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준 것이었다. 

 

5. 예수님이 대속죄일이 아닌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했던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우리의 영을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 대속죄일 제사를 드리셨다면, 절기상으로 볼 때에는 당연히 대속죄일이 있는 유대력 7월 10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마땅하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은 대속죄일인 7월 10일이 아니라 1월 14일 해 질 무렵인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속죄양으로 오신 주님께서는 왜 대속죄일날이 아니라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운명하셔야 했는가? 여기에는 우리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경륜이 숨겨져 있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라. 거기에 기록된 유월절 규례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의 좌우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되어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죽음의 천자가 애굽의 전역에 있는 사람의 장자와 동물의 첫 것을 칠 때에, 어린 양의 피를 보면 그 집을 넘어가(Passover)서 그 집이 사망의 재앙으로부터 살아남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유월절 양을 잡아야만 하는 첫 번째 목적이었다. 

  그러나 유월절 양의 임무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피를 자기 집의 좌우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후 그 밤에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라고 하셨다. 그것도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무교병,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양고기를 그날 전부 다 먹으로 하신 것일까? 그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험난한 광야로 탈출하면서 기진맥직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장 밤을 새워가며 몇 날 며칠을 사막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막강한 힘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유월절 양을 잡은 것은 사망의 재앙을 피하기 위한 목적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시에 사람의 육신을 배불리 먹이려는 뜻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취하라는 명령과 같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대속죄일에 돌아가지 아니하고 유월절 날에 유월절 양으로 죽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인류를 위해 속죄만을 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막 10:45) 생명을 주려 오셨다는 2가지 목적을 전부 다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요 10:10).

  그렇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만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공급이 되시기 위해서도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속죄제물로서 죽음만이 아니라 생명공급을 위한 죽음도 같이 짊어져야 했던 것이다. 고로 예수님의 죽음은 둘째 사망인 불못의 형벌을 면제해 주는 피의 대속만을 이루신 것이 아니라, 험난한 영적 전쟁터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영원히 지치지 않을 영원한 생명의 양식과 참된 음료가 되어주시고자 죽으신 것이었다(요 6:53-5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강조하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는 달리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생명분배의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요10:10, 12:24). 

요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죄일 제사 이후 신약의 성도들이 예배 시간에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는 말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대속을 위한 속죄양으로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분을 생명을 위한,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로 취하여 영적 에너지를 충전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6. 창세기 14장의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만남은 어떻게 오늘날 신약 예배의 완벽한 원형이 되는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대속과 생명의 양식으로 완성하신 예배의 참된 모습은, 율법이 주어지기 500년 전 창세기의 역사 속에 이미 완벽한 원형으로 계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4개국 연합군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이기도 돌아오고 있을 때, 샬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그를 마중 나와서 떡과 포도주를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율법에 등장하는 속죄제사에서는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공급한다는 그림이 없다. 그런데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대제사장이 원래는 어떤 사역을 해야 하는 자인지를 알려주는 본문이 창세기에 나온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있는 멜기세덱의 직무였다. 

창 14:18-20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이 때 멜기세덱은 총 5가지 일을 했다. 첫째, 그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위해 피비린내 나는 동물의 희생 제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이것은 오늘날 예배시간의 '설교말씀'과 '성만찬'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둘째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주었다(이것은 오늘날 예배시간의 '축도'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셋째는 아브라함을 위해 중보기도해 주었다(이것은 오늘날 예배시간의 '중보기도'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넷째,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이것은 오늘날 예배의 '찬송'의 기원이 되었다). 그러자 이에 감격한 아브라함은 자신이 얻은 전리품 중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감사와 헌신의 예물로 드렸다(이것은 오늘날 예배의 '헌금'의 기원이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예배의 6번째 요소인 예물의 기원이 된 것이다. 

  고로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장엄하고도 감동적인 만남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개신교회에서 드리는 예배 포맷의 진짜 뿌리요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시편 110편 4절의 말씀을 따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셨다. 그러나 인류가 범죄한 것이 있었기에 우리 주 예수께서는 그날 모리아 산 골고다 언덕에서 기꺼이 속죄제사를 드리심으로 인류의 죄를 속죄해 주셨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실을 믿는 자들을 위해 예수께서는 친히 떡과 포도주를 준비하여 인류에게 공급해주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월절 하루 전날 밤에 제자들과 성만찬 의식을 행함으로 당신이 오신 2가지 목적을 알려주신 것이다. 고로 유월절 당일에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께서는그날 예수께서 속죄제사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생명까지 공급하러 오셨음을 만천하에 공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월절 하루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성만찬을 집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의 의식은 "내가 바로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왔음을 잊지 말라"고 하는 말씀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내가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대속제물로서만 나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생명공급을 위해서도 내 몸을 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시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7.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세 가지 은혜는 무엇인가?

  고로 우리가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만남을 거울삼아 오늘날 우리의 예배를 들여다보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가 얼마나 풍성한 영적 은혜의 교환의 장인지 아주 분명해진다.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예배의 자리에 나아온 우리 성도들에게 멜기세덱이 베풀었던 것과 동일한 세 가지 놀라운 은혜를 폭포수처럼 쏟아부어 주시기 때문이다.

  첫째와 둘째, 세상과 마귀와 싸우다 돌아온 우리 영혼들에게 생명의 양식인 '떡과 포도주'를 공급해 주신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강단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설교말씀)이며, 눈에 보이는 실체로 주어지는 성만찬 예식인 것이다. 고로 우리는 매주 예배를 통하여, 우리 영혼에 부어지는 그리스도의 생명 자체를 생명의 양식으로 누리고 있으며, 때로는 보이는 떡과 포도주의 성만찬의 형태로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배드리러 왔는데, 이 생명의 양식을 먹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우리는 한 주간의 영적 전투를 버텨낼 힘을 얻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떡과 포도주를 공급해 주심으로 인하여 또다시 세상에 나가서 사탄마귀와 싸울 힘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배 중에 임하는 성령의 강력한 불과 치유의 은혜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마지막 은혜는 예배의 끝에 부어지는 대제사장의 축복, 곧 축도다. 하나님은 주의 종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는 여호와의 이름에 거룩한 권위를 실어서, 백성들의 일상과 가업 위에 물질의 축복과 평강, 그리고 영혼의 쉼을 넘치도록 축도로 부어주신다. 고로 오늘날 바쁘다는 핑계로 예배 도중 축도를 받지 않고 성전 문을 빠져나가는 것은, 하늘 창고가 열려 금은보화가 쏟아지려는 찰나를 외면한 채 그곳을 벗어나는 어리석은 일이 될 수밖에 없다. 

 

8. 참된 예배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마땅히 올려드려야 할 세 가지 영적 반응은 무엇인가?

  그런데 예배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기만 하고 인간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그러한 자리가 아니다. 하늘로부터 떡과 포도주와 축복을 흠뻑 받아 누렸다면, 그 엄청난 대속의 은혜에 감격한 구원받은 자 역시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마땅히 올려드려야 할 세 가지 영적 반응이 뒤따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첫째, 나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사망을 이기게 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향하여 뜨거운 '찬송'을 올리는 것이다. 단지 순서가 되어 입술을 벌려 찬송하는 의무적인 노래가 아니라, 내 영혼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감격과 환희의 고백으로서 찬송을 올려드려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혼자만으로 힘으로 결코 세상과 사탄마귀와 싸워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내 이웃과 형제자매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사랑을 쏟아내는 '중보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잡혀간 자신의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웠듯이, 그리고 멜기세덱이 그렇게 해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을 축복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듯이, 우리도 역시 마귀에게 짓눌린 영혼들을 구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중보기도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셋째, 멜기세덱의 축복 앞에 아브라함이 감격하여 자신의 전리품의 십일조를 바쳤듯이, 우리의 생명과 물질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정성껏 '헌금과 예물'을 구별하여 올려야 한다. 헌금은 강요된 세금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살리신 은혜가 너무 커서 내 생명의 일부를 기꺼이 떼어드리는 가장 진실한 사랑의 고백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늘날에도 예배 시간에 '찬양'과 '기도'와 '예물'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영적 반응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세 가지 은혜(설교말씀과 성만찬과 축복기도)와 완벽하게 교차하고 맞물릴 때, 우리의 예배는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잔치가 되어, 하늘에 상달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9. 나오며

  우리는 십자가에서 단번에 완성된 대속죄일 제사와 유월절 어린양의 은혜가 어떻게 신약의 예배로 승화되었는지, 그리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거룩한 만남의 모형을 통해 참된 예배의 6대 요소(설교말씀과 성만찬과 축도, 찬양과 기도와 예물봉헌)를 명확히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는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던 두려운 제사처럼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영(양심)이 예수님의 피로 씻겨진 것에 감사하면서, 하늘로부터 공급해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함께 먹고 마시며,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아, 세상과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무장하는 가장 영광스럽고도 위대한 축제의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축제에 온전히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도 있다. 왜냐하면 악한 영들은 지금도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예배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처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금 우리가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물두멍에서 자신의 죄를 철저히 씻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내 육체와 혼 속에 자리잡고 예배를 방해하는 세력을 내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로 지금도 회개하지 않고, 조상들이 물려준 우상 숭배의 찌꺼기까지 씻어내는 작업을 하지 않으며, 내 속에 남아있는 시기질투와 미움과 혈기를 내보내지 않는 한, 주님이 주시는 떡과 포도주의 은혜가 내 영혼을 적실 수가 없다. 그리고 진정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감격을 맛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회개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에 항상 선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배시간에는 '죄의 자백과 고백'이라는 필수적인 순서가 꼭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취하기 전에 우리는 물두멍에서 자신의 죄를 철저히 씻어내는 거룩한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껍데기뿐인 종교 의식처럼 드리는 예배를 끝내고, 영 안에서 그리고 참된 진리 안에서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오늘 이 시간도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사람인가 다시 한 번 돌아보자. 

 

 

2026년 04월 12일(주일)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이 설교트는 신약 시대에 제사가 사라지고 예배가 정착된 이유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대제사장의 직무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깊이 있게 고찰합니다. 저자는 구약의 피 제사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단 한 번에 영원히 완성되었기에 더 이상 동물의 제물이 필요 없음을 강조하며, 이제는 장소가 아닌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본질임을 설명합니다. 특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과 축복을 공급하시듯,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 은혜에 찬양과 예물로 응답하는 인간과 하나님의 실제적인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이 글은 예배의 기원과 구성 요소를 추적함으로써, 성도들이 예배를 통해 영적 에너지를 회복하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정한 예배자로 거듭날 것을 독려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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