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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syCNy5yfCO8
날짜 2026-03-11
본문말씀 마태복음 27:11~56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3-11(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64)] 빌라도의 심문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02)(마27:11~5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yCNy5yfCO8 

 

1.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죽음인 동시에, 우리를 모든 영적, 혼적, 육적 저주로부터 해방시킨 가장 위대한 승리의 현장이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두 번의 심문을 통해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가 없음을 명백히 알았다. 그의 아내조차 꿈에 시달리며 그 의로운 사람을 상관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빌라도는 자신의 정치적 안위와 성난 군중의 폭동을 두려워하여 결국 무죄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의 사형장으로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나 이 불법적이고 비겁한 재판과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 이면에는, 창세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 경륜이 숨 쉬고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채찍질과 조롱,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의 철저한 버림받음은 단순한 순교자의 고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할 질병과 가난, 정신적 고통, 그리고 지옥의 형벌(둘째 사망)을 당신의 몸으로 고스란히 덮어쓰시고 완벽하게 속량하신 대속의 사건이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친히 감당하신 고난의 구체적인 의미를 파헤치고, 주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그 엄청난 혜택을 '철저한 회개'라는 열쇠를 통해 어떻게 나의 현실 속으로 끌어올 수 있는지 깊이 영적으로 점검해 볼 것이다.

 

2.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친 군중의 저주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우리는 조상의 죄와 영적 대물림을 어떻게 끊어내야 하는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광기에 사로잡혔던 유대 군중들은,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책임을 회피하려 하자 천추의 한이 될 무서운 저주의 말을 스스로 내뱉고 만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마 27:25)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선동에 넘어가 자신들의 입술로 영적 저주의 대물림을 자초하는 끔찍한 죄를 짓고 말았다.

  스스로 심은 대로 거두리라 하신 하나님의 법칙(갈 6:7)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성취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지 정확히 40년 후인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불바다가 되었고 무려 110만 명의 유대인이 처참하게 학살당했다. 그 저주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수천 년을 이어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 의해 600만 명의 유대인이 독가스실에서 학살당하는 인류 최악의 비극(홀로코스트)으로 나타났다.

  이 두려운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내 조상들이 무당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며, 억압과 살인과 음란의 죄를 지었다면, 그 죗값(저주)은 반드시 후손인 내 삶에 질병과 가난, 신기(神氣)와 막힘의 저주의 형태로 대물림되어 나타난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으니 조상의 죗값을 받지 않겠다"고 항변해 보아도 영적인 법칙은 냉정하다. 이미 내 몸과 가문에 들어와 버린 이 끔찍한 저주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유일한 길은, 남을 원망하는 것을 멈추고 지금 당장 내가 십자가 앞에 엎드려 '철저한 회개의 씨앗'을 심는 것뿐이다.

 

3. 기독교의 십자가 사건이 후대 사람들의 '미화나 조작'이 아닌, 하나님의 완벽한 섭리이자 '역사적 진실'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는 무엇인가?

  세상의 위인전이나 거짓 종교들은 교주를 신격화하기 위해 사후에 없던 사실을 억지로 꾸며내고 조작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후대의 제자들이 미화한 가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수치와 고통, 멸시와 천대 가운데서도 침묵하시고(사 53:7, 마27:12-14), 손과 발이 찔리시고(시 22:16) 심지어 군병들이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는 세밀한 장면까지 모두 수백 년 전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이미 기록된 '예언의 완벽한 성취'였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시편 34:20)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 22:18)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의 창과 못에 찔리셨으나 유월절 어린양의 규례대로 뼈가 단 하나도 꺾이지 않으셨다. 이것 또한 예언의 성취였다(출 12:46, 시34:20, 요19:33-36).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일곱 마디의 말씀(가상 7언) 중 제5언 "내가 목마르다" 하신 것(요 19:28)과, 마취제 역할을 하는 신포도주를 거부하신 것(요 19:29) 역시 시편 69편 등의 예언을 남김없이 성취하시기 위함이었다(시 69:21). 주님은 운명하시기 직전 제6언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라고 선언하셨다(요 19:30). 이는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의 모든 고난과 대속의 예언을 십자가에서 100% 완수하셨다는 위대한 승리의 선포다. 예수님이야말로 성경이 증언하는 유일하고 참된 구원자이심을 역사가 강력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로마의 가혹한 채찍에 맞으시고 온몸이 찢기신 '육체적 고난'은 오늘 우리의 삶에 어떤 실질적인 혜택을 보장하는가?

  구약의 제사 제도에서 양을 잡을 때, 제사장은 양의 목을 단번에 쳐서 피를 흘리게 할 뿐이지, 그 양을 채찍으로 때리거나 오랜 시간 고문을 가하지는 않는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내는 영적 구원만을 목적으로 오셨다면, 그분은 단순히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 사역은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죄하신 주님은 굳이 밤새도록 끌려다니시며 동물의 뼈가 박힌 가혹한 채찍에 120대나 맞아 살점이 뜯겨 나가는 참혹한 '육체적 고난'을 당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범죄한 인류가 감당할 육체적인 고통을 대신 담당하여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기 위함이셨다(사53:4-5, 벧전 2:24, 마8:17).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4-5)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전서 2:24)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태복음 8:16-17)

  그렇다. 예수께서 그날 육체로 고통을 당하신 이유는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육체에 임한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날 예수님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말씀처럼,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될 폐병, 열병, 종기, 치질, 아토피, 암 등 온갖 육체의 저주로부터 '나음을 입을 합법적인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피 흘려 지불하신 이 위대한 육체의 혜택을 굳게 믿고 선포할 때, 기적적인 치유의 역사는 오늘 우리의 몸에도 생생하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그날 십자가에서 헐벗고 목마르고 굶주리셨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그분이 우리가 받아야 할 가난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하시 위함이셨다(신 28:48, 고후 8:9).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신명기 28:4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8:9)

 

5. 무죄하신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침 뱉음을 당하시고 발가벗겨지며 온갖 조롱과 비웃음을 견디셔야 했던 '정신적(혼적) 고난'의 이유는 무엇인가?

  육체의 찢어짐 못지않게 예수님을 괴롭혔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적이고 혼적인 수치'였을 것이다. 로마 군병들은 주님의 옷을 다 벗기고 홍포를 입힌 채 갈대를 손에 쥐여주며 가짜 왕놀이를 하며 희롱했다(마 27:27-31). 지나가는 자들과 대제사장들, 심지어 곁에 매달린 강도들까지도 십자가 아래에서 고개를 흔들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내려와 보라"며 멸시와 침 뱉음을 퍼부었다(마 27:39-44).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시편 22:6-7)

  만유의 주재이신 창조주께서 피조물들에게 벌레 취급을 받으며 이토록 처절한 능욕을 견디신 이유는, 우리 인간이 겪는 모든 정신적 저주를 당신의 몸으로 흡수하여 끝장내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날 당하신 조롱과 비웃음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고통은 극심한 우울증, 뼈저린 외로움, 환청과 환각을 동반하는 조현병, 치매, 그리고 가문을 타고 내려오는 신기(神氣)와 같은 정신적 고통들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모든 수치와 조롱을 대신 당하셨기에, 그 예수를 진실로 만난 자는 어떤 깊은 우울과 외로움 속에서도 온전하고 맑은 정신을 회복하는 눈부신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신 28:28-29).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병으로 치시리니 맹인이 어두운 데에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 네 길이 형통하지 못하여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할 뿐이리니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 (신28:28-29)

 

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며 처절하게 절규하신 '영적 고난'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던 날 오후 3시 무렵, 십자가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예수께서는 하늘을 향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피를 토하듯 절규하셨다. (마 27:46) 이 부르짖음은 무엇인가? 근말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 커서 믿음이 흔들렸거나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쏟아낸 것인가? 그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악을 한 몸에 뒤집어쓰고 대속죄일의 '아사셀 염소'가 되시어(레 16:6-10, 21-22),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버림받는 '영적인 고난(둘째 사망)'을 감당하시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 사망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인 지옥 형벌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그 지옥의 영원한 형벌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끔찍한 영적 분리를 십자가 위에서 대신 겪으시며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행 2:27, 엡4:8-9). 주님이 철저히 버림당하셨기에,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고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 놀라운 영적 구원의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모든 저주를 속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는 우리가 이 땅에서 여전히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깊은 영적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십자가에서 육적, 혼적, 영적인 모든 저주를 감당하시고 "다 이루었다(그것이 다 성취되었다)"(요 19:30)고 선언하셨는데, 왜 예수를 믿는 수많은 성도가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고 극심한 질병과 우울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부족해서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문제는 '자백(회개)'의 여부에 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의롭다고 칭함 곧 칭의(구원)를 얻고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다. 그러나 내 육체 속에 이미 조상 대대로 우상 숭배를 통해 들어오고 내가 지은 자범죄로 말미암아 똬리를 틀고 있는 귀신과 뱀들(저주의 영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만약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내가 입술을 열어 그 죄를 낱낱이 자백하고 회개하지 않는 한, 악한 영들은 합법적인 거주권을 주장하며 결코 내 몸에서 나가지 않는 것이다. 식탁 위에 아무리 맛있는 진수성찬(십자가의 혜택)이 차려져 있어도 내가 직접 숟가락을 들어 입에 넣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듯, 주님이 이뤄놓으신 치유와 축복은 오직 매일매일의 '철저한 회개'라는 파이프를 통과할 때만 나의 현실이 되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다.

 

8. 조상 대대로 똬리를 튼 깊은 질병과 저주의 영들을 몰아내고, 십자가의 위대한 혜택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누리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자백을 통해 악한 영을 내쫓는 영적 전투는 결코 낭만적이거나 쉽지 않다. 방금 전 틈을 타고 들어온 가벼운 병마의 영은 회개 기도를 몇 번만 진실하게 해도 쑥 빠져나가지만, 4대 전부터 제사와 무당의 죄를 타고 내려와 내 살과 뼈처럼 유착되어 버린 거대한 악한 영들은 수십, 수백 번의 회개로도 꿈쩍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때 수많은 성도가 "회개해도 소용없다"며 좌절하고 영적 싸움을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이기는 자는 여기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끝장을 보자"는 일사각오의 독한 결단이 필요하다. 곪아 터진 상처를 치료하려면 소독약을 뿌리면서 집요하게 구더기를 잡아내야 하듯, 응답이 더디다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조상들이 쌓아놓은 죗값의 깊이를 통감하며 끈질기게 회개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영들을 떠나가도록 자가축사방법인 '십자가세우기'를 해야 한다. 이때에는 "내게 두통을 주고 있는 모든 영과 십자가 세운다!"를 100번, 천 번, 이천 번 외쳐야한다. 혹은 내 손안에 예수의 피를 달라고 주님께 요청한 다음에, 그 피를 내 머리 속에 계속해서 집어넣어야 한다. 그렇게 인내하며 회개의 숫자를 채울 때, 어느 순간 주님께서 "이제 됐다" 하시며 내 몸의 굳은 진을 폭파하시고 모든 질병과 저주가 눈 녹듯 사라지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9.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이 받은 축복과, 십자가 처형의 실제 장소인 '골고다(정원 무덤)'가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실 때,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는데, 그것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ㄷ아시 로마 군병들은 구레네(북아프리카 리비아)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시몬을 붙잡았다. 그리고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 시몬은 유월절 명절을 지키러 그곳에 왔다가 살벌한 사형수의 십자가를 떠맡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시몬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지독하게 운이 없는 일로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마가복음 15장 21절은 그를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로마서 16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라고 극찬하고 있다. 억지로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졌던 그 짧고 고통스러운 수고가, 훗날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초대 예루살렘 교회와 로마 교회의 핵심 지도자로 세우는 엄청난 영적 축복과 가문의 영광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렇다. 주님을 위한 헌신과 고난은 비록 억지로 한 것일지라도 결코 공짜가 없으며, 자손 대대에 이르는 축복의 씨앗이 됨을 명백히 보여준다.

  또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다(해골의 곳)'의 실제 위치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역사 역시 우리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일깨워 준다. 현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성전산에서 돌아가셨다고 주장하고,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4세기에 지정한 예루살렘 서북쪽의 '성묘 교회'를 십자가 처형 장소로 기념해 왔다. 그러나 1849년 찰스 고든 제독은 예루살렘 성 북쪽 영문 밖에 위치한 거대한 해골 모양의 언덕을 발견했다. 이른바 '정원 무덤(Garden Tomb)'이라 불리는 이곳은 "성문 밖"(히 13:12)이라는 성경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할 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거대한 저수지와 포도즙을 짜는 틀을 갖춘 정원이 있었고, 돌을 굴려 막는 새 무덤(요 19:41)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비록 전통이라는 이름에 가려져 덜 주목받고 있지만, 이 정원 무덤의 생생한 흔적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후대의 막연한 신화나 조작이 아니라, 실제 역사적이고 지리적인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생생한 팩트(Fact)임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

 

10. 나오며

  우리는 마태복음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신 고난이 얼마나 철저하게 우리를 위한 전인적 대속의 과정이었는지를 확인했다. 무지한 이스라엘 군중들은 스스로 저주를 맹세하여 후손들에게 피바람을 안겨주었지만, 예수님은 묵묵히 십자가의 채찍과 조롱, 영적인 버림받음을 감내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치유, 그리고 맑은 정신의 축복을 열어주셨다. 구약의 모든 예언은 골고다 언덕에서 100% 성취되었다.

  십자가의 위대한 혜택은 이미 2천 년 전에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몫이다. 영적인 맹신과 나태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상 탓, 환경 탓을 멈추고 내 육체와 가정을 장악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뱀들을 향해 기도의 칼을 뽑아 들어야 한다.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여 매일매일 내 입술로 우상 숭배와 자범죄의 찌꺼기들을 자백하자. 끝장을 보겠다는 일사각오로 회개의 자리를 지켜낼 때,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이루신 그 찬란한 치유와 형통의 혜택이 마침내 우리의 육체와 삶 속에 강력한 현실로 임하게 될 것이다.

 

 2026년 03월 11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철저하게 구약의 예언을 이루신 성취의 사건임을 강조하며, 신자들이 그 희생의 영적 혜택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예수께서 채찍에 맞고 조롱당하신 고통을 통해 인류의 질병과 정신적 저주를 담당하셨기에, 현대인들이 겪는 가난과 질병은 회개를 통한 악한 영의 제거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특히 십자가에서 남기신 일곱 마디 말씀(가상칠언)과 구체적인 예언 성취 사례들을 근거로 들어, 예수님의 사역이 역사적 사실이자 초자연적 능력의 원천임을 증명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조상의 죄로부터 비롯된 저주를 끊어내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치유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성도들이 끊임없이 회개의 삶에 정진할 것을 독려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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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 [마태복음강해(55)] 열 처녀와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타난 성도들의 3가지 최후 거처들(02)(마25:1~46)_2025-12-17(수) file 갈렙 2025.12.17 229
642 [마태복음강해(54)] 열 처녀와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타난 성도들의 3가지 최후 거처들(01)(마25:1~46)_2025-12-10(수) file 갈렙 2025.12.10 228
641 [마태복음강해(53)] 대환난의 모습과 주의 재림의 징조들과 그 시기에 관한 말씀(마24:15~51)_2025-11-26(수) file 갈렙 2025.11.27 483
640 [마태복음강해(52)] 예루살렘 파괴와 종말의 때에 있을 징조들과 마지막 대환난의 모습(마23:37~24:28)_2025-11-19(수) file 갈렙 2025.11.19 686
639 [마태복음강해(51)]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책망과 그들이 받게 될 7가지 화(마23:1~36)_2025-11-12(수) file 갈렙 2025.11.12 704
638 [마태복음강해(50)] 부활과 가장 큰 계명과 그리스도와 다윗의 관계에 대한 주님의 말씀(마22:23~46)_2025-11-05(수) file 갈렙 2025.11.06 734
637 [마태복음강해(49)] 혼인잔치의 비유와 세금 및 부활 논쟁에 나타난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위(마22:1~33)_2025-10-22(수) file 갈렙 2025.10.22 724
636 [마태복음강해(48)] 예수님의 권위 질문을 두 아들 및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답하시다(마21:23~46)_2025-10-15(수) file 갈렙 2025.10.15 663
635 [요한복음강해(17)] 아버지와 아들이 하는 일과 그분의 증언 및 유대인들의 반응(요5:19~47)_2025-10-08(수) file 갈렙 2025.10.08 527
634 [마태복음강해(47)]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정화 및 무화과나무 저주가 들려주는 교훈(마21:1~22)_2025-10-01(수) file 갈렙 2025.10.01 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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