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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BtfPsQpH06k
날짜 2026-02-25
본문말씀 마태복음 27:11~56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5-02-25(수) 수요기도회

제목:[마태복음강해(63)] 빌라도의 심문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죄가 없으셨던 예수님(01)(마27:11~5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tfPsQpH06k

 

1.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마지막, 곧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현장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가장 위대한 구원의 성취가 이루어진 자리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물인 인간의 법정에 서서 심문을 받고, 온갖 조롱과 멸시 속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은 단순한 종교적 순교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정치적 권력의 비겁함, 진리를 외면한 군중의 무지, 그리고 무엇보다 인류를 영적, 혼적, 육체적 저주로부터 해방하시려는 하나님의 치밀하고도 숭고한 영적 전쟁이 숨어 있다.

  우리는 마태복음 27장에 기록된 빌라도의 재판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과정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영적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세상 권력과 군중 심리가 얼마나 진리 앞에 무력하고 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교훈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당하신 가혹한 육체적, 정신적 고난이 오늘날 내 몸과 영혼에 진을 치고 있는 악한 영들(귀신들)을 몰아내는 가장 강력한 축사(逐邪)의 근거가 된다는 놀라운 영적 진리다. 진리에 목말라하는 성도들이여, 이제 죄 없으신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처절한 고난의 길을 추적하며, 십자가에 감춰진 전인적 구원과 치유의 비밀을 깨닫는 자리로 나아가 보자.

 

2. 예수님은 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아닌, 이방인인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으셔야만 했는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주체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장로들로 구성된 유대의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72명)'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예수님을 처형하지 않고, 이방인인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으로 예수님을 끌고 갔다. 그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의 비참한 식민지 역사와 직결되어 있다.

  남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완전히 멸망한 이후, 메대와 바사, 헬라 제국을 거쳐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 제국의 철저한 지배(속국)를 받고 있었다. 유대 나라는 자치권이 크게 축소되었고, 특히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 집행권(칼의 권리)'은 오직 로마가 파송한 총독에게만 독점되어 있었다. (물론 훗날 스데반 집사의 순교처럼 무리들이 돌발적으로 돌을 던져 죽이는 불법적 사형이 일어난 적도 있지만, 예수님의 건은 너무나 중대했기에 철저히 합법적인 사형 언도가 필요했다.)

  역사적 사료에 따르면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전 세계에 직접 파송한 최상위 총독이 아니라, 시리아 총독의 관할 아래 유대 지역(예루살렘과 유대)만을 다스리도록 파송된 일종의 '부속 총독(Praefectus)'이었다. 그는 평소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랴에 머물다가, 인파가 몰려 폭동의 위험이 커지는 명절(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의 안토니아 요새로 올라와 치안을 관장했다. 산헤드린 공회는 바로 이 유월절 명절을 틈타, 사법권과 군사 지휘권, 심지어 대제사장 임면권까지 쥐고 있던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형을 집요하게 압박했던 것이다.

 

3.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임을 알면서도 왜 십자가 처형을 허락하는 비겁한 판결을 내렸으며, 그의 비극적 최후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빌라도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그는 세 번의 심문을 통해 예수님에게 아무런 정치적 반역의 죄가 없음을 명백히 알았다. 단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성전 이권 등)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넘겨주었음을 꿰뚫어 보았다. 심지어 그의 아내조차 꿈에 시달린 후 "이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라며 경고를 전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진리 편에 서지 못했다.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운집한 120만 명에 달하는 유대 군중들이 폭동(밀란)을 일으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만약 폭동이 일어나면 자신의 통치력에 치명적인 오점이 남아 로마 황제에게 문책을 당할 것이 뻔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정치적 안위와 인기를 지키기 위해, 특사 제도를 악용하여 살인마 바라바를 놓아주고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비열한 타협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 (마 27:24)라며 가증스러운 책임 회피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 비겁한 타협의 대가는 끔찍했다. 오늘날 전 세계 수많은 성도가 주일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사도신경을 암송할 때마다, 지옥에 떨어진 빌라도는 영원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수치를 당하고 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그는 훗날 사마리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과잉 진압의 책임을 물어 로마로 소환당했고, 재판을 받던 중 비참하게 자살하며 생을 마감했다. 세상의 권력과 사람의 눈치를 보며 진리와 타협하는 비겁한 자의 말로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역사는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4.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친 유대 군중들의 경솔한 선택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았는가?

  빌라도의 비겁함 못지않게 탄식을 자아내는 것은 유대 군중들의 무지와 광기다. 지난 3년 동안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과 치유의 혜택을 수없이 누렸던 백성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매수와 선동에 휘말려 맹목적인 폭도로 돌변했다. 그 수많은 군중 속에 진리를 옹호하며 "이분은 죄가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의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빌라도가 예수님의 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하자, 천추의 한이 될 무서운 저주의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만다.

"그 백성 모두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마태복음 27:25)

  입술의 열매, 특히 피 흘린 죄의 대가는 반드시 누군가가 치러야 하는 영적 인과응보(갈 6:7)의 법칙이 있다. 군중들이 경솔하게 내뱉은 이 무서운 선언은 곧바로 이스라엘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로 성취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지 40년 후인 AD 70년,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무려 110만 명의 유대인을 무참히 학살했으며, 살아남은 10만 명을 로마 콜로세움 건설의 노예로 끌고 갔다.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 통해 600만 명의 유대인이 독가스실에서 처참하게 학살당하는 민족적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지도자들의 악한 선동에 분별없이 동조하고 진리를 저버린 군중의 죄악이, 그들의 후손들에게 얼마나 참혹한 피의 대물림을 가져왔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은 구체적으로 어떤 세 가지 영역의 고난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할 때, 단순히 육체적 아픔이나 피 흘리심만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감당하신 고난은 영적(Spiritual), 혼적/정신적(Mental), 육체적(Physical)이라는 세 가지 영역을 모두 포괄하는 전인적인 대속의 사건이다.

  첫 번째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영적인 고난을 당하셨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에게 주어진 죄의 삯은 '사망'이었다(롬 6:23). 이 사망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를 의미하는 '둘째 사망(영적 죽음)'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시며, 우리가 지옥의 음부에서 당해야 할 이 끔찍한 '둘째 사망의 해'를 온전히 대신 당하셨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의 대속이 영적 구원(둘째 사망 면제)만을 위한 것이었는가? 만야 그것이 맞다면,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처럼 단번에 피를 흘리고 죽으시기만 하면 충분했을 것이다. 유월절 양을 도살할 때 사람들은 양의 뺨을 때리고 조롱하며 채찍으로 때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죄 없으신 주님이 왜 그토록 참혹한 육체의 찢어짐과 극심한 정신적 수치를 덤으로 당하셔야만 했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육체에 임한 질병과 가난의 저주, 그리고 정신과 혼에 임한 상처와 정신 질환(조현병, 신내림 등)의 저주까지도 동시에 완벽하게 도말하시기 위함이었다.예수님의 십자가는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찌그러진 정신과 병든 육체를 온전하게 치유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결단이었던 것이다.

 

6.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털 깎는 자 앞의 잠잠한 양처럼 모욕과 조롱(정신적 고난)을 묵묵히 다 받으셔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후로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적 고난(혼의 고난)을 당하셨다. 첫째로, 로마 군병들은 주님의 옷을 벗기고 왕을 조롱하는 홍포를 입힌 뒤,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갈대를 손에 들려주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며 침을 뱉고 조롱했다. 둘째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는 지나가는 무리들, 산헤드린 공회원들, 심지어 곁에 매달린 강도들까지 입을 삐죽거리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며 멸시와 천대를 퍼부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3, 7)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시편 22:6-7)

  이토록 가혹한 능욕 앞에서도 주님이 입을 열어 그들을 저주하거나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신 이유는 이사야와 시편의 예언을 온전히 성취하시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인간이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수치와 배신, 우울증, 조현병, 신기(神氣)와 같은 끔찍한 혼적, 정신적 저주를 당신의 몸에 고스란히 담아내어 십자가에서 끝장내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나의 수치를 대신 당하셨음을 굳게 믿는 자는, 세상이 주는 어떠한 모욕이나 정신적 질환 앞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치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다.

 

7. 예수님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가혹한 '육체적 고난'을 당하신 영적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고난 중 가장 처참한 것은 '육체의 고난'이었다. 주님은 동물의 뼈와 납덩이가 달린 로마의 끔찍한 채찍(플라그룸)에 120대나 맞아 등과 가슴의 살점이 뜯겨 나갔고, 머리에는 날카로운 가시관이 깊숙이 박혔으며, 양손과 양발은 거대한 쇠못에 관통당했고, 옆구리에 찔려 물과 피를 쏟으셨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온몸 구석구석이 파괴되어야만 했을까?

  필자는 지난 수년간 영적 전투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귀신(뱀들)을 쫓아내며 깨달은 충격적인 진실은, 인간의 죄악(특히 4대 우상 숭배)을 타고 들어온 악한 영들이 인체의 특정 부위에 견고한 진을 친다는 것이다.

  첫째, 제사(조상 숭배)를 많이 지낸 집안의 영들은 주로 '머리'와 '배(위장, 대장, 신장, 자궁)'에 들어차 있다. 두통, 이명, 치매, 당뇨, 신부전증 등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둘째, 무당(점쟁이)을 찾아가거나 굿을 한 죄로 들어온 영들(동자신 등)은 '어깨'를 짓누르고 '윗가슴(심장)'과 '발가락 끝'에 진을 친다. 셋째, 불교(부처)를 섬기며 탑돌이를 하고 절을 많이 한 자들의 영은 주로 앉아서 도를 닦는 '엉덩이'와 하체 '장단지'에 가득 차 있다. 넷째, 온갖 미신과 잡신을 섬기며 비나이다를 반복한 영들은 '손과 발'에 거머리처럼 붙어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가시관으로 머리를 찔리시고, 채찍으로 온몸의 등과 배를 찢기셨으며,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신 영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육체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이 더러운 악한 영들을 그분의 보혈과 권능으로 모조리 뽑아내어 축사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육체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이 온몸으로 고통을 당하셨기에, 오늘 우리는 그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우리 몸 안의 모든 귀신을 쫓아내고 완벽한 육체의 치유를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8.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육적, 혼적, 영적 저주를 끝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갈라디아서 3장 13절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율법의 모든 저주를 속량(끝장)하셨다. 주님이 영적, 혼적, 육적 고난의 값을 모두 지불하셨으므로 저주의 원금은 이미 탕감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수많은 성도가 안타깝게도 뼈아픈 착각을 한다. 원금이 탕감되었다고 해서 내 육체 속에 이미 똬리를 틀고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까지 저절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 십자가의 위대한 효력이 실제로 오늘 나의 정신병을 고치고 육체의 암 덩어리를 소멸시키며 가난의 저주를 끊어내게 하려면, 반드시 '자백과 회개'라는 파이프를 통과해야만 하는데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깊이 박혀있는 암 덩어리를 제거하려면 의사의 날카로운 메스로 피부를 찢고 직접 환부를 도려내야 하듯, 수십 년, 수백 년간 가문을 타고 내려와 내 뼈와 근육에 진을 치고 있는 귀신들을 뽑아내려면 피를 토하는 철저한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안수하여 밖에서 불을 머리에 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회개 기도문을 입술로 선포하며 내 육체 속에 예수님의 피를 집어넣을 때, 예수님이 당하신 그 처절한 육체적인 고난이 내 몸에 적용되어 악한 영들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 없는 구원은 관념에 불과하다. 철저히 회개하여 내 몸 구석구석을 장악한 악한 영들을 내쫓을 때에만, 우리는 십자가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는 진짜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9. 나오며

  우리는 마태복음의 증언을 통해 빌라도의 비겁한 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무고한 십자가 죽음 속에 담긴 위대한 영적 승리의 공식을 확인했다. 세상의 권력자 빌라도는 눈앞의 폭동과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지키기 위해 진리를 배반했고, 어리석은 군중들은 스스로의 입술로 후손들에게 임할 참혹한 피의 저주를 자초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무자비한 채찍과 가시관의 찔림, 그리고 십자가의 수치를 단 한마디 변명 없이 온몸으로 받아내셨다. 그 처절한 육적, 혼적, 영적 고난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의 영혼이 둘째 사망에서 구출되었고, 우리 몸에 기생하던 무당과 제사와 불교의 더러운 귀신들이 쫓겨날 합법적인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지금도 마귀는 우리의 이성을 속여 "한 번 구원받았으니 모든 저주는 다 떠나가고 없다"며 회개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러나 속지 말라. 예수님이 온몸이 찢기는 고통으로 마련해 두신 그 십자가의 혜택을 나의 것으로 가져오는 유일한 열쇠는 오직 매일의 '자백과 회개'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요일 1:9, 7). 그러므로 회개라는 진리 편에 섰다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조롱을 당하는 한이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주눅 들지 말자. 어차피 한 번은 죽어야 할 인생이다. 빌라도처럼 비겁하게 타협하다 영원한 지옥의 조롱거리가 되지 말고, 십자가의 진리를 붙들고 철저히 회개함으로 내 영과 혼과 육의 모든 저주를 끊어내는 위대한 '이기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2월 25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마태복음 27장을 바탕으로 빌라도의 심문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지닌 영육간의 의미를 깊이 있게 고찰합니다. 본 설교는 예수님이 정치적 희생양으로 정죄받는 과정에서 드러난 빌라도의 비겁함과 유대 백성들의 경솔한 선택이 가져온 비극적인 역사적 결과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가 겪은 고난을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세 영역으로 구분하여, 그분이 채찍에 맞고 조롱당하신 것은 인류의 질병과 가난, 정신적 저주를 끊어내기 위한 대속이었음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삶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저한 회개를 통해 주님이 예비하신 대속의 은혜를 실제적인 삶의 복으로 누려야 함을 역설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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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마태복음강해(45)] 이혼 논쟁과 어린아이 축복과 영생얻기를 바라는 어느 부자 청년의 고백(마19:1~30)_2025-09-17(수) file 갈렙 2025.09.18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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