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8(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원하는 자는 지금 어떻게 하늘의 생명수를 마실 수 있는가?(계22: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d4X2aqewtWo [또는 https://tv.naver.com/v/37354167]
1. 들어가며
살다 보면 피곤하고 지칠 때가 있다. 또한 몸이 아플 때도 있다. 그러다가 영적인 침체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에는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가? 그런데 사실 우리들의 삶의 배후에는 대부분 악한 영들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원을 찾거나 약을 먹는 것만으로는 우리 삶의 문제의 해결이 잘 안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회개를 하여 악한 영들이 떠나가도록 준비시킨 다음 축사사역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축사사역은 아무래도 사역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영권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항상 주의 종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조심스럽다. 그런데 침체된 우리의 삶을 다시 생기있게 만드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 하나 있다. 오늘은 그것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피곤하고 지친 육체가 아침이 되었을 때 다시 새 힘을 얻어 힘차게 출발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 것이다.
2. 귀신이 떠나가지 않을 때에 사역자가 사용하는 성령의 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귀신이 떠나가지 않는 것은 그들의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어서다. 그들이 사람 속에 들어올 때에는 아무런 원칙 없이 들어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도 합법적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몸속에 들어오는 악한 영들 중에는 좀 더 힘쎈 귀신들이 있다. 그러한 영들은 축사를 해도 안 나가려고 끝까지 버티려고 한다. 그럴 때에는 아무래도 영적인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도구는 아무래도 성령의 '불'이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이다(신4:24, 히12:29).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불은 번제물만을 태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왕상18:38, 왕하1:12, 대하7:1), 귀신도 역시 태울 수 있다(계19:20, 20:10). 그러면 그때에는 귀신들도 고통을 받는다. 그러므로 성령의 불 앞에 견뎌낼 귀신들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불의 양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불이 들어오면 귀신들은 지레 도망을 친다. 그렇다면 축사 사역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성령의 불"은 과연 어디에서 와서 역사하는 것인가? 성경을 살펴보니, 성령의 불은 저 하늘에서부터 온다. 정확히 말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요(왕상18:38, 왕하1:12, 대하7:1),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불타는 제단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유익한 생명수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리고 그 생명수는 우리들이 어떻게 받아서 마실 수 있는가?
3. 목마른 자들에게 성령과 신부가 어떻게 초청을 하는가?
요한계시록 22:17에 보면, 성령과 신부가 사람들에게 초청하면서 무엇인가를 권면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본문을 살펴보면, 성령과 신부는 지금 천국에 있다. 천국에 있으면서 초청하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과 신부가 권면하고 있는 대상은 대체 누구인 것이며,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가? 그래서 본문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성령과 신부의 초청 및 권면의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계22:17 성령(그 영)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계속] 오라(오십시오) 하시는도다 [그리고] 듣[고 있]는 자도 [당신은 계속] 오라(오십시오) 할 것이요, [그리고] 목마른(목마르고 있는) 자도 [계속] 올 것이요(오십시오) 또 원하[고 있]는 자는 값없이(거저) 생명수를 받으라(취하십시오) 하시더라
어떤 주석가는 이 본문에서 성령과 신부가 초청하는 자를 주 예수님으로 보기도 한다. 성령과 신부가 주 예수님께 어서 재림하시라고 촉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본문에서 성령과 신부가 초청하고 권면하는 대상은 2인칭 단수로서, 첫째는 누구든지이며, 둘째는 듣고 있는 자다. 그리고 셋째는 목마른 자이며, 마지막으로는 생명수를 원하는 자다. 그러므로 성령과 신부가 초청하는 대상은 결코 주님이 될 수가 없다. 주님은 목마른 자도 아니며 생명수를 달라고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님은 생명수를 나눠주실 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본문에서 초청하고 권면하고 있는 대상은 대체 누구인가? 하늘에 있는 성도들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인가? 결론적으로 그들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하늘에 있는 성도들은 더 이상 굶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7:16). 그리고 이때 성령과 신부가 이 세상 사람들을 초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수를 취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생명수를 취한다'는 말은 생명수를 마시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어 목마른 자는 생명수를 받아서 마시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생명수를 받아서 마셔야 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생명수를 받아서 마실 수 있는가?
4. 생명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먼저, 생명수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지부터 살펴보자. 과연 생명수는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이며,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인가? 그것에 관하여는 구약성경에 2가지 예표들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에덴동산의 네 개의 강과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의 물에 관한 환상에서다.
먼저. 에덴동산의 강들을 보자. 이 예표는 과연 생명수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에덴동산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물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고 있다(창2:10). 그리고 그때 땅의 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강들의 이름들은 각각 비손강, 기혼강, 힛데겔강, 유브라데강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 이후 2개의 강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오늘날에는 힛데겔(티그리스)강과 유브라데(유프라테스)강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4개의 강이 근원이 되는 에덴동산 꼭대기의 물은 과연 어디에서 계속 공급되고 있었는가? 물은 법칙상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누군가 에덴동산 꼭대기에 물을 대줘야 에덴동산에서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데 에덴동산 안에는 물을 끌어올려줄 기계적인 장치가 아직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개의 강으로 흘러넘치는 물이 거기에서 계속해서 나왔다. 그래서 어떤 분이 영안을 열고 보니, 그 물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 보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물이 흘러나와서 지구의 에덴동산에 물을 공급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에덴동산의 물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공급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조금 전에 불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제물을 태웠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처럼 물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에덴동산에 물을 대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얼마든지 생명수를 하나님께 당신의 보좌에서부터 공급해 달라고 부탁할 수가 있는 것이다.
5. 생명수는 어떤 효과가 있는가?
그렇다면 하늘의 생명수는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생명수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B.C.573년 에스겔이 바벨론에서 보았던 새 성전의 환상으로 짐작할 수가 있다. 이 환상은 생명수에 관한 또 하나의 예표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남유다가 멸망한지 14년이 되었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때 바벨론에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빼내시더니, 그를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셨다. 그리고 매우 높은 산 북쪽에 두셨다. 그리고 이전에 없던 새 성전을 하나 보여 주셨다. 그런데 이 성전은 이 지상에 세워질 것 같은 성전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새 성전에 대한 환상 속에서 과연 생명수가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인지가 나온다.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성전이 이 세상에 있을 성전이 아닌 이유는 첫째로, 성전의 성소(외소) 안을 보니, 지상의 성전 안에 꼭 있어야 할 일곱 금촛대와 분향단과 떡상이 없다는 것이다. 외소에는 오직 여호와의 강대상만 있었기 때문이다(겔41:2~22). 둘째로, 이 새 성전은 그것의 문지방에서부터 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겔47:1). 만약 이것이 실제의 일이라면 큰일이다. 성전이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예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늘의 성전의 지성소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데, 그곳에서부터 물이 흘러나와 생명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고 이 강 좌우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그 잎사귀는 시들지 아니하고, 열매가 달마다 끊이지 않고 맺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열매는 사람들에게 음식이 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겔47:12). 놀랍게도 하늘에 있는 생명나무 역할이 이것과 똑같다는 사실이다. 천국에서는 이미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발원하는 물이 흘러서 생명강을 이루고 있었고, 이 생명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생명나무는 12가지 종류의 열매를 맺고 있었으며, 달마다 그 열매를 맺되, 그 나무의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기 위해 있었다(계22:1~2). 그러니까 에스겔이 본 새 성전에 관한 환상은 이 지상에 세워질 성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장차 우리가 들어가서 참여하게 될 생명의 물과 생명강 그리고 생명나무를 예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 말씀에 따른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늘의 생명수의 은혜를 받아서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나무의 열매도 먹을 수 있고, 생명나무의 잎사귀로 치료를 받으며 살 수도 있는 것이다.
6. 이 세상 사람들은 생명수를 어디에서부터 공급받을 수 있는가?
우리는 방금 생명수에 관한 2가지의 예표를 구약에서 찾아보았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오면서 예표는 실상이 되기 시작한다. 예수께서 오시더니 생명수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먼저는 요한복음 4장에서 언급하셨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께서 물을 뜨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떠먹는 이 야곱의 물은 다시 목마를 수 있지만, 내가 주는 물은 선물로 주는 것으로서, 이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끊어지지 아니하는 물이 될 것이며, 그래서 그것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다(요4:10~14). 그렇다. 생명수는 우리 주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 그분 안에는 생명이 있다. 그래서 그분이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은 생명의 빛이요, 그분이 주는 물은 생명의 물이다. 그리고 그분이 들려주신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며, 그분이 주는 떡은 생명의 떡이다.
그리고 이어 요한복음 7장을 보면, 예수께서 목마른 자를 초청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셨다(요7:37~38). 그리고 이어서 사도 요한이 해설하기를, '그 배에서 흘러나올 생수의 강은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이라고 하셨다(요7:39). 그렇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예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 가운데 성령께서 좌정하신다. 그러면 우리 몸의 심장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보좌가 된다. 작은 천국이 내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물이 나오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에게는 심장 아래의 배 속에서부터 생수가 흘러나온다. 문제는 우리 배 속에는 생명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배 속에는 악한 영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악한 영들의 방해 때문에 그 물을 가슴으로 퍼올리지도 못하고, 머리에게까지 퍼올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보다 갈증을 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 생명수는 우리의 배 속에서만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천국의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끌어올 수 있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는 자기 안에 성령께서 만들어 내시는 생명수가 있어 그것을 끌어올려 사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저 하늘에서부터도 생명수를 끌어다가 쓸 수가 있는 것이다.
7. 이 세상에서 생명수는 어떻게 실제적으로 마실 수 있는가?
오늘 본문 말씀에 성령과 신부는 생명수를 원하는 자가 과연 누군지를 말씀해 주고 있다. 그 대상은 말씀을 듣고 있는 자요 목마른 자요 원하는 자다. 바로 그런 자가 값없이 하늘에 있는 생명수를 받아 마실 수가 있는 것이다(계22:17). 그런데 이러한 생명수를 받아서 마실 대상은 저 천국에 있는 성도들이 아니다. 천국에 있는 성도들은 누구라도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마실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목마르지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고로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야말로, 이 생명수를 받아 마셔야 할 유일한 대상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내 배 속에 있는 생명수가 올라오지 않는다고 고민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다. 이제라도 직접 하늘나라에 있는 생명수를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 있는 생명수는 어떻게 받아 마실 수가 있는가? 그 방법으로는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우리의 영이 육체를 빠져나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마시고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쉽지 않다. 더러운 영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이러한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지금 이곳에서 주님께 생명수를 부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과 신부가 그렇게 할 것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생명수를 마시기를 원하는 자는 하늘의 생명수를 받아 마시라고 했기 때문이다(계22:17). 그러므로 내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즉시 우리의 아버지께 구하여 생명수를 부어 달라고 할 수 있다. 고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에 이렇게 한번 시도해 보라. "주님, 제가 오늘 하루도 여러 가지 일정 때문에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 있습니다. 주님, 이 시간 주님으로부터 새 힘과 능력을 받기를 원합니다. 하늘에 있는 생명수를 내게도 공급해 주시어 시들어 있는 내 영혼을 다시 파릇파릇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면 천사가 주전자로 하늘의 생명수를 받아다가 내 영의 입에 부어 줄 것이다. 그러면 새 힘이 충전되어 아침이 되면 힘있게 직장으로 출근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믿음이 적기 때문에 생수의 분량이 작게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도해 보라. 그러면 어느 날 우리 손에서 예수님의 보혈이 점차 더 많이 나가듯이, 위에서부터 오는 생수의 양도 훨씬 더 많이 내려올 것이다.
8. 나오며
우리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기사에서 놀라운 하나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천지창조시 물에 대한 창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은 그냥 등장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지구를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의 영이 물들의 층 위에 그냥 운행하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창1:2). 그리고 첫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빛이 생겨나라고 명하셨다. 그렇다. 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어디선가 끌어오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끌어온 것이다(계22:1~2). 그래서 이 지구 위에 물을 대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천국에 있는 성령과 신부가 권면하며 말씀한다. 누구든지,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자 그리고 목마른 자 그리고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마시라는 것이다(계22:17). 그렇다면 이 물은 어떤 물인가? 이 물은 하늘에 있는 생명의 물(생명수)이다. 그리고 이 생명수를 마셔야 할 대상은 목이 마른 자들로서, 바로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내가 거듭나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서 내 몸에 작은 천국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든지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생명수를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러면 지치고 상한 우리의 심령과 몸에 새 힘이 공급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이요 행복이다. 그리고 흘러넘침이다. 오늘부터 저녁에 잠들기 전에 꼭 이 생명수를 요청하여 마신 후에 주무시기를 바란다.
2023년 06월 18일(주일)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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