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회개의 천국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다. 회개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막1:15). 그렇다면 천국에는 과연 누가 들어가 있을까? 만약 거기에 들어가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천국을 준비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들이 제일 많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사실 천국과 지옥을 갔다 왔다고 하는 분들의 간증일 것이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을 갔다가 왔다는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대가 70%정도는 성경에 없는 내용들이 나온다. 그러면 과연 그것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에 모습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면 누가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고 하면 다 진짜인 줄로 안다. 하지만 실제 천국과 지옥의 간증의 대부분은 왜곡된 것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왜곡된 간증을 진짜로 알고 있다가는 천국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생길 수도 있으며, 잘못된 방향을 나아가면 결국 열심히 살았느나 자신의 영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과연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중에 오늘 한 여인이 등장할 것이다. 그 여인을 통해 과연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 또한 어떤 간증이 참된 간증인지를 분별해도보록 하자.
2. 테레사 수녀가 과연 천국에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천국과 지옥을 갔다가 왔다는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테레사 수녀가 천국에 있다는 분도 있고 지옥에 있는 것을 보았다는 분도 있다. 그럼 과연 누가 제대로 보고 온 것일까? 둘 중의 하나는 틀린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와 지옥에 동시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천국에 있는지 혹은 지옥에 있는지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2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은 그녀를 보고왔다는 분의 간증들이 정말 진짜인지 아니면 거짓말인지를 분별해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방법은 테레사 수녀가 살아생전에 남겨놓은 흔적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특히 그녀의 내면의 모습이 담긴 기록들을 조사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녀가 과연 천국에 있는지 지옥에 있는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 어떤 사람의 천국과 지옥의 간증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갔다 왔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사실 알고보면 간단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그가 간증했던 내용들 중에 성경과 불일치한 것을 보고 왔다고 말했다면, 그 사람의 간증은 가짜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말하는데, 성경과 틀리게 말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간증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상의 모습은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그곳에 들어간 사람의 숫자만 다를 뿐,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4. 테레사 수녀가 천국에 있는지는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가?
우선 테레사 수녀가 천국에 있는지 지옥에 있는지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가장 쉽게 이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간증자가 했던 간증의 신빙성을 조사해보는 것이다. 간증의 내용 중에서 혹시 성경과 불일치하는 것이 나오면 아올수록 그 사람의 간증은 가짜일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천국에서 테레사수녀는 보았다는 어느 목사님(A목사님이라고 가정해보자)의 간증을 살펴볼 것이다. A라는 목사님이 천국과 지옥을 보고왔다는데, 그 간증 속에 하나도 틀린 것을 발견할 수 없다면, 테레사 수녀는 천국에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테레사 수녀를 천국에서 보고왔다는 목사님의 간증을 살펴보면, 성경과 불일치하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A라는 목사님이 보고왔다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과 사람들에 관하여 핵심적인 몇몇 부분만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A라는 목사님이 지옥에 먼저 갔는데, 지옥에 갔더니 강양욱 목사님께서 나와서 자신에게 지옥을 구경시켜주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100% 가짜를 보고 온 것이다. 왜냐하면 강양욱목사가 지옥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그가 A라는 목사님을 모시고 지옥을 구경시켜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옥은 관광명소가 아니라 형벌장소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고통받는 곳"인 것이다(눅16:28). 누구든지 그곳에 한 번 떨어지기만 하면 결코 나올 수도 없고 자기 맘대로 행동할 수도 없는 곳이다. 그곳에 한 번 들어가면 오직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안에서 처절히 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간 사람들은 뜨거운 불과 아울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한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사람은 한 시동안도 쉴 틈이 없다. 그곳은 밤낮으로 고난을 받는 장소이기 때문이다(계14:10~11). 그러므로 형벌을 받고 있는 강양욱목사가 A라는 목사님을 모시고 지옥을 구경시켜드릴 리가 없다.
둘째, A라는 목사님이 지옥이 어디 있는지를 말하는데, 지옥은 지구 곧 지구의 땅 속에 있지 아니하고 이 세상 밖에 있더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도 가짜를 보고 온 것이다. 왜냐하면 지옥은 우주 밖에 있지 아니하고 땅 속 곧 지구의 맨틀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A라는 목사님은 이 세상 밖에 공중의 권세잡은 사탄과 악령들이 지배하는 세계가 있고, 그 너머에 천국에 있으며, 천국 바로 아래쪽에 지옥에 있더라고 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아주 가깝더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보기는 보았지만 아주 잘못 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지옥은 땅(지구) 속에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며(마12:40), 천국과 지옥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성경말씀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눅16:22~23).
셋째, 이번에는 A라는 목사님이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천국으로 가는 길이 불타고 있다고 말했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황금과 진주로 되어 있었으며, 문은 회전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무엇인지 보았더니, 이마와 오른손에 하나님의 인(도장)을 받은 자만 들어가더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도 천국을 잘못 보고 온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으로 가는 길에 불타는 장소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우주로 올라갔는데 불타는 곳을 보았다고 한다면 그곳은 우주가 아니라 지구 속 곧 땅 속이었을 것이다. 또한 천국문도 사실 없다. 이미 죽자마다 심판받고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가 어떤 문 앞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천국에 들어간 것이지 거기서 검사받고서 성 안으로 들어갈 리가 없다. 또한 천국의 중앙에는 새 예루살렘 성이 있으며, 그 성의 동서남북에 각각 3개씩 12개의 문들이 있다(이것을 천국문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성에 들어가는 조건은 이마와 오른손에 인을 맞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계21:27). 만약 천국문을 통과하는 조건이 이마와 오른손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마귀가 쓰는 방법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요한계시록 13장을 읽어보라. 이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인칠 때에 오직 이마에만 당신의 이름과 어린양의 이름을 영적으로 인을 치시기 때문이다(계14:1).
넷째, A라는 목사님이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앉아계시고 그 보좌 앞에 예수님이 앉아 있었으며 천사장인 네 생물이 주변에 둘러 있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도 가짜 간증이다. 왜냐하면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계실 수는 있으나 그분 앞에 결코 예수께서 앉아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앞에 앉으셨다고 말하는 구절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그분이 부활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만 말할 뿐이다. 그런데 사실 보좌 우편이라는 말은 그분이 세상에서 이기고 권세와 능력을 차지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뿐, 실제로 하나님의 오른편에 예수님의 보좌가 있거나 예수님의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이 실제로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보았을 때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곧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계셨다(계3:21). 그러므로 A라는 목사님의 간증은 가짜를 보고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보좌 주변의 네 생물은 천사장이 아니다. 천사장이라고 함은 자기 밑에 수많은 천사들을 거느리고 있어야 하는데, 네 생물은 독립적인 생명체일 뿐 자기 밑에 부하천사들을 거느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계4:6~7).
이상의 사실들을 보아서도 우리는 천국에서 테레사 수녀를 보았다는 A목사님의 간증이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5. 테레사 수녀가 남긴 흔적은 그녀가 현재 어디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가?
이제는 내증을 살펴보자. 그녀가 천국에 있는지 지옥에 있는지는 사실 천국과 지옥에 가서 확인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내외적인 증거들을 통해 그것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앞에서 우리는 그녀를 천국에서 보았다는 목사님의 간증이 성경과 불일치한 것을 살펴보았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그녀가 천국에 있을 확률이 적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녀 자신이 어떻게 말했는지를 찾아보도록 하자. 그녀는 1910년에 태어났다. 그리고1997년 87세의 나이에 작고하셨다. 그런데 그녀는 참으로 너무나 숭고한 일들을 많이 하셨다. 박애정신을 실천하다가 돌아가신 분이었기에, 사실 그녀는 신자나 불신자나 다 그녀를 존경하고 있으며 또한 그녀가 갔던 길을 자기도 가겠노라고 하는 이도 참으로 많다. 그녀가 끼친 영향을 실로 대단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그녀는 18살에 되었을 때에 수녀가 된다. 그리고 인도로 건너가서 거기서 20년간 교사로서 봉직하다가, 38살부터 87살까지 약 50년간 고아과 빈민자들과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불철주야 섬기는 일을 하셨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을 그녀는 해낸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속 마음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녀에게 과연 믿음이 있었는지는 그 속에 들어가보지 못했기에 실은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천주교인으로서 자기의 담당 신부에게 고해를 하고 고민을 털어놓은 글들과 이메일이 남아있기에 우리는 그녀가 남긴 그 글들을 통하여 그녀가 어떤 마음 상태에 있었으며 결국 그녀가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그녀가 신부의 지시를 따라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를 기록했는데 그 기도문이 오늘 남아 있다. 거기에는 그녀의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녀 자신이 공허와 깊은 흑암에 쌓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아픔 때문에 고통하고 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주님께서 자신을 만나주지도 않고 자신에게 말씀하지도 않아, 그녀가 번민 속에서 믿음까지 잃어버렸다고까지 말한다. 한 마디로 그녀의 마음 속에는 예수께서 거하시지 않았던 것이다.
6. 테레사 수녀는 왜 하나님의 부재와 공허 속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는가?
그렇다면 빈민가의 사람들을 돌보던 때 곧 38살부터 그녀가 잘못 알고 놓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우선 그녀의 삶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그녀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열심히 구제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자들을 예수님처럼 섬기기를 50년동안 정성껏 다했다. 그녀는 수십년을 변함없이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그녀는 하루도 마음 편히 쉬지 않았으며, 약산 자들을 섬기면서 그들을 위해 당하는 고통을 기쁨으로 알고 그들을 섬겼다. 그렇게 하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줄 알았기 때문이다. 실은 이것이 로마카톨릭의 구원관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녀는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가난하고 병들고 신음하는 원인을 파악하면서, 그것은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없는 부재 때문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진정 사람의 고통의 원인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실천의 부재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김으로 온갖 귀신들의 공격을 받음으로 저주받고 질병에 시달리며, 가난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잘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태 가난하고 병든 자들로 존재는 이유는 바로 "사랑의 실천의 부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라도 그들을 사랑으로 섬겨주는 것이야말로 인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삶을 기록한 책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는 책에 살펴보니, 그녀가 예수님이 누군지를 표현한 부분이 나온다. 거기에는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사회문제가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사랑으로 섬기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음을 알려준다. 거기서 그녀는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예수님은 채워져야 할 배고픔입니다. 그리고 목마름이요, 헐벗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집없는 자요, 치유받아야 할 병자이며 의로운 자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분이요, 나병환자이며 거지요 정신병자입니다. 그분은 작은 분이고 장님이며 벙어리요 앉은뱅이이며 약물중독자이고 매춘부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런 자들을 당신의 사랑으로 돌보라고 하셨지, 당신 자신이 매춘부와 약물중독자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받기 위해서는, 사람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 다음 우리 자신을 저주로 옥죄고 있는 영적 세력을 내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영적인 비밀을 전혀 몰랐다.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고통받고 있는 원인에 대해, 사랑의 부재라고 판단했을 뿐, 죄로 인하여 귀신들이 괴롭히고 있는 것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셋째, 그녀는 그렇게 많은 언론취재와 그리고 엄청난 상들을 수상하면서도, 모든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서만이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고, 온갖 저주와 질병과 가난 가운데서 빠져나오는 근본 해결책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죄는 오직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피로서만이 해결된다는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했을 뿐이다. "힌두교도이든 이슬람교도이든 기독교도이든, 다 자신의 삶의 방식이 다르고 자신의 신에게 귀의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신앙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자신의 신앙의 길을 가는 것 뿐입니다." 그렇다. 그녀는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많은 기회가 그녀에게 주어졌지만, 그는 그것을 감추어버린 것이다. 혹시일지 모르지만 진짜 그것을 몰랐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허전함과 공허와 어둠 속에 살아야 했다. 그리고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녀는 템플턴 상의 수상자로서 명예스런 인물이요, 노벨상 수상자요, 교황으로부터 가장 많은 은총을 받은 로 알려졌지만 그녀의 내면은 그렇게 외로움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고로 그녀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살펴보면, 그녀 속에는 예수님이 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랬다. 그녀는 예수없이 봉사했고 예수없이 구제했으며, 예수없이 병든 자들을 섬겼던 것이다. 고로 그녀의 발자취는 보편적인 인류애의 가장 숭고한 표현이라 기록되고 각인되었지만, 실제 그녀 안에는 예수님이 아니 계셨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천국에 있더라는 간증은 틀릴 확률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천국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자만 들어갈 수 있으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잘 따라가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테레사수녀를 생각하면 왜 그리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그녀가 진정 영적인 바른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고 신앙교육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또 생각해 본다. 그녀는 사실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도 몰랐던 것 같다. 로마카톨릭의 교리에 따라 자선행위를 하고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예수님을 섬기듯 섬겼다. 하지만 그것은 가난하고 병든 원인이 진정 마귀에게 있고 그 전에는 인간자신의 죄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인간에게 정말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끝내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 안에 진정 으로 예수님이 살아계셨다면 그녀는 수많은 공식적인 현장에서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었을텐데, 그녀는 끝내 예수님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드러내야 할 자리에서도 결국 예수님을 감추어버렸다. 그녀의 삶은 결코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살지 않았다. 그녀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했으며, 어떤 수상 자리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사람은 그녀를 그렇게 가만 놔두지 않았다. 교황도 그녀를 믿고 지원해주었으며, 세상 사람들도 그녀를 믿고 따라주었다. 그리고 기꺼이 돈도 기부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수많은 종류의 상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원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영광들이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끝내 예수님을 드러내지 못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다고, 특히 영혼의 억압과 저주에서 그분만이 우리 인간을 구해낼 수 있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많은 고통의 세월을 겪었음에도, 늘 공허했고 또한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그때 그녀가 그렇게 고뇌하고 슬퍼하던 고통의 숨소리가 지금도 내 귀에 들리는듯 하다. 예수없는 봉사는 결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으며, 예수 없는 헌신은 죽는 날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본인의 뜻은 아니더라도 결국 사탄마귀에게 영광을 돌리고 만다. 우리는 살아 숨쉬는 모든 날에 빛나는 영광의 자리가 주어진다면 그곳에서 예수님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땅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이요, 이 땅에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18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