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성령의 내주는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만 있었는가? 하지만 창6:3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노아홍수이전에 그러한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에녹과 노아는 의인이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순절날 질적으로 새로운 영이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순절 이후 성령의 내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사실은 무엇인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들어가며
신적 존재란 사람 속에 들어올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들 중에는 귀신도 있고 성령도 있다. 귀신은 무당들이 신으로 섬기는 존재이지만,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으로 섬기는 존재다. 그런데 귀신도 사람 속에 들어오고 성령도 사람 속에 들어온다. 그런데 귀신은 한 번 들어오게 되면 막무가내로 장악하여 끌고 간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매우 인격적이어서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한 강제하지는 않으신다. 그런데 영 안을 열어서 보면, 사람의 뇌의 70~80%는 귀신이 장악하는 경우가 많고, 성령께서는 20~30%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 의 뇌(혼의 좌소)는 귀신과 성령의 각축장인지도 모른다. 영적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몸속에 있는 귀신들과의 싸움이자, 육체와 귀신에게 사로잡혀있는 혼(souls)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귀신들과 혼은 사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귀신들과 자신의 혼과의 싸움에서 과연 어떻게 하면 백전백승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이 말씀을 주의깊게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 아멘 한다면 우리에게는 놀라운 영적 세계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2. 영적 싸움이란 대체 무엇과의 싸움인가?
영안을 열어서 보면, 귀신은 아기가 엄마의 태중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와서 거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가 태중에 잉태된지 약 2~3개월쯤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을 태아에게 넣어주신다. 그리고나서 예수믿은 후에 거듭날 때에 성령께서도 사람 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사람 속에는 귀신과 사람의 영과 성령이 차례대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이후 사람들은 영을 사용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들어왔어도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잘 모르는 이들이 많으며, 자신의 영을 사용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그러나 귀신은 조상적부터 들어온 존재로서, 그 집의 가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그 집안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쾌락, 명예, 인기, 권세, 돈 등)도 알고 있어서, 그것을 미끼로 혼을 장악하려고 시도한다. 고로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영적 싸움이란 사람 속에 들어와있는 귀신과의 싸움이 일차적인 싸움이요, 이어서 타락해서 육체가 되어버린 우리자신의 혼과의 싸움이 2차적인 싸움인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노아시대에 장차 하나님의 영을 왜 거두어가신다고 말씀하셨는가?
B.C.2338년경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보시고 이런 결정을 내리신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 안에 거하지 아니할 것이니, 왜냐하면 사람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사람의 날들은 120년이 될 것이다(창6:3직역)" 이 말씀 속에는 놀라운 2가지 사실이 들어 있다. "첫째, 영혼육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완전히 육체만을 좇아사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으니, 이전까지 사람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을 거두어가겠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거두어가시되 당장은 아니고, 120년의 시간적인 말미를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왜 즉각 심판하여 사람들을 없애버리지 않고 말미를 준 것인가? 그리고 왜 더이상 사람 속에 당신의 영을 머물게 하지 않는다고 했을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거두어가신다는 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을 머물게 했지만,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을 주신 목적을 망각하고서는 오히려 더욱더 육체의 본능만을 좇아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성령의 내주를 허락하셨지만 인간은 사탄마귀의 말을 듣고 더욱더 악해졌으며, 남자들은 폭력적이 되어갔으며, 여자는 외모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해서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120년의 말미를 준 것은 그래도 사람에게서 성령을 거두어가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회개할 자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아의 식구를 제외한 어떠한 사람도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120년 뒤에는 인간에게서 성령을 거두어가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4. 120년은 심판유예기간인가 방주를 지은 기간인가?
대부분은 사람들은 120년이라는 기간을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서 성령을 거두어가기 전에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은 120년이 아니라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할지라도 76년정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6:3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노아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세상이 패괴한 것을 보셨던 하나님께서 혼잣말처럼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노아가 방주를 지은 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최고76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노아는 500세가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창5:32). 그리고 홍수는 노아 600세되던 해에 있었다. 그리고 노아의 장자 셈은 100세 아들(아르박삿)을 낳았는데, 그때가 홍수 후 2년이라고 했으니, 노아는 502세에 셈을 낳은 것이다(창11:10). 그렇다면 노아가 502년에 장자를 낳고 아들을 2년 텀으로 낳았다면, 함은 504세에, 야벳은 506세에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했는가? 그것은 노아가 세 아들을 장가보낸 후였다(창6:18). 만약 셈이 20세의 이른 나이에 장가를 들었고, 2년 텀으로 함과 야벳을 장가보냈다면, 노아가 방주를 지었던 때는 노아 524세 때다. 그러니까 가장 많이 쳐주어도 노아는 방주를 76년정도 지었을테니, 당시 보통 사람들이 천년을 살았으니 노아는 적어도 이보다는 훨씬 뒤에 아들들을 장가보냈을 것이다.
5. 창세기 6:3의 말씀이 가르쳐주는 놀라운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창세기 6:3의 본문은 많은 논란을 가지고 있는 본문이기도 하지만, 이 말씀은 홍 수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점을 풀어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창6:3에 나오는 동사는 여기에서만 사용되어진 단어로서, 그 뜻을 정확히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뜻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우리가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창6:3의 말씀을 우리말 개역성경으로 보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영이 노아홍수 이전에는 사람과 항상 함께 있었는데, 사람들이 육신이 되어버리므로, 하나님께서 더이상 당신의 영을 사람과 함께 있도록 하지 았겠다고 결정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함께하지"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대체 무슨 뜻인가? 그 단어는 "야돈"이라는 것인데, 그 뜻은 실로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단어를 다른 번역본은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가장 오래된 번역본으로는 B.C.3세기경에 나온 70인역(LXX)이다. 헬라어에 능통한 72명의 랍비들이 고대히브리어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인데, 여기에 보면, "야돈"을 "카타메노" 즉 "머물지, 거하지, 거주하지"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구약성경의 본문을 인용할 때 전부 70인역에서 인용한 것을 보면, 상당히 권위가 있어보인다. 그래서 70인역에 따라 창6:3을 번역한다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 영이 그 시대까지는 절대 사람 안에 거하지 않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날은 120년이 될 것이다." 둘째, "야돈"을 KJV계열의 성경책에서는 전부다 "다투다. 분투하다"로 번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야돈"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원형을 "딘(심판하다,판결하다)"으로 추정하여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우리말 개역성경의 경우인데, 여기에서는 "함께 하지"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는 쉬운성경, 쉬운직역성경, 국민성경, 바른성경도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번역을 취해야 할까? 그것은 아무래도 신약성경의 기자들의 성경으로 채택한 70인역의 번역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인류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또 하나의 발견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노아홍수이전까지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각도에서 성경을 보았을 때,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풀린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노아가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흠없는) 자로서 하나님께 동행하는 자"로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노아 안에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면 금방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아의 4대 조상이었던 에녹이 365일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취해가시므로 더이상 세상에 있지 않게 되었다는 말도 쉽게 이해가 간다. 왜냐하면 에녹 역시 자기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순전히 따라갔었으리라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의 영에 관하여 에스겔선지자를 통해 주신 약속의 말씀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노아홍수이후 하나님의 영은 더이상 사람 안에 거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노아도 실수하여서,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에서 벌거벗은 수치를 다 드러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38년을 노아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 곧 노아의 10대후손인 아브라함 때에 하나님을 매우 기쁘시게 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자기 안에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결코 우상을 섬기지 않았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갈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아주셨다. 새로운 믿음의 종족의 조상으로서 그를 삼아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자손번성의 축복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선물도 약속해주셨다. 그리하여 400년 후에는 진짜로 그 약속의 말씀이 성취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는 창3:15에 약속한 메시야가 와서 인간의 죄를 속죄하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가 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임시로 바르게 사는 길을 보여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타락했고, 율법책을 멀리하고 말았다. 결국 우상숭배에 빠져버린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은 심판하였고 그들을 바벨론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 그런데 거기에 끌려갔던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B.C.585년경 노아홍수이전과 같은 시대를 다시 허락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것은 언젠가 새로운 하나님의 영을 사람 속에 주기로 약속하신 것이다(겔36:26~27).
드디어 때가찼고, 메시야가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속죄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셨다. 그리고는 당신을 대신하여 보혜사(돕는 자)이자 새 영인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이 새 영은 노아홍수이전에 사람 속에 있었던 성령과는 사뭇 달랐다. 왜나하면 예수께서 보내주신 성령은 예수님 자신의 또다른 오심으로서, 이것은 예수께서 이루신 모든 것을 함유하고 있는 성령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 영은 인성을 거치셔서 인간의 고뇌를 잘 아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귀신의 왕 바알세불과 싸워서 승리한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영은 귀신에게는 강력한 영이겠지만, 연약한 인간에게는 한없이 긍휼이 많으신 이의 영인 것이다. 그러니 오순절이후의 성령은 에녹과 노아가 경험했던 하나님의 영보다 훨씬 더 우리의 사정을 잘 아시고 이해하시는 분이시자, 귀신을 쫓아내며 죽더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게하는 능력을 가진 성령인 것이다. 그분이 지금 우리 믿는 이들 안에 들어오신 것이다.
7.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만약 우리 자신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과 하나된 성령께 우리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간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에녹과 같은 삶, 홍수이전의 노아와 같은 삶, 아니 그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긍휼히 풍성하실 뿐만 아니라 죄와 죽음과 마귀를 이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아홍수이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은 사람에게는 혼이 있어서 과연 자기자신이 마귀와 연합된 육체를 따라갈 것인지 혹은 성령과 연합된 내 영을 따라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인지라 결코 사람에게 강제하지는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분의 인도를 따라가기를 결정한다면 우리는 영적 싸움에 백전백승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신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이 다시 영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사9:6). 문제는 내가 과연 귀신과 하나된 육체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성령과 하나된 영을 따라갈 것인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8. 나오며
고로 놀라운 시기가 지금 우리에게 도래해 있는 것이다. 노아홍수이전보다 더 놀라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성을 거치면서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시며,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항상 대기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 곧 새 영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 안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기를 원한다만, 우리는 에녹보다도, 홍수이전의 노아보다도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시는 한 우리는 회개함으로 모든 것을 돌이킬 수가 있다. 성령께 내 자신을 내어주어, 책망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좇아 죄를 회개하고,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담이 살았던 시대에 있었던 일들 곧 자신의 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도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다 믿음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실재화된다. 왜냐하면 에녹도 노아도 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이제는 육체와 귀신과 하나되어 있는 혼을 따라가지 말고, 성령과 하나된 자신의 영을 따라감으로 귀신과 혼과의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1년 01월 03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