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두 세계에 살고 있다. 보이는 물질적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그것이다. 고로 사람만이 일종의 수륙양용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 영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가? 주님께서는 덕망있고 인격을 갖추었으며 종교심이 강했던 니고데모를 만나 그것에 관한 비밀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주님 말씀에 따르면 그는 영적 세계에 발걸음도 떼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할 때에 영적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리하여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군사가 될 수 있는가? 여기 그 열쇠가 들어 있다.
1. 들어가며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보낸 편지를 통하여 사람을 3가지로 언급했다. 그것은 육에 속한 사람, 혼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고전3:3,2:14). 그중에 육에 속한 사람은 보이는 것만 인정하면서 오직 육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에게서 나오는 것은 시기와 분쟁이고 다툼 뿐이다(고전3:3). 그런데 혼에 속한 사람도 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하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한 그것이 자신의 눈으로 볼 때에는 어리석게 보인다. 또한 영적인 것을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다르다. 그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알고 기뻐하며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나는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니고데모에게 일어난 사건과 결부시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에 속한 사람은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2. 니고데모는 왜 영적으로는 문외한이었는가?
니고데모는 당시 인격과 덕망과 신앙심을 가진 훌륭한 인물이었다. 1절에서 나타난 그의 소개를 살펴보고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가 어떤 인품과 종교심을 가진 인물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유대교의 양대분파인 바리새파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바리새파의 어른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사두개파와 함께 유대종교 최고의결기구인 산헤드린공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에 대하여 함부로 평가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신중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예수님에 대해 더 잘 알아보려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책망을 엄청 들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는 책망만 들어야 했는가? 그는 사실 사회적, 신분적으로, 도덕적, 종교적으로 볼 때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볼 때에는 그는 아직 걸음마도 떼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거듭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3. 예수께서 선언하신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때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런 말씀을 들려주었다. "육으로부터 태어난 채 있는 것은 육이요, 영으로부터 태어나게 된 채 있는 것은 영이다"라고 하셨다. 이 말은 사람이 엄마의 뱃속에서 잉태되어 10달이 지난 후에 출생하게 되는데, 그때 사람은 육으로부터 태어난 채 있기 때문에 육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한 번 더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육의 영역이 아니라 영의 영역에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엄마의 뱃속에서 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영은 작동이 불능한 영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영은 영이라고 불릴 수가 없다. 영의 껍데기만 가지고 있다고 표현해야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엄마의 뱃속에서 10달동안 성장하여 태어나게 되는데, 이 때 태어난 사람은 육에 속한 탄생을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육에서 태어난 후에 영으로부터 다시 한 번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에게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공급되는 것을 가리킨다. 누군가가 자식을 낳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생명이 분리되어 자식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영으로 태어났다고 한다면, 이 사람도 역시 영으로부터 하나님의 생명이 분리되어 그 속에 거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고전15:45에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예수께서 영으로 믿는 이들의 마음(영) 속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육에 속한 사람인지 영에 속한 사람인지 그가 과연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4. 사람은 어떻게 영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의 뱃속에서 태어나게 되면 그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일지언정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영이 그 사람 속에 있기는 있지만 작동하지 않고 있는 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직 그 사람 속에 거듭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령 혹은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동물과 같은 존재이든지 아니면 혼이 잘 작동되는 혼적인 인간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땅에 있을 때에 반드시 거듭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영이 작동을 하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영은 어떻게 작동시킬 수가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영이 거듭나면 되는 것이다. 영이 거듭 태어날 때 영이 작동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5. 사람은 언제 어떻게 해야 자신의 영이 작동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서 자신의 영이 작동되게 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그것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셨다(요3:5). 다시 말해,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야 그 사람은 영이 작동하는 영적인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영이 거듭나지 아니한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영이 죽어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엡2:1). 영이 있기는 있으나 전혀 영이 전혀 활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만약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면 그 사람의 영은 비로소 "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영이 비로소 영의 활동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사실 다음의 2가지 것에 의해서 일어난다. 그것의 하나는 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첫째, "물로" 거듭 태어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 속에 나온다(요3:11).
요3:11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말한다) 우리는 [이미] 아는(알아온 채 있는) 것[들]을 말하고(말한다는 것과) [그리고] [우리가] 본 [채 있는 ] 것[들]을 증언하노라(증언한다는 것을)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도다(않는다는 것을)
그렇다. 그동안 니고데모는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우리"에 해당하는 사람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거듭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우리"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우선 제자들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 즈음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어떤 제자도 영적인 것을 보거나 듣거나 하지 않았으며, 증언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예수님 이전의 시기에 하늘에 속한 비밀을 증언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세례요한"이다. 다시 말해 세례요한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들려준 말씀과 자신이 본 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회개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면서 세례를 준 것이다. 그러므로 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뜻은 세례요한의 사역을 받아들여 회개함으로 자신의 죄를 정결케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로 씻어내듯이 자신의 죄를 자백하여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세례를 줄 때에 사람들이 물 속에 들어갔다가 올라옴으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니고데모는 세례요한의 외침을 듣고 과연 회개한 사람이었을까? 아니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개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거듭날 수도 없었고, 영의 세계로 진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 "성령으로" 거듭 태어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성령이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이기 때문이다. 그럼, 예수께서 사람 속에 주시는 성령이란 대체 어떤 분인가? 그것은 사람 속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으로서, 사람 속에 들어와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해주시는 이이시다. 사실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는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자신이 떠나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보혜사 성령이 그들에게 오실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보혜사 성령이 오셨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은 또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또다른 자신이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마지막 아담인 예수께서 부활 후에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 했다(고전15:45). 고로 성령으로 거듭 태어난다는 말은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생명이 분배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때에 비로소 사람의 영이 작동되는 것이다. 영의 세계로 진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니고데모 역시 보혜사 성령을 받지 못했기에 역시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6. 사람의 영이 작동되는 것을 어떻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3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육으로[부터] [태어]난 [채 있는] 것은 육이요 영으로[부터] [태어]난(나게 된) [채 있는] 것은 영이니(요3:6)" 그렇다. 사람의 육체는 엄마의 뱃속에서 나올 때에 비로소 태어난다. 그렇다면 영은 언제 태어나는가? 그것은 그가 성령을 받을 때다. 왜냐하면 성령받아 거듭 태어나기 전까지는 사람은 영을 가지고 있을 뿐, 영이 활동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비유하자면 이렇다. 누가 나에게 고성능의 비싼 컴퓨터를 선물해 주었다고 치자. 그러면 그것으로 당장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다. 컴퓨터 자체는 기계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선적으로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 컴퓨터에 전기가 들어가야 윙하면서 컴퓨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기가 공급되지 못한 컴퓨터는 아무런 일이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고철덩어리인 것이다. 그러면 전기가 공급되면 이 컴퓨터는 당장 일을 하는가? 그렇다. 그런데 그것은 컴퓨터 안에 내장되어 있는 자료와 정보만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 뿐이다. 최신 자료를 내려받고 올리려면 컴퓨터를 인터넷 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래서 최신 정보와 그 밖의 자료들을 다운로드할 수도 있고, 업로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컴퓨터는 우리의 태어날 때 가지고 온 영과 같다. 그리고 컴퓨터에 전원을 연결한다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우리의 영 안에 생명을 공급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미 컴퓨터 안에 저장된 정보는 이미 기록되어 있는 66권의 성경말씀과 같다. 그리고 인터넷에 연결한다는 것은 회개를 하는 것과 같다. 회개할 때에라야 지금도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지구상의 70%나 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않은 상태에 있다. 컴퓨터를 가지고 있으나 운용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거의 대부분은 인터넷에 자신의 컴퓨터를 연결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회개하지 않아 영의 세계의 풍성한 정보와 능력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7. 사람은 실제적으로 언제 영이 작동하기 시작하는가?
그런데 사람이 실제적으로 언제 전원버튼을 눌러 컴퓨터가 작동되게 할 수 있는가? 그냥 컴퓨터가 전원만 연결해 놓으면 되는가? 아니다. 그렇게 해놓았다고 해서 컴퓨터가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전원버튼을 눌러야 작동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사람이 성령을 받는 마지막 단계를 하나의 예화를 통하여 소개해주셨다. 그것은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놋뱀사건이었다. 그때 출애굽2세대들이 또 다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독이 있는 불뱀을 보내어 그들을 물어죽게 하였다. 그러자 자신들이 잘못했다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불뱀과 똑같은 모양을 한 뱀을 놋으로 만든 후에 그것을 모든 사람이 쳐다보라고 했다. 그러면 나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모세는 모든 사람이 놋뱀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장대 위에 높이 달아놓았다. 그랬더니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라졌다. "미친 놈, 저 놈의 노인네가 나이만 쳐 먹더니 이젠 정신이 돌았군. 아니 독뱀이 물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본다고 살아나겠어? 그렇게 해서 해독이 되겠어?" 그러면서 죽어갔다. 하지만 또 다른 부류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렇게 된다고 믿어야지, 어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빈 말을 하겠어!"라고 하면서 기어서라도 장막 밖으로 나와 놋뱀을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즉시 살아났다. 성경에 보면, "쳐다본즉 살더라"라고 되어 있다. 그때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쌈하셨다.
요3:12-15 [만일] 내가 땅의(땅에 속한) 일을 말하여도(말하였을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아니하는데), 하물며 [만일 내가] 하늘의(하늘에 속한) 일을 말하면(말한다면) 어떻게 [장차] 믿겠느냐?...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들어올렸던) 것 같이 [반드시] 인자도 들려야(들어올려져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다. 그때 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는 것은 최종적인 도구는 바로 그 사람의 믿음이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그대로 되는 줄로 믿고 행동에 옮길 때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법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이지만, 믿음을 가동시켰을 때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성능의 컴퓨터가 윙하고 작동하도록 하는 마지막 관문은 "믿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마지막 스위치는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회개를 하고 믿음을 작동시킬 때에, 누구든지 영의 세계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의지가 그대로 전달되는 세계를 경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8. 나오며
사실 사람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아는 자만이 회개하기 시작하며 구원얻기 위해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붙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회개는 사람이 영이 작동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믿음을 통해 예수님을 자기 안에 모셔들일 때에, 성령께서 우리들 속에 들어오시게 되고 그때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공급되는 것이다. 그때에 우리의 영은 드디어 가동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영에 하나님의 생명이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죄들이 씻겨져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렇지만 보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이성적인 혼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믿음을 통해 영을 작동시켜야 한다. 학자이며 종교생활을 오래 한 자라 할지라도 그가 거듭나지 아니했다면 그는 결코 영적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회개와 믿음이야말로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원리이자 방법으로서 영적인 세계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맛보게 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1월 17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