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구원얻는다고 믿었을까?(1:17~21)

[일시] 2019127(주일) 오전9, 11시 주일낮예배

[찬송] 8장 거룩 거룩 거룩, 411장 아 내 맘 속에, 360장 행군나팔 소리에

PW: 구원, MIW: 이뤄가는

T.S: 구원은 믿음으로 이뤄가는 것이다.

 

1. 서론

1)인사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시며, 예배중에 임재하시어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사복음서를 통해서 우리 인류 구원을 위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그리하여 구원의 근거가 어떻게 마련되었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행전 이후의 기록들 통해서는 실제적으로 복음이 전파되면서 어떤 자가 구원을 받았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 1장부터 12장까지는 어린양의 사도였던 베드로에 의한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고, 13장부터 28장까지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도였던 바울에 의한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바울이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세웠던 교회들에게 쓴 편지 9개와 그리고 주의 종들에게 썼던 편지 4개를 합쳐 도합 13개가 있으니, 우리는 사도바울이 어떠한 말씀을 전하여 복음을 전파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사도들의 입장에서 쓴 편지가 아니라 평신도의 입장에서 쓴 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약성경의 서신서가 거의 대부분이 다 사도들이 쓴 기록이었지만 딱 2개의 서신만큼은 사도가 아닌 자들에 의해 쓰였는데, 그것은 공교롭게도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아마 둘째동생)과 넷째 혹은 다섯째동생이었던 유다에 의해서 쓰여진 책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장로이자 평신도의 대표로서 중직자였다면, 유다는 평신도의 대표도 아니었고, 장로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평신도의 입장에서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고스란히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사도들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에 의해서) 미리 한(말해진 채 있는) (레마)을 기억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복음을 들어야 합니까? 뭐니뭐니해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사도들이 전파했던 바로 그 복음을 들어야 하며, 그들의 신앙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교회들은 바로 이러한 신앙을 이어받은 것일까요?

그래서 오늘은 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과연 어떤 구원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과연 어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아, 올바른 구원론을 다시 한 번 정립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현재 듣고 순종해야 할 복음이 과연 사도들이 전수해준 것인지를 확인해보고 바른 구원론을 정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문제제기

 

1)본문요약 및 의문점 제시

오늘 본문 말씀은 구원을 위해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지 말고 구원얻을 바른 길 위에서 힘써 달려가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여 참된 신앙을 비웃는 자들이 나올 것인데, 그들은 육에 속한 자이며 성령을 가지지 않는 자들로서 영생을 얻지 못할 자들이지만,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따라 자신을 건축하며 기도하며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주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자는 결국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친동생 유다는 왜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을 굳건히 붙들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누구의 가르침을 조심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던 것인가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떤 자들이 육체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라고 알아야 했던 것인가요? 그리고 구원은 어떻게 해야 완결될 수 있다고 알았던 것인가요?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왜 유력한 자들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말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가야 한다고 그렇게 외쳤던 것인가요?

 

2)청중적 접근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이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가 해석한 가르침으로 우리를 지도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A.D.70~80년경 예수님의 친동생 유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에 의해 지키심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유다는 자신이 공동으로 얻었던 구원에 관하여 편지를 보내려고 하던 차에, 여러가지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고 오직 사도들에 의해 단번에 넘겨받은 믿음을 끝까지 보존하여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보내 필요성을 느끼고 편지를 쓰게 됩니다.

 

4)문제발생원인

이때 유다는 성도들에게 2가지를 당부합니다. 첫째, 마지막 때에 나타날 것이라고 알려진 기롱하는 자들이 이미 있는데 그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결코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이미 사도들에게 들었던 믿음을 끝까지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유다는 4가지를 당부합니다. 첫째, 이미 주어진 믿음 위에 자신을 계속 건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서 회개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셋째,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으나 자신을 방탕이나 방종에 내주지 않도록 자신을 보존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영생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여정이 남아있으니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의 긍휼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

 

5)문제 심리묘사

믿음이 없으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니만큼 믿음을 지키기 위해 왜 싸우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주의 종이 들려주신 말씀이라면 다 믿으면 되는 것이지, 그것 중에서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해야 한다는 말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한 번 얻은 구원은 변치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죄를 지어도 결국엔 구원받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해버립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믿음과 자신을 지키는데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방탕과 방종에 사용해버립니다.

믿음이 없으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미 얻은 구원을 완성해가지 않고, 그냥 육체의 본능을 따라 살게 됩니다.

 

 

 

3. 문제해결

1)인간의 헌신

그러므로 유다는 이미 믿음으로 얻은 구원일지라도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니, 한 번 얻은 구원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도록 거짓된 가르침으로부터 자신이 가진 믿음을 지키며 날마다 회개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영생 안으로 들어가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는 믿음으로 사도들이 전해주었고 가르쳤던 순수한 신앙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하나님의 주권(방법, 심정)

 

. 초대교회 때에는 누가 신앙을 흔들려고 했는가?

그렇다면, 초대교회 때에는 누가 교회 성도들의 구원의 신앙을 흔들려고 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은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지도자로 자청하는 자들)로서(4), 당시 영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한 번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영혼이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면 육체는 영혼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죄짓고 살아도 구원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신 은혜를 오히려 방탕한 것으로 바꾸었습니다(4).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힘써 싸워야 한다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무시했습니다(3,21).

1:3-4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공동)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이들은 한 번 구원을 영원한 구원으로 가르쳐, 이미 구원받은 자는 자신의 정욕대로 행하여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영혼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18). 이들은 육체로 저지르는 죄악은 구원에 결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8).

그래서 그들 자신은 마치 이성없는 짐승처럼 본능으로 행하였습니다(10). 간음과 동성애를 행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7).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17). 이들의 죄악상을 말씀으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1:18-19 그들(사도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그러므로 유다는 이들은 육체에 속한 자들이자 성령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19).

 

그러나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한 바디로, 멸망과 어둠 안으로 그리고 불의 형벌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과거에 일어났던 3가지 사건을 가지고 그들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지금 그들이 과거의 3가지 사건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1:5-7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또한 그들은 현재 3가지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그렇습니다. 첫째, 그들은 지금 가인에게 했듯이 그들을 경고했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둘째, 발람선지자처럼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바라고 쾌락을 추구하는 길을 걷고있었습니다. 셋째, 사도들의 가르침을 업신여기며 고라의 반역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들은 위해서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 영원한 불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어떤 자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유다는 어떤 믿음의 소유자가 결국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했습니까? 그것은 오늘 말씀 20~21에 나와 있습니다. 유다는 그것을 4가지로 요약해서 말했습니다(20~21).

첫째,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건축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도들은 다만 믿음을 구원의 기초를 닦아준 것입니다. 이제 그 믿음의 기초 위에 자신 자신의 신앙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가만있는다고 해서 건축물이 지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더 키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건축하라고 한 것입니다.

둘째, 성령 안에서 늘 기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는 성령안에서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라고 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죄를 즉시 회개하라고 한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지켜가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사랑으로 은혜와 긍휼을 받았으면, 주님의 은혜를 방탕이나 방종에 사용하지 말고 자기자신을 세상과 죄로부터 보존해야(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넷째, 다음 시대의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예수님의 긍휼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당시 성도들이 단 번에 넘겨받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은 받았어도 그 구원은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그것의 예는 애굽에서 구출받아 나온 출애굽1세대들이 다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었던 사건입니다), 다음 시대의 생명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 오늘날에는 누가 거짓된 가르침으로 바른 구원관을 흔들고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누가 교회 성도들 가운데 거짓된 가르침으로 바른 구원론은 헤집어놓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때는 영지주의자가 성도들을 미혹했다면, 지금은 한 번 구원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는 성도의 견인교리가 사람들을 미혹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자신은 믿음을 한 번 영혼이 구원을 받았으니, 육체가 혹 죄를 짓었다고 할지라도 구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육체의 쾌락을 즐기며 살아도 죄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가르치면서 죄와 싸우도록 가르치지 않습니다. 나태와 교만함에 빠지게 하고, 구원의 긴장성을 잃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사람이 한 번 구원받았으면 자신의 영혼은 구원받았으므로 어떠한 죄를 지어도 구원에는 지장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혹 죄가 클수록 은혜도 크니만큼 육체의 정욕대로 행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한 번 믿었다는 이유 하나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으며, 육체대로 행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당시 영지주의자들과 오늘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을 비교하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한 특징은 총 6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이미 구원받았으니 반율법적으로 행해도 상관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덕율 폐기론자들입니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둘째, 성령의 책망을 무시하고 회개하거나 회개의 길을 걷지 않습니다(19). 구원은 이미 받아놓았으니 굳이 회개하지 않아도 구원받게 된 줄을 알고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령론이 결여된 자들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어떻게 살아갑니까?

오늘날 대교회의 주의 종들이 돈을 싸놓고 있습니다. 여러 명의 여자들을 건드려 그들의 인생을 망쳐놓고 있으면서도 버젓이 목사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책망하는 주의 종을 싫어하여, 회개하라고 외치는 주의 종의 곁을 떠나버립니다. 회개하라고 외치는 주의 종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회개하지 않는 죄 때문에 귀신이 침범해 들어와, 예수 믿는 자들 중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이상에 걸려있는지 모릅니다. 귀신이 환청을 들려주고, 환상을 보여줍니다. 약을 써야할 지경입니다. 회개만 제대로 했더라면 귀신들의 노예가 되지 않았을텐데, 회개하지 않고 죄를 품고 살아왔으니, 귀신들이 점차 생각속에 침두하고 점차 생활 속에 침투하여 사람을 갖고 장난치는 것입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절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육체가 행한 것은 죄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5~7,11). 오늘날 성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이미 예수님을 믿었으면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믿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관복음서를 보십시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심판은 행위로 받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았어도 행위로 심판받을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행함의 열매로 마지막 심판 때에 판단하신다고 했습니다. 유다서는 한 마디로 심판을 경고하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다가 멸망으로 치달았던 과거의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출애굽1세대들의 비참한 죽음과 타락한 천사들의 쫓겨남, 소돔과 고모라 및 아드마와 스보임의 불의 멸망 등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넷째,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를 방종과 범죄의 출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16~18). 이미 구원받은 자라도 구원받은 자로서 율법의 도덕법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방종과 범죄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자신의 특권적인 지위와 교리를 이용하여 참된 신앙을 가진 자들을 훼방하고 핍박하고 있습입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지금의 교회현실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기보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자기들이 믿는 신학과 교리에 따라 사람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이미 자기들에게 교권이 주어져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판단기준은 성경의 가르침이어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사도들의 가르침이어야 합니다. 어거스틴이나 토마스아퀴나스의 신학을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칼빈이나 요한웨슬리의 가르침을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으로 사용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의 가르침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교단의 교리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하면서 사람을 핍박하고 이단으로 정죄합니다.

15531027일 오전 11의 일입니다. 다 떨어진 넝마조각을 걸치고 쇠사슬에 묶인 채 죄수 하나스위스 제네바 시의 샹펠 광장으로 끌려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광장에 모여들자, 재판관은 준비해 온 판결문을 큰소리로 읽었습니다.

우리는 그대에게 다음 판결을 내린다. 쇠사슬로 묶어 샹펠 광장으로 끌고 가 산 채로 화형에 처한다. 그와 더불어 그대의 몸이 재가 될 때까지 그대가 쓴 책의 원본과 인쇄된 책도 함께 불태운다.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는 본보기를 남기도록, 그대는 이렇게 삶의 시간을 끝내야 한다.”

쇠사슬에 묶여 끌려나온 이는 의사이자 법률가이며 신학자였던 미카엘 세르베투스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사형대에 세워 죽이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종교개혁자 존 칼빈(Jean Calvin)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의 내면의 자유는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심판할 수 없는 고귀한 권리라고 주장하며 카톨릭의 종교재판을 비난해왔던 칼빈이었지만, 자신이 제네바 시에서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스스로 전형적인 독재자가 되어, 5년동안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추방하고 처형하여 죽였으니, 목을 잘라서 죽인 자가 10이요, 목 메달아 죽인 자가 13이며, 세르베투스처럼 불에 태워 죽인 자가 35입니다. 그는 60개월 통치기간 동안 무려 58명이나 처형했으니 달마다 한 명씩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극단적인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의 예정론이 잘못 되었다고 주장한 알미니우스를 지지했던 46명의 목회자들을 전부 감옥에 가둔 채 1618년 도르트 회의를 진행했으니, 자기들 뜻대로 알미니우스의 주장은 이단이라고 결론내렸고, 알미니우스의 대표자였던 올덴바르네벨트를 감옥에 꺼내 처형했으며, 200명의 알미니안 목사들을 성직에서 추방하였고, 칼빈주의 5대교리를 정통교리로 확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교리를 믿고 따르지 않으는다고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알미니우스는 무엇을 증거했습니까? “첫째, 성경에는 개인구원예정이 안 나온다. 둘째, 하나님은 회개하고 나오는 모든 자들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하셨다. 셋째, 그리스도의 은혜와 공로는 참고 견디는 자에게 주어진다. 넷째, 하나님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다 주어진다. 다섯째,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믿음의 행위는 결국 인간이 한다. 여섯째, 하나님은 신적 예지에 의해서 예정하신다.” 하지만 오늘날 살펴보면, 여섯째 항목을 제외하고는 전부 그가 성경적으로 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청중의 문제와 해결

 

 

 

4. 영적 법칙

구원이란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방종에 자신을 내어 맡기지 않고 날마다 지은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설 날을 대비하여 지금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5. 복과 결단

1)

. 헌신자가 받는 복

유다는 평신도의 입장에서 어떤 자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가진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두렵고 떨림으로 영생에 이르도록 자신의 구원을 완성하는 자입니다.

 

. 청중의 더 큰 복

 

2)결단

오늘날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순간적으로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내포하는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살아내기까지는 평생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평신도였던 유다의 가르침처럼 오늘날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4가지의 가르침이 꼭 필요합니다.

첫째,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날마다 건축해야 합니다. 믿음에 따른 순종의 삶을 같이 병행하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 안에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회개를 촉구할 때에 즉시 회개하여 죄를 더 이상 짓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은혜로 받았지만 자신이 방탕과 방종으로 가지 않도록 자신을 늘 지켜야 합니다.

넷째, 이미 구원을 구원받았어도 아직은 영생((다음 시대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니 심판자로서 다시 오실 주님의 긍휼을 바라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합니다.

 

. 결단의 필요성과 방법

 

. 결단의 축복

1: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바로 그러한 자가 죽을 때에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구원을 향해 가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주시며, 그분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장자의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영지주의의 거짓된 가르침에 주의해야 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오늘날에는 한 번 영원한 구원이며, 구원은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하는 성도의 견인교리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단 번에 가진 믿음이라고 그것 위에 자신을 튼튼히 건축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령의 책망을 받을 때에는 언제든지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결코 자신을 방탕과 방종에 방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영생에 이르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이단적 가르침에 속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거룩한 믿음 위에 나를 건축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기도하며 회개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속이고 있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비성경적인 교리로 미혹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거짓된 가르침에 주의할지어다. 바른 구원론을 붙들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구원론은 결코 사도들의 가르침이 아니었구나.

2. 주의 종이 말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짓된 가르침은 분별해야 하는구나.

3. 초대교회 때에는 영지주의 이단이 활개를 쳤구나.

4. 지금의 시대는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이 활개치고 있구나.

5.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총은 방탕과 방종에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구나.

6. 두렵고 떨림으로 영생을 기다리며 준비해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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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보혜사 성령은 왜 아들을 증언하시는가?(요15:18~27)_2019-03-03(설교전문) 갈렙 2019.03.03 287
218 누가 진정 탕자인가?(눅15:25~32)_2019-02-24(설교전문) 갈렙 2019.02.24 330
217 탕자의 회개는 이전의 회개와 무엇이 다른가(눅15:11~24)_2019-02-17 갈렙 2019.02.17 271
216 여인은 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그토록 찾으려 했을까(눅15:8~10)_2019-02-10 갈렙 2019.02.10 697
215 하나님은 과연 누구에게 사랑을 베푸시는가?(눅15:1~7)_2019-02-03 갈렙 2019.02.03 299
»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구원얻는다고 믿었을까?(유1:17~21)_2019-01-27(주일) 갈렙 2019.01.27 265
213 왜 우리는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가?(계21:8,27,22:15)_2019-01-20 갈렙 2019.01.20 263
212 누가 영생을 얻어 천국까지 들어가는가?(요10:27~29)_2019-01-13 file 갈렙 2019.01.13 359
211 빈익빈 부익부는 달란트 뿐인가?(마13:10~13)_2019-01-06 갈렙 2019.01.06 266
210 그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마25:29~30)_2018-12-30 갈렙 2018.12.30 261
209 하늘에서 온 표적(눅2:8~14)_2018-12-25(성탄절설교) 갈렙 2018.12.25 271
208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려면(마1:18~25)_2018-12-23 갈렙 2018.12.23 255
207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기다리시는가?(눅1:26~38)_2018-12-16 갈렙 2018.12.16 373
206 이 시대에 누가 진정 복있는 자인가?(눅1:39~45)_2018-12-09(설교전문) 갈렙 2018.12.09 272
205 받은 은혜와 받을 은혜(눅1:26~38)_2018-12-02(설교전문) 갈렙 2018.12.09 302
204 우리에게는 왜 기적이 없는가?(눅1:5~17)_2018-11-25 갈렙 2018.11.25 284
203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고후5:14~15)_2018-11-18(설교전문) 갈렙 2018.11.18 384
202 우리는 어떻게 되어서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는가?(민3:11~12)_2018-11-11 갈렙 2018.11.11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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