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전파는 어떻게 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복음전파시 효과적인 전도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또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힘입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특히 병든 자를 치유할 때에는 어떻게 행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오늘 사도행전 9장 후반부에 있는 베드로행전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복음전파는 어떻게 하게 되는 것일까?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어디든 가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복음을 전파하겠다고 작정하고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면 되는 것일까?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복음전파 과정을 통해 복음전파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우리가 어떻게 할 때에 복음전파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행9:32~33).
이때 베드로는 나가서 흩어진 성도들이 있는 곳으로 두루 다니며 살펴보았다. 그렇다. 어찌되었든 집안에 가만히 있어서는 복음전파하기가 어렵다. 사실 사탄에 붙들려 있는 자들이 스스로 복음을 듣기 위해 교회에 찾아나오리가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셨고,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지 않았던가?(마28:19, 막16:15, 행1:8). 그래서 베드로는 두루 다녔다. 그러다보니 팔레스틴 서부 해안가 어느 지역인 '룻다'라 하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거기에서 한 명의 중풍병자를 본다. 그는 그냥 어떤 중풍병자가 있는가보다 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 앞에 있는 중풍병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도 구원받아야할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그로부터 중풍병을 치유하고 나니, 베드로는 자신이 왜 중풍병자를 치료하게 되었는지, 그 중풍병자가 왜 중한 병에서 8년만에 낫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먼저 그의 이름이 '애니아'였다. 범상치 않은 이름이다. 그 이름의 뜻이 '찬양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중풍병에 걸려 침상에 누워 지낸지도 벌써 8년째였다. 그리고 그를 치유할 때에, 성령으로 베드로의 입에서 예언적인 선포가 나왔다는 것을 아는가?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지금) 치료하신다. 그러니 너는 일어나라. 그리고 너는 네 자신을 펼쳐라(행9:34)"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네 자신을 펼쳐라"라는 말씀이다. 그는 해야 할 사명이 일찍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왜 그날 베드로를 만나 중풍병에서 치유받았는지는 그 다음 구절에 나온다. "(그가)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행9:35)" 그는 누군가에서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는 부자였던 자였다. 중풍병으로 쓰러지려면 의학적으로 볼 때에 쇠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던 집안이지 아니면 아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많은 물질을 가지고서 그는 오직 자기의 배만 채우는데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널리 자랑하고 다녔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싫어했고 그가 중풍병에 쓰러저 침상에 누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래, 혼자만 잘 먹고 지내더니 잘 됐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는 사실 평판이 좋지 않았던 사람인듯 싶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드높이며 찬양하며 살아야 할 사명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선행과 구제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오직 자기의 배만을 위해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이제는 다른 인생을 살라 하신 것이다. 그가 예수의 이름으로 고침받기 전까지는 자기자신만을 위해 살았으나 이제는 주 예수님을 찬양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가 몸져 누워 있었을 때를 한 번 상상해보라. 날마다 빨리 죽고 싶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부활의 숫자인 8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시켜 그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다.
그러자 그는 즉시 일어났고 자기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펼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재산을 선행과 구제에 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오직 주 예수님을 자랑하며 다녔다. 그는 자기가 살던 룻다지역을 떠나 심지어 북쪽지역에 위치한 사론평야지역까지 다니며 그 소식을 전했다. 그때 과거에 그 사람에 대해 알던 자들이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는 주께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왜 베드로가 애니아를 중풍병에서 낫게 하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다.
우리는 베드로의 해안가 전도행전을 통해서 병든 사람을 어떻게 치유하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는 데에는 단 2가지 방법만을 사용하셨음을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접촉의 방법인데, 대부분 손으로 접촉하셨다. 병자의 머리나 환부에 안수하시고(막6:5, 눅13:12), 또한 침을 뱉어 흙에 이겨 손으로 바르기도 하셨다(요9:6~7, 막7:34, 막8:23). 또 하나는 명령하는 방법인데, 딱 3가지 방법이 사용되었다. 하나는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명령이셨고(막3:5), 또 하나는 간절히 바라는 자의 소원을 축복하시는 명령이었으며, 끝으로는 질병자체를 꾸짖으시는 명령의 방법을 사용하셨셨다(눅4:39). 이러한 방법은 사도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런데 간절히 바라는 자의 소원을 축복하심으로 명령하실 때에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명령하셨는데(마9:29, 8:3), 이때에는 본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인의 소원이 강할 때에는 주님께서는 그 주변인의 믿음으로써 병든 자를 치유해 주셨다(마8:13, 마9:6, 막5:41).
이것을 베드로의 '애니아'의 치유사건에 연결시켜 보자. 이때 베드로가 사용한 치유방법은 명령의 방법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명령으로 치유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경우에 주의 종들의 일방적인 선포로 병을 치유하는 것일까? 이런 경우는 대부분 그 자리에 모인 무리들로도 하여금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구원자가 되심과 또한 천국복음을 전파하실 때에, 보이지 않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할 때가 대부분이다. 즉 복음전파의 초기에는 주의 종으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선포케함으로 병든 자를 치유케 하셨던 것이다. 예르를 들어, 회당에 한 쪽 손마른 자를 주님께서는 일방적으로 "네 손을 내밀라(막3:5)"하심으로 치료하셨다.
또한 베드로는 욥바의 형제들의 요청을 받고 룻다에서 16~18Km 떨어진 욥바라는 항구도시를 방문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미 죽어서 씻겨져 다락에 눕혀놓은 어느 여제자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때 베드로를 부르러 갔던 자들의 믿음이 놀라웠다. 당연히 죽던 날 시체를 매장해야 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다락에 누여놓고는 주의 종 베드로를 불러왔던 것이다. 그들은 베드로를 통해 그 여인이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그것은 죽은 다비다가 여러 과부들을 얼마나 잘 섬기고 보살폈는지 주변 과부들의 간증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주변인의 간절한 소원이 베드로에게 전달되어 베드로로 하여금 기적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그렇다. 성도들이여, 믿음이 있으면 중풍병자도 일어날 수 있고, 죽은 자도 살아날 수 있다. 굳이 자기자신의 믿음이 아니어도 좋다. 그 주변인들의 믿음이 절대적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동일하게 역사하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분명히 죽어 있는 상태였지만 주변 과부들의 간절한 소원에 따라 그녀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믿음은 사용할수록 커지는 것 같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라. 먼저는 중풍병를 고쳤지만 이어 죽은 자도 살려내었다. 작은 것에라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라. 그리고 믿음으로 반응해보라. 그리고 복음전파의 목적을 가지고 명령해보라. 그러면 당신도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