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02) 왜 회개해야 하는가?(02) 한 번 회개로 지은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없으니까(히10:9~14)_2020-11-25(수)
1. 한 번 회개하면 지은 죄를 한꺼번에 다 용서받을 수 있나요?
한 번 회개해서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아마도 모든 인류가 다 구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진실로 회개했으면 굳이 더 회개하지 않아도 자신의 죄는 다 용서받는다고 믿고 있는 성도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럼, 그는 왜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단 번의 제사로 영원히 성도들을 온전케 하신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속죄제사는 성도들을 영원히 온전케 한 것인가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완전한 희생제사를 자기의 완전함으로 생각하여, 예수께서 단 번에 희생제물로 드려지심을 자기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즉 자기는 예수님의 속죄제사의 공로로 용서를 받게 된 것이니, 더이상 무슨 제물이 필요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자기도 죄도 그때 다 용서받은 줄로 앏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속죄의 완전성을 자기에게 잘못 적용한 사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속죄를 드린 희생제물은 완전합니다.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요, 더이상 속죄제물이 필요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이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이셨지기에, 그분이 흘리신 피는 분명 사람의 피였지만 동시에 그분은 하나님의 피이기도 하기에(행20:28), 그분의 피의 효능은 끊임없이 지속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렸던 속죄제사는 한 번의 속죄제사에 한 마리의 속죄제물만이 효력이 있었던 것처럼, 한 번 드려진 속죄제물이 계속해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누군가 또다시 죄를 지으면 또다른 희생제물을 필요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므로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한 번이지만 영원히 효력이 있습니다(히7:24~25). 그러므로 그분은 단 번의 제사로 모든 사람을 영원히 온전케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은 다릅니다. 비록 그분의 속죄는 완전한 것이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고 귀신들의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그날까지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죄와 싸워야하고 마귀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다시 회개를 통해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 자신의 죄를 씻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14절(원문)의 말씀처럼, 그분의 제사는 한 번의 제사로 계속적인 것 안으로 완전하게 된 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거룩하게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한 번 만 자백해도 된다고 했나요?
요한 사도는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 과연 어떻게 해야 죄용서를 받고 깨끗하게 되는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더우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요일1:9)"(표준새번역). 그렇다면 우리가 한 번만 자백하면 내가 지은 모든 죄가 다 용서되는 것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요일1:9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한다면" "그분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이다"고 말이죠.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의 골고다의 희생사건 자체가 우리의 죄를 자동적으로 용서해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자신이 지은 죄를 비로소 자백할 때에라야 그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해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 본문을 헬라어로 살펴보면 그것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는 "자백하면"이라는 동사가 동사, 가정법, 현제, 능동태구문이기 때문입니다. 헬라어에서 가정법은 현재가정법과 과거가정법이 있습니다. 현재가정법은 반복적 계속적인 경우에 사용되고, 과거가정법은 단번에 혹은 단호하게 하는 경우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이라는 말을 헬라어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계속해서 자백하고 있으면"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백은 한 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4. 자기가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는 마음으로 해도 되나요?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는 마음으로 해도 되는 것인가요? 결론은 "아니올시다"입니다. "자백하다"라는 단어 자체도 말을 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백하다(시인하다)"는 단어는 "호모로게오"라는 동사인데, 여기서 "호모"는 "같은, 동일한"이라는 뜻이고, "로게오"라는 동사는 "말하다"는 뜻입니다. 고로 "호모로게오"라는 동사는 자신이 지었던 죄를 다시 말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생각이었든지 말이었든지 행동이었든지 지은 죄를 자백하여 용서받기를 원할 때에는 반드시 말로 시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기도문을 눈으로만 읽는 것은 자백이라고 할 수 없으며, 누군가 녹음해놓은 것을 듣는 것도 자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자신의 입술로 소리내어 말해야 시인(자백)이 되는 것입니다.
5. 지은 죄의 숫자가 너무나 많은데, 꼭 지은 죄의 숫자만큼 회개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야 정상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는 자백한 것만이 용서된다고 나와있기 때문입니다(요일1:9). 예를 하나 들어서, "음란의 죄"를 회개할 때에는 몇 번이나 자백해야 할까요? 아마도 나이가 많을수록 더 많이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몇 번이나 자백해야 할까요? 아마 그것은 수백 수천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7년 이상 회개임상실험을 하여 죄가 어떻게 용서되었는지를 조사해했던 바에 따르면, 사람이 지은 죄는 최소한 160번 이상은 해야 용서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네 번씩 회개한다면 40일을 꼬박 쉬지 않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적어도 360번 이상을 회개해야 어느정도 회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죄의 양상도 다르고, 숫자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몇 번이나 회개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딱히 정해진 답안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수 백 번을 회개했을 때에 더이상 자신이 지은 죄가 거리낌없이 느껴진다면 그때는 회개가 어느 정도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까지 회개해야 하는지를 "성령께서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굳이 그것을 확인하려면, 회개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자신의 저주(가난, 질병, 무지) 등이 다 떠나갈 때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할 때에는 조상들이 물려준 세력들(귀신들, 뱀들)이 내 몸에서 다 떠나갈 때까지 우리는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따르면, 진실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 위해 가슴을 치기를 그치지 않았던 세리가 의롭다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다고 하니, 꼭 죄를 지은 숫자만큼 반드시 해야 하는 것같지 않습니다. 회개의 숫자에도 하나님의 긍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내가 지은 죄의 숫자만큼 죄를 시인하고 자백한다고 각오로 일평생 회개를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0년 11월 25일(수)
정병진목사
1. 한 번 회개하면 지은 죄를 한꺼번에 다 용서받을 수 있나요?
한 번 회개해서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아마도 모든 믿는 자가 다 구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 진실로 회개했으면 굳이 더 회개하지 않아도 자신의 죄는 다 용서받는다고 믿고 있는 성도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럼, 그들은 왜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단번의 제사로 영원히 성도들을 온전케 하신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속죄제사는 성도들을 영원히 온전케 한 것인가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완전한 희생제사를 자기의 완전함으로 생각하여, 예수께서 단번에 희생제물로 드려지심을 자기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는 예수님의 속죄제사의 공로로 용서를 받게 된 것이니, 더 이상 무슨 제물이 필요 있겠는가 생각하면서 자기의 죄도 그때 다 용서받은 줄로 앎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속죄의 완전성을 자기에게 잘못 적용한 사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속죄를 위해 드린 희생제물은 완전합니다.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요, 더 이상 속죄제물이 필요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이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이셨기에, 그분이 흘리신 피는 분명 사람의 피였지만 동시에 그 피는 하나님의 피이기에(행20:28), 그분의 피의 효능은 끊임없이 지속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렸던 속죄제사는 한 번의 속죄제사에 한 마리의 속죄제물만이 효력이 있었던 것처럼, 한 번 드려진 속죄제물이 계속해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누군가 또다시 죄를 지으면 또 다른 희생제물을 필요로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이므로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한 번이지만 영원히 효력이 있습니다(히7:24~25). 그러므로 그분은 단번의 제사로 모든 사람을 영원히 온전케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은 다릅니다. 비록 그분의 속죄는 완전한 것이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고 귀신들의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그날까지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죄와 싸워야 하고 마귀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다시 회개를 통해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 자신의 죄를 씻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14절(원문)의 말씀처럼, 그분의 제사는 한 번의 제사로 계속적인 것 안으로 완전하게 된 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거룩하게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한 번만 자백해도 된다고 했나요?
요한 사도는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 과연 어떻게 해야 죄용서를 받고 깨끗하게 되는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더우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요일1:9)"(표준새번역). 그렇다면 우리가 한 번만 자백하면 내가 지은 모든 죄가 다 용서되는 것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요일1:9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한다면" "그분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이죠.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의 골고다의 희생 사건 자체가 우리의 죄를 자동적으로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이 지은 죄를 비로소 자백할 때에라야 그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 본문을 헬라어로 살펴보면 그것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는 "자백하면"이라는 동사가 동사, 가정법, 현재, 능동태 구문이기 때문입니다. 헬라어에서 가정법은 현재 가정법과 과거 가정법이 있습니다. 현재 가정법은 반복적으로 계속적인 경우에 사용되고, 과거 가정법은 단번에 혹은 단호하게 하는 경우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이라는 말을 헬라어 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계속해서 자백하고 있으면"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백은 한 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4. 자기가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는 마음으로 해도 되나요?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는 마음으로 해도 되는 것인가요? 결론은 "아니올시다"입니다. "자백하다"라는 단어 자체도 말을 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백하다(시인하다)"라는 단어는 "호모로게오"라는 동사인데, 여기서 "호모"는 "같은, 동일한"이라는 뜻이고, "로게오"라는 동사는 "말하다"는 뜻입니다. 고로 "호모로게오"라는 동사는 자신이 지었던 죄를 다시 말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생각이었든지 말이었든지 행동이었든지 지은 죄를 자백하여 용서받기를 원할 때에는 반드시 말로 시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기도문을 눈으로만 읽는 것은 자백이라고 할 수 없으며, 누군가 녹음해 놓은 것을 듣는 것만으로 자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자신의 입술로 소리내어 말해야 시인(자백)이 되는 것입니다.
5. 지은 죄의 숫자가 너무나 많은데, 꼭 지은 죄의 숫자만큼 회개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야 정상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자백한 것만이 용서된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요일1:9). 예를 하나 들어서, "음란의 죄"를 회개할 때에는 몇 번이나 자백해야 할까요? 아마도 나이가 많을수록 더 많이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몇 번이나 자백해야 할까요? 아마 그것은 수백 수천 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7년 이상 회개 임상실험을 하여 죄가 어떻게 용서되었는지를 조사했던 바에 따르면, 사람이 지은 죄는 최소한 160번 이상은 해야 용서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네 번씩 회개한다면 40일을 꼬박 쉬지 않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적어도 360번 이상을 회개해야 어느 정도 회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죄의 양상도 다르고, 숫자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몇 번이나 회개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딱히 정해진 답안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수백 번을 회개했을 때에 더이상 자신이 지은 죄가 거리낌없이 느껴진다면 그때는 회개가 어느 정도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까지 회개해야 하는지를 "성령께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굳이 그것을 확인하려면, 회개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자신의 저주(가난, 질병, 무지) 등이 다 떠나갈 때까지 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할 때에는 조상들이 물려준 세력들(귀신들, 뱀들)이 내 몸에서 다 떠나갈 때까지 우리는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따르면, 진실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 위해 가슴을 치기를 그치지 않았던 세리가 의롭다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다고 하니, 죄를 지은 숫자만큼 회개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회개의 숫자에도 하나님의 긍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내가 지은 죄의 숫자만큼 죄를 시인하고 자백한다는 각오로 일평생 회개를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0년 11월 25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