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지 133년이 지났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올 때만 해도 마을마다 단골무당집들이 있었다. 그러니 해마다 운세를 보고 점을 치고 굿을 하는 것은 일상화된 삶이었다. 하지만 그결과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패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기 위해 들어올 무렵 동시에 미국에서 선교사들도 들어왔다. 이 나라를 살리려고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믿는 이들은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국민의례라는 의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70년동안 처절한 아픔을 겪어야 했다. 북한성도들이 당한 아픔과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아직도 시체를 가까이 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죽은 자를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에스겔43장을 보라. 여기에는 우상숭배와 시체를 가까이 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가 고스란히 나온다. 추도예배, 장례예배, 그냥 이것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그리고 덧붙혀 개척교회들이 상가에 포진해 있는 것도 많이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1. 들어가며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왕에게 잡혀간 뒤 20년이 지난 B.C.573년, 에스겔선지자는 새로 회복될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겔40~48장).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어 남유다가 멸망당한지 14년이 되는 해 1월 10일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있는 에스겔을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 성전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것은 회복되어진 성전이었다. 그때 에스겔은 동쪽으로 나있는 문을 통과하여 성전 안뜰로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다시는 과거의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성전이 파괴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남유다의 멸망을 자초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런데 남유다의 멸망이유가 성전이 더럽혀진 것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의 성전(솔로몬의 성전)의 파괴됨을 허락하셨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교회가 어떻게 되어야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지를 나누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성전에 관하여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
에스겔은 환상 중에 예루살렘 성전을 보게 된다. 동쪽에 난 성전 문, 바깥뜰, 북쪽에 난 문, 안뜰에 있는 남쪽문과 동쪽문과 북쪽문, 안뜰 북쪽문의 부속건물들, 성전문의 현관, 성소와 지성소 그리고 골방들과 제사장의 방 그리고 성전과 성전을 벽 하나 사이에 둔 왕이 살았던 궁궐을 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왕과 왕의 궁궐이 얼마나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렵혔는지를 설명해주면서, 하나님의 성전 주변은 반드시 거룩해져야(구별되고 깨끗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성전의 법이라는 것이다(겔43:12).
3. 남유다가 멸당할 수밖에 없었던 3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남유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더렵혀진 성전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유다의 멸망의 원인을 남유다 백성들의 계속된 악행과 불의, 우상숭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에스겔에게 보여준 것은 우상숭배는 우상숭배이긴 하지만 누가 우상을 숭배한 것이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게 했는지를 알려주며, 특히 하나님께서 성전 가까이에 절대 두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왕의 죽은 시체를 성전 가까이 매장하는 것이었다고 말해주신다.
다시 말해 남유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3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가르쳐주신다(겔43:7). 그것은 첫째, 이스라엘 족속 곧 남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기 때문이라고 하셨고, 둘째, 남유다의 왕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셋째, 남유다의 왕들의 죽은 시체들을 성전 가까이에 둔 것이 그 이유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이든지 왕이든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가증한 일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의 대표는 2가지 정도다. 하나는 육적인 음행이요 또 하나는 영적인 음행인 우상숭배행위다. 특히 육적인 음행은 그냥 단순한 음행이 아니라 근친상간, 수간, 동성애 등의 혐오수러운 음행을 가리키며, 영적인 음행으로서 이방인의 우상들을 숭배한 것이 남유다멸망의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것이다.
우상숭배행위는 사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거부하는 행위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오직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신 것을 거부하는 행위가 바로 우상숭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십계명 중에서 1~2계명을 어기는 것에 해당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지옥으로 던져넣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매우 중하게 보시는 것이다.
특히 남유다의 우상숭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남유다의 왕들이었다. 그리고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숭배했던 남유다의 왕들이 죽었을 때, 백성들은 그들의 시체를 멀리 치우지 아니하고 성전과 벽 하나 사이에 두고 거기에 매장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첫째는 그러한 일들이 매우 가증한 일에 해당되며, 시체는 부정한 것이어서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유다백성들은 이런 것들을 하나님 곁에 두었다. 둘째는 특히 왕들의 시체를 성전 벽 하나 사이에 두고 거기에 매장함으로서 하나님과 이 세상의 왕들을 비슷한 위치에 놓이게 했다는 것이다. 사실 율법에 의하면 시체 자체만으로도 부정한 것이기에 사람이 죽었으면 얼른 밖으로 내어다가 빨리 매장해야 했다. 그런데, 왕이 죽었을 때 그의 시체를 성전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 벽 하나 사이를 두고 매장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것 때문에 진노하셨는지 모른다. 왜 하나님께서는 시체를 자기곁에 두는 것을 싫어하실까?
우리는 시체를 가까이 두는 것을 우습게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바로 사탄마귀가 자기의 것이라고 접수하게 되기 때문이다(창2:14). 더러운마귀가 하나님 뽀짝 곁에서 시체를 접수하고 진을 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언짢아 하셨겠는가? 특히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장들은 자신의 가족이 죽지 않는 한 절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명하셨다(겔44:25, 레21:1~3). 시체 속에 귀신이 들어가기 때문에 시체와 가까이 하는 것은 사탄마귀와 친숙해지는 결과를 낳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자기의 가족이 아니한 시체로 인하여 자신의 몸을 더렵혀서는 아니 되었다. 계속해서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거룩한 일들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만약 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가까이 하게 되어버렸다면, 그는 일주일동안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했다. 그런 다음에도 몸을 씻고 제사를 드리고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남유다 백성들과 왕들의 행태는 어떠했는가?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분노를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첫째는 백성이 가증한 일을 계속해서 저질렀기 때문이요, 둘째는 남유다의 왕들이 우상숭배를 버젓이 행했기 때문이요, 셋째는 자기들이 죽어서는 성전 가까이에 묻혔기 때문이다.
4. 오늘날에 교회도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죽은 시체를 하나님의 거룩한 장소나 거룩한 사람 곁에 두어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이다. 시체는 이미 사탄마귀가 접수해 버린 물건과 같기에, 그것을 앞에 두고 향불을 피운다든지, 음식을 만들어 바친다든지, 그것에게 절한다든지, 그것 앞에서 통곡을 한다든지, 그것 앞에다가 꽃을 바친다거나 그 앞에서 묵념을 드리는 것은 우상숭배행위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탄을 경배하는 행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앞에 놓거나 마음에 생각하고 드리는 그 어떤 예배도 결코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장례예배나 추도예배를 굳이 드리겠다면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때 누가 와서 그 경배를 받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때는 사탄이 보낸 귀신들이 와서 그 경배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코 하나님이 오셔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사탄을 비롯한 귀신들은 천국에 있을 때부터 경배받기를 얼마나 원했던 자들이었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경배드리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즉시 그 자리에 귀신들이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귀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귀신들은 타락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들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범죄할 때 더럽혀졌고, 하늘에서 쫓겨날 저주를 받았다. 그러므로 귀신들이 우리의 몸 혹은 삶 속에 치고 들어오게 될 때에 우리에게서 어떤 저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럴 때면, 질병과 가난에 빠지게 되며, 죽음과 무엇인가를 빼앗기는 아픔을 고스란히 당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의 처소인 교회 안에서 절대 장례예배나 추도예배를 드리지 말라. 그것은 저주받을 일을 스스로 사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상황을 보라. 장로님이나 목회자가 죽게 되었을 때, 그들의 시체를 교회 안에까지 들려다놓고 예배드리지 아니하는가? 큰 일이다. 저주를 대놓고 불러들어오는 일을 교회가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성전 주변(가까이)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는 말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 가까이에 더러운 것이나 부정한 것을 두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말씀을 영적으로 풀이해본다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먼저, 사도바울을 통해 성전과 교회의 관계를 잠깐 살펴보자. 사도바울은 다메섹도상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성전)가 교회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전3:16~17). 하나님을 모시는 집이 성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당신의 영인 보혜사 성령을 믿는 성도들 가운데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은 누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어 거듭나게 되면, 성령이 그 사람 안에 들어오게 되므로 그 사람도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믿는 성도들이 밖으로 나가서 더러운 행위나 부정한 행위를 계속해서 저지르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가 되고 만다. 대표적인 하나의 예를 보자. 예수님을 믿는 자가 계속해서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그는 지금 우상숭배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교회 밖으로 나가 후에 세상사람처럼 똑같이 죄짓고 욕심부리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이기적인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면, 그는 결국 자신의 성전을 더럽히는 결과를 낳고 만다. 그러면 그는 죽을 때에 결국 버림을 당하고 말 것이다(히6:4~8).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계속해서 더럽혀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서 예배처소를 떠나서 밖에 나가더라도 항상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밖에 나가더라고 우상숭배나 악행을 결코 저질러서는 결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들 때문에 이미 구원받은 자라도 죽을 때에 버림을 받아 구원에서 탈락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남유다백성들의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우상숭배행위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라고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반드시 죄값을 치르게 하신다. 결국 남유다는 우상숭배의 죄값을 70년동안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시체를 성전 가까이 두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는 일들이다.
이제 하나의 큰 예를 보자. 북한의 경우를 보자. 북한은 1938년 신사참배를 통해 우상숭배를 교회 안으로 들여왔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처참한 교회의 파괴였다. 그래서 그들은 우상숭배의 죄값을 70년동안 치러야 했다. 그런데 남한은 어떠한가? 아직도 시체를 교회 안으로 들여다놓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시는 예배(추도예배, 장례예배)를 드리고 있다. 큰 일이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개척교회들의 경우 대부분 상가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가는 크게 확대해서 표현한다면 돈신을 섬기는 자들의 공간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것이 결코 바람직한 경우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 할수만 있으면 거룩한 땅을 준비하고 거기에 교회의 건축물도 세우고 주변을 거룩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오늘 우리는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우상숭배와 시체를 성전가까이 두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분노를 가져오는지를 배웠다. 우상숭배와 시체, 정말 우리가 더욱 더 생각해보지 아니할 수 없는 주제들이다.
2018년 5월 11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