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이들은 구원의 예표로서 요나의 경우를 든다. 요나가 바다에 빠졌는데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어찌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나왔겠느냐면서,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에 따라 구원받은 것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러한 예가 과연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예표로서 합당한 것인가? 여러분은 사람이 구원얻는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루터의 경우처럼 "오직 믿음"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칼빈의 경우처럼 "만세전 예정"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런데 요나서에 나오는 요나와 니느웨백성의 구원은 이 두 가지 구원론이 잘못되었거나 부족한 것임을 여실히 들려준다. 왜 그런가? 우리는 요나서 1~4장을 통해서, 요나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가졌으나,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믿음은 가졌으나 회개하지 못해 만약 그때 죽었다면 아마 지옥에 떨어졌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을까?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요나가 만세전예정에 따른 구원자인지 아닌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자.
1. 들어가며
칼빈주의자들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 요나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중요한 예화로 들어 이야기한다. 사실은 요나도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회개하여 결국 구원을 받기는 했지만, 칼빈주의자들은 그것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요나서 2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전적인 은혜만을 이야기한다. 즉 요나가 바다에 빠졌는데 그가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보내어 그를 건져내어 주신 것은 요나가 받은 구원이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즉 바다 가운에서 요나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으로 베푸신 은혜를 힘입는 길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해석은 맞는 해석인가? 그리고 이러한 해석과 적용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만세전의 예정에 따른 것이라는데, 과연 진짜 그러한 것인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요나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을까?
요나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을까? 요나가 되었든지 니느웨백성이 되었든지 이 세상 사람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전부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회개로 구원을 얻게 된다(막1;15, 행20:21). 그렇다. 사람이 구원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주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증언처럼, 오직 믿음과 회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요나도 그렇게 구원얻었을 것이 분명하다다(만약 요나가 구원얻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는 예수님의 예표가 될 수도 없었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그를 언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 돌아온 때를 기준으로 그가 죽었다면 그는 과연 구원을 얻었을까를 생각해보자. 만약 그때 죽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대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후에 보인 행태로 본다면, 그는 니느웨백성을 미워하는 마음이 아직 수그러지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두고도 씩씩거리는 불만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그는 니느웨백성이 멸망하기를 간절히 바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만약 산상수훈에 따른 기준에 따라 그를 심판한다면 그는 아마 살인죄로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요나는 요나서에 기록된 사건 이후에 진실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로 구원얻은 자이다.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자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그가 한 신앙고백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첫째, 그는 여호와께서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곧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었다(욘1:9). 둘째, 그는 모든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믿었다(욘2:9). 뿐만 아니라 셋째, 그는 하나님께서 어떤 성품을 지니셨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회개하는 자에게는]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4:2)"라고 고백했다. 그렇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올바른 것이었으며 정확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미워했다. 다른 사람이 죽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것은 살인죄다. 그러므로 그가 만약 그때 죽었더라면, 그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그가 지은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박넝쿨 사건 이후에 회개한 끝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3. 요나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라는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은 과연 옳은 것인가?
칼빈주의자들은 요나를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따라 구원받은 자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주장이 과연 맞는 주장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나온 것은 구원의 예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 그가 비록 하나님이 보낸 큰 물고기로 인하여 바다로부터 구조된 것은 맞는 이야기이지만 좀 전에서 말씀드렸듯이 그는 니느웨백성에 대한 미워하는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죄 때문에 그는 지옥에 갈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구원받은 사람의 예표가 아닌 것이다. 둘째,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요나의 표적과 니느웨백성을 이야기하는 말씀에서, 요나는 구원하시는 메시야의 예표이며, 니느웨백성은 구원받는 죄인들의 예표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12:39~41).
마12:3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그렇다. 칼빈주의자들이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인 은혜를 강조하고 인간의 무능력함을 증명하기 위해, 구원의 예표로 요나를 설명하는 것은 옳지 비유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요나를 구원받은 죄인의 예표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야의 예표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요나는 구원하시는 메시야의 예표로서 3가지를 쏙 빼닮았다. 첫째, 요나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희생을 선택하였듯 예수께서도 인류구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셨다(요10:11). 둘째,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고 그리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지만 3일3야 후에 기적으로 살아나왔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죽으셔서 땅속에 묻히셨지만 3일3야를 음부에서 지내신 후에 살아나오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메시야의 예표이지, 구원받는 죄인의 예표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도 언급했지만 그도 역시 회개하고 믿어서 천국에 들어간 것일 뿐, 전적인 무능이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예표가 아닌 것이다.
4. 구원받은 자의 예표는 요나였나 니느웨백성이었나?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무능과 함께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의해서 구원받는다는 칼빈주의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요나의 경우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요나는 결코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무능과 아울러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예표가 아니다. 구원받은 예표는 오히려 니느웨백성이다. 니느웨 백성들은 그때 요나의 전도를 듣고 자신이 섬기던 이방신(니스록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었으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악함과 강포에서 떠남으로 구원을 받았다(욘3:5~9).
욘3:5-9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5. 하나님의 주권을 너무 강조하다 만세전예정론을 만든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의 실상
그런데 더욱이 칼빈주의자들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려고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소위 그들이 말하는 "만세전예정론"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복음을 들려주시고 그것에 대한 반응에 따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만세전 예정에 따라 구원을 집행하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를 만세전에 예정해놓으시고는 때가 되면 그를 불러내어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고 회개케 하여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것이다(듣기에는 참 좋다). 그러나 성경을 보라. 성경 어디에,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만세전에 구원하기로(천국에 들여보내기로) 예정하시고 그를 구원해 내신 예가 있는지 말이다. 하나도 없다. 있다면 전부다 어떻게 쓰실 것이라고 하는 사역적인 예정일 뿐이지 개인구원예정은 없다. 야곱과 에서의 경우도 그렇다. 두 민족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쓰실 것인지에 관한 예지예정일 뿐, 그것은 개인 구원에 관한 예정의 예가 결코 아니다.
6. 칼빈주의의 만세전 예정론을 뒷받침해주는 성경말씀은 과연 합당한가?
그렇다면, 칼빈이나 칼빈주의자들을 무엇을 근거로 만세전 예정론을 말하는가? 가장 기본적인 말씀은 엡1장이며(엡1:3~14), 가장 중요한 예로 등장하는 것은 에서와 야곱의 경우다(롬9:11~13). 하지만 엡1장의 말씀은 만세전에 어떤 공동체("우리")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는 말씀인 것이지, 어떤 개인(아무아무개)을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는 말씀이 아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장차 구원받게 될 공동체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인 것이지 만세전에 예정된 자가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성경구절이 두 군데에 있다. 하나는 요6:37~39이며, 또 하나는 요10:28~29이다. 그런데 이 두 군데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글성경과는 엄청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한국교회 성도들의 99%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헬라어원문에는 우리말 성경처럼 기록되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우리말처럼 성경원문이 되어있다면, 칼빈주의자들의 만세전 예정론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헬라어원문에는 그렇게 나와 있지 않다. 잘못 번역해놓은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아마도 칼빈주의에 이미 물들어있는 자에 의한 번역이다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기는 한다).
그렇다면, 칼빈주의자들의 구원관은 어떤 것인가? 간단히 정리하보면 이와같다.
"성부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세전에 누구는 구원하기로 예정하고 누구는 멸망으로 예정해놓으셨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대속제물로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만세전에 구원시키기로 예정한 자들만 예수님에게 보내셔서 구원의 복음을 듣게 하신다. 예수께서도 그들의 속죄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셨으며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후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은 자에만 복음을 듣고 믿어서 회개하도록 은혜를 베푸신다. 한 번 작정해놓은 것을 인간이 거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은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는 어찌하든지 반드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지 않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무시하는 것이 되는 것이므로, 절대 그러한 일을 발생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번 얻은 구원은 안전하며 영원하다. 하나님은 한 번 구원얻은 자를 영원히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론만 보면, 참 좋아보인다. 나 자신도 그 예정된 사람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길 정도다.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할 때에는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성경말씀이 있을 것이다. 있다. 그렇다면 그 구절은 무엇인가? 그들이 만세전예정론의 근거라고 내놓은 말씀들은 많다. 하지만 그 핵심 중의 핵심이 바로 요6:37~38과, 요10:28~29의 말씀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두 군데의 말씀이 성경을 잘못 번역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그 말씀들을 한글성경으로 먼저 살펴보고, 곧바로 직역된 말씀으로 비교해보자.
[한글개역개정] 요6:37-39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남성,단수)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남성,단수)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헬라어직역] 요6:37~39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고 있는 모든 것(중성,단수)은 나를 향하여 도착할 것이요, 나를 향하여 [계속해서] [스스로] 오고 있는 자(남성,단수)는 내가 결코 [밖으로] 내어쫓지 아니할 것이다. 38 내가 하늘에게서부터 이미 내려온 채 있는 것은 내가 나의 뜻을 [계속해서] 행하려 함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이미 보내셨던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그런데 나를 보내셨던 이의 뜻은 이미 내게 주신채 있는 모든 것(중성,단수)을 내가 그것(중성,단수)으로부터 잃지 아니하고 오히려 마지막 날에 다시 세우는 이것이니라.
[한글개역개정] 요10:28-2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남성,복수)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헬라어직역] 요10:28~29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세대(정관사 없음)의 생명(정관사없음)을 준다. 그러면 그들은 그 세대까지는 스스로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안으로부터 [밖으로] [장차] 결코 낚아채가지 못할 것이다. 29 내 아버지께서 이미 나에게 주신 채 있는 것(중성,단수)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크다. 아무도 아버지의 손안으로부터 [밖으로] [계속해서] 낚아채 갈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렇다. 두 군데의 경우, 헬라어원문으로 보니, 공히 "중성 단수" 명사를 전부다 "남성 단수"(요6:37,39) 내지는 "남성 복수"(요10:29)로 바꾸어 번역해놓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치 아버지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사람)만을 예수님께서 보내주시고, 예수님은 그들만을 받아서 영생을 주시고 , 그들을 낚아채가려는 그 어떤 세력(마귀를 포함)로부터도 그들을 지켜내어, 반드시 마지막 날에 구원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번역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잘못된 번역이다. 바른 번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바른 번역은 무엇인가?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자들이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어찌하든지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위해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에게 계속해서 어떤 것들을 보내주시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바로 그것(능력,권세,이름,지혜...)을 받아서 예수님 당신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구원하실 것이다는 뜻이다. 그렇다. 이 말씀들은 만세전에 예정된 개인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하든지 예수님께서 나아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이 택함을 입을 것이며, 그런 자들이 예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아 구원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7. 나오며
그렇다면, 만세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께서 누구를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은 것인가? 그것은 어떤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다. 그러한 공동체는 성령의 은혜를 따라 누군가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우리 죄인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그분만을 자신의 구원자로 믿으며 계속해서 그분만을 따라가는 자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마22장의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구원얻을 자는 많지 않다고 분명하게 말씀해주셨다. 초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마22:14). 그렇다. 구원은 누구든지 상관없이 다 열려있다. 하지만 구원으로 초청하는 분의 소식을 듣고 마음을 열고 그분을 믿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자만이 구원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 중에 어떤 자가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요나나 니느웨백성이나 다 회개하고 믿어서 구원얻게된 것이지, 만세전 예정에 따라 그들 개인개인이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니느웨백성이 만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외치는 요나의 전도를 듣고서, 하나님을 믿으며 회개하여서 구원얻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 믿고 회개하여 영생을 얻었다고 해서 결코 자만할 것이 아니라, 죽을 때에 얼마든지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알고(계3:5) 즉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음도 알고(히6:4~6),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뤄 나가야할 것이다(빌2:12).
2018년 5월 18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