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구원의 역사이든, 한 민족의 구원의 역사이든, 한 가문의 축복의 놀라운 역사이든 그 시작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인류구원의 역사도 약속의 한 사람인 메시야(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스라엘민족의 구원역사는 아브라함의 약속과 그의 순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남유다의 왕조의 시작은 천한 목동이었던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다. 첫 출발은 미약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중에 큰 열매로 나타났다. 이런 것들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수고와 헌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큰 불도 작은 불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인류와 민족과 가문의 역사도 그것의 출발이 처음에는 얼마나 작고 미약한 것이었는가를 살펴보고, 오늘도 미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인류구원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인류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하심에 따라 만세전에 시작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일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겠다고 계획하셨다(엡3:9~11).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타락 직후부터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낼 메시야는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메시야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나중에 그 메시야를 직접 살펴보니 그 메시야는 하나님 자신이었다(사9:6, 요1:14). 하나님께서는 사람 중에서 선택하여 메시야로 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시어 메시야가 되신 것이었다. 그렇다. 인류구원의 역사의 시작은 메시야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작정하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메시야가 정확히 누군지가 밝히 드러나게 되었다. 특히 B.C.734년경 이사야선지자는 그가 곧 아기이자 아들로 태어나실 분인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예언했다(사9:6). 실로 놀라운 예언이었다. 이처럼 인류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보내주실 메시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그 메시야는 사람 중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오신 것이었다. 이로써 우리는 인류의 구원은 하나님의 자기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모든 구원의 역사는 한 사람 곧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희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희생이 없는 축복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며, 심지 않는 데거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갈6:7~9).
둘째, 그렇다면 한 민족의 구원역사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한 민족의 구원의 역사를 살펴볼 수가 있는데 그들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다. 그러면 이스라엘민족의 구원역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출3:6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민족의 출애굽의 역사가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어 이삭과 야곱에게로 전승되었던 믿음의 결과라고 말씀하셨다. 즉 이스라엘 민족의 거대한 탈출의 역사는 한 사람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 출애굽할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B.C.1446년 출애굽은 출애굽 당시에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잘 해서 이루어진 일이 결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과 그 약속을 믿고 순종했던 그와 그의 호손들의 행적에 따라 되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B.C.2091년경, 아브라함을 만나서 그와 하나의 약속을 맺으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아브라함에게 2가지 축복을 약속하셨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될 것이라고 했으며, 또 하나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살아 생전이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의 자식은 이스마엘과 이삭 그리고 이삭이 낳은 에서와 야곱 정도 밖에 없었다.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다는 말씀과는 거리가 멀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살아생전에 가나안땅을 정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은400세겔에 자신의 아내 사래를 묻기 위해 헷족속으로부터 땅을 조금이나마 사야했다(창23:15~17). 그래서 얻은 것은 고작 몇 평에 불과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광대한 땅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그 약속이 비록 자기 때에는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그의 아들시대 또 그 아들의 아들의 시대에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식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약580년이 흘러갔다. 이스라엘의 출애굽할 당시였던 B.C.1446년에 이스라엘 민족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졌으며(출1:7), 바로 그들이 애굽 땅에서 나왔다. 그리고 또다시 40년이 지나갔다. 출애굽 1세대들의 바톤을 이어받은 출애굽 2세대들은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그의 나이 95세) 가나안땅에 들어갔고 약 15년의 전쟁을 통해 그 땅 전부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B.C.1390년). 드디어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구원의 역사가 여호수아 때에 완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잘 해서 복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전부가 누군가가 눈물흘리며 뿌려놓은 씨앗의 열매를 지금 내가 거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그리고 남왕국 유다의 20대 왕들의 역사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이름없는 촌사람이자 목동이었던 다윗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윗은 이새의 8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형들 중에 한 사람이 죽는 바람에 일곱번째 아들로 기록도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아버지로부터도 별 볼 일 없는 막내아들에 불과했다. 심지어 사무엘선지자가 와서 자신의 아들들의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막내 다윗은 숨기고 보여주지 않았다. 막내로서 양떼에게 풀이나 뜯기는 다윗을 이새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인물이었으리라. 그런데 그가 통일왕국의 2대왕이 되었고 아들로 이어지는 후손들이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무려 20대가 이어졌다. 왜 그랬는가? 첫째, 다윗은 목동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곰이나 사자가 와서 양의 새끼를 물어가면 죽기를 각오하고 쫓아가서 곰과 사자의 입에서 건져내왔던 것이다. 그리고 곰이나 사자로부터 양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물매를 던졌는지 모른다. 그러니 나중에 골리앗의 머리를 단 한 번에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왕이 되어서도 자신이 전쟁을 통해 얻었던 모든 물질을 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기꺼이 다 드렸던 자였다. 다윗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으로 그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왕직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왕직을 빼앗기지 않고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언젠가 열매를 거두기를 진정 원한다면 힘들고 어려워도 지금 씨를 뿌는 자가 되어야 한다. 때로는 씨뿌리다가 눈물로 땅을 적시며 씨뿌리는 날도 올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우리는 지금 힘써야 한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져야 한다.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다 심는데로 곧 뿌리는 대로 거두게 되기 때문이다(갈6:7~9). 그러므로 누가 복을 받았고 그를 비난하거나 미워하지 말라.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그의 힘만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자기의 후손을 위해 씨를 뿌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 인생이 광영이 있다고 기쁨에 취하지 말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서는 오늘도 씨를 뿌려야 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아직 내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내 희생과 헌신은 반드시 미래의 후손들 중에 누군가가 그 열매를 거두어들일 날이 오게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성도들은 지금에 내가 받는 축복에 감사할 줄 알고 겸손해 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으며, 미래에 나의 후손들이 받을 축복을 위해, 오늘도 한 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건강한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