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총13권의 편지를 남겼다. 그것이 성경책이 될 줄은 아마 자기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바울이 여러 교회들과 목회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거룩한 글인 것을 파악하고는 처음부터 신약성경의 목록에 그의 편지들을 포함시켰다. 이름하여 '바울의 서신서들"이다. 그리하여 로마서로부터 빌레몬서에 이르기까지 총 13권이 오늘 우리가 가진 신약성경의 목록에 들어있다. 만약 히브리서가 그의 편지라고 인정된다면 그가 남긴 신약성경은 총 14권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는 총9권(롬,고전,고후,갈,엡,빌,골,살전,살후)이며, 목회자에게 보낸 편지는 4권(딤전,딤후,딛,몬)이다. 그리고 만약 히브리서가 그의 저작에 포함된다면, 히브리서는 교회도 아니며, 목회자도 아닌 히브리인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쓴 편지일 것이다.
혹시 당신은 그가 보낸 것으로 확실시되는 13권의 성경책을 주의 깊게 읽어본 일이 있는가? 특히 바울 서신들의 첫시작은 대부분 이렇다. 그 편지를 써 보내고 있는 발신자와 그 편지를 받아서 읽고 공부하고 실천해야 할 수신자 그리고 성부와 성자로 말미암은 문안인사가 공통적으로 들어 있다. 그 내용인즉, 하나님의 종이자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 여러 교회들과 목회자들에게 문안인사를 올리고 있다. 특히 문안인사의 문구는 대부분 이렇게 되어 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를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여기에 한 가지 들어 있다. 그것은 첫 문안인사에서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를 좇아 문안인사를 하는데, 유독히 성령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왜 사도바울은 그의 쓴 모든 서신서들에서 성령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문안인사를 집어넣지 않은 것일까? 혹시 그가 성령이 하나님되심을 몰라서 누락한 것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성령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지 않은 것일까? 오늘 이 시간에는 삼위일체주일을 맞이하여, 과연 성령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 왜 그분만이 바울의 처음 문안인사에서 전부 다 빠져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과연 어떤 하나님인지를 찾아보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갖도록 하자.
먼저, 존재론적으로 볼 때 바울은 성령 하나님을 결코 독립된 하나님으로서 묘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보낸 영이요,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예수께서 보내신 영이시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다시 말해, 그에게 있어서 성령하나님은 성부와도 같지 아니하고 성자와도 같지 아니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같은 또다른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이것은 삼위일체론자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 하나님은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는 제 삼위의 하나님이 아니라 무소부재하신 한 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당신의 영인 것이다. 하지만 삼신론적 삼위일체론자들에 의해, 성령하나님은 하나님 중에서 세번째 위(독립된 인격)를 차지하는 독립된 하나님으로 규정되고 말았다.
하지만 바울이 쓴 13권의 편지들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시되었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한 분으로 존재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삼신론적 삼위일체론자들의 주장하는 것처럼, 만세전부터(만물을 창조하기 전부터) 한 분으로 계셨다가 어느 순간에 성자가 거기로부터 나오시고 성령이 또한 거기로부터 나오셔서 삼위로 존재하고 계셨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한 분으로 존재하셨다(사45:5, 신6:4). 그리고 한 분이신 그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홀로 창조하신 것이다(사44:24,45:18).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도 영이시고(요4:24), 천사와 사람도 영을 가졌다는 것이다(히1:14, 슥12:1). 하지만 이 세 영적존재가 다 똑같이 영을 가진 존재이지만 하나님과 천사와 사람이 하님과 다른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사실이고, 천사와 사람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동시존재가 가능한 전능자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즉 그분은 이 거대한 우주 가운데에 아니 계신 곳이 없다.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아니계신 곳(무소부재)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그분은 자신의 영을 동시에 다른 장소에 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셋째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당신 자신의 영을 보내어 당신의 일을 동시에 수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사람과 천사도 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영을 보내시어 동시에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 성경구절을 읽어보라.
렘23:23-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시139:1,7-10 여호와여... 7 내가 주(당신)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당신)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당신)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당신)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하나님은 무소무재한 속성을 가진 당신의 영을 보내시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창1:2, 시104:30). 그리고 지금도 당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며 감찰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령은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세번째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영이신 것이다. 자, 다음의 성경구절을 읽어보자.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삼상10:10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사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맨 처음에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라 불리웠다. 하나님이 보낸 당신의 영이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물어오자,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알려주셨다(출6:2~3, 출3:14~15). 그 다음부터는 성령은 '여호와의 영'이라고도 불리기 시작했다(삿3:10). 그래서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과 완전히 다른 세 번째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이요 여호와의 영이신 것이다. 그렇다. 성령은 독립된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이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리고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메시야(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고 300번 이상이나 약속하셨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야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를 보니 메시야는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다(요1:14). 그분이 바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영은 여호와의 영이었지만, 그분의 몸은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구별시켜 메시야로 쓰시지 않고, 당신 자신이 육신을 입고 오셨던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땅에 태어나서 사는 모든 사람치고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자가 없기에, 인류의 죄를 대속할 흠없는 대속제물을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죄를 알지도(경험하지 않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다(고후5:21, 요일3:5, 히4:15). 이는 흠없는 대속제물이 되어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함이다. 그때 육신을 입고 오신 한 분 하나님은 그의 새 이름을 '예수'라고 말씀하셨다(마1:21, 계3:12).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속죄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다 이루었다"하시고는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 후에 하늘로 오르신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을 자기대신 보내주셨는데, 그 성령은 바로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자신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은 무소부재하신 한 분 하나님의 영이시지,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하나님이 아니신 것이다.
그래서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기에 오순절이후에는 성령을 '아들의 영'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갈4:6). 그리고 한 분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이 메시야(그리스도)가 되시었기에, 오순절이후에 그분은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롬8:9, 벧전1:11). 그리고 그분의 새 이름이 예수였기에, 오순절이후에 성령은 '예수의 영'이라고 불리웠다(행16:7). 그렇다. 성령하나님은 아들 하나님과는 다른 개체의 하나님이 아니라, 구속사역을 이루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한 분 하나님의 영이요,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후에는 바로 하늘로 승천하신 아들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자, 예수의 영이신 것이다. 바로 하나님 자신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그의 서신서의 서두의 인사말에서 성령하나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령이 곧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영이요 여호와의 영이자, 신약시대에 아들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요 새 이름인 예수의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굳이 성령을 거기에 같이 기록할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사도바울은 항상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그도 이땅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체험할 때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알아가고 체험했기에, 축도라 일컫는 곳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과 아들과 성령을 따로 구분하여 기록하기도 하였다(고후13:13). 하지만 하나님은 독립된 세 분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늘에 가보라. 그분 한 분 하나님이시다. 만약 하나님께서 각각 독립된 세 위격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영이라는 말도 있고, 아들의 영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성령의 영이라는 말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성경 어디를 보아도 '성령의 영'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의 영이 곧 성령이기시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분 하나님의 영이 구약시대에 그 이름이 계시된 이후에는 '여호와의 영'이 불리웠던 것이고, 아들이 오신 다음에는 '아들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이요, '예수의 영'이라고 불리웠던 것이다. 그렇다. 성령님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동시에 내려오신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분은 곧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모여 결의한 종교회의 때문에 하나님은 그만 세 분이 되고 말았다. .A.D.325년(니케아종교회의)에 는 아들 하나님이 생겼고, A.D.381년(콘스탄티노플)에는 성령하나님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이들의 결의에 따르면, A.D.325년부터 A.D.381년까지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이위일체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A.D.381년이후에 하나님은 비로소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이런 말이 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분이라고 결정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어지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의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롬3:30,고전8:4,고전8:6,갈3:20,엡4:6,딤전2:5,약2:19). 요한계시록에 보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는 흰 보좌에 앉아계신다. 그 보좌가 바로 천국에 한 개 있는 하나님의 보좌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했던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2~3장에 나오는 7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라. 거기에서는 분명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데,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성령이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이 땅에 보내어진 예수님의 영이신 것이다.
더불어 알 것은, 성경에서 "성령의 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성령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굳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분의 이름은 예수님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이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28:19에 예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했지만, 사도행전에 보면 그 어떤 제자들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일이 없다.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왜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이 예수 안에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성부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계시되었지만, 여호와께서 구원자로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새 이름은 이제 '예수'가 된 것이다.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한 분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시므로, 굳이 성령의 이름을 따로 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그 이름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분의 이름은 '예수'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삼위일체신앙은 사실 성경에 나온 하나님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지 않는 부절적한 표현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그가 써 보낸 13권의 편지의 서두에서 성령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아버지의 영이 성령이요, 예수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이 바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