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 행하시는 사역이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다 성령께서 행하신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는 것일까?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께서 행하시는 2가지 측면의 사역을 비교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성령의 사역을 위해 필요한 성령의 2가지 충만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성령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해보기로 하자. 성령님은 누구신가? 삼위일체론자들은 성령님은 만세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함께 계셨던 세번째의 인격적인 하나님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이 정의는 올바른 정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신6:4, 사43:10~11, 요17:3, 고전8:4, 딤전2:4). 하나님은 세 분이신데, 이 세 분인 하나라는 교리 즉 삼위일체의 교리는 인간의 지식에서 나온 산물이지 성경에서 나온 산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누구라고 정의해야 하는가.? 우선 성령님은 성부와 같지 않고, 성자와도 같지 않으나 하나님으로서는 같다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받아들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한 분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의 영이시기 때문이다(창1:2, 삼상10:10, 롬8:14). 행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사건을 보라. 그들은 성령을 속였지만, 베드로는 그들이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했다고 말했다(행5:3`4). 성령님은 하나님과 같은 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는 만세전부터 존재했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도 틀린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만세전부터 한 분으로 존재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일에 착수하셨다. 그것은 장차 인류를 하나님의 아들들이자 상속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제일 처음으로 하신 일이 바로 창조사역이었다. 그때에 동시에 시간이 생겨났고 공간도 생겨났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보내어 창조사역을 행하셨다고 성경은 증거한다(창1:2, 시104:30).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으로 창조사역의 가장 중심장소인 지구를 창조하셨으며, 그것 안에 사람을 창조하셨고(사45:18), 사람에게 어떤 일을 수행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리하여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사람 위에 보내어 당신이 맡긴 어떤 일들을 하게 하셨다. 그때 성령께서는 어떤 특별한 사람 위에 가셨다. 그러자 그들 중에 어떤 이는 예언하기 시작했고(삼상10:10), 어떤 이는 능력을 행하였으며(삿14:6), 어떤 이는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고(출31:2), 어떤 이는 지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삿6:34).
그후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갈4:4).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들'이라고 불리웠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시다.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사람이 되어야 했던 것일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요4:24) 피가 없어 속죄를 할 수 없으므로, 깨끗한 희생제물이 되시려고 사람이 되신 것이다(히9:22, 레17:11). 그리고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리하여 33년반의 생애동안 육체라는 공간의 제약을 받으셨던 그분은 이제 본래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가셨다. 그리고는 당신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대로 당신을 대신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다(요15:26, 16:7). 그러자, 이제 성령님은 예수님의 또 다른 표현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을 '하나님의 영' 혹은 '여호와의 영'이라 칭했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그분을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아들의 영' 혹은 '주의 영'이라고도 칭하게 되었다. 그렇다. 성령님은 성부와 다르거나 성자와 다른 또 다른 인격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시다. 성령님은 한 분 하나님 또 다른 표현이다. 즉 성령님은 특별히 이 세상으로 파송받아 이 땅에서 어떤 사역을 이루시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에게는 특별한 이름이 없다. 그분이 곧 구약시대에는 여호와였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 자신이었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님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2가지 사역은 무엇일까?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파송받아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사역을 하신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사역은 곧 하나님의 사역이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사역을 중심으로 그분의 사역을 요약해 본다면, 우리는 그분이 바로 2가지 사역들을 행하셨음을 알게 된다. 첫째는 사람 위에 머무셔서 행하시는 사역이 한 가지 있고, 둘째는 사람 속에 들어가셔서 행하시는 또 한 가지 사역이 있다. 이것들 중에서 성령께서 사람 위에 머무셔서 행하시는 사역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오순절이후 성령시대나 똑같은 사역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구약시대에는 어떤 특정한 몇몇의 사람 위에만 머무셔서 특별한 능력을 주어 일하게 했다는 점에서다. 대체적으로 구약시대에 성령이 어떤 사람 위에 머물게 될 때에, 성령을 받은 사람은 4가지 일들을 수행했다. 그것들 중에 대표적인 것은 바로 예언하는 일이었으며, 다른 것으로는 능력행함이나 지식과 기술을 얻거나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오순절이후에 성령께서는 대상의 한계를 뛰어넘으셨다. 그리고 은사의 종류도 더욱 다양하게 분배해 주시고 있다. 즉 오순절 이후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여자나 남자 할 것 없이 모든 사람 위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에는 구약시대에 나타난 4가지 은사 외에도 다양한 은사들이 나타났다. 그 중 대표적인 은사는 방언의 은사이며, 방언통역의 은사, 영들분별함의 은사, 치유의 은사 등과 사도직과 선지자직과 복음전하는 직분과 교사의 직분 등의 은사가 더해져 한층 더 아양한 은사가 부어졌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이후에 사람 위에 오신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무장시켜 복음전파의 사역까지 감당케 하셨다. 이른바 성령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증인사역을 강당케 하신 것이다(행1:8, 4:31).
하지만 오순절이후 성령의 역사하는 방식에 현격한 차이가 생겨났다. 그것은 성령께서 사람의 속에도 들어오시게 되었다는 것이다(요14:17, 고전3:16). 이것은 구약시대에는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떠나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16:7). 이때 사람의 속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대체적으로 4가지 사역을 행하고 계신다. 첫째는 사람을 회개케하고 중생시키는 사역을 행하시고 있다(요3:5, 16:8, 고전12:3, 요3:5). 둘째는 사람의 속에서 중보기도하는 사역을 행하시고 있다(롬8:26). 셋째는 교사의 사역을 행하시고 있다(요14:26, 엡1:17~18).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가르치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깨닫게 하는 사역이다. 넷째는 열매의 사역을 행하시고 있다(갈5:22~24). 성령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오셔서 그 사람의 성품을 옛사람의 성품에서 새 사람의 성품으로 바꿔가시는 사역을 지금도 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제 타락한 본성을 따라 행하는 옛사람을 우리가 장사지내는 일에 협력하고 계시며, 우리의 성품을 예수님의 새로운 성품으로 바꾸어가는 사역을 도와주시고 있다.
셋째,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성령이 일하시도록 충만케 하려면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도 성령의 두가지 충만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아마 빠를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도 외적으로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 한 가지 있고, 내적으로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 한 가지 더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째로, 밖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이 충만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은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행4:31). 외적인 성령충만은 기도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눅11:13). 둘째로,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충만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것은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죄된 본성을 따라가는 내 자신을 날마다 죽음에 넘기우는 것이다. 한편, 외적인 성령충만과 내적인 성령충만은 헬라어원문으로 보더라도 사용되는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적인 성령충만을 표현할 때에는 "플레도"라는 동사가 사용된다. 하지만 내적인 성령충만을 표현할 때에는 "플레로오"라는 동사나, "플렐레스"라는 형용사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 단어들의 의미를 종합해보면 이렇다. 외적인 성령충만은 항상 은사적인 충만을 가리키며, 일시적이거나 순간적인 충만과 단기적인 성령충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적인 성령충만을 '은사성령충만'이라고 표현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적인 성령충만은 항상 내 안의 인격을 바꾸어가는 성령충만으로서, '인격성령충만' 혹은 '생활성령충만'이라고 부루면 좋을 듯 싶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인 성령충만은 성격이 항상 인격적인 성령충만이요, 장기적이며 점진적이고 계속적인 성령충만을 가리킨다.
한편, 내적인 성령충만은 오직 신약시대 이후에만 나오는데, 이는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시기가 예수님의 신약시대에서 시작하여 오순절 이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일 먼저 내적인 성령충만을 받았으며(눅4;1), 이어 오순절이후에는 바나바가 내적인 성령의 충만을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인격이 착했다(행11:24).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도 내적인 성령충만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엡5장 18절이다. 그는 여기에서 술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는 사람이 술에 취하는 것이 술 한 잔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술을 먹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술에 취하듯 성령으로 충만케 됨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내적인 성령의 충만을 계속적으로 경험하는 자에게는 필연적으로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갈5:22~23). 그리고 이것은 한 번 맺기 시작하면 거의 변함없이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외적인 성령충만은 기도할 때에 나타나게 되는데, 성도들은 기도를 통해서 능력을 받게 되고 은사를 받게 되어, 결국 나가서 증인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성령의 내적인 충만은 사탄마귀가 전혀 관여할 수 없지만, 외적인 성령충만은 흉내를 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외적인 성령충만의 결과로 나타나는 은사들 중에는 타락한 천사들도 주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도 거짓 방언, 거짓 예언, 거짓 환상을 주고, 거짓 치유 등도 일으킨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외적인 성령충만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항상 영적인 분별을 받아가면서 이러한 사역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귀신이 주는 충만을 성령충만으로 착각하고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외적인 충만과 내적인 충만을 받아, 증인으로서의 사역을 잘 감당하길 바라며 , 자신의 성품을 예수님의 성품을 바꿔나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