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이야기(27)
2008년 5월 7일(수)
제목 : 사람이 복이다
나는 원래 사람중심의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는가보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어느 날이었다. 네트워크 은사사역에 대해 공부할 때였다. 거기서 사람을 분류할 때면, 흔히들 “이 사람은 사람중심의 사람이며, 저 사람은 일중심의 사람이다.” 라고 분류하곤 하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청년대학부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나는 나의 성향을 분석하는 설문조사를 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중심으로 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 중 일이 70%를 차지하고 있었고, 사람은 단지 30%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확실히 나는 일중심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되돌아보니 나는 항상 일이 좋았고 일을 즐겨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남들이 나를 기억할 때면,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라도 할 사람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또한 스타일면에서도 나는 비체계적인 사람이란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되돌아보니 나는 일을 시작할 때 재보기전에 그냥 뛰어들었던 적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모든 프로젝트가 나와야 일을 시작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나는 무조건 시작부터 해놓고 보았다. 그러다가 일에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방식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일 중심에 그리고 비체계적인 사람, 나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일 중심이라는 점에 있어서 나는 부교역자로서 그 직책을 잘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교회마다 다르겠지만 담임목사님께서 부교역자들과 상의하지 않고서 그냥 단상에서 선포해 버린 일들을 처리하기에는, 부교역자는 비교적 비체계적인 사람이 더 나을 것이다. 그랬다. 그래서 나는 사역지마다 사랑을 받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17년 정도 목회자의 길을 걷다보니 나도 어느새 변한 것 같다. 일 중심이었던 사람에서, 이제는 사람중심의 사람으로 점차 옮겨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비체계적인 사람에서 이제는 체계적인 사람으로 바뀌어져가고 있는 것도 발견하곤 한다.
요즘 나는 많이 깨닫는다.
목회자는 정말 다방면에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음악에 있어서도, 교육에 있어서도, 의학에 있어서도, 돈관리에 있어서도 그리고 사람관리에 있어서도 말이다. 최근 들어 우리 교회에서 수고하시던 교육전도사님께서 또 사임하셨다. 사역을 시작한 지 4개월만이다. 이 일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그 이전의 교육전도사님께서도 3개월 사역하시다가 그만두시었었다. 부모가 자주 바뀐다면 자녀에게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까?
개척초기 시절, 나는 하루하루를 정말 즐겁게 보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딱 정해진 일은 없었지만 날마다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전도하러 나가는 일이었다. 누가 오라고 하는 이가 없어도 찾아가는 것이 전도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했었다. 그때만 해도 등록교인이 거의 없었으니 사람을 관리할 필요도 없고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시기였다. 하지만 개척 1년이 지난 지금 이제 장년교인이 약 60명 정도 등록한 상태이고 청소년과 어린이들까지 합치면 출석성도가 한 100여명이 된 상태이다. 다양한 신앙적 환경에서 자라고 성장한 그들은 각자가 욕구도 다르고, 원하는 것조차 다르다. 어떤 분은 찬양을 많이 했으면 하는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성경공부를 더 많이 했으면 하는 성도도 있고, 또 어떤 이는 통성기도를 많이 했으면 하는 분도 있다. 어디에 기준을 맞추어야 할지... 하지만 이제는 성도들의 이러한 다양한 욕구를 어느정도 충족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주일에 새로이 부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서 부임하셨기 때문이다. 개척 2년째를 맞아 이제는 우리 교회도 부교역자를 두 분이나 둔 교회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난 사실 사람관리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할 수만 있으면 내가 해버려야지 남에게 시킨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목회란 결국 사람목회이지 일 목회는 아니지 않는가? 나의 타고난 체질에 맞지 않아도, 이제는 사람을 관리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1. 아내와 13년만에...
개척 초기에 우리 교회는 선택이 따로 없었다. 교회적으로 한 가지 일을 시작하기만하면 다같이 시작하고 다같이 동참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몇 사람 되지를 않으니, 누구는 참석하고 누구는 예외이고 하는 것이 없었다. 맨 처음에는 등록한 성도 한 사람을 앞에다 놓고 새가족성경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비록 한 사람이 앉아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만 명으로 생각하고 설교하라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처럼, 최선을 다해 강의를 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한 명이 참석하던 성경공부가 점점 더 불어나더니 소그룹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금요구역연합예배였고, 조금 더 있다가는 비젼트리 2단계성경공부와 3단계성경공부 그리고 제1기 알파코스를 하게 되었다.
장년 출석 성도가 40명 정도였던 올 해 초까지만 해도 나는 혼자 그런대로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 성경공부와 전도 그리고 설교준비와 주보 등 그렇게 많은 일은 없었다. 특히 아내도 나를 도와 여러 가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잘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주일이 되면 아내는 새벽부터 주일식사를 직접 장만하곤 했다. 나는 아내가 만든 요리를 들고 교회에 갔었고, 그 요리를 데워먹는 정도가 점심식사였다.
또한 아내는 그 일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교회의 정식반주자였기 때문이다. 모든 예배시 아내는 찬송가 및 복음성가 등을 반주해야 했다. 그러므로 점심 때가 되면 점심준비하랴 반주하랴 참 바빴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는 한 번도 그것이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주일 점심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 정도까지는 교인들이 도와 주었기에, 아내는 남아서 뒷정리를 하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아내와 나는 주일 오후 4시 정도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올 들어 성도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문제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매 주마다 등록교인이 생기다보니, 점심식사 분량도 응당 많아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점심식사를 50명분을 준비하다가 80명분으로, 심지어는 100명분까지를 준비해야 했다. 그러니 아내는 더 이상 그 일을 혼자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아무 일 아니었던 것에 대해 자주 문제를 삼지를 않나, 조그만 일에도 투정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나도 늘어난 사역 때문에 바빴고, 특히 상가임대 및 담보대출하기 위해 동분서주 달려 다녀야 했다. 얼마 전까지 나는 대출의 대자도 잘 모르던 사람이었기에 대출에 관한 기초부터 배워야 했고, 대출에 관련된 서류준비하기도 바빴다. 거기에다가 새 성전 인테리어공사를 지켜보아야 했다. 물론 새 성전 인테리어를 담당하시던 안수집사님께서 너무나 꼼꼼히 잘 해 주시었지만 또 담임목사가 챙겨야 할 부분이 있었기에 나도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자주 짜증을 낸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원래 일 중심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 주어지더라도 그 날 마쳐야 할 일이라 한다면 나는 밤을 새워서라도 그 일을 마치곤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일 중심이었던 사람이었기에 일이 고달프긴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었다. 사실 일산명성교회 부교역자 시절에는 밤 11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 본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일이 많이 주어졌어도 그 일이 많다고 투정을 부리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날까지 그 일을 마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지, 왜 나에게 이렇게 많은 일이 주어지는 것인가 하고 언짢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다 나 같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자, 그만 버겁다는 표시를 조금씩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금방 그것을 알아차려야 했었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내와 나는 사소한 문제 때문에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사실 결혼 12년동안 거의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살아왔던 아내와 내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새 성전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아내는 힘겹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에 웃음이 점차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부턴가 아내는 찡그린 얼굴 모습을 할 때도 있었다. 이와같은 사실을 금방 알아차리고 미리 대처를 했었어야 했는데, 나도 일에 치이다보니 아내의 그러한 외침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아내는 다시 평온한 얼굴을 되찾아가고 있다. 식당 일은 둥지(구역)별로 할당해서 맡겨버렸고, 곧 있으면 예배반주도 새로 들어오신 집사님에게 어느 부분은 나누어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넘을 때에 사람은 금방 지치게 되고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 아내의 일로 나는 교회사역도 개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일을 못해낸다고 짜증낼 것이 아니라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조치해 주고 사람을 배려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그래서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지만 아내에게는 진정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로 인해 우리는 여러 일꾼을 발굴하고 얻을 수 있었다. 둥지별로 식사를 담당한지 벌써 4주가 되었다. 이제는 이전에 아내가 만든 음식보다도 음식이 더 풍성해졌다. 그리고 다양해졌다. 이 모두가 많은 공과를 배운 후에 비로소 터득하게 된 것이니 비싼 값을 치르고 얻은 소득이 아닐 수 없다.
2. 이렇게 기쁜 일이...
지난 주일(2008.5.4) 우리 교회에 부목사님께서 새로 부임하셨다. 교단은 우리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에 소속된 목사님은 아니시다. 예전에 우리 교단 부목사님을 모시기 위해 장신대 게시판에 청빙광고를 냈지만, 사택문제 때문에 번번이 성사되지 못했기에 부목사님을 모시는 문제를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개로 만난 분일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의 사정을 익히 잘 아시는 분이라 일이 잘 성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우리 교회의 사정을 잘 아시고 꼭 필요한 분은 보내주셨다. 지금이 바로 부목사님이 필요한 아주 적절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도 점차 사역이 많아지므로, 거의 날마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잠자리를 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것 저 것 관심을 갖고 봐주면, 어느덧 내가 해야 할 일만큼 시간은 뒤로 밀려나기 일쑤이니 밤 1시를 넘기는 것이 예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때에는 그 다음날에도 그 여파 때문에 사역에 지치곤 했다.
오늘로 부교역자가 온 지 4일째다. 하지만 너무나 행복하다. 특히 새로 들어오신 부목사님께서 찬양을 잘 하신다. 그리고 예의도 바르고, 지혜롭고, 말씀도 잘 하시는 것 같고, 성품도 참 고우신 분 같다.
복이란 무엇일까? 건강인가? 물질인가? 명예인가? 아니면 다른 데에 있는가? 내 생각으로는 복이 다른 데에 있지 않는 것 같다. 사람에게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꼭 우리가 예수님을 얻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건강을 얻기를 원하고, 부요를 얻기를 원하고, 형통을 얻기 원한다면 건강과 부요와 형통을 얻으려고 애 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송두리째 가져다주시는 그분 즉 예수님을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찬양을 잘 하길 원하고, 사역을 행복하게 하길 원하지만 나에게 그것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그러한 사람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특히 내가 하고 싶어하는 그것을 잘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것을 잘 하실 수 있는 사람을 얻으면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바로 그렇게 하여 함께 협력해야할 시기가 된 것이다. 즉 내게 시간이 부족하고 능력의 한계가 이제는 동역자를 통해 해결될 시기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 교회도 나 혼자만이 잘 할 수 있도록 능력과 지혜를 달라고 구할 시기에서 벗어나, 그 방면에 실력을 갖춘 사람을 찾아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부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부임하기 전 나는 그분에게 물어 보았다.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신지 말이다. 그랬더니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마음껏 전도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못한 토양에 얽매여 있다 보니 나 자신의 열정도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 같아, 이번에 옮기는 사역지에선 마음껏 전도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 교회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심방도 아니고 성경공부도 아니다. 사실 전도사역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마음껏 전도하고 싶다는 것이 소원인 목사님이 오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찬양도 잘 하시고, 전도도 잘하시는 부목사님을 얻게 되니,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아직 얼마나 일을 잘 해 내실 수 있을른지 모른다 하더라도, 목사님의 진실된 말과 행동 속에서 나는 우리 교회의 부흥을 꿈꾸어 본다.
시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복은 본인이 일을 잘 하는 것에 있지 않고, 사람을 얻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우리 교회에 좋은 부목사님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님, 이제 새로 시작합니다. 혼자 하던 일을 이제 서로 협력하고 나누어서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오니, 주여 원하옵기는 하늘의 지혜를 주시사, 나로 하여금 협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시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도와주며 섬기게 하소서. 담임목사라고 마음대로 부리거나 군림하지 말게 하시고, 종의 자세로 언제나 함께 하는 지도자가 되게 하시며, 시간을 잘 안배하고 사역을 안배하여 교회가 더욱더 든든히 서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8년 5월 7일(수)에
동탄신도시에서 정병진 목사
2008년 5월 7일(수)
제목 : 사람이 복이다
나는 원래 사람중심의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는가보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어느 날이었다. 네트워크 은사사역에 대해 공부할 때였다. 거기서 사람을 분류할 때면, 흔히들 “이 사람은 사람중심의 사람이며, 저 사람은 일중심의 사람이다.” 라고 분류하곤 하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청년대학부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나는 나의 성향을 분석하는 설문조사를 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중심으로 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 중 일이 70%를 차지하고 있었고, 사람은 단지 30%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확실히 나는 일중심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되돌아보니 나는 항상 일이 좋았고 일을 즐겨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남들이 나를 기억할 때면,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라도 할 사람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또한 스타일면에서도 나는 비체계적인 사람이란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되돌아보니 나는 일을 시작할 때 재보기전에 그냥 뛰어들었던 적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모든 프로젝트가 나와야 일을 시작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한다면, 나는 무조건 시작부터 해놓고 보았다. 그러다가 일에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방식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일 중심에 그리고 비체계적인 사람, 나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일 중심이라는 점에 있어서 나는 부교역자로서 그 직책을 잘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교회마다 다르겠지만 담임목사님께서 부교역자들과 상의하지 않고서 그냥 단상에서 선포해 버린 일들을 처리하기에는, 부교역자는 비교적 비체계적인 사람이 더 나을 것이다. 그랬다. 그래서 나는 사역지마다 사랑을 받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17년 정도 목회자의 길을 걷다보니 나도 어느새 변한 것 같다. 일 중심이었던 사람에서, 이제는 사람중심의 사람으로 점차 옮겨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비체계적인 사람에서 이제는 체계적인 사람으로 바뀌어져가고 있는 것도 발견하곤 한다.
요즘 나는 많이 깨닫는다.
목회자는 정말 다방면에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음악에 있어서도, 교육에 있어서도, 의학에 있어서도, 돈관리에 있어서도 그리고 사람관리에 있어서도 말이다. 최근 들어 우리 교회에서 수고하시던 교육전도사님께서 또 사임하셨다. 사역을 시작한 지 4개월만이다. 이 일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그 이전의 교육전도사님께서도 3개월 사역하시다가 그만두시었었다. 부모가 자주 바뀐다면 자녀에게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까?
개척초기 시절, 나는 하루하루를 정말 즐겁게 보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딱 정해진 일은 없었지만 날마다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전도하러 나가는 일이었다. 누가 오라고 하는 이가 없어도 찾아가는 것이 전도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했었다. 그때만 해도 등록교인이 거의 없었으니 사람을 관리할 필요도 없고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시기였다. 하지만 개척 1년이 지난 지금 이제 장년교인이 약 60명 정도 등록한 상태이고 청소년과 어린이들까지 합치면 출석성도가 한 100여명이 된 상태이다. 다양한 신앙적 환경에서 자라고 성장한 그들은 각자가 욕구도 다르고, 원하는 것조차 다르다. 어떤 분은 찬양을 많이 했으면 하는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성경공부를 더 많이 했으면 하는 성도도 있고, 또 어떤 이는 통성기도를 많이 했으면 하는 분도 있다. 어디에 기준을 맞추어야 할지... 하지만 이제는 성도들의 이러한 다양한 욕구를 어느정도 충족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주일에 새로이 부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서 부임하셨기 때문이다. 개척 2년째를 맞아 이제는 우리 교회도 부교역자를 두 분이나 둔 교회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난 사실 사람관리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할 수만 있으면 내가 해버려야지 남에게 시킨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목회란 결국 사람목회이지 일 목회는 아니지 않는가? 나의 타고난 체질에 맞지 않아도, 이제는 사람을 관리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1. 아내와 13년만에...
개척 초기에 우리 교회는 선택이 따로 없었다. 교회적으로 한 가지 일을 시작하기만하면 다같이 시작하고 다같이 동참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몇 사람 되지를 않으니, 누구는 참석하고 누구는 예외이고 하는 것이 없었다. 맨 처음에는 등록한 성도 한 사람을 앞에다 놓고 새가족성경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비록 한 사람이 앉아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만 명으로 생각하고 설교하라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처럼, 최선을 다해 강의를 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한 명이 참석하던 성경공부가 점점 더 불어나더니 소그룹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금요구역연합예배였고, 조금 더 있다가는 비젼트리 2단계성경공부와 3단계성경공부 그리고 제1기 알파코스를 하게 되었다.
장년 출석 성도가 40명 정도였던 올 해 초까지만 해도 나는 혼자 그런대로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 성경공부와 전도 그리고 설교준비와 주보 등 그렇게 많은 일은 없었다. 특히 아내도 나를 도와 여러 가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잘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주일이 되면 아내는 새벽부터 주일식사를 직접 장만하곤 했다. 나는 아내가 만든 요리를 들고 교회에 갔었고, 그 요리를 데워먹는 정도가 점심식사였다.
또한 아내는 그 일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교회의 정식반주자였기 때문이다. 모든 예배시 아내는 찬송가 및 복음성가 등을 반주해야 했다. 그러므로 점심 때가 되면 점심준비하랴 반주하랴 참 바빴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는 한 번도 그것이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주일 점심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 정도까지는 교인들이 도와 주었기에, 아내는 남아서 뒷정리를 하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아내와 나는 주일 오후 4시 정도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올 들어 성도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문제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매 주마다 등록교인이 생기다보니, 점심식사 분량도 응당 많아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점심식사를 50명분을 준비하다가 80명분으로, 심지어는 100명분까지를 준비해야 했다. 그러니 아내는 더 이상 그 일을 혼자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아무 일 아니었던 것에 대해 자주 문제를 삼지를 않나, 조그만 일에도 투정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나도 늘어난 사역 때문에 바빴고, 특히 상가임대 및 담보대출하기 위해 동분서주 달려 다녀야 했다. 얼마 전까지 나는 대출의 대자도 잘 모르던 사람이었기에 대출에 관한 기초부터 배워야 했고, 대출에 관련된 서류준비하기도 바빴다. 거기에다가 새 성전 인테리어공사를 지켜보아야 했다. 물론 새 성전 인테리어를 담당하시던 안수집사님께서 너무나 꼼꼼히 잘 해 주시었지만 또 담임목사가 챙겨야 할 부분이 있었기에 나도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자주 짜증을 낸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원래 일 중심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 주어지더라도 그 날 마쳐야 할 일이라 한다면 나는 밤을 새워서라도 그 일을 마치곤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일 중심이었던 사람이었기에 일이 고달프긴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었다. 사실 일산명성교회 부교역자 시절에는 밤 11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 본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일이 많이 주어졌어도 그 일이 많다고 투정을 부리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날까지 그 일을 마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지, 왜 나에게 이렇게 많은 일이 주어지는 것인가 하고 언짢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다 나 같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자, 그만 버겁다는 표시를 조금씩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금방 그것을 알아차려야 했었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내와 나는 사소한 문제 때문에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사실 결혼 12년동안 거의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살아왔던 아내와 내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새 성전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아내는 힘겹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에 웃음이 점차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부턴가 아내는 찡그린 얼굴 모습을 할 때도 있었다. 이와같은 사실을 금방 알아차리고 미리 대처를 했었어야 했는데, 나도 일에 치이다보니 아내의 그러한 외침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아내는 다시 평온한 얼굴을 되찾아가고 있다. 식당 일은 둥지(구역)별로 할당해서 맡겨버렸고, 곧 있으면 예배반주도 새로 들어오신 집사님에게 어느 부분은 나누어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넘을 때에 사람은 금방 지치게 되고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 아내의 일로 나는 교회사역도 개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일을 못해낸다고 짜증낼 것이 아니라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조치해 주고 사람을 배려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그래서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지만 아내에게는 진정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로 인해 우리는 여러 일꾼을 발굴하고 얻을 수 있었다. 둥지별로 식사를 담당한지 벌써 4주가 되었다. 이제는 이전에 아내가 만든 음식보다도 음식이 더 풍성해졌다. 그리고 다양해졌다. 이 모두가 많은 공과를 배운 후에 비로소 터득하게 된 것이니 비싼 값을 치르고 얻은 소득이 아닐 수 없다.
2. 이렇게 기쁜 일이...
지난 주일(2008.5.4) 우리 교회에 부목사님께서 새로 부임하셨다. 교단은 우리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에 소속된 목사님은 아니시다. 예전에 우리 교단 부목사님을 모시기 위해 장신대 게시판에 청빙광고를 냈지만, 사택문제 때문에 번번이 성사되지 못했기에 부목사님을 모시는 문제를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개로 만난 분일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의 사정을 익히 잘 아시는 분이라 일이 잘 성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우리 교회의 사정을 잘 아시고 꼭 필요한 분은 보내주셨다. 지금이 바로 부목사님이 필요한 아주 적절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도 점차 사역이 많아지므로, 거의 날마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잠자리를 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것 저 것 관심을 갖고 봐주면, 어느덧 내가 해야 할 일만큼 시간은 뒤로 밀려나기 일쑤이니 밤 1시를 넘기는 것이 예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때에는 그 다음날에도 그 여파 때문에 사역에 지치곤 했다.
오늘로 부교역자가 온 지 4일째다. 하지만 너무나 행복하다. 특히 새로 들어오신 부목사님께서 찬양을 잘 하신다. 그리고 예의도 바르고, 지혜롭고, 말씀도 잘 하시는 것 같고, 성품도 참 고우신 분 같다.
복이란 무엇일까? 건강인가? 물질인가? 명예인가? 아니면 다른 데에 있는가? 내 생각으로는 복이 다른 데에 있지 않는 것 같다. 사람에게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꼭 우리가 예수님을 얻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건강을 얻기를 원하고, 부요를 얻기를 원하고, 형통을 얻기 원한다면 건강과 부요와 형통을 얻으려고 애 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송두리째 가져다주시는 그분 즉 예수님을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찬양을 잘 하길 원하고, 사역을 행복하게 하길 원하지만 나에게 그것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그러한 사람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특히 내가 하고 싶어하는 그것을 잘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것을 잘 하실 수 있는 사람을 얻으면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바로 그렇게 하여 함께 협력해야할 시기가 된 것이다. 즉 내게 시간이 부족하고 능력의 한계가 이제는 동역자를 통해 해결될 시기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 교회도 나 혼자만이 잘 할 수 있도록 능력과 지혜를 달라고 구할 시기에서 벗어나, 그 방면에 실력을 갖춘 사람을 찾아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부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부임하기 전 나는 그분에게 물어 보았다.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신지 말이다. 그랬더니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마음껏 전도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못한 토양에 얽매여 있다 보니 나 자신의 열정도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 같아, 이번에 옮기는 사역지에선 마음껏 전도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 교회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심방도 아니고 성경공부도 아니다. 사실 전도사역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마음껏 전도하고 싶다는 것이 소원인 목사님이 오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찬양도 잘 하시고, 전도도 잘하시는 부목사님을 얻게 되니,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아직 얼마나 일을 잘 해 내실 수 있을른지 모른다 하더라도, 목사님의 진실된 말과 행동 속에서 나는 우리 교회의 부흥을 꿈꾸어 본다.
시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복은 본인이 일을 잘 하는 것에 있지 않고, 사람을 얻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우리 교회에 좋은 부목사님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님, 이제 새로 시작합니다. 혼자 하던 일을 이제 서로 협력하고 나누어서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오니, 주여 원하옵기는 하늘의 지혜를 주시사, 나로 하여금 협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시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도와주며 섬기게 하소서. 담임목사라고 마음대로 부리거나 군림하지 말게 하시고, 종의 자세로 언제나 함께 하는 지도자가 되게 하시며, 시간을 잘 안배하고 사역을 안배하여 교회가 더욱더 든든히 서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8년 5월 7일(수)에
동탄신도시에서 정병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