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누가 과연 주님에 의해서 발견되어지는 잃은 양인가?(눅15:1~7)_2019-02-07(목)

https://youtu.be/-tSmsLoPDww

 

1.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다. 그러나 주님을 찾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지는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주님을 찾아온 자들이라도 극히 적은 숫자만이 구원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왜 그럴까?

 

2.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온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다고 주님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과연 주님에 의해서 발견되어진 사람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주님을 찾아왔다고 해도 누가 구원을 받는지 겉으로 보아서 분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주님에 의해 발견되어진 자가 결국 건짐(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잃은 양의 비유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오늘 읽었던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 말씀(눅15:1~7)에 따르면, "잃은 양"은 죄인들을 상징하고 있으며, "목자"는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나머지 99마리의 양들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자들 곧 하늘에 있어 이미 구원받은 채 있는 영혼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비유말씀으로서 중의적인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 말씀을 꼭 들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이 말씀은 뼈속 깊이 들어가게 되는 말씀이라는 뜻이다. 오늘 말씀은 사실 두 종류의 사람들에게 들려주신 것이다(눅15:1~7). 본문에 따르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있었다. 하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계속해서 듣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나온 세리들과 죄인들이 있었다. 또 하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고 있는 예수님을 비난하면서 힐난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율법사들)이었다. 그런데 이때 주님께서는 바로 두 종류의 사람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이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잃은 양 한 마리와 들에 있는 양 99마리가 과연 누구를 의미하는지 우리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비유의 결론의 말씀인 7절말씀을 헬라어원문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그렇다면, 7절말씀은 헬라어원문으로 어떻게 쓰여 있을까?

 

3. 누가복음 15장 7절을 헬라어원문을 가지고 직역해보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와같이 하늘 안에서는 회개할 필요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의인 아흔아홉보다, [지금] 회개하고 있는 죄인 한 사람에 대하여 더 기쁨이 있을 것이다(눅15:7)" 그렇다. 주님 보시기에는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한 종류는 "회개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며, 또 한 종류는 "현재 회개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중에서 회개할 필요성이 없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있는 자들이 예수님 앞에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다. 그러나 현재 회개하고 있는 자들도 예수님 앞에 있었다. 그들은 바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회개하고 있는 세리들과 죄인들이다. 결국에 들어 있는 99마리의 양은 이중적으로 살펴볼 때에, 스스로 회개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는 자들 곧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근거는 중간에 또 나온다. 그것은 잃은 양을 되찾은 목자가 잃은 양을 목에 메고 어디로 갔는지가 말해준다. 목자는 99마리가 있는 들(광야)로 가지 않았다. 자기의 집으로 갔다. 여기서 들(광야)은 이 세상에 있는 교회를 상징하고, 집은 천국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서 누가 과연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것은 오늘도 역시 회개하고 있는 자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4.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지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지금 자기가 스스로에 대해서 의인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랬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눅18장에서 어느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해 말씀하셨다(눅18:9~14).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으로 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으니 그는 따로 서서 거룩한 체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는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행하고 있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빠짐없이 드리나이다(눅18:11~12). 하지만 세리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그는 성전으로부터 멀리 서 있는 채,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만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비유의 결론의 말씀으로서, 누가 과연 의롭다하심을 받고 집에 돌아갔는지를 말씀해주셨다. 그것은 스스로 의인인 체하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그때 회개하였던 세리라고 말씀하셨다(눅18:14). 그렇다. 자신이 죄인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한다 할지라도 소용없는 것이다. 주님이 그러한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그런 자를 결코 발견해 내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의 기도소리는 주님의 귀에 결코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5. 주님은 목자이시다. 그것도 선한 목자이시다. 자신의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분이시다. 하지만 길 잃은 양이라 할지라도 주님에 의해서 발견되어져서 건짐을 받는 잃은 양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것은 주님의 사랑이 작아서도 아니며, 주님의 손길이 짧아서도 아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지 않은 채 주님을 찾기 때문이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귓가에 전달되지 않는다. 주님은 결론적으로 또렷히 말씀하셨다. "회개할 필요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의인 아홉"이 누군지를 말이다. 이는 하늘에 있는 구원받은 영혼들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의적으로 볼 때에는 이 땅에서도 스스로 자신을 의인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나는 진정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에 속한 자인가? 속과 겉이 다 깨끗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주님이 필요 없다는 사람이요,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자신은 법없이도 살 사람이요,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분들은 사실상 구원받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가족이나 일가친척 혹은 친구들 중에서라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꼭 기도해주어야 한다. "주여, 저가 죄된 본성을 가진 죄인인 것을 보게 해주소서. 주님없이는 살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소서. 성령이여, 그 사람 안을 비추시사 자신이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보게 하여 주소서."라고 말이다.

 

 

2019년 2월 7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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