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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IxbH1TZgJ1A
날짜 2026-05-22
본문말씀 사도행전 2:1~13(신약 188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5-22(금) 제3회 방언열기세미나 제2부 

제목: 방언열기 실습(방언, 언어방언, 마음+방언, 전투방언, 방언찬양)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xbH1TZgJ1A

 

 

1. 들어가며

  방언을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다. 어떤 이는 방언을 사모하면서도 혹시 내가 잘못된 것을 받으면 어떻게 하는가하는 두려움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한다. 또 어떤 이는 방언은 성경 시대에만 있었고 지금은 끝났다고 배웠기 때문에 성령께 혀를 내드리는 것을 주저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방언은 특별히 신령한 사람만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은 아직 자격이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성경은 방언을 그렇게 어렵고 멀리 있는 것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새 방언을 말하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6:17).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이번 세미나 제2부의 핵심은 방언의 이론을 넘어 실제다. 방언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거듭난 영이 어떻게 혀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말하게 되는지를 배워야 한다. 방언은 억지로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 아니다. 방언은 성령께서 거듭난 성도의 영과 혀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말하게 하시는 영의 발설이다. 그러므로 방언 실습의 핵심은 발음이 아니라 위탁이다. 혀를 혼의 통제 아래 붙들어 두던 습관을 내려놓고, 성령께서 사용하시도록 내드리는 것이 방언의 출발이다.

  방언은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자 동시에 성령께서 거저 주시는 은사(서물). '표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세메이온이다.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영적 의미를 품은 징조다.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이다. 이는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돈을 주고 사는 것도 아니며, 종교적 공로로 획득하는 것도 아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의 생명을 받은 성도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나 방언은 선물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성령이 주시는 참된 방언이 있는 것처럼, 악한 영이 혀를 방해하거나 흉내 내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방언을 사모하는 성도는 회개와 분별을 함께 배워야 한다. 방언이 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방언이 성령께 드려지는 정결한 통로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방언은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영을 세우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은사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품위와 질서가 함께 지켜져야 한다.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해 온 한 분 하나님, 회개 중심의 구원론,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한 종말론, 귀신의 방해를 끊는 영적 분별,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타임라인은 방언을 이해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방언은 단지 은사 체험이 아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새 방언,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시작된 영의 언어, 교회 시대 동안 성도를 세우는 은사, 그리고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는 날까지 필요한 영적 도구. 그래서 이 시간에는 방언이 왜 표적이며 은사인지, 거듭난 영은 왜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성령께 혀를 내드릴 때 방언기도와 전투방언과 방언찬양이 어떻게 열리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방언은 왜 표적이며 은사인가?

  방언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방언의 두 가지 성격을 붙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방언은 표적이며 은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표적'이라 함은 단순히 놀라운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표적은 하나님께서 어떤 영적 사실을 보이시기 위해 허락하신 징조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가운데 하나로써 '새 방언'을 말씀하셨다(막 16:17).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 안에 성령의 생명이 들어와 그의 영이 살아났음을 드러내는 표적이다. 그러므로 표적으로서 방언은 믿는 자라면 다 할 수 있다. 표적으로서의 방언은 한 가지 종류로서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말하는 방언을 가리킨다. 이것은 자신이 믿는 자가 되어서 거듭난 자로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표시이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거듭난 자는 영으로 말만 할 줄 알게 되면 그냥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방언이 성령의 선물이라는 관점도 매우 중요하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고 선포했다(2:38). 여기서 선물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다. 방언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방언을 받기 위해 사람이 종교적 자격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성령의 선물이라는 성경적 의미를 흐리게 된다. 그리고 은사로서의 방언은 그것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권한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이때는 방언을 받는다고 말해야 한다. 성령께서 주시는 것을 자기가 받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방언은 선물로서 주신 것으로서 다양한 종류의 방언들이 있다. 대신방언, 대인방언, 대물방언, 대적방언 등이 그것인데, 이것을 못 받는 성도도 있을 수 있다. 성령께서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자에게 은사로서 주시기 때문이다.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렇다면 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방언을 말하지 않는가? 고린도전서 12장은 각종 방언(원문, 방언들의 종류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헬라어 원문 흐름으로 보면 여러 종류의 방언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기도방언이 열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언어방언이 나타나며, 어떤 사람에게는 찬양방언이나 전투방언의 형태가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다 방언[들]을 말하는 자겠느냐는 말씀은 성령이 주시는 방언의 은사들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형태와 똑같은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서의 방언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고전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방언들의 종류)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의] 통역함을 주시나니.

  그러므로 방언은 받는 방언이면서 동시에 하는 방언이다. 특별한 각종 나라의 언어 방언이 선물로 임하는 경우가 있다. 배운 적 없는 언어가 성령의 역사로 발설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방언은 성령께서 이미 주신 생명을 가진 성도가 자신의 혀를 내드려 발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헬라어가 랄레오. 랄레오는 말하다, 발설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방언은 마음속으로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혀를 사용하여 발설하는 은사다.

  그러므로 성도는 방언을 지나치게 어렵게 만들 필요가 없다. 믿는 자에게 표적이 따르고, 성령의 선물은 거저 주어진다. 다만 이 선물은 회개와 믿음과 순종 안에서 받아야 한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는 자기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영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방언을 사모하는 성도는 먼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지, 죄 사함을 위해 회개하고 있는지, 그리고 성령께 자신을 내드릴 마음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 위에서 혀를 내드릴 때 방언은 표적으로 나타나고 은사로 역사한다.

 

 

3. 거듭난 영은 왜 말해야 하는가?

  '거듭남'은 사실 생명의 문제다. 사람이 부모로부터 육체의 생명을 받아 태어나면 시간이 지나면서 말을 배우게 된다.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부모는 그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거듭난 영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도의 영 안에 생명 주는 영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왔다면, 그 영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원한다. 방언은 살아난 영이 혀를 통해 하나님께 말하기 시작하는 표적이다.

  특히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 주는 영으로 증언한다.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으며, 부활하셔서 생명 주는 영으로 믿는 자 안에 들어오신다(고전 15:45). 그러므로 성령께 혀를 내드린다는 것은 예수님과 분리된 어떤 힘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 주는 영으로 내 안에 오셔서, 내 영과 혀를 사용하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이다(고전 15:45).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이 점에서 방언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방언은 영의 언어다. 혼이 혀를 붙들면 익숙한 인간 언어가 나온다. 그러나 성령께서 거듭난 영을 통하여 혀를 사용하시면 영의 언어가 나온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종종 혀를 너무 혼으로 붙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방언을 주시옵소서라고 한국말로만 계속 반복하지만 정작 혀를 성령께 내드리지 못하면 방언이 터지기 어렵다. 방언은 혀를 쓰는 은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영의 언어 훈련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말 못 하는 아이에게 언어 훈련이 필요하듯,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성도에게도 영의 언어 훈련이 필요할 수 있다. 이것은 억지로 이상한 소리를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 혀가 혼의 습관에만 묶여 있지 않도록 풀어 주고, 성령께서 사용하시도록 내드리는 순종의 과정이다. 입을 열고 소리 내어 기도하는 훈련, 통성으로 부르짖는 훈련, 혀를 성령께 맡기는 훈련은 이 점에서 실제적이다.

  또한 방언은 영이 사용되는 길을 열어 준다. 육체가 사용될수록 힘을 얻듯이, 영도 성령 안에서 사용될수록 민감해진다. 방언을 거의 하지 않는 성도는 영의 세계를 알아도 실제로 적용하는 데 약할 수 있다. 그러나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께 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성령의 감동과 악한 영의 방해를 더 분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방언은 다른 은사로 나아가는 기초 훈련이 된다.

  성도 안에 들어오시는 분은 생명 주는 영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고, 누구든지 문을 열면 그에게 들어가겠다고 말씀하셨다(3:20). 주님이 들어오셨다면 생명이 들어온 것이다. 그러면 나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내 안에 생명이 들어왔다면 나의 영은 말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부모의 생명을 물려받은 아기가 말을 하는 것과 같다. 다만 아직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두려움과 선입관과 악한 영의 방해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할 수 있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러므로 방언 실습은 신비 체험을 조작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거듭난 영이 말하도록 돕는 시간이다. 성도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자임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생명을 주신 성령께 자신의 입술과 혀를 내드려야 한다. 그때 영은 하나님께 말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방언의 출발이다.

 

 

4. 방언은 성도의 영을 어떻게 건축하는가?

  그렇다면 방언의 유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에는 본질적인 유익이 있고 보조적인 유익이 있다. 

  먼저 보조적인 유익부터 살펴보자다. 첫째로, 방언을 하면 오래 기도할 수 있다. 아는 말로 기도하다 보면 같은 말이 반복되고 생각이 막힐 때가 많은데 방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방언은 영이 하나님께 말하는 기도이므로 오래 지속할 수 있다. 또한 둘째로, 방언은 성도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는 표적이 된다. 이것만이 구원의 표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내 안에 생명이 들어왔고, 내 영이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하는 것이다. 

  그러나 방언에는 본질적인 유익이 있다.

  첫째로, 방언의 가장 중요한 본질질적인 유익은 성도의 영을 세운다는 데 있다. 고린도전서 144절은 방언을 말하는 자가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세운다는 말은 헬라어 오이코도메오와 관련된다. 이 말은 집을 짓다, 세우다, 재건하다, 복구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방언은 단순히 감정이 뜨거워지는 기도가 아니다. 방언은 성도의 영을 새롭게 짓고, 무너진 영적 삶을 재건하며, 잃어버린 힘을 회복하게 하는 기도다.

고전 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그러므로 방언을 하면 영을 새롭게 건축할 수 있다. 죄와 상처와 세상 염려로 약해진 영은 말씀과 기도와 회개를 통해 다시 세워져야 한다. 방언은 이 과정에서 영의 내적 힘을 강화한다.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면 성도는 자신의 생각이 다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영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다. 그때 영은 점점 깨어나고, 성령의 감동을 더 민감하게 받게 된다.

  그리고 방언은 무너진 영적 삶을 재건할 수 있다. 어떤 성도는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영이 자라지 못한다. 기도할 힘이 없고,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약하고, 악한 영의 공격 앞에 쉽게 무너진다. 이런 경우 방언기도는 다시 일어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방언을 통해 영이 하나님께 계속 말하면, 무너졌던 영적 호흡이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살아난다.

 또한 방언은 잃어버린 영적 기능을 복구할 수도 있다. 성도는 처음 예수 믿을 때 뜨거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적 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면 마음으로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고, 성령께서 그 영을 다시 살리신다. 고린도전서는 방언으로 기도할 때 나의 영이 기도한다고 말한다(고전 14:14-15).

고전 14:14-15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둘째로, 방언은 다른 은사들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자 통로 역할을 한다. 방언을 통하여 영의 통로가 열릴수록 방언 통역, 예언, 영분별, 치유, 축사와 같은 은사들이 더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셋째로, 방언은 또 영적 전투에도 유익하다. 왜냐하면 방언은 귀신이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영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악한 영들은 성도가 방언을 하여 하나님께 어떤 비밀을 말하고 있을 때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특히 전투방언기도로 들어가면 성도의 영적 권세가 강화된다. 물론 성도는 방언 자체의 힘으로 귀신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역사 안에서 악한 영을 대적하는 것이다. 방언은 그 싸움에서 영을 강화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넷째로, 방언은 하나님의 뜻과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더 깊이 알게해 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방언 통역이나 예언의 은사가 함께 열릴 때, 성도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어떤 방향으로 자신을 이끄시는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성경과 회개와 교회의 질서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참된 성령의 역사는 성경의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며, 성도를 더 거룩하고 충성된 길로 인도한다.

  다섯째로, 방언은 대인방언과 대국방언으로 연결되면, 복음전파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방언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방언은 단순히 나도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기 위한 표식이 아니다. 방언은 성도의 영을 세우는 실제적 은사다. 무너진 영을 다시 세우고, 약해진 영을 강화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지속하게 하며, 더 큰 은사들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성령의 통로다.

  여섯째로, 방언 중에서도 전투방언(대적방언)을 많이하면 영권을 올릴 수가 있다. 방언을 하다가 전투방언을 할 수 있다면 그는 더 높은 영적인 계급을 갖게 되고 영적 무기들까지 장착할 수 있다. 

 

 

5. 방언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방언에는 한 가지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2장이 각종 방언이라고 말하듯, 방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전 12:10). 이를 지나치게 복잡한 체계로 만들 필요는 없지만, 실제 사역과 기도생활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이해하면 성도들이 자신의 방언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

  첫째, 방언을 발성의 형태로 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첫째로, 기본적인 애기방언(일명 '랄랄라'방언)이 있다. 어떤 사람은 랄랄처럼 반복적이고단순한 소리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을 유치하게 볼 필요가 없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울 때 처음부터 문장을 말하지 못하듯이, 방언도 처음에는 단순한 발설로 시작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소리가 사람에게 얼마나 유창하게 들리느냐가 아니라, 성령께서 거듭난 영을 통하여 하나님께 말하게 하시느냐이다.

  둘째로, 언어방언이 있다. 이는 마치 어떤 언어처럼 유창하게 흘러나오는 방언이다. 때로는 실제 외국어처럼 들리거나, 듣는 사람에게 자기 언어로 들려지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는 말하는 자들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했고, 듣는 자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들었다. 그러므로 방언을 단순한 외국어로 축소해서도 안 되고, 외국어처럼 들리는 방언의 가능성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 성령께서는 말하는 자의 혀와 듣는 자의 귀를 모두 사용하실 수 있다(2:4, 8).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셋째로, 전투적 성격이 강한 단파방언이 있다. 짧고 강한 발성으로 악한 영의 진을 치고 들어가는 것처럼 나타나는 방언이다. 이런 방언은 특별히 영적 전투의 자리에서 강하게 사용될 수 있다. 다만 이것을 소리의 모양만으로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언어방언을 통해서도 전투하게 하시고, 단순한 발설을 통해서도 영을 세우실 수 있다.

  둘째, 방언의 종류를 방언을 하는 대상에 따라 나누어 보면 4가지 종류의 방언이 있다. 그것은 대신방언, 대인방언, 대국방언, 대물방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대신방언은 하나님께 말하는 방언이다. 고린도전서는 방언을 말하는 자가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한다고 말한다(고전 14:2). 둘째로, 대인방언은 하나님께서 방언을 통하여 특정 사람에게 깨닫게 하시는 경우다. 셋째로, 대국방언은 나라와 언어권을 넘어 듣는 이들이 자기 언어로 듣게 되는 방언의 역사다. 넷째로, 대물방언은 창조 세계와의 영적 교감까지 포함하여 설명될 수 있지만, 출판 원고에서는 성경적 중심을 잃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셋째, 방언의 종류를 따라 방언을 하는 방법으로 나누면, 5가지가 있다. 그것은 대화방언, 기도방언, 찬양방언, 축복방언, 대적방언이다. 이것들 중에서 첫째로, 대화방언은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흘러나오는 방언이고, 둘째로, 기도방언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방언이다. 셋째로, 찬양방언은 영이 하나님을 높이며 노래하는 방언이다. 넷째, 축복방언은 사람을 축복하는 자리에서 사용될 수 있고, 대적방언은 악한 영을 대적하는 자리에서 사용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방언의 종류를 아는 이유는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방언의 종류를 알면 자신의 기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고, 성령께서 어떤 방향으로 이끄시는지를 분별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단순한 방언으로 시작하여 언어방언으로 발전하고, 어떤 사람은 기도방언을 오래 하다가 방언찬양으로 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가문을 위해 전투방언기도를 하면서 영적 권세가 강화된다. 중요한 것은 모든 방언이 성령께 드려져야 한다는 점이다. 방언의 종류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방언을 통해 성도의 영이 세워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가이다.

 

 

6. 성령 방언과 귀신 방언은 어떻게 분별하는가?

  그런데 우리가 방언을 말할 때 반드시 해야 할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그것이 성령이 주시는 방언인지 귀신이 주는 방언인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방언은 분명하게 성령께서 주시는 귀한 은사이지만, 성경은 영들을 다 믿지 말고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악한 영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몸을 붙들 수 있고, 때로는 혀를 붙잡아 쓸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방언을 무조건 두려워해서도 안 되지만, 아무 분별 없이 은사만 추구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주신 방언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혀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 방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성도가 성령께 혀를 내드릴 때 나온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의 기도요 찬양이다. 방언 통역의 사례들을 보면, 참된 성령 방언은 영혼 구원, 회개, 교회, 나라와 민족, 목회자와 성도, 가족 구원,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으로 나타난다. 정욕적이고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내용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방향을 가진다.

  반대로 귀신 방언은 성령을 받은 자라도 악한 영이 그 사람의 혀를 붙들거나 성령의 역사를 흉내 낼 때 나타난다. 물론 불신자가 악령을 받아 이상한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을 하는 자이지만, 회개하지 않은 죄와 혀에 달라붙어있는 악한 영들 때에 악한 영의 말이 섞이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일단 방언을 중지하고, 회개와 축사를 통해 혀를 깨끗한 후에 방언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귀신이 행하게 하는 방언을 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첫째로, 방언을 말하는데 도무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혀를 내가 통제하지 못할 때에 귀신이 혀를 붙잡아 귀신 방언을 하게 한다. 사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에는 언제나 절제가 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절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제되지 않는 상태로 끌려가며 방언을 할 때에는 일단 방언을 중지하고 점검을 받아야 한다. 둘째로, 방언 소리가 혹은 방언하는 자의 태도가 혐오스럽고 소름 끼치는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방언을 하는데 뱀의 혀처럼 사람의 혀가 밖으로 삐져 나온다. 그리고 뱀이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즉 '스스스스...', 쉬쉬쉬쉬..."등으로 말이다. 그리고 입에서 침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도 하거나 침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면 그것은 지금 뱀이 그 사람의 혀를 붙잡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방언도 성령께서 내 혀를 붙잡아 쓰는 것인지 귀신이 붙잡아 쓰는 것인지를 빨리 분별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강력하지만 무질서하지 않음을 알라. 그리고 성령은 사람을 세우시고, 악한 영은 사람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알라.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악한 영은 결국 사람을 혼란과 교만과 두려움으로 끌고 간다. 그러므로 귀신방언하는 사람의 방언을 통역하게 되면 욕설이 나오고 저주하는 말이 나온다. 

고전 14:32-33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귀신이 혀를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성도는 믿음이 있으면서도 방언이 쉽게 터지지 않는다. 그 이유가 반드시 악한 영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조상 때부터 내려온 우상숭배의 영, 두려움의 영, 종교적 선입관의 영, 혀를 붙들고 있는 영이 방해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성도는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을 모르고 산 죄, 성령의 역사를 거부한 죄, 방언을 조롱하거나 두려워한 죄, 혀를 세상 말과 원망과 비방에 내어준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런데 분별의 기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성령은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영이다. 성령 방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회개를 깊게 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고, 성도의 영을 세운다. 큰 귀신은 때로는 예수님을 가장하여 나타나기도 하지만 결국 두려움과 교만과 혼란과 정죄와 더러움으로 끌고 간다. 그러므로 성도는 방언을 두려워하기보다 회개와 분별로 통해 혀를 깨끗하게 한 다음에 성령께 자신의 혀를 내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방언을 사모하는 성도는 은사를 받기 전보다 받은 후에 더 겸손해야 한다. 방언이 열린 사람은 자신이 신령하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더 깊이 회개해야 한다. 혀가 성령께 쓰임받기 시작했다면, 그 혀가 다시 원망과 비방과 거짓말과 정죄에 쓰이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방언은 혀의 주권을 성령께 드리는 은사이기 때문이다.

 

 

7. 어떻게 혀를 성령께 내드려 방언을 시작하는가?

   방언을 시작하는 실제 원리는 어렵지 않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하나님으로 확실히 믿어야 한다. 방언은 거듭난 영이 말하는 것이므로, 먼저 생명 주는 영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셔야 한다. 성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께서 하나님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생명 주는 영이 되셨음을 믿어야 한다. 이 고백이 분명할 때 방언은 성령의 선물로 열릴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영접기도문이다. 영접기도문은 아래에 파일로 첨부한다. 

  둘째, 회개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방언을 말하지 못하게 막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잘못된 선입관과 죄의 묶임이다. 방언은 끝났다고 배운 것, 방언을 귀신의 소리라고 조롱한 것, 성령의 역사를 거부한 것,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을 무시한 것, 혀를 세상 말과 죄악에 내어준 것을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통로를 깨끗하게 한다. 특히 혀와 생각을 붙들고 있는 악한 영의 방해가 있다면,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방해를 끊어야 한다.

  셋째, 입을 열어 통성으로 소리 내어 기도해야 한다. 방언은 마음속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혀를 사용하는 은사다. 마음으로만 방언을 주세요라고 반복한다고 해서 혀가 성령께 내드려지는 것은 아니다. 성도는 입을 열고 소리 내어 기도해야 한다. 물론 조용히 기도해야 할 장소와 시간이 있다. 그러나 방언을 열기 위한 실습의 자리에서는 혀를 사용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통성으로 부르짖는 기도는 혀를 성령께 내드리는 데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

  넷째, 한국말을 하려는 혼의 통제를 내려놓고 성령께 자신의 혀를 맡겨야 한다. 방언은 내가 이해하는 문장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다.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영이 그냥 발설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혀가 어색하고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께 자신의 혀를 맡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혀를 풀어 내드리는 훈련, 익숙한 찬양의 발음을 변형하여 혀를 성령께 맡기는 훈련은 그 자체가 방언이라는 뜻이 아니라, 혼의 통제를 내려놓고 혀를 내드리는 준비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때 두려움을 내려놓야 한다. 어떤 성도는 혀를 맡기면 미치는 것 아닌가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성령께 자신을 맡긴다고 해서 정신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령은 사람을 온전하게 하신다. 물론 귀신의 방해가 있다면 분별해야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성령의 은사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은 성도를 더 깊은 기도와 회개와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이끈다. 그리고 방언을 시작하게 되었다면 그때부터는 절제도 배워야 한다. 방언이 열린 후에도 성도는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질서 안에서 사용된다. 방언으로 기도하다가 멈추라고 할 때 멈출 수 있고, 공예배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방언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방언은 자기 과시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영의 기도다.

고전 14:39-40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다섯째, 그래도 방언을 못한다면 2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로, 안수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마리아교회나 에베소교회가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 그리고 사도 바울의 안수를 받아서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안수를 받을 때에 방언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이 쫓겨나게 됨으로 방언을 말하게 된 것이다. 둘째로, 혀에 붙어있는 뱀들을 잡아야 한다. 혀를 불 사역자의 손으로 잡아서 그 속에 있어서 방언을 하지 못하게 하는 영들을 불로 태워야 한다. 한 번으로 다 태워지지 않으면 수 차례를 안수받아서 혀에 달라붙어있는 영들을 태워야 한다. 

  따라서 방언을 시작하는 길은 '회개'와 '믿음'과 '발설'과 '위탁'과 '축사'가 그 핵심이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입을 열고, 혀를 성령께 내드리는 것이다. 방언은 신비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거듭난 영이 말하게 되는 정상적인 영의 언어다. 성도는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자신의 혀를 내어드릴 때, 영으로 하나님께 말하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8. 방언기도와 전투방언과 방언찬양은 어떻게 하는가?

  방언이 열린 후에는 그 방언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도 함께 배워야 한다. 방언은 단순히 한 번 터지고 끝나는 체험이 아니다. 방언은 계속 사용해야 영을 세운다. 방언기도, 마음+방언기도, 전투방언기도, 방언찬양은 성도가 영을 성장시키고 하나님께 더 깊이 나아가는 실제 길이다.

  첫째, 가장 기본적인 방언기도가 있다. 성도는 정해진 시간을 두고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다. 처음에는 10, 20분에서 시작하여 점차 시간을 늘릴 수 있다. 방언으로 기도할 때 마음이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영은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생각이 막힐 때에도 영의 호흡을 계속하게 한다. 성도는 방언기도를 통해 자신의 영이 하나님께 말하고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이때는 아무 생각없이 방언을 하는 것이다.

  둘째, 마음+방언기도가 있다. 이것은 두 채널을 가동시키는 기도이다.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와 영으로 드리는 기도를 동시에 가동시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은 영으로도 기도하고 마음으로도 기도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마음으로는 가족 구원을 붙들고, 입으로는 방언을 말할 수 있다. 마음으로는 주님, 내 아버지를 구원해 주옵소서. 내 자녀가 세상길로 가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붙들고, 혀로는 방언을 통해 영이 하나님께 말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을 완전히 비우는 행위만이 아니라, 마음의 간구와 영의 발설이 함께 드려지는 기도다.

  셋째, 전투방언기도가 있다. 성도의 가정과 가문과 영혼을 괴롭히는 악한 영들이 있다. 어떤 영은 우상숭배를 통해 들어오고, 어떤 영은 음란과 거짓과 미움과 질병과 자살 충동과 두려움으로 역사한다. 전투방언기도는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언어로 악한 영의 역사를 대적하는 기도다. 성도는 자기 힘으로 귀신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역사 안에서 대적해야 한다. 방언은 이때 영적 권세를 강화하고, 영을 담대하게 세우는 도구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전투방언기도를 할 때는 분명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 가족을 괴롭히는 악한 영을 끊고, 가문의 죄로 내려온 묶임을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이름을 의지하여 대적해야 한다. 그러나 전투방언기도가 회개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악한 영의 근거는 죄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소리만 크게 낸다고 영적 전투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회개가 근거를 제거하고, 방언기도가 영을 강화한다.

  넷째, 방언찬양이 있다. 방언찬양은 영이 하나님께 노래하는 것이다. 기도방언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라면, 방언찬양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며 경배하는 영의 노래다. 처음에는 익숙한 찬송가의 곡조 위에 방언을 얹어 부를 수 있다. 그러다가 영이 더 풀리면 정해진 곡조를 넘어 성령께서 주시는 흐름을 따라 찬양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깊은 영의 예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방언을 할 때 주의해야 사항이 있다. 

  , 방언은 교회 질서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공예배에서 대표기도를 맡았는데, 방언으로만 한다거나, 설교를 맡았는데 방언으로 설교한다면 회중은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 안에서는 통역이 없으면 잠잠하고 자신과 하나님께 말하라고 가르쳤다. 방언을 금하지 말아야 하지만, 방언을 무질서하게 사용해서도 안 된다. 방언은 개인 기도와 영적 건축에 매우 유익하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품위와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둘째, 방언 생활에는 지속성이 필요하다. 한 번 방언이 열렸다고 해서 영적 성장이 자동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를 한 번 배우면 다시 탈 수 있듯이 방언도 한 번 열리면 계속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으면 영의 힘은 약해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하여 회개기도와 방언기도를 함께 드리는 생활을 세워야 한다. 회개로 정결케 되고, 방언으로 영을 세우며, 말씀으로 방향을 붙들 때 영적 성장은 안정적으로 이루어진다.

고전 14:27-28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셋째, 방언은 회개를 대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계 22:14).  방언으로 아무리 오래 기도해도 죄를 자백하는 회개를 하지 않으면 그 죄를 남아 있다. 회개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자백야 하기 때문이다(요일 1:9). 방언기도는 영을 세우고 전진하게 하지만, 회개기도는 죄의 근거를 제거하고 성도를 정결하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회개기도와 방언기도를 함께 붙들어야 한다. 회개로 통로를 깨끗하게 하고, 방언으로 영을 세우며, 전투방언으로 악한 영을 대적하고, 방언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마지막으로 넷째, 방언기도는 사람의 성품을 바꾸어주지도 않으며, 회개가 자신의 감사생활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언기도가 자신의 영을 세우는데 중요하지만 성품은 혼의 성품이기도 방언으로 아무리 기도해도 성품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혼의 파쇄와 죽음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감사도 마찬가지이다. 감사는 마음과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사는 마음과 말 뿐만 아니라 다른 것으로 하나님께 표현을 해야 한다. 

 

 

9. 나오며

   우리는 방언 열기 실습이 성경적으로 무엇을 뜻하며 성도가 어떻게 혀를 성령께 내드려 영으로 기도하고 찬양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방언은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며, 성령께서 거저 주시는 은사다. 또한 방언은 거듭난 영이 하나님께 말하기 시작하는 영의 언어다. 성도는 방언을 이상한 소리나 특별한 사람만의 체험으로만 보지 말고, 성경이 말하는 영의 발설로 이해해야 한다.

  방언은 성도의 영을 건축한다. 고린도전서 14장의 말씀처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운다. 이는 영을 새롭게 짓고, 무너진 영적 삶을 재건하며, 잃어버린 영적 힘을 복구하는 유익을 뜻한다. 방언은 오래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영의 통로를 열어주며, 다른 은사들로 나아가는 길을 준비하게 한다. 특히 전투방언기도는 악한 영의 방해를 대적하는 자리에서 성도의 영적 권세를 강화하는 데 유익하다.

  그러나 방언은 반드시 회개와 분별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성령 방언과 귀신 방언은 구별되어야 하고,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혀가 누구에게 드려져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성령께 드려진 혀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며 영을 세운다. 그러나 악한 영에게 방해받는 혀는 혼란과 두려움과 더러움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회개하여 혀와 마음과 생각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방언은 또한 질서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금해서는 안 되지만, 은사를 무질서하게 사용해서도 안 된다. 공예배와 공동체 안에서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방언 통역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개인 기도와 영적 훈련에서는 방언을 충분히 사용하여 영을 세워야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품위와 질서가 함께 지켜져야 한다.

  방언기도와 회개기도는 함께 가야 한다. 방언은 영을 세우지만 죄를 자백하는 회개나 성품을 바꾸는 것과 감사를 대신하지 않는다. 회개는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는 것이며, 방언은 영을 세우며 하나님께 더 깊이 나아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회개로 두루마기를 빨고, 방언으로 영을 세우며, 전투방언기도로 악한 영을 대적하고, 방언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국 새 예루살렘 성을 준비하는 나의 삶과 직결된다. 방언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니다. 방언은 성도를 더 깊은 기도와 회개와 찬양과 영적 전투로 이끌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정결한 신부로 세우는 도구. 성도는 은사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은사를 통해 더 회개하고 더 충성하고 더 깨끗해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성령께 혀를 내드려 영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며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5월 23일(토)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메시지는 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가 진행한 방언 실습 세미나의 강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방언을 성령이 거듭난 신자에게 거주신다는 표적과 은사로 정의합니다. 이 메시지의 핵심은 방언이 신비로운 소리에 그치지 않고 자기 영을 건축하며 영적 전투를 수행하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실제적인 유익을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방언이 특별한 수행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임을 천명하며, 랄랄라 방언부터 언어 방언, 전투 방언, 찬양 방언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와 단계를 상세히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메시지는 청중이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성령께 혀를 내어맡기는 구체적인 훈련을 통해 영적 성장을 가속화하고 구원의 확신을 얻도록 독려하는 실천적 지침을 제공합니다.

 

[설교요지]

방언은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며, 성령께서 거저 주시는 은사다. 거듭난 성도의 영은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성도가 자신의 혀와 의지를 성령께 내드릴 때 영의 언어가 열린다. 방언은 단순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영을 건축하고, 무너진 영적 삶을 재건하며, 다른 은사들의 통로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며, 하나님과 친밀하게 하고, 복음 전파와 영적 전투에도 유익을 준다. 그러므로 성도는 회개와 믿음과 질서 안에서 방언기도, 마음+방언기도, 전투방언기도, 방언찬양을 배워 영을 성장시켜야 한다.

 

#방언열기세미나 #방언실습 #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성령은사 #영적성장 #전투방언 #방언찬양 #예수그리스도 #구원의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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